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첫 글쓰기는 샐린저를 모방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이어서는 레이먼드 카버를 읽으며 그가 묘사한 일상생활의 붕괴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지금보다 훨씬 감상적이었기 때문인지 쓸쓸한 리처드 예이츠의 작품도 좋았다. 트루먼 커포티의 작품도 읽었다. 내게는 자전적인 어린 시절 이야기들이 [티파니에서 아침을]보다 훨씬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그때는 미국 현실주의작가들이 그려낸 일상과 감정이 가슴에 와닿았다. 상품화된 사회와 소비주의 등이 세계를 정복하면서 인간의 삶이 동질화되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문학작품을 많이 읽을수록 현실에서 점점 멀어지는 느낌이들었다. 일이든 사업이든 감정이든 내 삶에는 좌절과 고통이 가득했다. 나는 내가 적응하기 힘든 세상에서 인정받으려 애쓰다가 끊임없이 실망하고 실패했다. 물론 실패를 외부 환경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었다. 나도 남들한테 인정받으려 그렇게 애쓸 필요가 없었다. 글쓰기처럼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 했다. 그 시간 동안 내 정신세계는 현실 세계가 척박해지는 만큼 풍요로워졌다. - P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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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우리는 많은 실수를 했고 많은 일을 그르쳤지만 그런 시간을 통해 나는 세상, 최소한 이 사회에 대해각성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 예전에 읽어보지 못했고 원래라면 절대 읽을리없는 책들을 읽었고 나를 변화시킨 개념과 주장을 접할 수 있었다. 그런 경험 덕분에 적당히 맞춰 살면 된다고 생각했던 과거에서 벗어나, 무엇이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은지 삶의 여러 가치와의미를 새롭게 살펴볼 수 있었다. 물론 변화는 한순간에 일어나지 않았고 그때 바로 완성되지도 않았다. 씨앗만 뿌려졌다가 이후 오랜 시간 천천히, 그렇지만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워 지금까지도 내게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그렇기에 앞에서 이야기한 일들은 어느 하나를 빼더라도대세에 지장이 없다고, 지금의 나를 형성하는 데 별 영향을 주지않았다고 할 수 있지만 베이징에서 겪은 일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되었을 것이다. 환골탈태는 과장일수 있겠지만, 적어도 그때의 경험이 지금의 내가 만들어지는 하나의 출발점이 되었음은 확실하다. 지금의 나는 다른 사람과의 차이 때문에 불안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 개성을 소중히 여긴다. 여전히 나는 모르는 게 많고 겁이 많지만 그 덕분에 의지와 신념이 생겼다. 이후로는 일을 하든 글을 쓰든 나만의 정신세계를 구축할 수 있게 되었다. - P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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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로는,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손해를 많이 보면서 이런 걸 전혀 알려주지 않은 부모님을 점점 원망하게 되었다. 부모님이 가르쳐주신 처세술은 사회에서 전혀 통하지 않았다. 부모님은 야망을 가져야 한다고 격려하는 대신 참고 견디라고만 가르치셨다. 옳지 않은 일은 하지 말라고 가르치셨지만, 모든 사람이 옳지 않은 일을 하는 데다 사회는 그들을 벌주고 나를 칭찬하는 게 아니라 그들을 칭찬하고 나를 벌주었다. - P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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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알았지만 주유소 직원과 택시 기사는 적은 아니라해도 절대 친구가 될 수 없는 사이였다. 택시 기사들은 일하다받은 스트레스와 분노를 그렇게 만든 사람한테는 풀 수 없으니 전부 우리한테 풀었다. 기름값이 0.1 위안만 올라도 우리한테 화를 내고 우리가 나쁜 사람을 돕는 하수인이라도 되는 양, 자기들이 더 내는 돈을 우리가 받아 챙기기라도 하는 듯 냉소와 조롱을 퍼부었다. 하지만 우리 역시 비슷한 방식과 태도로 그들을 대했다. 비천한 사람들은 불만이 생길 때 권력에 반항해 봐야 힘만들기 때문에 다른 비천한 사람을 괴롭힌다. 누구도 괴롭힐 수 없을 때는 동물을 학대한다. 흔히 사랑을 맹목적이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 사랑은 맹목이나 공리와 동떨어진, 본심에 충실한 감정이다. 맹목적인 것은 오히려 증오다. - P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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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마지막 날이니 거꾸로 가도 될 듯했다. 시간이 많이 허비되고 산업단지 고객은 출근 전이라 건너뛰었다가 나중에가야 하는데도 상관없었다. 갑자기 여유로워졌다. 천대받던 빈털터리가 하루아침에 부자가 된 듯 나는 시간을 흥청망청 보복적으로 썼다. 오랫동안 일분일초도 소홀히 하면 안 된다는 스트레스에 시달려왔다. 나는 늘 신경이 팽팽하게 곤두서 있었고 시간표에 따라 다음 목적지를 아등바등 쫓아가기만 했다. 그제야 문득 1년 넘게 일했는데도 아침 8~9시의 하이퉁우통위안과 치젠카이쉬안 단지를 보는 건 처음이라는 걸 깨달았다. 기존에 짜놓았던 시간이 아닌 다른 시간에 단지로 들어서자 느낌이 달랐다. 완전히 새로운 시선으로 내 일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시공간에 대한 인식의 변화만이 아니었다. 예전에는 적정과 불안 때문에 시도할 수 없었던 각도, 아무 목적 없는 각도에서 주변을 바라볼 수 있었다. 더 이상 나 자신을 정해진 가치를 창출하지 못하면 책망하고 화내는 시급 30위안짜리 배송기계로 보지 않아도 됐다. - P159

물론 최악의 택배기사였던 것도 아니었다. 고객과의 소통을 싫어하고 잘하지 못하는 것 말고 다른 면에서는 지점에서 제일 뛰어나고 책임감 있었다. 내 능력이 출중해서가 아니라 일을 과하게 맡지 않아서였다. 돈을 더 벌려고 관리하기 어려울 만큼 넓은 지역을 맡은 뒤 툭하면 항의를 받는 타입은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내 수입은 최고는커녕 지점 내 상위권에도 들지 못했다. 하지만 고객은 택배기사를 평가할 때 수입이 높은지 낮은지를 따지지 않았다.일을 마치기에 앞서 고객만 볼 수 있는 모멘트에 핀쥔택배의 폐업을 알리고 나도 더는 VIP숍의 물건을 배달하지 않는다고 썼다. 많은 고객이 위챗으로 내 서비스를 칭찬하며 오랫동안 고생했다고 감사의 글을 남겼다.
그 덕분에 줄곧 형편없었다고 생각했던 스스로에 대한 평가를 조금 높일 수 있었다. 한 고객은 "제가 만난 택배기사 가운데 가장 책임감 있었습니다"라고 남겨줬다. 특별한 인상을 받은 고객이 아니라서 그렇게 높이 평가해줄 거라고 생각도 못 했다. 하지만 그게 진심이라고 믿었다. 이미 업무가 종료돼 더는 만날일이 없으므로 마음에도 없는 아부를 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그래서 내 택배기사 경력을 과장 없이 한마디로 정의해보려 한다.
나는 몇몇 고객한테는 그동안 만났던 모든 택배기사 중 최고였다. - P164

Y는 우리가 잠시라도 한가한 걸 싫어하고 때로는 무의미한 일로 괴롭히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아낌없이 음식을 대접하면서 좋은 관계를 맺으려 했다. 다른 가게 사장들은 대부분 그러지 않았다. 다만 Y는 모든 면에서 과한 경향이 있었다. 과하게 요구하고 과하게 베풀고, 과하게 상처 주고 과하게 보상했다. 요컨대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늘 끊임없는 격정 속에서 살았다. 그는 타고난 투사였다. - P186

‘인생은 나선형으로 상승한다‘는 말을 누가 제일 먼저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절하고 생생한 비유다. 다만 상승의 폭이 무척 작고 속도가 느리다는 말이 빠져 있을 뿐. 인생은 등장하는 이름과 형태만 바뀔 뿐 늘 지난날이 반복되고 우리는 과거에 만났던 사람을 새로운 이름으로 다시 만난다.
타인은 나와의 관계만 있지, 개성은 없다. 예를 들어 여자친구를 사귀다 보면 시간이 갈수록 전 여자 친구와 비슷하다는걸 발견하게 된다. 단순한 착각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두여자는 이름과 외모가 달라도 ‘내 여자 친구‘를 연기하면서 그 배역에 맞춰 공통된 면모를 보여줄 뿐이다. 배우가 다르고 각본이 다를지라도 똑같은 인물을 연기하면 두 배우가 보여주는 모습이 상당히 비슷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면 다음번 여자 친구도 지금의 여자 친구와 별 차이가 없을 거라고확신하게 된다. 첫 여자 친구를 사귀었을 때 이미 마지막 여자친구와 만나고 있던 셈이다.
새로운 회사에서 만난 새로운 상사와 동료 역시 금세 이전의 상사와 동료로 변한다. 그들은 내 인생의 배우들일 뿐이라어떤 일을 겪고 어떤 대우를 받을지 예상할 수 있다. 그리고 마침내 이 세상의 구조, 그런 사람들은 나를 중심으로 그려진 원이고 그들의 반경이 바로 나와의 관계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당연히 같은 반경 위에 여러 개의 원이 중첩될 수 있으며, 그건 평면이 아니라 나선형으로 상승하는 인생의 한 조각이다.
바로 그래서 사람들은 생각이 단순한 사람을 좋아한다. 단순한 사람들은 표상을 꿰뚫어 보지 못해 본질에 도달하지 못한다. 그들에게는 살아가는 날들이 완전히 새로운 날이고 만나는사람들도 전부 낯선 사람이다. 그들은 똑같은 고통과 행복을 무수히 겪으면서도 매번 처음인 것처럼 느낀다. - P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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