조선 남성 심상은 이상하외다.
자기는 정조관념이 없으면서 처에게나
일반 여성에게 정조를 요구하고
또 남의 정조를 빼앗으려고 합니다.
(중략)
조선의 남성들아, 그대들은 인형을 원하는가,
늙지도 않고 화내지도 않고
당신들이 원할 때만 안아주어도 항상 방긋방긋
웃기만 하는 인형 말이오.
나는 그대들의 노리개를 거부하오.
내 몸이 불꽃으로 타올라 한 줌 재가 될지언정
언젠가 먼 훗날 나의 피와 외침이 이 땅에 뿌려져
우리 후손 여성들은 좀 더 인간다운 삶을 살면서
내 이름을 기억할 것이리라.
그러니 소녀들이여 깨어나 내 뒤를 따라오라 일어나 힘을 발하라.
-나혜석 「이혼고백서」 중에서 - P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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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은 멸종 위기에 처한 언어를 보호하고 경각심을 일깨우기위해 이 단지를 세웠다. 결과는 정반대였다. 그리고 그건 중앙에서 내심 바라는 바였다. 그들은 잊어버리기 위해 애도했다. 멸시하기 위해 치켜세웠고, 죽여버리기 위해 기념했다.  - P132

어머니와 헤어진 뒤 아버지는 매달 규칙적으로 우리에게 생활비를 보내왔다. 처음 몇 년은백만원씩, 어느 날부터 팔십만원씩. 나중에는 오십, 삼십으로 내려간 걸로 안다. 하지만 꽤 오랫동안 보내왔다는 것도. 그러다 마지막으로 보낸 액수가 이만 몇천원이었던가. 입금이 늦어질 경우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반드시 연락했다. 아버지는 그런 사람이었다. 한겨울, 방 한쪽에 잘 개어놓은 이불 같은 사람, 반듯하고 무겁고 답답한 사람. 그래서 나는 아버지가 불미스런 일로 학교 일을 관두고 강남 어디 테니스장에서 코치 겸 심판을 맡고 있단 얘기를 들었을 때 아버지와 그 자리가 무척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뒤 아버지는 고등학교 졸업식 땐 전자사전을, 대학원 입학식 땐 넥타이를, 군 입대 즈음엔 손목시계를 보내왔다. 고심한 흔적이 역력한, 그러나 평범하기 짝이 없는 물건들이었다.  - P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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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가능성이라고 하면 굉장히 거대한 말 같지만 사실은 몹시 연약한 말이기도 해요. 다른 사람의 가능성과 비교하면 상처 입기 쉽거든요. ‘저 사람에게는 있는데 나는 없네‘ 라는시각으로 보면 삶은 쉽게 초라해지고 가능성은 희박해집니다. 그래서 비교는 오로지 나 자신과만 해야 합니다.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더 낫기를, 또 오늘의 나보다 내일의 내가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거죠.
우리 모두의 앞에는 푸른 바다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누군가는 그저 바라만 보고 누군가는 기꺼이 그 바다를 건널 것입니다. 삶의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합니다. 우리의 삶은 어떤 계기로든 변할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꼭 말하고 싶습니다. 삶의 모든 것이 이미 결정 나버린 것 같은 생각이 들어도 가능성을 불신하지 말라고, 그러니 우리 쫄지 맙시다. 이미 엉망이라면 바다에 발 한번 담근다고 무슨 일이 일어나겠어요.
그저 자신의 가능성을 믿고 한 걸음 내딛어보자고요. 어린 활보가 그랬듯이.
- P202

원하는 직업을 얻거나 성공한다고 해서 삶이 끝나는 것도 아닌데 딱 거기까지만 생각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이러니 정작 꿈을 이뤄도 더 이상 뭘 해야 할지 모릅니다. 그순간 참 많이 흔들려요. 달성해야 할 목표가 사라지니 공허하기도 하고, 내가 원했던 삶이 이런 것이었나 하는 회의가 들기도 합니다. 성공했다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제대로 이끌어가지 못하고 도리어 망쳐버리는 모습을 우리는 종종 보게 됩니다. 이런 일이 생기는 까닭은 그들의 꿈이 ‘명사‘ 였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되느냐가 중요했을 뿐, 어떻게 사느냐에 대한고민은 없었던 것이죠. - P205

꿈은 더 행복해지기 위해 꾸는 것입니다. 불행하고 싶은 사람은 없잖아요. 저는 사람들이 명사가 아닌 동사의 꿈을 꾸면 좋겠습니다. 이왕이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지요. 그 꿈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데 기여하는 자신만의 자리를 발견하길 바랍니다. 그 힘이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거든요.
- P214

외모, 직업, 학벌남과 비교할 수 있는 부분은 한두 가지가 아니에요. 자본주의가 그 모든 것을 돈으로 연결합니다. 더 예뻐져야 하니까 이 다이어트 식품을 구입하세요! 좋은 회사에 가고 싶으면 취업 컨설팅을 받아보세요! 고액과외를 받아야 성적이 올라갑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두 번 상처 받습니다. 비교로 상처 받고, 그걸 극복할 돈이 없다는 생각에 또 상처 받는 거죠.
누군가와 비교하는 순간부터 인생은 불행해지기 시작합니다. 내가 가진 게 많으면 남과 비교도 안 하고 자긍심이 생길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많이 가져도 나보다 많이가진 사람을 보며 부족하다고 느끼는 게 인간입니다. 그러니 마음을 굳게 먹고 중심을 잘 잡고 있어야 비교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을 수 있어요.
- P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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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라운 뺨과 맑은 침을 가진 찬성과 달리 할머니는 늙는 게 뭔지 알고 있었다. 늙는다는 건 육체가 점점 액체화되는 걸 뜻했다. 탄력을 잃고 물컹해진 몸 밖으로 땀과 고름, 침과 눈물, 피가 연신 새어나오는 걸 의미했다. 할머니는 집에 늙은 개를 들여 그 과정을 나날이 실감하고 싶지 않았다.
- P50

일본 어느 도시에서는 벚꽃이 피었다 하고, 뉴욕 한낮 기온도 십팔 도를 넘었다 했다. 여러모로 올겨울은 겨울 같지 않았다. 파이프에서 물이 새듯 미래에서 봄이 새고 있었다.
- P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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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 넘어 아내가 도배를 하자 했다.
- 지금?
- 응.
소파에서 주춤대다. "그래" 하고 일어났다. 아내가 뭔가 먼저
"하자‘는 건 오랜만의 일이었다. 베란다로 가 수납장서 벽지를 꺼냈다. 얼마 전 동네 대형마트에서 산 ‘셀프 도배용 벽지‘ 였다. 한롤에 이만 몇천원, 폭은 내 어깨너비만한데 길이가 10미터를 넘어 손안에 전해지는 무게가 제법 묵직했다. 도배지를 든 채 설명서를 읽다 왠지 께름칙한 기분이 들어 곁눈질로 거실 불빛을 봤다. 그러곤 설명서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큰 소리로 외쳤다.
- 정말 지금 할 거지?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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