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몸 역시, 기억의 의견에 동의해왔다. 뚱뚱하고 크고 부드러운 펭수와는 감촉이 완전히 달랐다. 어린 나무의 가지처럼, 작고 가느다란 것이었다. 그가 숨만 크게 쉬어도 갈비뼈에 눌려 톡 부러질 것처럼 연약한 것이었다. 무엇보다 익숙한 냄새가 났다.
무서운 직감이 그를 찍어 눌렀다. 귓가에선 본능의 목소리가 속살거렸다. 그냥 있어, 움직이지 마. 보지 마.
시간이 갔다. 하염없이 느리게 째깍 째각, 그의 턱 밑에선 피가 요동치고 있었다. 심장이 고약하고 섬뜩한 소리를 내며 질주했다.
머릿속에선 까마귀 떼가 뱅글빙글 돌았다. 그는 더 버틸 수가 없었다. 해치워버리는 심정으로, 한 동작에 몸을 뒤집고 일어나 앉았다. 눈을 내리떠서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했다.
노아였다. 펭수 배에 얼굴을 묻고 엎드린 노아, 사지를 늘어뜨린 채 움직이지 않는 노아. 불러도 대답하지 않는 노아, 숨 쉬지않는 노아, 맥이 뛰지 않는 노아, 몸을 흔들자 머리를 옆으로 툭 떨어뜨리는 노아.
세상이 훅, 사라졌다. 그의 머릿속은 까맣게 암전됐다. 어둠 속에서 그는 폭음처럼 터져나오는 자신의 비명을 들었다.
아냐. 아니야. 아니라고…..….
-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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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연명의료에 따르는 비용 또한 문제다. 아툴 가완디는 책에서 이제 곧 죽음을 맞이할 사람들에게서 삶을 정리할 기회를 박탈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집중 치료에만 신경을 쓰는 미국 의료 시스템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런데우리나라는 이 점에서 미국보다 더욱 심각한 편이다.
우리나라는 항암제를 임종 1개월 전에 30.9퍼센트의 환자가 사용한다. 사실상 임종 1개월 전이면 이제 삶이 얼마안 남았을 때다. 이때는 삶의 마지막 정리를 위한 통증 조절이 가장 중요한 시점임에도 불구하고 통증 완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모르핀 사용은 23퍼센트에 불과하다.
그래도 미국은 50퍼센트가 넘는다. 그렇다면 왜 우리나라는 2.3퍼센트에 불과한 것일까? 이것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국민건강보험 시스템의 문제다.
- P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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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생각이 실행이 되는 것은 아무에게나 일어나는일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충동적으로 일어나는것이라고 잘못 알고 있다.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소속감이 있다면, 가족의 일원, 회사의 일원, 어느 공동체의 일원으로 죽음에 대한 관념은 실제로 실행되지 않는다. 그런데 사회적 교류가 단절된 상태에서는 죽음에 대한 관념이 지속적으로 조금 더 구체화된다.
- P175

한번 자살 제지를 받은 사람 중 67퍼센트는 다시 자살 시도를 하지 않고 자신의 평균 수명을 다했다. 누군가의 자살 시도는 오랫동안 준비하고 생각해온 결심의 표출이지만 막상 그날 누군가의 중재로 당신의 잘못된 판단이 어떤 결과를 야기하는지를 진심으로 이야기해주면 그 사람의 마음이 죽음이 아닌 쪽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 P191

혹시나 지금 죽음을 떠올리고 있는 사람들이있다면 자신의 정서 문제가 치료를 통해 회복될수 있으며, 결코 자살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방법으로 많은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점을 반드시 알아주기를 바란다.
정서 문제는 신체의 질병, 예컨대 감기 등과같이 적절한 치료와 따뜻한 지지를 받으면 회복될 수 있다. 따라서 외부에 도움을 요청해 삶이라는 소중한 여정이 중단되지 않기를 바란다.
- P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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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법의학자는 어쩔 수 없이 시신을 통해 자살을 마주하기도 한다. 자살은 개인의 내밀한 결정이기도 하지만 사회적 흐름과 무관할 수 없는 사회적 현상이기도 하다.
- P92

죽음은 개인의 권리와 함께 사회의 윤리와도 맞닿아 있다. 더불어 사는 세상에서 모든 삶은 함께 존중받고 보살펴져야 한다. 각자의 죽음이 삶과의 아름다운 이별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개인을 넘어선 사회적 노력이 절실함을 깨우쳐야 한다.
- P104

법적으로는 크게 민법과 형법이 있는데 형법에서 적용하는 대표적인학설은 진통설이다. 형법은 어떠한 행위의 범죄 처벌 여부와 그 처분의 정도나 종류를 규정한 법으로, 진통이 있다면그때부터 사람으로 보아 법을 적용할 수 있다. 만약 진통 전의 태아를 사망하게 하면 살인죄가 아닌 낙태죄를 적용하게 된다. 그러나 진통이란 여성의 자궁 경부가 열리면서 아기가 머리를 내밀기 전에 이미 시작된다. 따라서  만일 그때누군가가 아기를 해했다면 살인죄가 되는 것이다.
민법에서는 또 다르다. 민법은 사람의 권리와 의무를 지우는 법이다. 예를 들어 언제부터 내가 내 손자나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줄 수 있는지는 민법에 따라 결정한다. 민법에서는 아기가 자궁 경부를 통해 완전하게 신체를 노출했을 때부터를 사람으로 본다. 이처럼 민법과 형법에서 적용하는 학설은 약간 다르며 관련 학설 또한 진통설, 일부노출설, 전부 노출설, 독립호흡설 등 여러 가지다.
- P107

지금은 누구라도 뇌사를 인정하는 분위기다. 그리고 뇌사가 자연스럽게 죽음으로 인정된 오늘날 새롭게 등장한 논쟁거리가 생명의 자기 결정권 문제다. 의사조력자살 또는 의사조력사망 문제 등 스스로 자신의 죽음을 결정할 수있느냐 없느냐가 현재 우리 사회의 첨예한 논쟁거리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논쟁의 한가운데에서 우리는 과연 죽음이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질문해보게 된다. 떠날 때를 알고 떠나는자의 뒷모습이 가장 아름답다는 시 구절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죽음은 준비되고 예감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 P141

그런데 지금은 그때처럼 죽음의 순간을 가족이 모여 함께하기가 어렵다. 세상과의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할 시간도 없이 의료 행위의 한복판에서 죽음을 처분당하는 것이 요즘 우리 사회 죽음의 대세가 아닌가 싶어 씁쓸한 심정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대세를 거슬러 이제 우리는 죽음을 당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맞이하는 쪽으로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 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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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엄마는 오리 먹이를 잘 만든다. 지유는 만드는 법을 잘 안다.
먼저 돼지고기를 사야 한다. 머리나 갈비, 뒷다리 같은 덩어리고기를 뼈째 사는 게 좋다. 엄마는 항상 도매시장에 간다. 마트에서 파는 살코기는 양에 비해 비싸기 때문이다. 물론 엄마는 ‘비싸서‘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놓고 돈 얘기를 하는 건 상스러운 짓이니까. 대신 이렇게 말한다. 오리도 칼슘이 필요해.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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