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안 일본은 모든 예술을 높이 쳤지만 그중에서도 시가 가장 으뜸이었다. 인생의 모든 중요한 사건에는 늘 시가 있었다. 출생과 연애, 심지어 죽음까지도, 헤이안 시대의 존경받는 신사는 작별의 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훌륭한 시를 쓰는 사람은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얻거나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시를 못 쓰는 사람은 무자비하게 조롱당했다.
아름다운 시를 쓰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포장도 아름답게 해야 했다. 당신이 970년의 교토에 살고 있다고, 그리고 누군가에게 편지를 보내고 싶다고 상상해보자. 어떻게 하겠는가?
먼저 종이를 골라야 한다. 아무 종이나 골라선 안 된다. "전하고자 하는 정서뿐만 아니라 계절, 심지어 그날의 날씨와 잘 어울리는 적절한 두께와 크기, 디자인, 색깔" 의 종이여야 한다. 그다음에는 다양한 구성과 붓질을 실험하며 초안을 여러 번 써본다.
내용과 글씨가 마음에 든다면 널리 쓰이는 여러 방법 중 하나를 이용해 종이를 접고, 그에 어울리는 나뭇가지나 꽃잎을 동봉한다. 마지막으로 "똑똑하고 잘생긴 전달자"를 불러 올바른 주소로 보내고, 답장을 기다린다. 감사가 돌아올지 조롱이 돌아올지는 알 수 없다. 최악의 경우 무시당할 수도 있다. 읽씹은 21세기의 발명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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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나곤의 철학에 함축된 의미는 다음과 같다. 우리의 정체성은 자기 주위에 무엇을 두기로 선택하느냐에 크게 좌우된다. 주변에 무엇을 두느냐는 선택이다. 철학은 우리가 내리는 눈에 보이지않는 선택을 겉으로 드러내 보인다. 어떤 것이 자신의 선택임을깨닫는 것은 더 나은 선택으로 향하는 첫걸음이다. 독일 작가 헤르만 헤세가 말했듯, "일하는 동안 곁에 두기 위해 처음으로 작은꽃을 꺾은 사람은 인생의 기쁨에 한 발짝 다가간 것이다." - P3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