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혹시•••••• 그러니까•••••• 우리가 언젠가 한잔할 수도 있을까요 아니면 뭐••••••점심이라도?"
이제 나는 그녀를 보았고, 그녀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의 소중한 날, 물론이죠. 점심이, 내 생각에는, 더 즐거울 것 같네요."
그렇게 해서 내 삶의 또 다른 부분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1년에 두세 번 웨스트 런던에 있는 그녀의 집 근처 작은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만나곤 했다. 루틴은 분명했다. 한 번도 입밖에 내어 말한 적은 없지만, 나는 정각 1시에 도착하고 그녀는 거기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다. 함께 오늘의 파스타, 그린샐러드를 먹고 화이트와인 한 잔과 블랙커피를 마신다. 한번은, 만남이 시작되었을 무렵, 내가 평소의 경로에서 벗어나 사슴고기 에스칼로프를 시켰다. "그거 어때요?" 그녀가 테이블 건너에서 몸을 기울이며 진지하게 물었다. "실망스러워요?" 점심은 75분 동안 지속되고 늘 그녀가 돈을 낸다. 내가앉으면 그녀는 "그래, 오늘은 무슨 소식을 가져왔나요?" 하고 물어 나에게 먼저 이야기를 시작하는 부담을 안겼지만 그건 괜찮았다. 나에게 75분밖에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나는 주제 선택에 신중해야 했을 뿐 아니라 그 시간에 어떤 방법을 찾아 아니, 무조건 나의 지성을 농축해야 했다. 나는 그녀 앞에서는 더 똑똑해졌다. 더 많이 알았고, 더 설득력을 갖추었다. 그녀가 기분 좋게 해주려고 필사적이었다. - P70

나는 점심을 먹다가 한번 왜 성인을 가르치는 일을 더 좋아하게 되었는지 물은 적이 있다.
"나는 호기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흥미가 없어요." 그녀가대답했다. "역설적으로 젊은 사람일수록 자기 확신이 더 강 - P71

해요. 그들의 야망은 외부인의 객관적인 눈에는 모호해 보이지만 자신들에게는 선명하고 성취 가능해 보이죠. 반면 성인의 경우•••••• 일부는 그저 즉흥적으로 등록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삶에서 결핍을 느끼기 때문에 와요. 자기가 뭔가 놓쳤을지도 모른다는 느낌. 그런데 이제 상황을 바로잡을 기회-어쩌면 아마도 마지막 기회-가 왔다는 느낌. 나는 그게 대단히 감동적이라고 생각해요." - P72

그녀는 약속을 두 번 잇따라 취소했는데, 아니 미루었는데,
두 번 다 예측은 불가능하지만 모를 수는 없는 인간 외피의침식을 고려하여"라고 이유를 달았다. 나는 그녀가 죽어가고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작별도, 소환도, 마지막 메시지도없었다. 나는 그녀가 불평 없이, 스토아학파답게, 소리 없이, 거의 은밀하게 죽었다고 상상했다. 나는 크리스토퍼 핀치라는 사람한테서 장례식 초대를 받았는데, 아마도 그녀의 남자형제인 듯했다. 그전까지 나는 늘 그녀가 외동이라고 가정하고 있었다.  -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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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여행을 품은 인생의 시간들

떠올리고 되새기며
또다른 의미를 발견하는
여행의 시간들.
여행의 시간에서 나는
무엇을 찾았을까?

여행의 시간이 다시 찾아온다. 지난 3년 동안 정지되었던 여행, 우리 몸속의 여행 유전자가 다시 활동을개시한다. 마음이 소란스럽다. 궁리가 난다. 벗어나고 싶다.
탈출하고 싶다. 떠나고 싶다. 다시 날개를 펴고 싶다. 나도여행 기지개를 켠다. - P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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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을 불명예의 대상으로 만드는 것은 정신 질환을 사회적배제의 근거로 삼는 우생 철학으로의 퇴보를 의미한다. 1990년에제정된 미국 장애인법은 고용주들의 정신 질환자들에 대한 차별을금지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우울증을 가진 국민들이 어디서든 일할 수 있는 권리를 법으로 보호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울증을 가진 여행자들이 미국에 입국할 권리는 보호해 주지 말아야 할까? 사회의 어느 한 부분에 편견이 심어지면 다른 부분들까지 그 영향을 받는다. 미국 동성애자들이 군 복무 권리를 갖기 위해 싸운 건군인이 되고 싶어서가 아니라 동성애자에 대한 편견을 반영한 정부 방침이 모든 동성애자들의 존엄성을 침해하기 때문이었다. 마찬가지로, 엘렌 리처드슨의 입국을 거부한 국경 정책은 외국인들에게부당한 것일 뿐만 아니라 정신 건강 문제와 씨름하는 수백만 명의미국인들에 대한 모욕이기도 하다.
장애를 초래하는 질환을 불명예 대상으로 만드는 것도 나쁘지만, 그 질환의 치료를 불명예 대상으로 만드는 건 더 나쁘다. 리처드슨이 입국을 거부당한 건 그녀의 우울증 때문이 아니라 그녀가 자살 기도를 한 후 경찰이 그녀를 병원에 데려가고, 그 사실을 기록으로 남겨 미국 당국이 그 기록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자신의 정신 질환에 대한 통제력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더 높다. 하지만 리처드슨 사건은 사람들이 정신 질환에 대해 도움을 청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경고등 역할만 할 것이다. 사람들이 나중에 불이익을 당하게 될까 봐 치료를 포기하게 만드는 건 부인, 치료 거부, 속임수를 조장하는 것이고, 더 건강한 사회가 아닌 더 병든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1993년, 의회에서 에이즈 감염자의 입국을 금지하는 법안이 통과되었다. 미국은 편견에 찬 입장을 취하는 몇 안 되는 국가들(아르메니아, 브루나이, 이라크, 리비아, 몰도바, 오만, 카타르,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한국, 수단) 중 하나가 된 것이다. 한 압력단체에서 이 입국 금지법에 반대하는 투쟁을 벌여 결국 이 법은 2009년에 폐지되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 법이 에이즈 환자들에 대한 편견으로 이어져 사람들이 에이즈 검사를 받는 걸 피하게 만들었고, 그것이 질병을 더 확산시키는 간접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믿음을 표명했다. - P833

우리는 현재의 상태가 영원할 것처럼 느끼기 쉽다. 나는 8월에 두꺼운 코트를 살 마음이 없는 것처럼, 컨디션이 좋은 상태에서는(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처럼) 과거의 끔찍한 상태로 돌아간다는게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하지만 우울증은 계절과도 같은 것이고, 나는 겨울을 나듯 거듭해서 우울증을 겪는다. 요즘 나는 다른 사람들이 다 수영장에 갈 때조차 목도리와 내복을 챙겨 놓는다. 이따금 찾아오는 악마를 맞이할 준비가 항상 되어 있다. 내 경우 그동안 달라진 것은? 나는 여름에 겨울을 대비할 뿐만 아니라, 얼어붙을 듯한 추위 속에서도 봄을 생각하는 법을 배우기도 했다. 최고의 순간에도 상황이 얼마나 나빠질 수 있는지 기억하면서 다시 찾아올 우울증에 대비하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우울증의 쇠퇴에도 민감해질 수 있었다. 겨울이 그러하듯, 여름도 다시 오게 마련이다. 나는 밑바닥으로 굴러떨어졌을 때조차도 좋아진 때를 상상하는 법을 배웠고, 그 소중한 능력은 악마적인 어둠 속을 한낮의 햇살처럼 파고든다. - P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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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아누스의 말이 영적 패배의 우아한 인정을 뜻하는 거라고 읽을 수도 있을 겁니다. 깨끗한 패배자 율리아누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아요. 스윈번은 이전의 수많은 유명한선배와 마찬가지로 이 순간을 유럽사와 문명이 잘못된 길로들어선 매우 불행한 순간으로 파악합니다. 그리스와 로마의 옛 신들은 빛과 기쁨의 신들이었죠. 사람들은 다른 삶은 없다고 알았고, 따라서 이곳에서, 무無가 우리를 가두기 전에 빛과 기쁨을 발견해야 했습니다. 반면 새로운 기독교인은 어둠, 또 고통과 예속을 좋아하는 하느님에게 순종했어요. 이 하느님은 빛과 기쁨이 오직 사후에 자신의 사탕 과자 같은 천국에만 존재하며, 거기에 이르는 길은 슬픔, 죄책감, 공포로 가득하다고 선포했죠. ‘우리는 죽음을 배불리 먹었다. 바로 그겁니다. 그런 문제에서 율리아누스와 스윈번은 생각이같았죠."
물론." EF는 말을 이어갔다. "우리는 늘 자기 연민을 피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1600년 뒤에 태어나면서 서기 363년 페르시아 사막에서 모든 게 잘못되어 우리한테 불리한 패가 주어졌다고 상상하게 되면 ‘이건 내 탓이 아니에요, 선생님‘하고 외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다른 모두가 똑같이 그렇게 느끼고 있다고, 따라서 내가 받은 패가 정상이라고 믿는 게 낫죠. 역사적 자기 연민도 개인적 자기 연민과 마찬가지로 매력이 없습니다." -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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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FDA는 SSRI 계열 항우울제가 아동의 자살 생각을 촉발시킬 수 있다면서 가장 강력한 경고인 블랙박스[주요 부작용과 주의사항에 검은 사각형 테두리를 둘러 눈에 띄게 하는 조치] 표시를 지시했다. 2007년, 블랙박스 경고 대상은 청소년으로까지 확대되었다. 그 결과 많은 의사들이 항우울제 처방에 경계심을 갖게 되었고,
이듬해에 아동에 대한 SSRI 처방이 20퍼센트 감소하였으며 청소년 자살이 12퍼센트 증가했다. 1979년에 자료 수집이 시작된 후 그어느 해보다 큰 증가였다. 성인에게는 블랙박스가 해당되지 않았고 성인의 경우 약이 자살을 막아 준다는 명백한 연구 결과가 나왔음에도 성인에 대한 처방도 대폭 감소했다. 심지어 우울증 진단조차 감소했으니, 그 경고가 광범위한 냉각 효과를 발휘한 셈이었다. 이후 SSRI 계열 처방률이 증가세를 보이기도 했지만 여전히 2004년 이전 수준을 밑돌고 있다. 캐나다와 네덜란드에서도 항우울제 사용의 감소와 동시에 청소년 자살이 증가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예일대학교의 한 연구는 SSRI 처방의 감소가 청소년 범죄, 학업실패, 약물남용과 인과관계는 다소 약하지만) 관련이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 P792

「언론은, 어떤 사람들은 항우울제를 복용한 직후에 자살하거나 자살 기도를 한다는 주장에 주목해 왔다. 그 주장들은 진실처럼 보이지만, 약이 자살의 원인이라는 증거는 없다. 항우울제 처방을 받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릴 때 항우울제를먹기 시작한다. 이 치료들은 대개 몇 주는 지나야 효과가 나타난다. 자살 기도의 위험성이 가장 큰 시기는 약이 완전한 효과를 나타내기 전, 환자가 가장 심각하고 해결되지 않은 우울증에 시달릴 때다. 실제로 자살 감정은 사람들이 치료를 모색하도록 만드는 요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시애틀 집단건강연구소 그레고리 사이먼은 통계적으로 자살 위험은 우울증 환자들이 약물치료를 시작하기 직전에 가장 높고, 약효가 나타나기 전에도 호전에 대한 기대감이 우울증 중세들을 조금은 견딜 만한 것으로 만들어 주어 다소 낮아지며, 그러다 약물치료가 완전한 효과를 보이기 시작하면 꾸준히 낮아진다는사실을 발견했다. 이런 양상은 심리치료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자살 위험은 심리치료가 시작되기 직전에 가장 높고, 첫 달에는 얼마간 감소하며, 치료가 진행되어 감에 따라 상당한 감소세를 보인다. - P7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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