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킹턴이여, 이제 알겠는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그 진실을 그대는 어렵풋이나마 보는 것 같다. 무릇 깊고 진지한 생각은 망망한 바다의 독립성을지키려는 영혼의 대담한 노력일 뿐이며, 또한 하늘과 땅에서 가장 사나운바람은 서로 공모하여 인간의 영혼을 배반과 굴종의 해안으로 내던지려 한다는 것을 그대는 아는가? 하지만 가장 숭고한 진리, 신처럼 가없고 무한한 진리는 육지가 없는 망망대해에만 존재한다. 따라서 바람이 불어가는 쪽이 안전하다 할지라도, 수치스럽게 그쪽으로 내던져지기보다는 사납게 으르렁대는 그 무한한 바다에서 죽는 것이 더 낫다. 그렇다면 어느 누가 벌레처럼 육지를 향해 기어가고 싶어 하겠는가! 무시무시한 것들의 공포! 이 모든 고통이 그렇게 헛된것인가? 기운을 내라. 기운을 내, 벌킹턴이여! 완강하게 버텨라, 반신반인의 영웅이여! 그대가 죽어갈 바다의 물보라, 그곳에서 그대는 신이 되어 솟아오르리라! - P152
"고래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내보트에 절대로 태우지 않겠다"고 스타벅은 말했다. 이 말은 가장 믿을 수있고 쓸모 있는 용기는 위험에 맞닥뜨렸을 때 그 위험을 정당하게 평가하는 데에서 나온다는 뜻일 뿐만 아니라, 두려움을 모르는 사람은 겁쟁이보다 훨씬 위험한 동료라는 뜻이기도 했다. "그래, 그래. 저기 있는 스타벅만큼 조심스러운 사람은 이 포경업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거야." 이등항해사인 스티브가 말했다. 하지만 ‘조심스럽다‘는 말이 스터브 같은 고래잡이, 아니 모든 고래잡이들의 입에서나올 때 정확히 무슨 뜻인지는 오래지 않아 알게 될 것이다. 스타벅은 일부러 위험을 찾아다니는 십자군 전사는 아니었다. 그에게 용기는 감정이 아니라 다만 자기한테 유용한 것이었고, 실제로 꼭 필요한 경우에 언제든지 쓸 수 있도록 늘 가까이 있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는 이 포경업에서 용기란 쇠고기나 빵처럼 반드시 배에 갖추어야 하고 어리석게 낭비하면 안 되는 주요 품목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해가 진 뒤에 고래를 잡기 위해 보트를 내리거나, 너무 고집스럽게 저항하는 고래를 고집스럽게 공격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이 위험한 바다에 나온 것은 자신의 생계를 위해 고래를 잡으러 온 것이지, 고래의 생계를 위해 고래한테 죽으러 온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목숨을 잃은 사람이 수백 명이나 된다는 것도 스타벅은 잘 알고 있었다. 그 자신의 아버지는 어떻게 죽었는가? 바닥 모를 심해 어디에서 갈기갈기 찢긴 형의 팔다리를 찾을수 있을 것인가? 그에게 이런 기억이 있고, 게다가 좀 전에 말했듯이 미신을 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스타벅이 여전히 용기를 발휘할 수 있었다면, 그의 용기는정말 대단했던 것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런 정신 구조를 가지고 있고, 그렇게 끔찍한 경험과 기억을 가진 사람이 합리적인 상태에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런 경험과 기억들은 그의 내면에 어떤 요소를 자라나게 했을 것이고, 이것은 잠재해 있다가 적당한 상황이 닥치면 껍질을 깨고 나와서 그의 용기를 모두 태워버렸을 것이다. 그는 용감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대담한 사람에게서 주로 볼 수 있는 용기였다. 그 용기는 일반적으로 바다나 바람이나 고래, 또는 세상에 흔히 있는 불합리한 공포와 맞닥뜨렸을 때는 꿋꿋이 견뎌내지만, 더 정신적인. 그렇기 때문에 더욱 무시무시한 공포, 예컨대 어떤 힘깨나 가진 사람이 격분하여 눈살을 찌푸리며 위협할 때의 공포는 견뎌내지 못한다. - P160
배가 항구를 떠난 것은 크리스마스였기 때문에, 그 후 줄곧 남쪽으로 달아났는데도 한동안은 살을 에는 듯한 북극의 기후를 견뎌야 했다. 위도가낮아질수록 우리는 그 무자비한 겨울과 견딜 수 없는 겨울 날씨에서 차츰벗어났다. 그 과도기의 어느 날 아침이었다. 하늘은 좀 덜 찌푸렸지만 그래도 여전히 음산하고 어두컴컴했다. 순풍을 받은 배는 복수심이라도 품은것처럼 펄쩍펄쩍 뛰어오르고 우울하게 속력을 내어 물을 가르며 달리고 있었다. 그때 나는 오전 당직을 서기 위해 갑판으로 올라갔고, 문득 고물 난간쪽으로 눈길을 돌리자마자 어떤 불길한 예감에 전율이 온몸을 달렸다. 현실이 불안을 앞지른 것이다. 에이해브 선장이 뒷갑판에 서 있었다. 그가 평범한 신체적 질병을 앓고 있거나 그런 질병에서 회복된 조짐은 전혀 없어 보였다. 그는 화형대에서 불길에 휩싸여 온몸이 괴멸되었지만 불길이 사지를 다 태워버리기 전에 줄행랑친 남자처럼 보였다. 불길은 옹골찬 노인의 강건함을 눈곱만큼도 손상시키지 않았다. 키가 크고 딱 바라진몸은 온통 청동으로 만들어진 것 같았고, 첼리니"가 주조한 페르세우스"처럼 한 점의 변형도 허용하지 않는 형상을 이루고 있는 듯했다. 잿빛 머리털 사이에서 빠져나와 황갈색으로 그을린 얼굴과 목덜미의 한쪽을 따라 내려오다가 옷 속으로 사라지는 가느다란 막대기 같은 흉터가 보였다. 그 납빛 흉터는 큰 나무의 곧게 치솟은 줄기가 벼락을 맞았을 때 이따금 생기는수직의 자국과 비슷했는데, 나무줄기 위쪽에 떨어진 벼락이 나뭇가지 하나 떨어뜨리지 않고 우듬지에서 밑동까지 나무껍질을 벗겨 줄기에 가느다란 홈을 새기면서 맹렬한 속도로 내려가다가 땅 속으로 사라지면, 나무는 여전히 싱싱하게 푸르지만 벼락 맞은 자국은 낙인처럼 남아 있다. 그 흉터가 선천적인 것인지, 아니면 어떤 치명적인 부상이 남긴 흔적인지는 아무도확실히 알 수 없었다. 항해하는 동안 암묵적인 합의에 따라 그 흉터에 대한이야기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특히 항해사들은 거기에 대해 입을 굳게 다물었다. 하지만 딱 한 번 타슈테고의 선임자인 게이헤드 출신의 늙은 인디언 선원이 이렇게 주장한 적이 있었다. 그의 미신 같은 주장에 따르면, 마흔 살 때까지는 에이해브 선장에게 그런 낙인이 없었고, 그 후 사람과 싸우다가 다친 것이 아니라 바다에서 폭풍우와 싸우다가그런 상처를 입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엉뚱한 주장은, 맨 섬 출신의 어느백발노인, 무덤 속에 한 발을 넣고 있는 남자가 이제껏 배를 타고 낸터컷밖으로 나가본 적도 없고 에이해브 선장을 본 적도 없는 주제에 제멋대로 짐작해서 말한 것 때문에 추론적으로 부정되었다. 그런데도 남을 쉽사리믿는 경향은 태곳적부터 바다의 오랜 전통이었다. 그 경향이 이 맨 섬 출신의 노인에게 초자연적 판단력을 부여했다. 그래서 에이해브 선장이 평온하게 관 속에 들어가는 때가 온다면 그런 일은 여간해서 일어나지 않겠지만 죽은 사람을 위한 마지막 임무를 맡은 사람은 그의 정수리부터 발바닥까지 태어났을 때부터 있는 점을 발견하게 될 거라고 노인이 말했을 때, 백인 선원들 가운데 진지하게 반박하고 나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P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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