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그 시기에 한 말이 무엇인지 또렷이 생각나진 않는다. 언어의 한정된 어떤 부분, 그러니까 동심원의 가장 안쪽과 접촉한 경험을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 테니까. 아니, 그건 너무 일찍 도착한 맨가장자리 원일지도 모르니까. 다른 것은 잘 모르겠다. 다만 사람이 언어와 조우한 첫 순간을 잊어버리게 만든 신의 섭리가 궁금할 따름이다. 만나되 만나지 않게 하신 것. 먼저 배우고, 잊어버리게 한 뒤, 다시 배우게 하신 것. 그런 것이 이상할 따름이다. 그렇지만 내가 다른 데가 아닌 외가에서 말을 깨쳤다는 사실은 퍽 마음에 든다.
바깥 외(外)에 집 가(家)자. 바깥 집이라니, 왠지 근사한 느낌이다.
- P71

사람들은 왜 아이를 낳을까?‘
나는 그 찰나의 햇살이 내게서 급히 떠나가지 않도록 다급하게 자판을 두드렸다.
자기가 기억하지 못하는 생을 다시 살고 싶어서."
그렇게 써놓고 보니 정말 그런 것 같았다. 누구도 본인의 어린시절을 또렷하게 기억하지는 못하니까, 특히 서너살 이전의 경험은 온전히 복원될 수 없는 거니까, 자식을 통해 그걸 보는 거다. 그 시간을 다시 겪는 거다.  -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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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불면, 내 속 낱말카드가 조그맣게 회오리친다. 해풍에 오래 마른 생선처럼, 제 몸의 부피를 줄여가며 바깥의 둘레를 넓힌 말들이다. 어릴 적 처음으로 발음한 사물의 이름을 그려본다. 이것은 눈(雪), 저것은 밤(夜), 저쪽에 나무, 발밑에 땅, 당신은 당신………소리로 먼저 익히고 철자로 자꾸 베껴쓴 내 주위의 모든 것. 지금도 가끔, 내가 그런 것들의 이름을 안다는 게 놀랍다.
- P10

모든 생명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터져나오는‘ 거란 걸 어머니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아무렴 시골에서 자랐는데 모를 리가없었다. 어머니가 본 꽃은, 짐승은, 곤충은 대부분 제 몸보다 작은 껍질을 찢고 폭죽처럼 터져나왔다. 그동안 많이 참아왔다는 듯 도저히 더는 못 참겠다는 듯, 웃음처럼, 야유처럼, 박수처럼, 펑! 펑!
벗어놓은 허물을 봄 그 큰 날개와 다리가 어떻게 다 들어가 있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완연한 몸뚱일 갖고서였다.  - P44

"나 때문에 그래요?"
"응."
"제가 뭘 해드리면 좋을까요?"
아버지가 멀뚱 나를 쳐다봤다. 그러곤 뭔가 고민하다 차분하게
"네가 뭘 해야 좋을지 나도 모르지만, 네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좀 알지."
"그게 뭔데요?"
"미안해하지 않는 거야."
"왜요?"
"사람이 누군가를 위해 슬퍼할 수 있다는 건,"
"네."
"흔치 않은 일이니까…"
"......"
"네가 나의 슬픔이라 기쁘다, 나는."
"......"
"그러니까 너는,"
"네, 아빠."
"......"
"자라서 꼭 누군가의 슬픔이 되렴."
"......"
"그리고 마음이 아플 땐 반드시 아이처럼 울어라."
-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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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무엇보다 사람을 만나는 인문학입니다.
수천 년 동안의 사람 이야기가 역사 속에 녹아 있어요.
그중에 가슴 뛰는 삶을 살았던 사람을 만나 그들의 고민, 선택, 행동의 의미를 짚다 보면
아무리 힘들어도 자신의 삶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그게 바로 역사의 힘입니다.

1장 쓸데없어 보이는 것의 쓸모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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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저한테 그래서 열심히 살았느냐 물어보면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을것 같은데, 어쩌다. 나, 이런 사람이 됐는지 모르겠어요. 요즘 저는, 밤에 잠자리에 누울 때마다 이상한 소리를 들어요..
휙휙- 차들이 바람을 찢고 지나갈 때 내는 그런 소리를요.
마치 제가 8차선 도로 한가운데에 서 있는 느낌이에요. 왜 오락의 고수들 있잖아요. 걔네들은 정신없이 쏟아지는 총알이아주 커다래 보인다던데. 다가오는 모양도 영화 속 슬로모션처럼 느껴진다 하고요. 저도 그랬으면 싶어요. 지금 선 자리가 위태롭고 아찔해도, 징검다리 사이의 간격이 너무 멀어도,
한 발 한 발 제가 발 디딜 자리가 미사일처럼 커다랗게 보였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언젠가 이 시절을 바르게 건너간 뒤 사람들에게 그리고 제 자신에게 이야기하고 싶어요. 나, 좀늦었어도 잘했지. 사실 나는 이걸 잘한다니까 하고 말이에요.
하지만 당장 제 앞을 가르는 물의 세기는 가파르고, 돌다리 사이의 간격은 너무 멀어 눈에 보이지조차 않네요. 그래서 이렇게 제 손바닥 위에 놓인 오래된 물음표 하나만 응시하고 있어요. 정말 중요한 ‘돈‘과 역시 중요한 ‘시간‘을 헤아리며, 초조해질 때마다. 한 손으로 짚어왔고, 지금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그것,
‘어찌해야 하나.‘
- P316

 언니, 저를 기억해주어 고마워요. 그리고 제게 고맙다고 말해줘서 고마워요. 전 그런 얘기를 들을 만한 사람이 아닌데… 그럴 자격이 없는데.. 제가 오늘 언니에게 무얼 받았는지 전하기 위해 이 편지를 써요. 언니는 그게 뭔지 이미 알고 있을 테지만.
언니가 준 것과 내가 받은 것은 다를 수도 있으니까요. 잘 지내요, 언니. 언니가 정말 잘 지내주었으면 좋겠어요. 기회가 된다면, 만일 그럴 수 있다면, 또 쓸게요, 언니.
- P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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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점이 우리가 사는 곳이고
저 점이 우리의 집이며
저 점이 바로 우리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
우리가 아는 모든 사람들, 
지금까지 존재해온 모든 사람들이 바로 저곳에 살았습니다.
모든 기쁨과 슬픔,
확신에 가득 찬 수천 개의 종교,
이념, 경제체제,
모든 문명의 창시자와 파괴자,
모든 왕과 농부, 모든 어머니와 아버지,
모든 발명가와 탐험가, 모든 스승과, 모든 부패한 정치인,
모든 성인과 죄인이 바로 저 곳,
햇빛에 떠다니는 티끌 위에 살았던 것입니다.
지구는 우주라는 거대한 극장의아주 조그마한 무대입니다.
그 모든 군인과 황제들이,
승리와 영광 속에서 흘렸던 피의 강들을 생각해보세요.
저 작은 점의 한 부분을 아주 잠시 동안지배하기 위해 흘렸던 피를.. 저 픽셀의 한 귀퉁이에 살던 사람들이구별하기도 어려운 또 다른 귀퉁이에 사는 사람들을 침략해 저지른 악랄한 행위들을 생각해보세요.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지구가 생명을 품은 유일한 곳입니다.
가까운 미래에 우리 인류가 이주할 수 있는 곳은 없습니다.
인간의 자만심이 어리석다는 것을 아주 잘 보여주는 것은,
멀리서 찍은 이 사진만 한 게 없을 것입니다.

- P154

여성의 월경이 멎는 시기가 자식 세대의 번식 시기와 비슷하다는 사실과 그들의 수명은 또 자식 세대가 낳은 손주가 앞가림을 할 수 있는 성인이 되는 시기와 비슷하다는 사실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유전자의 입장에서는 여성의 수명은 더욱 늘어날 필요가 있었다.
그들은 오래 살며 끝까지 해야 할 임무가 있었던 셈이다. - P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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