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장소place들이 공간space으로 대체되고 있다. 그 둘 사이에는 무시할 수 없는 차이가 있다. 지리학자 이-푸 투안이 지적했듯이
"공간은 정의와 의미를 얻을 때 장소로 변한다." 공간은 "경계가 생기고 인적 요소가 가미"될 때 장소가 된다.‘ 사이버 공간은 있지만사이버 장소는 없고,  - P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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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쾌락은 우연히 또는 진화적 욕구의 부산물로 생겨났다. 벌거벗은 사람들이 성관계 하는 것을 보고 싶은 욕망은 벌거벗은 사람이 되어 성관계를 하고 싶은 진화적 욕구의 부산물이다. 포르노는 이런 욕구의 한 예일 뿐이다. 이런 쾌락을 용이하게 채우기위해 우리가 만든 기술은 쾌락 자체를 변화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소셜 네트워킹 소프트웨어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어있고 사회집단의 일부라는 느낌을 갖기 위해 만든 것이다. 하지만이 소프트웨어는 우정을 사적인 유대관계에서 공개적인 의례로 완전히 변화시켰다. 그리고 인터넷은 온라인 데이트를 통해 배우자를 찾는 경험을 좋은 면으로도 나쁜 면으로도 변화시켰다.
섹스는 다른 사람과 연결하려는 충동을 시험하는 시험장이고, 때로는 그 충동이 좌절되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매개 기술과 소프트웨어를 수용함으로써 성생활뿐 아니라 친밀감까지도 아웃소싱하고 있다. 우리는 전문적인 포옹 산업(커들 컴포트Cuddle Comfort 같은 포옹 업체가 신체적 안정을 위해 다른 사람을 보내준다)을 지원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 P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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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예술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요구해야 한다. 우리 자신의 선호를 제쳐두고 다른 사람의 비전에 따르려는 자발성을 말이다. 디지털 기술에 대한 미술관의 항복은 이미지 기반 문화에서는 예술이 오락으로 마케팅될 수 있을 때만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잠시 멈추어 이 선택의 결과를 생각해보지 않는다면 우리는 기억 대신 수백만 장의 인스타그램 사진만 있는 사회, 즉각적인 복제만을 기대할 뿐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문화를 전달하는 힘든일은 지속하지 않는 사회를 갖게 될 것이다. - P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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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제 세례명은 ‘마리아‘입니다. 세례명이 ‘마리아‘라고 하면 성당 형제자매님이 제게 물어요. 감히 마리아를 세례명으로 써도 되느냐고. 저는 몸을 살짝 기울여 속삭입니다.
"당연히 안 되죠. 교황청에서 저한테만 특별히 허가해 준
거예요."
농담입니다. 대답하지 않습니다. 애초에 마리아니 뭐니 질문하는 형제자매님 자체가 없거든요. 제 세례명의 적절성에 어느 누가 관심을 두겠습니까. 설령 "제 세례명은 ‘킴 카다시안입니다."라고 소개해도 관심 따위 못 받을 텐데요. 여하간 저는 마리아이며 가톨릭 전통 가문에서 나고 자랐어요.
부적절하게도 제 이상형은 예수님입니다. 이런 스타일을 좋아해요. 타이거 jk나 지미 헨드릭스, 두아 리파 같은... 시대정신에 따라 인종, 젠더 다양성을 고려해 나열했는데 어떻게 좀 괜찮았나요? 말하자면 슬렌더에 숱이 풍성하고 퍼포먼스에 능한 사람에게 끌립니다. 이 중에도 단연 예수님이 가장 섹시하죠.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초능력 하며 전대미문의 대디 이슈까지. 게다가 혈기 왕성한 열두 남정네를 이끈 알파카리스마를 지녔잖아요. - P6

"아니, 이 바보 같은 년이! 돈을 준다고 해도 안 받잖아아!
내가 아는 한 치릴로는 로무알다를 좀 불쌍히 여겼다. 로무알다는 사람이 태어나서 겪지 않아도 좋을 일을 겪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세 살 된 첫째 아기를 교통사고로 잃는다든지, 하는몇 년 전, 나의 오빠 사무엘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그 아기를 이다음에 만난다면 머리를 한 대 콩 쥐어박을 거라고했다. 네가 그렇게 가는 바람에 엄마 아빠가 얼마나 슬퍼했는지 아냐고. 이제 사무엘은 먼저 간 아기를 ‘형‘이라 부르지 않고 ‘아기‘라 부른다. 어릴 적, 사무엘은 "형은 순했어?" 질문하던 아이였다.
내 귓가엔 이미 ‘콩‘ 소리가 울려 퍼진 듯했다. 나는 사무엘에게 "아기한테 무슨 잘못이 있다고!" 대꾸했다. 나도 이제 아기를 ‘오빠‘라 부르지 않고 ‘아기‘라 부른다. 나는 "오빠는 다 잘 먹었어?" 질문하던 아이였다. 순하고 다 잘 먹던 아기에게는 잘못이 없었고 젊은 부모에게도 잘못이 없었다. 말해 봐야 입만 아픈 사실이다. - P22

우리 집 전화번호 뒷자리, 변하지 않는 네 개의 숫자, 그건 아기의 생일이었다. 엄마 아빠는 그렇게 죽은 아기의 생일을챙겼다. 지금은 곁에 없지만 그래도 아기가 태어났었고 함께 살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자 했다. 솔직히 열 살 내게는 이런 의미심장한 것들, 이를테면 전화번호 뒷자리에 담긴 사연,
숫자가 불러일으키는 심상 같은 것들이 좀 부담스러웠다. 집으로 전화를 걸다 별안간 슬퍼져서 무척 억울한 날도 있었다.
우리 남매가 심하게 다툰 날이면 엄마는 아기에 관해 직접적으로 말했다. 아기는 정말 순했고 귀족처럼 생겼었다고. 너네는 아기가 죽은 다음에 태어난 아이들, 어찌 보면 아기가 죽은 까닭에 태어날 수 있었던 아이들인데 이렇게 말썽 파우고 서로를 소중히 대하지 않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고, 때론 몸까지 부르르 떨며 말했다. 그럴 때면 엄마는 낯선 아줌마처럼 보였다.
나는 내가 태어나기 위해 아기를 죽이기라도 한 기분이었다. 아기의 죽음에 근거해 태어나다니, 최악의 원죄를 지은 나는 정말 못된 아이다. 아기에게 미안했다. 솔직히 짜증도 났다. 우리 집에 늘 ‘유가족‘스러운 분위기가 깔려 있는 것에 대하여. 게다가 왜 하필 예쁜 세 살에 죽어 버린 거야. 아기가나처럼 열 살, 오빠처럼 열세 살까지 살아 있었다면 결국 우리와 비슷한 모양새, 비슷한 수준이었을 텐데. 좋은 기억만 남기고 가 버린 아기가 얄미웠다. 영원히 이길 수 없는, 내 부모의 첫사랑.
아기를 상대로 비겨 볼 수는 있겠다고 생각한 날도 있긴하다. 어버이날 선물을 미처 준비하지 못해 편지 한 줄을 달랑 적어 전달한 날, 선물이 없는 대신 글씨라도 또박또박 쓰려고 어찌나 애를 썼던지.
‘저희를 위해 하신 일과 하지 않으신 일에 대해 미안하고 감사합니다. 원소윤 올림‘
하나 마나 한 말을 적어 건넸는데 민망하게도 엄마는 그 편지를 액자에 꽂아 거실 벽면에 걸었다. - P74

메일을 쓸 때마다 큰아빠에게 ‘말할 수 있는 일들이 모인 세계‘와 ‘말할 수 없는 일들이 모인 세계‘의 경계가 새로이 생겨났다 지워졌다 했다. 말할 수 있는 일이 말할 수 없는 일을더 흥미롭게 만들었고, 말할 수 없는 일이 말할 수 있는 일을더 소중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메일의 맺음말은 늘 같았다.
‘존경합니다. 보고 싶습니다. 원소윤 올림‘
큰아빠는 일주일 내로 반드시 답장을 보내오셨다. 답장이몇 줄이든, 성의가 있든 없든 상관없었다. 그 시절, 그 응답보다 더 나를 감동하게 하는 것은 없었다. - P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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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대는 우리 자신의 감정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기계를 우리 몸에 장착한다. 계몽주의 과학자들은 오감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해석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대의 기술 전문가들은 오감으로는더 이상 충분치 않고, 그것만으로는 길을 잃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새로운 정교한 기술로 오감을 확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스마트폰 칩 제조업체인 퀄컴 Qualcomm의 CEO가 설명했듯이 우리는 "여섯 번째 디지털 감각의 시대를 살고 있다." 이 새로운 세계를 열성적으로 옹호하는 사람들은 단순히 스마트한 수준을 넘어 감정까지 인식할 수 있는 유비쿼터스 컴퓨팅을 받아들인다. 과학자이자 인공지능 연구자인 에곤 L. 판덴브룩은 ‘유비쿼터스 컴퓨팅다음 단계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감정을 필수 요소로 수용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미래에서라면 기술은 인간을 확장하는것이 아니라 인간에 침투할 것이다.
MIT의 앨릭스 펜틀랜드Alex Pentland 와 같은 연구자들은 대면 상호작용과 인간의 기량이 약화되는 것을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간단한 해법을 제시한다. 걱정은 그만두고 기계가 일을 하게 두라는 것이다. 그들은 네트워크 과학과 보완적 장치가 약화되는 사회적기량을 대신할 거라고 주장한다. 곧 기계 장치가 우리 대신 자신과 타인의 신호를 읽어줄 테니까. 우리보다 더 능숙하게. 펜틀랜드는 그의 책 <어니스트 시그널>에서 "인간의 행동을 지속적이고 보편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능력이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삶을 최적화할 능력을 선사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펜틀랜드와 그의 동료들은 이드"를 가시화하는 일종의 프로이트 기계를 만들려 한다. 이 기술이 있다면 사람들은 "집단 내의 정보 흐름을 모니터링함으로써 무의식적이고 암묵적인 지식을 개방적이고 의식적인 정보로 전환할 수 있다." 펜틀랜드와 그의 동료들은 수백년간 개인의 이성을 떠받들어왔던 계몽주의 사상은 잘못되었다고생각한다. 우리는 스스로를 이성적인 개인으로 생각하고 싶어 하지만 실상 우리는 "사회적 네트워크 효과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다. 즉 우리는 비이성적이며 쉽게 속아 넘어가는 무리다. - P197

우리의 상황은 화면의 이미지처럼 쉽게 통제되지 않는다.감정을 알려주는 기술에 점점 더 의존하게 되면서 우리는 집단적으로 감정적 기량을 잃을 수도 있다. 우리는 이미 페이스북에 우리의 기억을, 구글에 우리의 호기심을, 휴대전화에 내장된 GPS에 우리의 방향 감각을 아웃소싱하고 있다. 이제 이런 기술이 우리 자신에대한 보다 합리적인 견해를 갖고 있다는 주장까지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 P203

 그녀는 "도박 기계 설계자들은 도박꾼을 속이기 위해 기술을 전략적으로 이용한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설계자들조차 금세 게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된다. 인터내셔널 게이밍 테크놀로지 International Gaming Technology의일원은 왜 어떤 기계가 다른 기계보다 사용자를 붙잡아두는 힘이더 강한 것처럼 보이냐는 쉴의 질문에 B. F. 스키너의 조작적 조건화에 관한 책을 읽어보라고 했다.
유능한 세일즈맨이나 정치인은 이미 알고 있듯이, 반복적이고권위를 이용하고 감정에 호소하는 설득 도구는 언제나 유용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설득 기술은 과거의 설득 기술과는 달리 윤리적문제를 야기한다.
우선 오늘날의 설득 기술에는 투명성이 부족하다. 정치인이 아기에게 입을 맞추는 것은 자신이 신뢰할 만한 사람이라고 설득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여기 쓰인 설득 기술은 불투명하기만 하다. 초창기에 열린 설득 기술 콘퍼런스에서 한 참여자는 심박수와 음성을 모니터링하는 센서는 어디에나 존재하며 눈에 띄지 않는다는점에서 설득 기술에 이상적인 도구라고 했다. 그는 "그러면 사용자가 알아차리지조차 못하는 설득 기술의 설계가 가능하다"면서 찬성의 뜻을 표했다. 대부분의 설득 기술 회사가 선택한 디자인과 마케팅 방식을 보면 이런 기술을 숨겨두려는 의도가 있음을 알 수있다. - P207

그러나 일부 윤리학자들이 지적했듯이, 이런 기술은 이미 "설득프로파일링"의 부상을 가능하게 했다." 기술 기업들이 특정 설득전략에 대한 반응을 바탕으로 개인 프로파일을 작성하는 것이다. 당신은 비평가들이 추천하는 책을 사는 편인가, 아니면 친구들이 추천하는 책을 사는 편인가? 이를 토대로 아마존은 당신에게 노출될 추천 도서 목록을 미묘하게 조정한다. 정부나 기업이 특정한 감정적 호소에 대한 당신의 취약성 관련 정보에 접근권을 가진다면어떻겠는가? - P208

항공 업계에서는 불연성 소재로 좌석 쿠션을 만들거나 통로에 비상등을 추가하는 등 재료와 구조를 바꿔서 항공기의 위험을 줄이는 복잡한 과정을 "치명성 제거 delethalization"라고 부른다. 디지털시대의 쾌락도 비슷한 치명성 제거의 과정을 거쳤다. 개인의 쾌락이 이렇게 광범위하게 공유되고 퍼지고 전시된 적은 없었다. 유튜브의 동영상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하고 위험한 행동을 대리로 목격할 수 있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수많은 이미지가 사적 경험의 대량소비를 촉진했다. 하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연결된 느낌은 가짜 친밀감일 뿐이다.
또한 매개는 쾌락을 균질화한다. 마치 모든 경험이 똑같은 몇개의 필터를 통과한 것처럼, 마치 모든 사람이 똑같은 도전이나 곡예를 하고 촬영을 하고 공유를 하는 것처럼 쾌락을 순응적으로 만든다.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의 쾌락과 경험을 공개하는 플랫폼들은 시청자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우리 경험에서 불쾌한 부분을 제거할 것을 장려한다. 당신의 쾌락은 다른 모든 사람의 쾌락과 마찬가지로 앱과 플랫폼을 통해 여과되고 같은 방식으로 소비된다. 순식간에 지나가는 순간들이 잘 조정된 끊임없는 흐름으로 소비되는것이다. 이것은 소심한 형태의 쾌락으로서 그 증가세는 너무 강렬하거나 너무 현실적이거나 너무 위험하거나 너무 통제할 수 없거나 너무 육체적이거나 너무 비순응적인 경험으로부터의 집단적인 후퇴를 암시한다. 쾌락은 디지털 형태로 더 쉽게 소화되고 공유될수 있도록 치명성이 제거된다. 그러면 쾌락이 완전히 탈바꿈된다.
때로 쾌락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더 조작된 경험, 즉 위험보다는 통제, 우연보다는 검색, 변덕보다는 알고리즘, 개인 정보 보호보다는 편의를 우선한다. 다시 말해 쾌락의 가장 큰 변화는 쾌락의 상당 부분이 데이터화된다는 점이다. - P222

새로운 장소를 이해하려면 그곳의 냄새를 맡아야 한다. 여행의큰 즐거움 중 하나는 낯선 땅의 기묘한 냄새와 새로운 소리를 경험하는 것이다. 낯선 도시의 수돗물에서 나는 톡 쏘는 냄새, 이상하게들리는 전화 벨소리, 음정이 맞지 않는 듯한 불규칙한 경찰 사이렌, 혀에 느껴지는 유난히 진한 커피의 질감. 사소한 감각적 경험조차도 장기 기억을 만들어낸다.  - P227

 "전형적인 것은 비판 없이 즐기지만, 새로운 것에는혐오감을 느끼며 비판한다."
이는 매개된 경험이 촉진하는 또 다른 경향, 즉 인내심 부족으로이어진다. 오락을 편리하게 즐기게 될수록 어렵거나 불편한 문화적 표현에 마주하려는 결의는 약해진다. 이제 음악과 이미지는 우리에게 직접 전달되고, 우리는 집에서 편안하게 그것들을 소비한다. 인터넷에서 유명 예술 작품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영향은 어떨까? 벤야민이 주장했듯이 "예술의 중요한 과제는 시간이 흐른 뒤에야 온전히 충족될 수 있는 것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이것이 캔버스와 스크린의 차이다. 벤야민은 말했다. "그림은 관람객을 사색으로 이끈다. 그림 앞에 선 관람객은 연상되는 것들에자신을 맡긴다. 그러나 영화 프레임 앞에서는 그럴 수 없다. 장면은눈에 포착되자마자 바뀐다." 캔버스의 특성 (유일무이함, 영속성)은 "일시성과 재현성"을 촉진하는 스크린과는 반대다. 그리고 캔버스는 집에서 마음대로 소비할 수가 없다. 캔버스를 소비하기 위해서는 위험을 무릅쓰고 편안함 너머의 세계로 나서야 한다.
벤야민은 인내심 부족이 결국 예술의 "오라"를 파괴하고 우리를 사색으로 이끄는 겸손을 없앨 것이라고 우려했다. 하지만 우리는 예술의 오라를 파괴한 것이 아니라 다른 것으로 대체했다. 이제 오라는 예술과 이미지를 재현하는 기술 장치에 존재한다. 우리는 특정한 방식으로 기술에 대해 이야기하고, 우리의 상상력을 지배하는 힘, 과거에는 예술과 종교가 가졌던 힘을 기술에 부여한다.  - P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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