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의 기쁨과 즐거움 같은 여가의 산물은 근대 대도시의 사회를 세련되게 다듬는 데 보탬이 되는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17세기 말엽부터 영국의 도시 문화는 점점 ‘공손함‘과 ‘예의‘ 라는 요소가 지배하게되었다. 공적 ·사적 공간에서의 처신법에 관한 조언이 담긴 수백 종의 품행 지침서들이 인기리에 판매되었다. 올바른 예절과 정중한 행실에관한 전통적 관념은 왕실과 귀족의 대저택에서 생긴 것이었다. 그런데 커피점이 유행할 무렵, 예의는 전혀 다른 모종의 요소와 연관되기에 이르렀다. 도시 생활을 통해 생겨난 예절이 케케묵고 융통성 없는, 옛 시절의 궁정 문화를 밀어내고 있었다. 학술적 논의와 정치 토론과사업이 대학과 의회, 동업조합이라는 폐쇄적 세계에서 벗어나 커피점같은 열린 무대로 나왔듯이, 문화와 예술 활동도 차츰 상품화 과정을 밟고 공공 영역에 등장하고 있었다. 공손함과 예의는 근대 특유의 도시적인 요소였다. 런던에는 사람들이 세련미를 더 많이 갖출 수 있는 사교의 기회가 수없이 많았다. 도시 생활은 예의를 통해 더 원활해졌다. 예의가 혼잡한 도시 환경에둘러싸인 낯선 사람들 간의 상호작용을 돕는 윤활유 구실을 했기 때문이다. - P335
궁정에서 대도시로 무게추가 이동하는 현상은 17세기 후반기의 커피점을 통해 처음으로 분명하게 드러났다. 커피점은 18세기 도시들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사교적 도시 환경을 조성하는 데 일조했다. 18세기 도시들은 소비자인 시민들이 문화와 유행을 만드는 곳, 여가와 쇼핑이 도시 체험의 핵심을 차지하는 곳이었다. 극장과 오페라 극장, 카페와 식당, 박물관과 미술관 등은 모두 근대적 도시 체험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다. - P352
19세기에 런던은 근대적 교통수단을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기차, 말이 끄는합승차, 노면 전차, 지하철 덕택에 사람들은 도심에서 더 멀리 떨어진곳에 거주할 수 있게 되었다. 런던이 교외로 확장되자 인구가 채 100만명이 되지 않고 걸어 다닐 만했던 18세기의 매력적이고 흥겨웠던 도시는 사라지고 말았다. 커피점이 내리막길을 걷게 되자 친목적인 분위기가 퇴색하고 사교·문학·과학·사업 분야에서 배타성이 짙어졌다. 공공장소에서 사교가 차지했던 자리에 분할화와 제도화, 교외화가 밀치고 들어왔다. 커피점이 사라졌을 때 런던은 세계 최강의 도시이자 상업 대도시의 반열에 올라 있었다. 헨리 제임스가 19세기 말엽에썼듯이 런던은 강렬한 상업적 성격을 띠고 있었다. 파리의 카페에서 감도는 경박함과 흥겨움은 영리에 민감하고 계급을 의식하는 제국의 대도시와 어울리지 않았다. 이미 세상이 변해 있었다. - P354
영국 농촌 지역의 경우 전체유아의 32퍼센트가 생후 5년에 이르기 전에 사망했고, 기대수명이 약40세였다. 한편 맨체스터와 시카고의 경우에는 생후 5년 전의 유아사망률이 60퍼센트였고, 기대수명이 26세에 불과했다. 런던과 버밍엄Birmingham 의 기대수명은 37세였다. 19세기 중반의 산업도시들보다. 사망률이 높은 곳은 없었다. 1830년대부터 세계적으로 유행한 아시아 콜레라가 시카고의 빈민가를 덮쳤다. 1854년, 연거푸 6년 동안그 전염병이 창궐한 끝에 시카고 인구의 6퍼센트가 사망했다. 이런 상황이 산업시대의 시급한 문제로 떠오른 것은 도시의 지형적 특성 때문이었다. 맨체스터의 어느 신문 기사에 나왔듯이, 도시의상업 중심지가 모든 교양 있는 주민들을 위협하는, 추잡함과 불결함의 거대한 돌림띠에 에워싸여 있는 바람에 빈민가에 포위된 작은 섬으로 전락했다. 최하층민들이 유발하는 오염으로 인한 공포 때문에 중산층 가정들은 교외로 이주했다. 노동계급 인구가 폭증하자 빈민가가 교외로 침범했고, 중산층 가정은 또다시 더 멀리 떨어진 시골 비슷한 곳으로 탈출했다. 그때까지의 역사에서 ‘교외‘는 대체로 도시에서 가장 열악한 구역을 연상시키는 단어였었다. 즉, 교외는 폐기물과 쓰레기 그리고 유독성 물질을 모아둔 하치장이었다. 그러나 이제 교외는 피난처였다. - P368
맨체스터 같은 도시가 상업 중심지,컴컴한 빈민가, 중산층이 모여 사는 교외 등으로 나뉘는 공간적 분리현상은, 무산계급과 유산계급 간의 좁힐 수 없는 심연뿐 아니라 향후계급 간 폭력 투쟁을 품게 될 도시 풍경에 뚜렷이 새겨진 물리적 증거였다. 엥겔스가 썼듯이, 시카고와 맨체스터 같은 거대한 검댕투성이에서 발달한 근대적 도시 생활은 "무산계급을 나름의 생활 방식과 생각, 특유의 사회적 전망을 지닌 탄탄한 집단으로 결속시키는 데" 보탬이되었다. - P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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