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해받고 싶은 사람, 그러나 당신의 맨얼굴을 보고는 뒷걸음치는 사람이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 그러나 그사랑이 ‘나는‘으로 시작되는 사람이 하고 있는 사랑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나는 ‘그래도 나는‘ 이라고 말한 뒤 주저앉는 사람, 나는 한번 더 나는 이라고 말한 뒤 주저앉는 사람, 그러나 나는 멈출 수 없는 사람, 그리하여 ‘나는 내가 어떤사람인지 자주 생각하는 사람이다‘라고 처음부터 다시 말하는사람이다. 하여, 우리는 흐르는 물에 손을 베이지 않고도 칼을 씻는 방법을 알고 있는 것이다.
-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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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미술 작품은 우연이든 의도적이든 자연을 닮아야 한다고 생각한 아르누보 작가들에게 자연의 형태는 상징적인 것으로,
비의적인 종교적 의미를 띨 수도 있었다.
- P163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내에서 행해진 게르만화 정책으로 체코 땅에서는 체코의 말과 글을 가르치는 학교가 없었다. 그래서 체코의 언어와 문화를 가르칠 수 있는 민간 학교를 짓기 위해 복권을 발행하게 되는데 이 복권의 홍보를 위한 포스터 <위협〉,
〈브르노 남서 모라비아를 위한 국민 연합 복권>에서 무하는 일체의 장식적인 요소를 제거하고 더욱 대담하고 박진감 넘치는 연출을 구사하고 있다. 암흑과 절망 속에서 얼굴을 그러쥐고 흐느끼는소녀 뒤에서 조국을 상징하는 어머니는 닥쳐올 위협 앞에서 우리에게 손을 내밀고 있다. 그리고 책과 연필을 움켜쥐고 다부진 표정으로 우리를 응시하는 작은 슬라브 소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약하지 않아. 그러니 제발 나에게 배울 기회를 주세요."
무하는 이러한 포스터들을 무상으로 제작해주었다. 포스터뿐만이 아니었다. 제1차 세계 대전 종전 후 체코슬로바키아가 독립했을 때 국가의 국장, 우표, 지폐, 공공 기관의 제복까지 무상으로 디자인했다.
- P243

제1차 세계 대전이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었던 1918년 무하는 11편의 <슬라브 서사시>를 완성하고, 이듬해 프라하의 클레멘티눔에서 전시를 했다. 1921년 브루클린 미술관에서 무하의 다른 작품들과 5점의 〈슬라브 서사시>가 전시되었을 때 이 전시는 60만 명의 관람객이 다녀가는 대성황을 이루었다. 전시회에 다녀간 사람들은체코가 겪고 있는 고통을, 슬라브인의 역사에 대해 처음으로, 혹은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을 것이다.
예술가의 힘이란 그런 것이다. 무하라는 한 사람의 예술가에 의해 사람들은 멀리 떨어진 나라와 민족, 그들이 겪고 있는 사건에대해 함께 고민하고 함께 아파할 수 있게 되었다.
1926년 무하는 드디어 20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대서사시를완성하였다. 후원자와 사랑하는 가족들의 지지 속에 강한 의지와성실함으로 거의 20년에 걸친 필생의 작업을 마친 무하는 이렇게이야기했다.
"나는 이렇게 믿는다. 모든 국민의 발전이 성공리에 끝나는 것은 그것이 국민 자신의 근원으로부터 유기적으로 계속 성장했을 때뿐이다. 또 이 계속성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역사적인 과거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는 안 된다." - P262

무하는 커다란 포용력으로 상징주의, 신비주의, 강령술, 최면술의 이론과 당시 파리 예술계의 역동성, 공업과 상업에 의해 대두한예술상의 새로운 가능성들을 흡수해갔다. 그리고 그에게 핵심이되는 종교적인 가치관은 조국 체코에 대한 애국심과 슬라브의 민족적 전통, 극장과 운명에 대한 그의 선천적 감각과 융합되어 이전에 없었던 실로 새로운 예술 형식을 낳게 되었던 것이다.
- P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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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한 거야?"
순간 창밖 가로등이 잠시 깜빡하고 꺼졌다, 켜졌다. 오래전에도 그랬지만 그것은 그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나는 가로등이 깜빡이는 순간이 세계가 재빨리 눈을 감았다 뜨는 시간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그리고 그 짧은 순간, 지구에는 아무도 모르는 일들이 아무도 모르게 일어난다고, 전신마비환자가 눈꺼풀로 쳐주는 박수처럼 가로등은 형에게 윙크했다.
그때 나는 가로등이 무언가를 보여주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뭔가 눈감아주기 위해 저기 서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기적이란, 바로 그 눈감아주는 시간에 일어나는 일들일지 모른다고, 문득 나는, 언젠가 사촌형과 함께 음악을 들었던 날도 라디오가 제대로 작동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형은, 그걸 언제 다 고쳐놓았던 것일까?
-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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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블록은 전부 다 모은 걸까?

"우리는 별의 먼지일 뿐이다." 천문학자이자 소설가인 칼 세이건Carl Sagan은 미 우아한 문장으로 우리 몸의 원자가 전부 수십억 년 전 우주에 그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실제로 우주에 있는 수소는 모두 빅뱅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탄소나 산소, 질소는 별의 생애 마지막에 작열하는 대장간에서 만들어졌다. 더구나 무리를 둘러싼 모든 것에 이 사실을 적용할 수 있다. 우리가 별의 먼지일 뿐이라면 구름이나 탁자, 자동차도 다마찬가지다.
- P10

일반적으로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인간도 잠을 자야만 한다.
는 건 어찌 되었건 대단한 단점이다. 자는 동안에는 사냥이나 식사,
재생산 같은 다른 중요한 활동에 전념할 수 없기에 수면은 시간을 버리는 행위다. 또한 동물에게 수면이란 종종 포식자의 자비에 자기 안위를 맡기는 위태로운 활동이다. 그런데도 잠자는 행위가 유전적으로 보존되어왔다면 이번에도 메추라기도요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수면이 잠을 자는 동물에게 엄청나게 유익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점에서 그럴까? 에너지 절약부터 ‘인생 시뮬레이션‘
까지 수면의 기능을 설명하리는 여러 가설이 맞서고 있다.
-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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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7년 무하가 도착했을 당시 파리는 많은 마차와 새로이 늘어나는 자동차들로 현재보다 더 심각한 교통 체증을 겪고 있었다. 이미 세계 예술의 중심지이자 관광 명소가 된 파리는 휘황찬란한 불빛으로 밤을 잊고 있었다. 폴리 베르제르, 카지노 드 파리, 코미디 프랑세즈에서는 화려한 레뷰와 춤이 있었고 밤의 서커스와 물랭루즈가 있던 피갈 광장 주변의 카바레와 바에서는 질탕한 유혹이 오가는 야한 여흥들이 이어졌다. 그리고 파리 거리에 나붙은 외설적인 포스터들은 이러한 퇴폐적인 분위기를 확산시키는 데 한몫하고 있었다.
부르주아들이 화려한 도시에서 쾌락에 몸을 내맞기고 있는 동안 빈민가와 매음굴에서는 부랑자와 창녀, 가난한 예술가들이 불안한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폴 베를렌 Paul Verlaine과 말라르메Stephane Mallarme가 자주 드나들었다는 카페에서는 새로 지어지는 지하철역과 프랑스 혁명 100주년 기념으로 세워지는 에펠탑이 도시 경관에 미칠 영향에 대해 옥신각신하는 공방이 오갔으며, 여전히 유명한 예술가들과 앞으로 유명해질 예술가들이 열띤 토론과 각자의 고민에 골몰해 있었다.
- P52

그리고 국제도시 파리에서 소수 민족인 슬라브인 예술가로서 그는 자신의 나라와 민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민족주의자들과의 지속적인 교류는 체코의 민속 미술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애정을 느끼게 해주었으며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서도 눈 뜨게 해주었다.  - P55

사라 베르나르가 르메르시에 인쇄소와의 불미스런 사건으로 인해 업자를 샹프누와(hampenois로 옮기게 되자 무하 역시 상프누와와 계약을 맺게 된다. 1896년 이후 무하는 샹프누와와 함께 일련의 장식 패널, 달력, 엽서 등을 선보이며 ‘무하 양식‘을 형성해나간다.
그 첫 번째 작품이라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황도12궁이다. 마치 눈의 여왕을 연상시키는 듯한 관을 쓴 여인의 섬세한 옆모습은사람들에게 신비한 파문을 일으킨다. 굽이치는 머리칼, 머리 뒤로륜을 이룬 12개의 별자리와 함께 그녀는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해뭔가 비밀스러운 말을 건넨다. 별자리를 살짝 가리며 수줍게 가지를 뻗은 월계수 잎사귀와 식물 줄기를 연상시키는 장식 무늬가 그림의 가장자리를 메우고 있다.
- P86

이제 무하의 포스터는 거릴 메우고 그의 장식 패널은 값싼 목로주점의 먼지 낀 벽에서, 가난한 학생의 허름한 하숙방에서 혹은고급 주택의 응접실에서도 볼 수 있는 것이 되었다. 그의 포스터와장식 패널은 다시 비단 천에 그리고 엽서에, 작은 과자 상자, 도자기 접시에도 인쇄되었다. 그의 작품은 굳게 닫힌 미술관의 유리문 너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손이 닿는 거기에, 눈이 머무르는 어느곳에나 있는 대중을 위한 예술이 되어가고 있었다.
- P93

페르펙타 자전거의 포스터 속 여인은 자전거의 심벌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무하‘라는 화가의 세기말 이상적인 여인의 심벌이기도 했다. 무하가 그린 포스터 속의 상품을 구매한다는 것은 다시 말해 ‘무하‘라는 브랜드를 소비하게 되는 것과 같았다. 현대의 우리는 특정 대중 스타의 이미지가 특정 상품 혹은 기업의 이미지를 대변하는 데 익숙해져 있지만 무하가 살던 시대에 이것은 완전히 새로운 개념이었다.
- P121

이제 역사적 사건을 사실적인 묘사로 전달하기보다 그림이 가진 분위기와 뉘앙스를 통해 사실이 지닌 본질을 전달하고자 하였다. 무하에게 역사는 흥미로운 주제였고 그것을 다시 자신의 이미지로 재구성하는 일에 그는 평생 큰 애정을 쏟는다. 역사를 소재로한 삽화들이 무하에게 중요한 것은 그가 필생의 과업으로 여긴 슬라브 서사시에 대한 단서를 제공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슬라브의 역사를 상징적으로 담아낸 이 연작에 무하는 자신의 민족과 조국에대한 자긍심은 물론이요, 범슬라브인에 대한 애정을 녹여낸다.
- P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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