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을 불명예의 대상으로 만드는 것은 정신 질환을 사회적배제의 근거로 삼는 우생 철학으로의 퇴보를 의미한다. 1990년에제정된 미국 장애인법은 고용주들의 정신 질환자들에 대한 차별을금지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우울증을 가진 국민들이 어디서든 일할 수 있는 권리를 법으로 보호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울증을 가진 여행자들이 미국에 입국할 권리는 보호해 주지 말아야 할까? 사회의 어느 한 부분에 편견이 심어지면 다른 부분들까지 그 영향을 받는다. 미국 동성애자들이 군 복무 권리를 갖기 위해 싸운 건군인이 되고 싶어서가 아니라 동성애자에 대한 편견을 반영한 정부 방침이 모든 동성애자들의 존엄성을 침해하기 때문이었다. 마찬가지로, 엘렌 리처드슨의 입국을 거부한 국경 정책은 외국인들에게부당한 것일 뿐만 아니라 정신 건강 문제와 씨름하는 수백만 명의미국인들에 대한 모욕이기도 하다. 장애를 초래하는 질환을 불명예 대상으로 만드는 것도 나쁘지만, 그 질환의 치료를 불명예 대상으로 만드는 건 더 나쁘다. 리처드슨이 입국을 거부당한 건 그녀의 우울증 때문이 아니라 그녀가 자살 기도를 한 후 경찰이 그녀를 병원에 데려가고, 그 사실을 기록으로 남겨 미국 당국이 그 기록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자신의 정신 질환에 대한 통제력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더 높다. 하지만 리처드슨 사건은 사람들이 정신 질환에 대해 도움을 청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경고등 역할만 할 것이다. 사람들이 나중에 불이익을 당하게 될까 봐 치료를 포기하게 만드는 건 부인, 치료 거부, 속임수를 조장하는 것이고, 더 건강한 사회가 아닌 더 병든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1993년, 의회에서 에이즈 감염자의 입국을 금지하는 법안이 통과되었다. 미국은 편견에 찬 입장을 취하는 몇 안 되는 국가들(아르메니아, 브루나이, 이라크, 리비아, 몰도바, 오만, 카타르,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한국, 수단) 중 하나가 된 것이다. 한 압력단체에서 이 입국 금지법에 반대하는 투쟁을 벌여 결국 이 법은 2009년에 폐지되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 법이 에이즈 환자들에 대한 편견으로 이어져 사람들이 에이즈 검사를 받는 걸 피하게 만들었고, 그것이 질병을 더 확산시키는 간접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믿음을 표명했다. - P833
우리는 현재의 상태가 영원할 것처럼 느끼기 쉽다. 나는 8월에 두꺼운 코트를 살 마음이 없는 것처럼, 컨디션이 좋은 상태에서는(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처럼) 과거의 끔찍한 상태로 돌아간다는게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하지만 우울증은 계절과도 같은 것이고, 나는 겨울을 나듯 거듭해서 우울증을 겪는다. 요즘 나는 다른 사람들이 다 수영장에 갈 때조차 목도리와 내복을 챙겨 놓는다. 이따금 찾아오는 악마를 맞이할 준비가 항상 되어 있다. 내 경우 그동안 달라진 것은? 나는 여름에 겨울을 대비할 뿐만 아니라, 얼어붙을 듯한 추위 속에서도 봄을 생각하는 법을 배우기도 했다. 최고의 순간에도 상황이 얼마나 나빠질 수 있는지 기억하면서 다시 찾아올 우울증에 대비하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우울증의 쇠퇴에도 민감해질 수 있었다. 겨울이 그러하듯, 여름도 다시 오게 마련이다. 나는 밑바닥으로 굴러떨어졌을 때조차도 좋아진 때를 상상하는 법을 배웠고, 그 소중한 능력은 악마적인 어둠 속을 한낮의 햇살처럼 파고든다. - P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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