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그 시기에 한 말이 무엇인지 또렷이 생각나진 않는다. 언어의 한정된 어떤 부분, 그러니까 동심원의 가장 안쪽과 접촉한 경험을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 테니까. 아니, 그건 너무 일찍 도착한 맨가장자리 원일지도 모르니까. 다른 것은 잘 모르겠다. 다만 사람이 언어와 조우한 첫 순간을 잊어버리게 만든 신의 섭리가 궁금할 따름이다. 만나되 만나지 않게 하신 것. 먼저 배우고, 잊어버리게 한 뒤, 다시 배우게 하신 것. 그런 것이 이상할 따름이다. 그렇지만 내가 다른 데가 아닌 외가에서 말을 깨쳤다는 사실은 퍽 마음에 든다.
바깥 외(外)에 집 가(家)자. 바깥 집이라니, 왠지 근사한 느낌이다.
- P71
사람들은 왜 아이를 낳을까?‘
나는 그 찰나의 햇살이 내게서 급히 떠나가지 않도록 다급하게 자판을 두드렸다.
자기가 기억하지 못하는 생을 다시 살고 싶어서."
그렇게 써놓고 보니 정말 그런 것 같았다. 누구도 본인의 어린시절을 또렷하게 기억하지는 못하니까, 특히 서너살 이전의 경험은 온전히 복원될 수 없는 거니까, 자식을 통해 그걸 보는 거다. 그 시간을 다시 겪는 거다. - P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