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이와 같은 궤에서 감흥을 느꼈을 수근, 경주 남산에 있는 석불에서 미의 원천을 길어옵니다. 우선 불상이 새겨지는 화강석 자체를포착합니다. 감지하기 어려운 오랜 세월 동안 태양, 비, 바람에 의해 품화된 그 화강석 표면의 오돌토돌한 질감, 자연이 무심하게 빚어낸 그아름다움을 수근은 자기 그림 위에 고스란히 재현하기로 마음먹습니다. 이를 위해, 남산의 석불은 물론이고, <임신서기석>, <십이지신상>등 신라인이 남긴 다양한 석물을 탁본 하며 연구를 거듭합니다. - P283
신라인들은 조각의 재료로 오직 화강석만을 사용했습니다. 그 위에 채색을 하거나 하지 않았죠. 자칫 너무 단조로워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화강석이 가진 다양한 회색조의 입자들이 단순하면서도 다채로운 아름다움을 완성시켜 주었던 것이죠. 신라인이 화강석으로 만든 석물에서 수근은 단색조의 아름다움을 발견합니다. 여러 색을 사용해야만 아름다운 것이 아님을, 단 하나의 색이 품고 있는 무한한 색조를 펼쳐 보여도 아름다울수 있음을 발견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수근은 신라인들이 화강석에 부처를 새긴 방식에 주목합니다. 신라인은 오직 선만으로 부처의 모든 것을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평평한 화강석 벽 위에, 전경과 배경의 구분 없이, 선만으로 부저의 형상을 빚고, 화면 전체를 조화롭게 구성하는 신라인의 묘수, 수근은 선만으로 모든 형상과 구성을 완성하는 신라인의 미학을 자신의 그림에 고스란히 담아냅니다. - P285
박수근은 갈색이나 회색 물감에 다량의 흰색 물감을 섞었습니다. 그리고 그 물감을 캔버스에 입히기를 수십 차례 반복했습니다. 화강석의 표면을 연상케 하는 오돌토돌한 질감이 나올 때까지 끊임없이 같은 행위를 반복한 것입니다. 마치반복해서 받을 갈고, 밥을 짓고, 바느질하듯 말이죠. 그 결과 균일하면서도 균일하지 않은 독특한 질감을 창출했습니다. 그의 화면에서는 매일 성실히 수행하는 고된 노동이 품고 있는 어떤 숭고함이 느껴집니다. 더불어, 그의 화면은 평면적입니다. 원근법, 명암법 등을 사용하지 않아 화면에 깊이감이 없이 평평하죠. 이는 그가 회화의 평면성을 강조하는 최신 회화 경향을 예민하게 파악하고 있던 것으로 읽힙니다. 그의 유품 중에는 피카소의 화집이 있었습니다. 회화의 평면성, 기하학적 추상성을 특징으로 하는 피카소의입체주의 회화가 수근의 화풍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론해볼 수 있는 지점입니다. 이렇게 수근의 회화에서 발견되는 단색조, 동일 행위의 반복, 평면성이라는 특정, 흥미롭게도 1970년대 한국에서 태동하는 단색화의 특징과 일맥상통합니다. - P299
독을 품고 있는 악의 상징, 뱀, 그 뱀을 집요하게 추적해, ‘악의 실체가 무엇인지 밝혀, 그림 속에 포획해, 악을 소멸시키려 했던 경자. 이를위해 매일같이 뱀을 뚫어지게 관찰하던 그녀는 전혀 예상치 못한 반전을 체험하게 됩니다. 악할 거란 예상과 달리 뱀의 눈이 개구리 눈처럼 순해 오히려 사랑스럽게 느껴진 것이죠. 또, 징그러울 거란 예상과달리 뱀의 살결과 움직임에서 꽃처럼 화사하고 비단처럼 고운 아름다움을 느끼게 됩니다. 악하고, 징그럽다고 여겨온 뱀에게서 아름다움을발견해버린 모순된 상황, 경자는 뱀으로부터 발견한 그대로를 생태에 반영합니다. 그리고 이내 깨닫습니다.
"내 청춘은 집안의 몰락과 2차 대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시달리며 보냈다. 추한 현실을 아름다운 정경으로 이겨보려는 슬픈 욕구는 있었지만, 내겐 지지리도 연인 복마저도 없다. "고와 한을 아름다운 지혜로 승화시킬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갖게 되겠지요." - P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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