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불행히도 나이를 먹으면서 가장 극적으로 퇴화하는 뇌 영역은 깊은 잠을 생성하는 바로 그곳이다. 즉 콧등 위에 자리한 중앙 전두엽 영역이다. 노인의 뇌에서 퇴화가 심하게 일어난 지점들을 표시한 뇌 지도를 젊은 어른들에게서 깊은 잠을 생성하는 영역들을 표시한 뇌지도와 겹쳐 놓으면, 거의 완벽하게 일치한다. 둘째, 놀라운 일도 아니겠지만, 그 노인들은 젊은 어른들에 비해서 깊은 잠을 70퍼센트 잃었다. 셋째, 가장 중요한 발견인데, 이 변화들이 서로 독립된것이 아니라, 상당히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노인 뇌의 중앙 전두엽이 더 심하게 퇴화해 있을수록, 깊은 비렘수면도 더 많이 줄어들었다. 서글프게도 내 이론이 옳았음이 확인된 것이다. 우리 뇌에서 밤에 깊이 푹 잠들게 하는 영역이 나이를 먹을 때 가장 일찍 그리고가장 심하게 퇴화하는, 즉 위축되는 영역이라는 것이다. - P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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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들이 저지른 범죄가 나쁘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관리받지 못한 치료받지 못한 정신질환 증상의 끝에 범죄가 있었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나는 우리 환자들이 제대로 된 치료를 제때 받았다면 일상을 유지하며 사회에서도 잘 지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 P36

폐쇄병동은 단순히 환자가 이상한 행동을 하니까 가두어놓는 곳이 아니다. 잃어버린 환자의 일상생활을 회복하는 곳이다. 독감에 걸려 열이 나고 근육통이 심하면 의사를 찾아가 약을 지어 먹는다. 심하면 입원해 수액을 맞으며 치료를 받기도 한다. 그리고 상태가 좋아지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정신질환도마찬가지다. 힘들고 아플 때는 병원에 가고, 심하면 입원해 치료를 받고 호전되면 일상으로 복귀하는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루틴을 활용하는 작가로 유명하다. 매일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 조깅이나 수영을 하고 정해진 시간만큼 글을 쓰는 그는 이러한 규칙적인 생활이 정신력과 체력으로 이어진다고 믿는다고 한다. 정신건강을 관리하는 방법도 이와 같다. 규칙적인 운동이 몸의 근육을 길러주듯이 규칙적인 일상이 마음의 근육을 길러준다. 몸 근육을 기르면 갑작스럽게 달리기를 하거나 어떤 동작을 취해도 몸에 무리가 되지 않는다. 마음도 마찬가지다. 규칙적으로 수면을 취하고 식사를 하는 루틴을 통해 마음의 근육을 기른다면, 갑작스러운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정신건강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 P47

지금 이 순간에도 가정 폭력의 피해자는 고통받고 있을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들이 나중에 어쩌면 다른 폭력의 가해자가 될 수 있고, 또 가해자가 되면 그저 비난받을 수밖에 없다는사실이다. 가정 폭력은 단순히 가정 안에서 일어나는 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큰 문제다. 주변의 누군가가 가정에서 고통받고 있는지 작게나마 관심을 가지는 것이 한 사람의 인생을 구하는 일이 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 P91

성충동 약물치료는 앞서 말했듯이 가역적인 치료다. 약물 투여를 중단하면 다시 원래 상태로 되돌아간다. 따라서 보통 3년의 보호관찰이 끝나고 치료를 종료하면 대상자들의 남성호르몬은 원래 수준으로 돌아갈 것이므로 성적 충동이 다시 생겨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성충동 약물치료를 종료한 이들이 재범을 저지른 적은 없다.
성충동 약물치료는 단순히 남성호르몬 수치를 낮추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 치료의 장점은 사회적으로 고립될수밖에 없는 성범죄자들을 사회 안으로 끌어들이고 음지가 아닌 양지에 살도록 하는 것이다. 만약 이들에게 그냥 전자발찌만 채워둔다면 보호관찰관 혼자 관리하느라 애쓰는 것에서 끝났을 것이다. 그러나 이 치료를 받는 환자는 한 달에 한 번 보호관찰관을 만나 주사를 맞으러 병원에 온다. 병원에 오면 피검사도 하고 주사도 맞고 약도 처방받는다. 그러면서 또 여러 병원직원들과 만나 반갑게 인사도 하고 근황도 묻는다. 물론 의사도만난다. 별것 아닌 이야기지만 요새 힘든 것은 없는지, 잠은 잘자는지 등 사는 이야기를 한다. 또 심리치료사도 만난다. 이때는 조금 더 깊은 이야기를 한다. 이런 과정이 모두 성충동 약물치료 대상자에게는 감시하는 눈일 수도 있고, 이들을 사회적 인간으로 살게 하는 힘일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치료는 단순히 이들을 가두어놓는 것보다 좀 더 근본적인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W를 통해 그 희망을 보았다. 앞으로도 성충동 약물치료는 더 확대될 것이고 W와 같은 사람이 늘어날 것이라고, 최소한 국립법무병원의 의사들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 - 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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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무슨 병을 앓고 있는지, 그리고 그 병으로 인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를 명확히 인식하고 난 다음에야 참회와 반성, 처벌이 가능하다. 따라서 ‘당신이 치료를 받지 않아서 저지른 일로 누군가가 피해를 보고 아픔을 겪었으며 당신과 가족에게도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했다‘는 점을 우선 엄격하게 짚어줘야 하는데, 그때 내 태도는 나름 도움이 된다. 이곳에는 조현병 환자가 상당히 많은데, 스스로 병이 없다고 강력히 부인하다가도 범죄 상황을 자세하게 짚어주면 마지못해 인정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때 주치의가 무한정 자애로운 자세를 지니기보다는 단호하게 이야기하는 편이 낫다. 환자에게 돌려 말하는 것보다 상황을 직면시키는 것이 환자 자신의 문제를 정확하게 아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그 후 스스로 반성하고 치료에 의지를 보이면 반드시 지지하고 격려해준다. -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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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법무병원의 현재 총 환자 수는 1천 명 정도다. 숫자로만 보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잘 안 되겠지만,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인 서울성모병원이 약 1300병상이므로 국립법무병원도 굉장히 큰 병원임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서울성모병원은 거의 모든 진료과가 있는 종합병원이지만, 국립법무병원은 정신건강의학과 하나만 있는 단과 병원이다. 다시 말해 1천 명 가까운 환자가 모두 정신질환자라는 이야기인데, 정신건강의학과 단과 병원으로는 전국 최대 규모다. 그런데 풀타임으로 근무하는 정신과 전문의는 원장님, 의료부장님을 포함해 나까지 다섯명뿐이다. 그 밖에 다른 병원에 근무하거나 개원한 정신과 의사들이 파트타임으로 일주일에 이삼 일 정도 근무하고 있다. 오늘 내 모니터에 뜬 담당 환자 수는 163명으로, 작년부터 거의 2년째 환자 수가 이 수준이다. 정신건강복지법에서 규정하는 정신과 병원의 의사 일인당 적정 환자 수는 60명인데, 내가 보고 있는 환자 수와 비교하면 삼분의 일 수준이다. -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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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내 환자는 범죄자이자 정신질환자입니다

지난 4년간 국립법무병원에서 일하면서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사람이 저지르는 악한 행동이다. 이곳에 오는 환자가 저지른 범죄는 그동안 흔히 보던 문체가 아닌, 감정이 배제된 법적인 용어들로 기록되어 있어 더 서늘하고설득하다. 그리고 그 활자 뒤에 피해자가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한없이 무거워진다.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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