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명령이었다. 내 표정이나 무슨 기색이 비위에 거슬렸는지 그녀는 내색을 않으려고 애는 썼지만 퉁명스럽게 말하였다. 나는 일어서서 문께까지 갔다가 되돌아섰다. 나는 방 안을 가로질러 창께로 가서  그녀에게 바싹 다가섰다.
나는 꼭 얘기를 해야 했다. 그처럼 심하게 짓밟히지 않았던가. 그냥 잠자코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러나 어떻게?
적수를 향해서 대거리할 힘이 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나는 있는 힘을 모두 내어 퉁명스럽게 대들었다.
"저는 남을 속이지 않아요. 만약 속이기가 일쑤라면 아주머니를 좋아한다고 말할 거예요. 그러나 저는 분명히 말하겠어요. 아주머니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이 세상에서  존리드 말고는 아주머니가 제일 싫어요. 거짓말쟁이에 관한 이 책일랑 조지아나에게 주세요. 거짓말쟁이는 제가 아니라 조지아나니까요."
- P61

나는 그녀가 몹시 몹시 부끄러워하고 또 괴로워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눈물을 흘리지도 않고 얼굴도 붉히지 않아 적잖이 놀래었다. 엄숙하긴 하지만 침착한 얼굴로 그녀는 모든학생들의 눈길을 받으며 서 있는 것이었다. ‘어떻게 저렇듯 태연하고 의젓하게 견딜 수가 있는 것일까? 하고 나는혼자 생각하였다. 만약 내가 저 아이와 같은 처지라면 나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리라. 그러나 저 아이는 처벌을 넘어서고 현재의 처지를 넘어선 그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자기 주변이나 눈앞에 보이지 않는그 무엇을 생각하는 것 같다. 백일몽이란 말을 들은 일이있지만 혹 백일몽을 꾸고 있는 것일까? 그녀는 마루청을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것이 안중에 없음은 분명하다. 그녀의 눈길은 안으로 향해서 자기의 가슴속으로 들어가 있는 성싶었다. 눈앞에 있는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기억하고 있는 과거지사를 보고 있는 것임에 틀림이없다. 도대체 저 아이는 어떠한 아이일까? 착한 아이일까,
그렇지 않으면 장난꾸러기일까.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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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베시는 주인집 딸들의 옷을 다 입히고 나면 곧 떠들썩한 부엌이나 가정부의 방으로 촛불을 들고 사라지는 것이었다. 그러면 나는 인형을 무릎에 올려놓고는 난로의 불이 흐릿해질 때까지 주위를 둘러보며 방에는 나 혼자뿐이며 달리 도깨비가 나타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곤 하였다. 그러다가 타다 남은 불이 둔한 감빛으로 되면 이음매나 끈을 살며시 잡아당기고 급히 옷을 벗고는 추위와 어둠을 피해 침대로 기어들었다. 이 침대 속으로 나는 언제나 인형을 가지고들어갔다. 사람이란 무엇인가를 사랑하지 않고서는 못 배기는 법이다. 달리 애정을 쏟을 만한 그럴듯한 것이 없었던 나는 조그만 허수아비처럼 초라하고 퇴색한 우상을 사랑하고 귀여워하는 가운데서 즐거움을 구하였다. 그 조그만 인형이 살아 있어서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며 얼마나 바보같이 고지식하게 그것을 사랑했던가를 회상해 보면 내가 생각해도 묘한 느낌이 든다. 인형이 포근하고 따뜻하게 누워 있으면 나는 얼마간 행복스러운 기분이 되는것이었고 인형 또한 그러리라고 여겨졌다.
-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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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면역이라는 신화

면역에 대해서 평생 처음 들었던 이야기는 의사인 아버지가 해주신 것으로, 내가 아주 어릴 때였다. 그건 아킬레우스 신화였다. 아킬레우스의 어머니는 아들을 불사의 몸으로 만들려고 애썼다. 어떤 서술에서는 그녀가 아들의 필멸성을 불에 태워 없했다고 하는데, 그 덕분에 아킬레우스는 발뒤꿈치를 제외한 온몸이 결코 다치지 않는 몸이 되었지만, 결국에는 그 발뒤꿈치에 독화살을 맞아서 죽는다.
또 다른 서술에서는 아킬레우스의 어머니가 현세와 저승을 나누는 스틱스 강에 아들을 담갔다고 한다. 그때 그녀가 아기의 발뒤꿈치를 잡고 물에 담갔기 때문에, 이번에도역시 치명적인 취약점이 한 군데 남고 말았다.
- P9

우리가 백신의 효과를 따질 때 그것이 하나의 몸에 어떤영향을 미치느냐만 따지지 않고 공동체의 집합적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까지 따진다면, 백신 접종을 면역에 대한 예금으로 상상해도 썩 괜찮을 것이다. 그 은행에 돈을 넣는다는 건 스스로의 면역으로 보호받을 능력이 없거나 의도적으로 그러지 않기로 결정한 사람들에게 기부하는셈이다. 이것이 바로 집단 면역herd immunity 의 원리이고,
집단 접종이 개인 접종보다 훨씬 효과적인 것은 바로 이 집단 면역 덕분이다. - P34

자신은 백신을 맞았지만 미접종자가 많은 동네에서 사는 사람이 자신은 맞지 않았지만 접종자가 많은 동네에서 사는사람보다 홍역에 걸릴 가능성이 더 높은 건 그 때문이다.
미접종자는 자기 주변의 몸들, 질병이 돌지 못하는 몸들에 의해 보호받는다. 반면에 질병을 간직한 몸들에게 둘러싸인 접종자는 백신이 효과를 내지 못했을 가능성이나 면역력이 희미해졌을 가능성에 취약하다. 우리는 제 살갖으로부터 보다 그 너머에 있는 것들로부터 더 많이 보호받는다. 이 대목에서, 몸들의 경계는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혈액과 장기 기증은 한 몸에서 나와 다른 몸으로 들어가며 몸들을 넘나든다. 면역도 마찬가지다. 면역은 사적인 계좌인 동시에 공동의 신탁이다. 집단의 면역에 의지하는 사람은 누구든 이웃들에게 건강을 빚지고 있다.
- P35

어느 한 사람이 과정을 책임진 게 아니었고, 어느 한 사람이 발견의 공을 주장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서로위키가 상기시키듯이,
과학은 <대단히 집단적인 사업이다〉, 그것은 집단의 생산물이다.
-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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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인도네시아, 인도, 남아메리카 등을 포함한 세계 곳곳에서 거대도시들과 대도시들은 초고속 대규모 도시화로 인한 문제들과 씨름해왔다. 개발도상국의 거대도시들은 지난 30년 동안 연평균 9.5퍼센트의 경제성장률을 주도한 중국 도시들의 기적을 부러운 시선으로바라본다. 지금까지 중국에서 약 10억 명이 빈곤 상태에서 벗어났다.
아프리카의 여러 기반시설 사업에 중국의 자금이 쏟아지고 있다. 인류사를 통틀어 가장 빠르게 도시화가 진행되고 있는 대륙인 아프리카에서는 중국의 청사진이 최고의 모범답안으로 자리 잡았다. 아프리카의 통치자들은 자국의 난잡한 거대도시들을 아프리카판 상하이로 탈바꿈시키려는 꿈을 품고 있다. 아프리카 대륙 곳곳에는 마치 중국 도시의 교외에서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은 주택단지들이 있다. 그리고 중국 자금을 바탕으로 중국 건축가들이 건설한 경제특구 Special Economic Zones, 즉 라고스의 레키와 에코 애틀랜틱 같은 도시 안의 첨단 기술도시도 있다.
••••••
중국의 급작스러운 경제적 전환과 도시화는 그 방대한 규모뿐 아니라 연출의 측면에서도 세계사의 유일무이한 현상이다. 그러나 민주적 정치제도, 사유재산권, 법치 등에 따라 운영되는 나라들이 중국과 동일한 방식의 대규모 도시화를 무대에 올릴 수는 없다. 중앙 권력이약하고 부패가 만연한 나라들은 도시화를 체계적으로 시도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 마련이다.
- P635

메데인의 성공 비결은 도시 빈민들을 향한 태도의 변화, 그리고 신축 기반시설의 비용을 부담하는 문제에 대한 태도의 변화였다. 본인의 삶과 본인이 속한 동네에 대한 주인의식을 심어준 점도 성공 비결이었다. 메데인의 성공담은 향후 30년간 과열 성장 문제로 씨름할 아프리카의 도시들이 반드시 배워야 할 교훈이다. 아프리카는 앞으로 몇 년 뒤 도시 인구가 농촌 인구를 넘어서는 마지막 대륙이 될 것이고, 아프리카의 거대도시들은 중국이 물 쓰듯 투입한 자원의 일부분만으로 많은 일을 처리해야 할 것이다. 아프리카의 도시들은 투자자본과 기반시설이 부족하지만, 인구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증가하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는 엄청난 인적 에너지와 독창성이 가장 귀중한 자산일 것이다.
- P639

라고스에서 비공식 도시의 난잡함은 종종 빈곤과 치욕의 징후로 치부된다. 그러나 난잡함은 특히 고속성장하는 도시가 포용해야 할요소다. 난잡함은 발전하는 도시의 역동적 특성이다. 난잡함을 규제하고 공식화의 틀 안에 가두려는 시도는 창의성의 숨통을 조일 우려가 있다. 메데인과 도쿄는 빈민들이 공동체를 형성하는 데 필요한 조건과 기반시설을 마련함으로써, 그리고 비공식 정착지를 도시에 편입하고 그곳의 사회적 자본에 투자함으로써,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다시 말해 두 도시는 비공식 경제와 정착지를 문제의 일부분으로 여기는 대신 초 도시화를 관리하는 해법의 필수요소로 바라봤다. 주거 안정성과 더불어 기본적인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는 작업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주변부의 장소들을 기능적인 자산으로 탈바꿈시키는 과정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다.  - P645

앞으로 도시는 변화할 것이다. 그러나 도시의 변화는 이상론이 아니라 필요의 산물일 것이다. 도시는 복원력이 있다. 적응력을 갖춘 체계이기도 하다. 우리가 에너지 가격 상승을 유발하는 자원 위기나 생태적 재난에 직면할 때, 도시들은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변화할 것이다. 승용차와 승합차와 화물차가 줄어들면 도시 지역은 더 조밀해지고 도시 지역의 거리는 더 분주해질 것이다. 즉, 도시 지역은 지금까지의 역사에서 대체로 지니고 있던 모습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 P648

인류라는 생물종의 생존 여부는 우리의 기나긴 도시 방랑기의 다음 장에 달려 있다. 이야기는 번쩍거리는 세계적 도시들에서 펼쳐지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겪는 문제에 대한 디지털식 해답을 모색하는 기술형 관료들이나 고고한 위치에서 도시를 개조하는 기본계획 입안자들에 의해 결정되지도 않을 것이다. 이야기는 개발도상국들의 거대도시들과 급성장 중인 대도시들에 거주하는 수십억 명의 직접 체험을 통해 쓰일 것이다. 지난 5,000년에 걸쳐 수많은 도시 사람들이 그랬듯이, 앞으로 인류의 대부분은 비공식 정착지에서 생활하고 자작형경제 부문에서 일할 것이다. 인류는 도시를 건설해 유지하고, 독창성과 임기응변의 재능을 발휘해 살아남고, 환경 변화에 대처하는 사람들이다. 에너지가 고갈되고 기온이 더 올라가면서 도시의 환경이 더 혹독해질 때, 인류는 즉석에서 해결책을 찾아낼 것이다.
만약 역사가 일종의 안내자라면 역사는 그들이 성공을 거두리라고 말할 것이다.
- P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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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그날은 산보가 가당치 않은 날씨였다. 우리는 오전 중 한 시간쯤 잎이 진 관목 사이를 서성거린 터였다. 그러나 점심을 마친 무렵부터(리드 부인은 손님이 없을 때는 일찌감치 식사를 하였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컴컴한 구름과 더불어 몸에 스미는 비를 몰고 왔기 때문에 그 이상 집 밖에서 바람을 쉰다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나는 그것이 기뻤다. 오랫동안 산보하는 것이 나는 싫었다. 특히 쌀쌀한 오후의 산보가 그랬다. 손발이 온통 얼어붙고, 유모인 베시의 잔소리에 속은 상하고 또 일라이자.
존, 조지아나에 비해서 체력이 떨어진다는 생각에 기가 죽은 채 썰렁한 황혼 녘에 집으로 돌아오는 것은 정말 끔찍한 일이었다.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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