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생활이나 국가 정치에 이토록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도 인터넷 관련 사안들이 어떤 투표도 거치지 않고 누군가에 의해 결정되었다는 사실을 상기해봐야 합니다. 몇 명의 엔지니어가 내린 결단으로 사용자의 이해나 동의 없이 인터넷은 지금과 같은 형태로 만들어져 온 세상에 퍼졌습니다. 유사한 일이 분명 미래에도 일어날 것입니다.
브렉시트나 트럼프 정권의 탄생에 관해 말하자면, 지금 일어나는 현상은 단순한 포퓰리즘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주위에서 무슨일이 일어나는 나는 잘 알지도 못하고 내 존재는 사회와 무관해지고 있구나.‘ 하고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영국이든 미국이든 일반 유권자들은 자신들이 힘을 잃기 시작했으며 자기들 목소리가 높은 곳까지 닿지 않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엘리트층을 향한 맹렬한 반발로 이어진 것이지요.
- P26

 미래의 주요 문제들은 항상 지구 차원에서 발생할 테니까요. 특히 향후 수십 년 안에 인류는 세 가지 커다란 위기, 바로 핵전쟁, 지구온난화(기후변화), 그리고 과학기술에 의한 실존적 위기에 직면할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앞으로 인공지능이 기존의 사회 질서와 경제 구조를 완전히 파괴하고 수십억 명의 사람을 노동시장에서 퇴출시켜 대규모의 무용 계급을 만들어낼지도 모릅니다. 그로 인해전 세계적으로 새로운 문제가 발생할 것입니다.
이러한 위기는 국제적인 노력을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습니다.
-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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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밀려나가고 있다. 바닷가 부근의 물은 잔잔하고 쇳덩이 빛깔이지만, 롱웨이 록을 지나는 지점부터는 물살이 변덕스러워지기 시작한다. 하얀 물마루마저 보인다. 작은 만에서 바닷가재 부표가 살며시 까딱까딱 움직이고, 갈매기가 마리나 부근의 선창에서 배회한다. 하늘은 아직 푸르지만 북동쪽으로는 막 일어나고 있는 구름 띠와 수평선이 나란하고, 저쪽 다이아몬드섬의 소나무들은 꼭대기가 휘어져 있다.
- P311

 헨리는 이렇게 말하겠지. "오. 그렇지 않아, 올리. 내겐 당신이 예쁘기만 한걸." 그러나 헨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어떤 날은 휠체어에 앉아 고개도 돌리지 않는다. 올리브는 매일 차를 몰고 가서 그의 곁을 지킨다. 당신은 성녀야, 몰리 콜린스는 그렇게 말했다. 맙소사, 멍청한 여자 같으니, 그녀는 삶이 두려운 늙은 여자일 뿐이다. 요즘 올리브가 아는 거라곤 해가 떨어지면 잘 시간이라는 사실뿐이다. 사람들은 그럭저럭 살아낸다는 그 말. 올리브는 확신하지 못한다. 거기에도 여전히 파도는 있지, 올리브는 생각한다.
- P314

올리브는 아래층으로, 하얀 시하실로 내려갔다. 작은 벽장 같은 욕실로 들어서면서 올리브는 전등 스위치를 올렸다. 그리고 흰색 면 블라우스에 끈적이는 짙은 색 버터스카치 소스가 기다.
랗게 띠를 이루고 있는 걸 보았다. 별인간 심기가 다소 불편해졌다. 아이들은 이걸 보고도 그녀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올리브는 오라 숙모와 똑같은 늙은 할망구가 되어 있었다.
오래전에 헨리가 그 할망구를 차에 대워 나간 적이 있었다. 그녀는 가끔 저녁에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들르곤 했고, 올리브는 오라 숙모가 녹은 아이스크림을 앞자락에 흘리는 걸 지켜보았다.
그 광경에 욕지기가 치밀었다. 오라 숙모가 죽었을 때, 올리브는그 딱한 꼴을 보지 않아도 되어 기뻤다.
그런데 지금 자신이 오라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오라숙모가 아니었고, 아들은 자기가 흘렸을 때 이 점을 곧바로 지적했어야 했다. 이들이 뭔가를 앞자락에 흘렸다면 올리브가 응당 지적했을 것처럼, 아들 내외는 자신을 데리고 다녀야 하는 어린아이로 여겼던걸까? - P407

그렇기에, 지금 그녀 곁에 앉은 이 남자가 예전 같으면 올리브가 태하지 않을 사람이었다 한들, 무슨 상관이라. 그도 필시 그녀를 택하지 않았을 텐데, 하지만 지금 둘은 이렇게 만났다. 올리브는 꼭 눌러 붙여놓은 스위스 치즈 두 조각을, 이 결합이 지닌 숭숭 난 구멍들을 그려보았다. 삶이 어떤 조각들을 가져갔는지를. 그녀는 눈을 감았다. 지친 그녀는 파도를 느꼈다. 감사의 그리고 회한의 파도를 그리고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햇살 좋은 이 방을, 햇살이 어루만진 벽을, 바깥의 베이베리를, 그것이 그녀를 힘들게 했다. 세상이. 그러나 올리브는 아직 세상을 등지고 싶지 않았다. - P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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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은 심장발작 이후로 사람들 앞에서 죽게 될까봐 걱정했다. 지난번 발작은 부엌에서 일어났지만 사람들 앞에서 쓰러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녀는 몹시 불안했다. 수년 전에, 그런일을 목격했다. 한 남자가 노상에서 죽은 것이다. 구급 의료진이 남자의 웃옷을 찢었는데, 조금만 집중해서 생각하면 지금도 그녀를 울게 만들 광경이었다. 배가 드러난 사내의 활짝 벌린 팔이 축 늘어져 있던 것, 아무것도 모르고 천연덕스럽게 누운 모습.
죽어서 누워 있다는 것은 얼마나 애잔하고 가련한 일인가, 제인은 생각했다.
- P231

드뷔시의 곡이 연주되는 동안 그는 팔짱을 끼고 잠이 들었다.
남편을 보며, 제인은 음악으로 가슴이 충만해지는 걸 느꼈다.
그리고 곁에 앉은 이 남자, 평생 어린 시절의 고통을 떨치지 못했던 이 늙은(!) 남자에 대한 애정으로 가슴이 벅찼다. 그의 어머니는 언제나, 언제나 밥에게 화를 냈다. 지금 이 순간도 제인은 그의 얼굴에서 의뭉스럽고, 늘 겁에 질린 어린 소년이 보이는것 같았다. 잠들어 있는 이 순간마저도, 그의 얼굴에는 불안으로 긴장한 표정이 감돌았다. 행운이야. 제인은 손모아장갑을 낀 손을 가볍게 그의 다리에 얹으며 다시 한번 생각했다. 누군가를 수십 년 동안 알고 살 수 있다는 것은,
- P235

"사람마다 대응하는 방법이 다르겠지요." 데이지가 예의 그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애는 상냥한 목소리밖에 가진 게 없어,
올리브는 생각했다. 데이지는 그런 사람이었다. 상냥한 사람, 제길, 전부 엿 먹으라고 해, 올리브는 개가 기다린다며 아직 가득찬 찻잔을 그대로 두고 일어섰다.
이런 식이었다. 올리브는 아무도 참아낼 수가 없었다. 며칠마다 우체국에 갔는데, 그것도 견딜 수 없었다. "어떻게 지내세요?" 에밀리 벅은 매번 그렇게 물었고 올리브는 짜증이 났다.
"그럭저럭 지내."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헨리 앞으로 오는 게 태반인 우편물을 받는 게 정말 싫었다. 게다가 청구서는 왜 그리 많은지! 청구서를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어떤 것들은 아예 납득이 가지 않았다. 광고 우편물은 또 왜 그리 많은지! 올리브는 커다란 회색 쓰레기통 곁에 서서 광고 우편물을 죄다 버렸는데,
가끔 청구서가 쓰레기통에 섞여 들어가면 에밀리가 카운터 안쪽에서 계속 지켜보는 가운데 몸을 숙이고 쓰레기통을 뒤져 찾아야 했다.
카드 몇 개가 날아왔다. "마음이 아프네요. 정말 슬픕니다."
"...… 소식에 마음이 아프네요." 올리브는 카드마다 답장을 했다. "마음 아파하지 말아요." 이렇게 썼다. "이런 일은 일어나기 마련이라는 거 다 아는 처지에 마음 아플 게 뭐가 있어요." 자기가 제정신이 아닌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잠시라도 든 것은 한두 번밖에 없었다.
- P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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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이 책은 진화생물학, 역사학, 경제학 등 각 분야에서 활약하는 세계 석학들과 다가올 세상에 관해 나눈 대담을 엮은 것이다.
여러 나라를 오가며 해안이 있는 거장들을 취재한 결과, 그들이 향후 미래를 결정짓는 요인으로 주목한 것은 ‘인공지능‘과 ‘격차‘였다.
- P5

인간은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눈에 보이는 것이 현실인지 아니면 누군가가 만들어낸 이야기인지 구별하는 능력을 잃었습니다. 그 결과 무수한 사람이 국가나 사회, 그리고 신이라는 상상의 산물을 위해 전장에 나가거나 수백만 명을 마구잡이로 학살했습니다. 이런 사태에 이르지 않으려면 우선 눈앞에 보이는 것이 현실인지 허구인지 구별하고, 이를 이용할 방법을 고민해야 합니다.
- P17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 자신이 만들어낸 허구에 의해 우리가 고통을 느끼는 일이 어리석게 보입니다. 인간 사회가 잘 작동하려면 허구가 필요하지만, 허구를 도구로 보지 않고 그것을 목적이나 의미로 받아들이는 순간 초래될 고통은 실존하는 우리들의 몫임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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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아이는 필연적으로 자기가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단어를 수도 없이 사용할 수밖에 없다. 어린아이들은 학교에서 시를 암송할 때도 자기가 말하는 단어의 의미를 모르고 사용하는 경우가 잦다. 이런 식으로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정확한 의미를 조심스럽게 따져 보지 않고 단어와 문구를 말하는 습관을 들인다.
이런 좋지 않은 습관에는 아주 어릴 때부터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 아이는 자신이 쓰는 단어의 의미를 계속 물어야 한다. 어른은 아이에게 단어의 의미를 물으며 올바른 정신 자세를 가지도록 독려해야 한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사전을 이용하도록 엄격하게 이끌고, 단어나 문구를 우둔하게사용하는 습관을 들이지 않도록 교육 목표를 세워야 한다.
의미도 모르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모든 나쁜 습관 중에서도 최악에 속한다.

내 친구 하나가 저학년 지리 수업을 평가해 달라는 부탁을받고 어느 학교를 방문했다. 그 친구는 책을 훑어보고는 이렇게 물었다.
"여러분이 땅에 구멍을 파야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수백 피트나 파야 해요. 다 파고 내려갔을 때 맨 밑바닥은 꼭대기 보다.
따뜻할까요, 추울까요?"
아무도 대답하는 학생이 없었다. 그러자 선생이 대신 입을열었다.
"학생들은 확실히 답을 알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선생님이 질문을 잘못하신 것 같아요. 제가 한번 물어볼게요."
선생은 교과서를 들더니 이렇게 물었다.
"지구 내부는 어떤 상태죠?"
학생 절반가량이 즉시 대답했다.
"지구 내부는 화성융합火成融合(ligneous fusion) 상태입니다!"
- P61

사물 또는 사실을 분명하게 정의하지 않으면 그것들에 관해 현명하게 추론할 수 없다. 모호한 개념은 대상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도록 방해할 뿐만 아니라 대상에 관한 모든 추론을 헛되게 만들어 버린다.  - P64

PI: 운동선수답지 못한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P2: 그의 행동은 운동선수답지 못했다.
Q: 그러므로 그 선수는 그렇게 행동하지 말았어야 했다.

이것은 좋은 추론이라고 할 수 없다. "운동선수답지 못한" 이라는 표현의 의미 자체가 단순히 ‘운동선수가 하지 말았어야 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이 논증의 결론 Q는 단순히 두 번째 전제 P2를 반복했을뿐이다. 이 결론을 주장하기 위해 정말 증명해야 할 것은 그선수의 행동이 운동선수답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어떤 점에서, 어떤 이유로 운동선수답지 못했는지 보여 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 P93

때때로 책을 덮고 머릿속으로 자신이 무엇을 배웠는지 검토해 본다.
체계적인 분류는 대단히 중요하다.
학생들의 머릿속은 대체로 정돈되지 않은 도서관과도 같다. 어딘가에 책이 있긴 한데 필요할 때 찾아서 꺼내 쓸 수가 없는 상황이다. 그런 지식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머릿속에 다양한 분야의 수많은 지식을 넘쳐나도록 지니고 그것들을 짐칸에 마구 뒤섞어서 실어 나르는 일과 똑같은 양의 지식을 즉시 전달하고 배달하기 쉽도록 알맞은 상자에 넣고 분류하여 실어 나르는 일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 조지 호레이스 로리머 - 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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