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안 일본은 모든 예술을 높이 쳤지만 그중에서도 시가 가장 으뜸이었다. 인생의 모든 중요한 사건에는 늘 시가 있었다. 출생과 연애, 심지어 죽음까지도, 헤이안 시대의 존경받는 신사는 작별의 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훌륭한 시를 쓰는 사람은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얻거나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시를 못 쓰는 사람은 무자비하게 조롱당했다.
아름다운 시를 쓰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포장도 아름답게 해야 했다. 당신이 970년의 교토에 살고 있다고, 그리고 누군가에게 편지를 보내고 싶다고 상상해보자. 어떻게 하겠는가?
먼저 종이를 골라야 한다. 아무 종이나 골라선 안 된다. "전하고자 하는 정서뿐만 아니라 계절, 심지어 그날의 날씨와 잘 어울리는 적절한 두께와 크기, 디자인, 색깔" 의 종이여야 한다. 그다음에는 다양한 구성과 붓질을 실험하며 초안을 여러 번 써본다.
내용과 글씨가 마음에 든다면 널리 쓰이는 여러 방법 중 하나를 이용해 종이를 접고, 그에 어울리는 나뭇가지나 꽃잎을 동봉한다. 마지막으로 "똑똑하고 잘생긴 전달자"를 불러 올바른 주소로 보내고, 답장을 기다린다. 감사가 돌아올지 조롱이 돌아올지는 알 수 없다. 최악의 경우 무시당할 수도 있다. 읽씹은 21세기의 발명품이 아니다.
- P345

쇼나곤의 철학에 함축된 의미는 다음과 같다. 우리의 정체성은 자기 주위에 무엇을 두기로 선택하느냐에 크게 좌우된다. 주변에 무엇을 두느냐는 선택이다. 철학은 우리가 내리는 눈에 보이지않는 선택을 겉으로 드러내 보인다. 어떤 것이 자신의 선택임을깨닫는 것은 더 나은 선택으로 향하는 첫걸음이다. 독일 작가 헤르만 헤세가 말했듯, "일하는 동안 곁에 두기 위해 처음으로 작은꽃을 꺾은 사람은 인생의 기쁨에 한 발짝 다가간 것이다." - P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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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 던
그날

아내를 생각할 때마다 나는 그녀의 머리를 떠올린다. 먼저 그 생김새를 생각한다.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그녀의 뒤통수였다. 어딘가 모르게 사랑스러운 느낌을 주는 각도의 뒤통수. 단단한 옥수수 알 혹은 강바닥의 화석 같은,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이 ‘품위 있게 생긴 머리‘ 라고 말했을 법한 머리.누구나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는 두개골이다.
나는 어디에 있는 아내의 머리를 알아볼 것이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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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5월 2일 월요일

그가 좀 더 일찍 결정을 내려 남자답게 그 결정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할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알란 칼손은 행동하기 전에 오래 생각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다시 말해 노인의 머릿속에 그 생각이 떠오르자마자 그는 벌써 말름세핑 마을에 위치한 양로원 1층의 자기 방 창문을 열고 아래 화단으로 뛰어내리고 있었다.
이 곡예에 가까운 동작으로 그는 약간의 충격을 받았다. 사실 조금도 놀라운 일이 아니었으니, 이날 알란은 백 살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의 백 회 생일을 축하하는 파티가 양로원 라운지에서 한 시간 후에 시작될 예정이었다. 시장도 초대되었고, 한 지역 신문도 달려와 이 행사를 취재하기로 되어 있었다. 지금 노인들은 모두 최대한 멋지게 차려입고 기다리는 중이었고, 성질머리 고약한 알리스 원장을 위시한 양로원 직원 일동도 마찬가지였다.
오직 파티의 주인공만이 불참하게 될 거였다.
- P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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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는 말을 중요하게 여겼지만 그에게 인仁만큼 중요한 단어는 없었다. 인은 《논어》에 105번 등장하는데, 그 어떤 단어보다.
많은 횟수다. 이 단어의 정확한 번역어는 존재하지 않으ㅁ(공자 자신도 이 단어를 정확히 정의 내리지 않는다), 그동안 연민, 이타주의, 사랑, 어짐, 진정한 선, 온전한 행동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되었다. 그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번역은 ‘인간다운 마음‘이다.
인을 실천하는 사람은 공경과 아량, 신의, 민첩함, 친절이라는 다섯 가지 기본 덕목을 항상 실천한다. 물론 공자가 친절을 발명한 것은 아니지만, 공자는 친절을 개인이 원할 때 베푸는 것에서 철학의 핵심 개념이자 훌륭한 통치의 근간으로 한 단계 승격시켰다. 공자는 친절과 사랑을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올려놓은 첫 번째 철학자였다. 공자는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하지말라"고 말함으로써 예수보다 약 500년 일찍 황금률을 제시했다.
공자에게 친절은 무른 마음이 아니다. 약함도 아니다. 친절은 실용적인 덕목이다. 공자의 한 추종자는 모두에게 친절을 베풀면
"손바닥 위에서 세상을 뒤집을 수 있다"라고 말한다.
- P311

"이런 셀 수 없이 많은 작은 친절의 힘을 기록하고 귀하게 여기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자 거의 성스럽기까지 한 책무라고, 굴드는 말한다. 냉철한 과학자인 굴드는 선함을 기록하는 데 실용적인 이유가 있다고 보았다. 친절은 귀하게 여기면 더욱 늘어난다.
친절에는 전염성이 있다. 도덕적인 행동을 목격하면 신체적이고 감정적인 반응이 촉발되어 흘러넘친다. 친절한 행동을 목격한 사람은 더욱 친절하게 행동하게 된다. 최근 있었던 여러 연구에서증명된 현상이다.
나도 친절의 전염성을 몸소 체험한다. 친절한 행동에 주의를 온통 집중하며 F 노선을 탔던 1주일 이후 나는 더 친절한 사람이되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문을 잡아준다. 쓰레기를 줍는다. 바리스타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그가 보지 않을 때 팁을 놓아둔다. 이런 작은 행동으로 노벨상을 타거나 성인군자가 되지는 못한다는 걸 안다. 하지만 이건 시작이다. 삼나무 씨앗에 떨어지는 몇 방울의 물이다. - P320

소로가 가르쳐주었듯이, 우리는 볼 준비가 된 것만 본다. 그리고 우리 대부분은 작은 것을 볼 준비를 갖추지 못했다. 하지만 쇼나곤은 그렇지 않았다. 쇼나곤은 삶이 수만 가지 작은 기쁨의 총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았다. 달콤한 시럽을 뿌려 반짝이는 금속 그릇에 담아낸 빙수, 수정으로 만든 묵주 등나무꽃, 매화꽃 위에 내려앉은 눈, 딸기를 먹는 사랑스러운 어린아이, 연못에서 꺾은 작은 연잎."
그때나 지금이나 많은 일본인이 그렇듯 쇼나곤은 사쿠라, 즉 벚꽃을 무척 좋아했다. 벚꽃은 순식간에 져버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삼 일쯤 만개했다가 다 떨어져버린다. 다른 꽃(예를 들면 매화)은 훨씬 오래 피어 있다. 어째서 그렇게 연약한 것을 피우려고 그토록 애를 쓰는 것일까?
그 실마리는 불교 개념인 무상에서 찾을 수 있다. 인생은 덧없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사랑한 모든 것은 언젠가 죽어 없어지고,
그건 우리 자신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문화는 이 사실을 두려워한다. 일부 문화는 감내한다. 일본 문화는 찬양한다.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그 불확실성이다."  - P340

일본 연구자인 도널드 리치는 "아름다움은 덧없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한다.
순식간에 사라지는 삶의 작은 기쁨을 즐기려면 느슨하게 쥐어야 한다. 너무 세게 붙잡으면 부서져버린다. 사람들이 소로에 대해서 한 말은 쇼나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소로는 대상에 관심을 기울이지만 그것을 꽉 붙잡거나 이용하거나 남김없이 파악하려 하지는 않는다."
- P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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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아이폰을 지닌 터너

2009년 초여름 어느 날 아침, 나는 데이비드 호크니에게 다음과 같은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오늘 새벽을 당신에게 보내줄게요. 어이없는 문장인 줄은 알지만,
당신은 내 말의 의미를 할 수 있을 겁니다." 그 후 시간에 맞추어 이미지 하나가 도착했다. 옅은 분홍색과 젊은 자주색, 살구색 구름이 여름 아침의 첫 햇살을 받으며 요크셔(Yorkshire) 해안 위를 떠다니고 있었다. 그 이미지는 수채화처럼 섬세하면서도 스테인드글라스와도 같이 빛을 발하고 있었는데, 오늘날의 미술 작품들이 그러하듯 첨단 기술을 활용한 것이었다. 호크니는 자신의 아이폰(iPhone)으로 이 그림을 그린 것이다.
- P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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