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라닌 모세포가 신경릉에서 나와 척추에 수직 방향으로 뻗어간다는 것을 보면, 발생 과정에는 언제든 줄무늬가 생겨날 가능성이 내재해 있다. 일반적으로 단색을 띠는 쥐나 말 등에서도 얼마든지 줄무늬 돌연변이가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말과 당나귀 등의 번식 역사를 보면 부분적으로 줄무늬를 가진 동물의 탄생 사례가 아주 많다. 얼룩무늬 같은 것 말이다. 다윈도 『종의 기원』에서 줄무늬 말과 당나귀에 대해 큰 관심을 기울였는데, 특히 잡종에 집중했다. 수컷 얼룩말과 암말을 교배시키면 잡종을 만들 수 있다. 이 잡종후손은 보통 줄무늬를 가진다. 하지만 암컷이 배가 하얀 말일 경우, 잡종 후손의 줄무늬는 털색이 어두운 부분에 국한하여 생긴다. 흰색소 유전자가 멜라닌 모세포의 이동에 영향을 미쳐 멜라닌 모세포가 이동할 수 있는 부분에만 줄무늬가 생긴다는 가설과 맞아 떨어지는 현상이다. 그런데 이보다 흥미로운 현상이 있다. 말-얼룩말 잡종은 부모보다 줄무늬 개수가 많아진다는 사실이다. - P304

바드의 모델에서 결정적인 요소는 줄무늬 형성 과정이 배아가 아주 작을 때 시작된다는 점이다. 실제로 털에 색소 착색이 시작되는시점으로부터 6개월 전의 일이다. 이것은 나중에 덩치가 커질 동물의 무늬 형성에서 중요한 대목이다. 무늬 발생은 어느 정도의 거리에 걸쳐서 진행되는데, 그 거리는 세포들이 서로 떨어져 있으면서도상호작용 가능한 최대 거리가 얼마냐에 달려 있다. 그런데 갓 태어난 새끼나 그보다 큰 얼룩말의 몸에서는 줄무늬 사이 간격이 너무넓기 때문에 세포들이 다른 줄무늬 세포들과 소통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동물 무늬는 아주 일찍 아웃라인이 정해지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이미 확실히 자리 잡았던 설계가 나중에 커지는것뿐이다.
종간 줄무늬 개수 차이가 실제로 줄무늬 형성 과정의 시작 시기차이 때문이라면, 그것은 멜라닌 모세포 이동에 관여하는 유전자들이 활성화되는 시기가 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시기의 변이란 근본적으로 조절 과정의 변화이다. 따라서 줄무늬 개수 차이는 멜라닌모세포의 이동 시기나 공간적 형태를 통제하는 유전자 스위치들에 진화적 변화가 일어난 탓일 것이다. - P306

이 장을 닫기 전에 얼룩말 논쟁으로 돌아가자. 방금 얼룩 바위주머니쥐에 적용했던 논리를 얼룩말에 적용해보자. 줄무늬의 가치를생각할 때, 왜 우리가 보는 얼룩말들은 하나같이 줄무늬를 지니는지 생각해보면 단서가 되지 않겠는가? 줄무늬가 별 의미 없는 것이라면, 어째서 줄무늬 없는 얼룩말은 존재하지 않는가? 사실인즉, 존재하기는 한다. 포유류의 경우 털색 돌연변이는 굉장히 흔한 현상이므로, 드물긴 해도 야생에서 극적인 돌연변이가 탄생하는 사례들이 있다(흰호랑이라거나 점박무늬 얼룩말). 품종 개량자들은 자연적으로일어나는 드문 변이들을 골라 오랜 세월 교배시킴으로써 새로운 종을 탄생시킨다. 얼룩말의 사촌인 말의 경우 여러 빛깔 털을 지닌 개체도 가끔 등장한다. 나는 아프리카 평원이라는 진화의 실험실이 줄무늬가 정말 중요한 속성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워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줄무늬에 부여된 목적이 무엇인지 우리가 모를 뿐이다. 여러 이론들 중 마음에 드는 대로 골라 생각해도 무방하겠다. 잊지 말아야 할 점은 민무늬에 비해 줄무늬가 가지는 상대적 이점이 아주 사소하다 해도 줄무늬가 득세하기에는 충분하리라는 사실이다. 자연선택의 힘이(성선택도 포함된다) 어떤 형질을 획득하거나 유지하는데 강한 영향을 발휘한다는 근본적 원칙은 모든 종의 진화에 공통적으로 적용된다. - P312

사람을 특징짓는 주요한 물리적 형질들 중에는 단독 변화가 아닌게 많다. 즉 골격과 근육 구조가 동시에 진화한 변화들이었다. 가령이족보행을 생각해보자. 이족보행을 위해서는 척추, 골반, 발, 사지의 균형이 함께 진화해야 했다. 덕분에 자유로워진 손은 새 재주들을 익히는 방향으로 진화해갔다. 침팬지도 필요하면 두 발로 걸을수 있다. 하지만 걷는 모양새가 사람과는 전혀 달라서, 무릎 관절을완전히 펴 다리를 쭉 뻗지 못한다.
초기 사람들이 이족보행을 했으리란 가설은 골격 형태를 살펴보고 내린 결론이다. 그런데 압도적인 증거는 따로 있다. 탄자니아의 라에톨리라는 고고학 발굴지에서 1976년에 발견된 증거이다. 당시고인류학자 앤드류 힐은 참으로 영장류다운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동료에게 코끼리 똥을 던지며 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우연히사람의 발자국 화석을 발견하게 되었다. 화산재 지층 위로 무려 24미터나 이어진 발자국이었다. 이 놀라운 발자국을 남긴 사람은 최소한 두 명인 것 같았는데, 한 명은 크고 한 명은 작았다. 그들은 360만 년 전에 당시 막 땅을 뒤덮은 재 위를 걸었던 것이다. 그 후 발자국은 힐이 발견하기까지 숨겨져 있었다.  - P325

사람의 DNA 서열에는 약 30억 개의 염기쌍이 있다. 그중 98.8퍼센트가 침팬지의 DNA 서열과 동일하다. 차이는 1.2퍼센트에 불과하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동물들 중에 인간과 DNA 서열 차이가 가장 적게 나는 동물이 침팬지다. 하지만 고작 1.2퍼센트라 해도 염기쌍으로 말하면 3천6백만 개다. 인간과 침팬지는 약 6백만 년 전에공통 선조로부터 갈라져 나왔으므로 차이 중 절반은 침팬지 특유의 것(침팬지의 계통에서 일어난 것)이고 나머지 절반은 인간 특유의 것(인간 계통에서 일어난 것)이라 가정해도 좋겠다. 그러면 공통 선조에서 인간이 갈라져 나온 이래 변화를 일으킨 염기쌍이 약 천8백만개라는 계산이 나온다(논의의 편의를 위해 숫자를 단순화시켜 말하고있다. 염기의 삭제나 삽입. DNA 조각들의 드나듦에 대해서는 고려하지않았다).
변화한 부분 전부가 의미 있을까? 아니면 일부는 잡음에 불과할까? 천8백만 개의 차이 중 어느 부분이 진화에 기여했는지, 어떻게알 수 있을까?
물론 유전자 돌연변이가 모두 의미 있는 것은 아니다. 유전암호에는 중복이 많기 때문에 특정 염기가 바뀌어도 단백질에 영향이 없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조용한‘ 치환은 시간이 갈수록 누적된다. 이들을 없앨 조금의 선택압조차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 DNA 중 암호나 조절 기능에 할당된 것은 5퍼센트에 불과하기 때문에, 나머지 방대한 양의 DNA 서열에서 일어난 돌연변이들은 거의 아무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또한 연관관계가 없는 두 사람이 드러내는 차이는 평균적으로 약 3백만 개 염기쌍으로 빚어지는 것이라는사실도 고려해야 한다. 절대 수치로 보면 엄청난 양처럼 느껴지지만 전체 DNA 염기쌍의 0.1퍼센트일 뿐이다. - P338

턱 근육 구조가 축소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는 것은 단지 음식씹는 방식이 바뀌었다는 의미만 갖지 않는다. 근육 구조는 뼈의 성장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며, 실험에 따르면 턱 근육 성장은 두개안면 골격의 크기와 모양에 상당한 영향을 준다. 턱 근육이 축소되어 하악에 가해지는 힘이 줄어들면 두개골 뼈들이 받는 압력도 줄어들 것이다. 그러면 두개는 더욱 얇아지고 커질 수 있다. 따라서 턱근육 변화 및 이에 따른 두개골 속성 변화는 초기 호모속에서 뇌가커진 현상을 설명하는 한 요인일 수 있다. 게다가 턱 근육 축소 덕분에 하악을 보다 정교하게 통제할 수 있게 되었을 텐데, 이는 말을 하는 데 있어 중요한 조건이다.
참으로 흥미롭기 그지없는 상호연관 관계이다. 하지만 이 해부학적 변화들을 단 한 가지 돌연변이로 설명하려는 실수를 저질러서는안 되겠다. 이전까지 나름의 기능을 해왔던 MYH16 유전자를 비활성화시킨 일은 분명 주목할 만한 변화였다. 하지만 비활성화 돌연변이라는 유전적 변화가 측두근 축소 현상에 앞서 이뤄진 것인지, 순차적이거나 병렬적인 여러 변화들 중 하나로 나란히 이뤄진 것인지,
그도 아니면 측두근에서 MYH16 단백질의 역할이 더 이상 필요하지않게 된 연후에 일어난 마지막 변화인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내 생각을 말하자면 나는 이것이 유일하고도 결정적인 진화적 계기였다고 단언하기는 힘들다고 생각한다. 이유는 뒤에 설명하겠다. 사실인간 진화에 관련된 어떤 유전자에 대해서도 그런 식으로 단언하기는 힘들다.  - P344

이전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종들이 발견되었고, 하나의 먼 조상으로부터 현생인류로 곧장 내려오는 단 하나의 직선이 있기보다는 도중에 끊어진 무수한 가지들이 존재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사실 인간과 침팬지 계통이 갈라지는 부분에 가까운 화석들이 점점 더 많이 발견됨에 따라, ‘바로 그 조상을 찾았다는 주장은 어느 것이든 일단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한편 비교신경생물학은 이제 인간의 재능을 설명하고자 할 때 한결 섬세한 부분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인간의 뇌에 두드러진 해부적 특징들이 첫인상보다 훨씬 오래된 역사를 갖고 있으며 전적으로 인간에만 관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게 밝혀졌기때문이다. 또한 인간을 정의하는 특징들, 가령 이족보행, 골격 형태, 두개안면 형태, 뇌 크기, 언어 등의 진화가 손에 꼽을 만한 몇 가지주요 유전자들이 선택된 결과가 아니라는 것도 거의 확실하다.
FOXP와 MYH16은 수수께끼를 풀 조각들 중 최초로 확인된 녀석들일 따름이며, 그들이 가장 중요한 조각이라거나 가장 큰 조각이라고 믿을 까닭도 없다. 결론적으로, 사람의 진화는 어떤 그림일까? 무수한 세대에 걸친 기나긴 시간 동안, 무수한 유전자들이 제각기 변이를 일으키고, 그들이 선택되고, 따라서 형태의 크기나 모양이나 조직 구성 등에 자그만 차이들이 무수히 일어남으로써 전체가 구성된 모자이크일 것이다. - P350

이처럼 진화가 반복되어 일어난 사례들을 보면, 어째서 사람들이진화 과정에서 무작위적 돌연변이가 수행하는 역할을 이해하는 데어려움을 겪었는지 알 만도 하다. 어떻게 ‘무작위적 과정으로부터 참신성과 복잡성이 등장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핵심은 두 가지 단계를 확실히 구분하는 것이다. 돌연변이로 인해 유전적 변이가 일어나는 것은 실제 전적으로 무작위적인 과정이다. 반면 변이들 중 어느 것을 존속시키고 어느 것을 버릴지 결정하는일은 무작위적이지 않은, 강력한 선택적 과정이다. 동물 게놈에는 염기쌍이 수천만 개 또는 수십억 개 있고, 무작위적 복제 오류나 물리적 손상으로 돌연변이를 일으킬 가능성은 모든 염기쌍에 동일하다. 하지만 그 모든 가능한 돌연변이들 중 극히 일부만이 포유류의 털을 생존 가능한 수준에서 바꿀 수 있으며, 큰가시고시의 가시를 끔찍한 부수적 피해 없이 축소할 수 있는 것이다. 동물의 개체군 규모가 크다면, 그리고 장구한 시간이 있다면, 아무리 드문 돌연변이라도 확률상 한 번은 일어나게 된다. 일단 그런 돌연변이가 일어나면 돌연변이가 일으키는 형질의 긍정적 변화가 선택될 것이고, 돌연변이는 갈수록 널리 개체군에 번지게 된다.
자크 모노의 역작 우연과 필연의 제목은(그리스 철학자 데모크리투스의 금언, ‘우주의 삼라만상은 우연과 필연의 열매이다‘에서 딴것이다) 진화에서 무작위성과 선택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아름답게 표현한 말이다. 진화는 정말 우연의 산물일지 모른다. 하지만무작위로 이루어지는 돌연변이라는 복권 중에서도 어떤 숫자나 조합은 생태학적 필요라는 조건을 남보다 잘 충족시킨다. 그들이 거듭생겨나 거듭 선택되는 것이다. - P363

「종의 기원」 초판 이후 재판이 발간되기까지 그 짧은 기간 동안, 다윈은 앞서 본 유명한 맺음 문구에 단어 몇 개를 삽입하였다. ‘신에의해‘라는 문구를 집어넣어 ‘최초에 신에 의해 단 한 가지, 혹은 소수의 몇 가지 형태로 숨결이 불어넣어졌다‘로 고친 것이다. 다윈은 후에 식물학자 J. D. 후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한 것을 후회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저는 대중의 의견을 좇아 모세5경 식의 창조에 관한 표현을 쓴 것을 뉘우칩니다. 사실 제 말의 의도는 정체가 전혀 알려지지 않은 어떤 과정으로 생명이 ‘등장했다‘는 뜻이었습니다."
단어를 삽입한 것은 비평가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였으며, 진화개념을 보다 받아들이기 쉬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한편으론 다윈의 진정한 종교적 입장이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역할도 했다. 화해의 상징이라 할 만한 이 문장. 그리고 다윈이 신앙에 대해 말하기 꺼려했다는 점을(개인적으로 주고받은 편지나 미발표 노트 등에 어느 정도 종교에 대한 견해가 드러나 있긴 하다) 바탕으로 진화와 종교를 화해시키려 한 사람들도 있다. - P371

호트는 진화를 뒷받침하는 과학 증거가 압도적인 수준이라고 판단하며, 성경 문헌은 "과학이 등장하기 전 시대에 작성된 것이므로, 그 직접적인 의미를 21세기 과학의 형식 속에 그대로 펼치려 해서는"(창조론자들의 요구처럼 말이다) 안 된다고 지적한다. 호트는 이렇게 썼다.

아직도 우리가 다윈 이전 세계가 아니라 다윈 이후 세계에 산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신학자들이 많다. 현재의 진화하는 우주는 대부분의 종교 사상들이 태어나고 자란 과거 세계의 모습과는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는다. 오늘날의 지적 토양에서 우리 신학이 살아남으려면, 신학은 진화적 용어들을 새롭게 표현할 방법을 알아야 한다. 다윈 이후 시대에 살며 신을 생각하는 우리가 아우구스티누스, 토마스 아퀴나스, 또는 우리 조부모나 부모와 똑같은 생각을 할 수는 없다. 오늘날 우리는 신학의 모든 면을 진화적 용어로 다시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 P377

지금 우리 손에 놓인 것은 영국의 영광이나 미국의 영광이 아니다. 자연의 영광이다. 생물학을 깊이 이해해갈수록 그것을 즐기거나 그것으로부터 배우는 일은 적어진다니, 참으로 비극적인 아이러니아니겠는가? 우리 시대의 유산은 무엇이 될까? 자연을 귀히 여기고 보호하는 것? 아니면 나비나 얼룩말이나 그 밖의 동물들이 타일러사인이나 모아나 도도처럼 전설 속으로 사라지게 하는 것? - P38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실험실 기술자인 줄리 게이츠가 내게 현미경을 보여줬던 순간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유충의 날개에 아름다운 점무늬가 아로새겨진, 너무나놀라운 모습이었다. 날개 하나마다 두 쌍씩 떠오른 그 점들은 정확히 일주일 뒤에 눈꼴무늬로 자라날 지점들이었다. 프레드 네이하우트가 눈꼴무늬의 중심으로 추정했던 위치를 우리는 시각적으로 확인하게 된 것이다(화보8c]. 환상적이었다.
그 점들은 우리가 연구 대상으로 삼은 십여 개의 유전자들 중 하나가 만든 것이었다. 앞서 한참 얘기한 적 있는 유전자, 바로 디스탈리스였다. 어마어마하게 흥미로운 일이었다. 초파리 및 절지동물 부속지 형성에 관여한 유전자가 나비 날개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작업을 하는 것으로 드러난 셈이기 때문이다. 물론 디스탈리스는 종래의임무도 여전히 수행하고 있었다. 즉 여타 곤충류나 절지동물에서처럼 나비 사지에서도 말초부를 발생하는 데 모종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디스탈리스가 나비 날개에서 발현하여 점무늬를 만드는 것은, 그러니까 새로운 재주인 셈이다. 사지 형성이라는 오래된 임무를 맡고 나서 한참 뒤에 새로 ‘배운‘ 재주이다(그림8-6]. 툴킷 단백질 활동은 전적으로 맥락에 달려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디스탈리스는 특정 위치 및 시기에는 변함없이 사지 형성 역할을 수행한다. 다만 날개 무늬에서의 작업은 그와는 또 다른 위치 및 시기의 일로서, 전혀 다른 형태로 통제되고 있는 것이다.
디스탈리스는 날개에서 11 - P268

남아메리카 및 중앙아메리카에 서식하는 헬리코니우스속 나비는 경고색을 띤다. 주로 붉은색과 노란색인데, 포식자들에게 먹지말 것을 알리는 색깔이다. 여러 지역에 헬리코니우스속 나비들을 모방한 의태형들이 있다. 같은 지역에 사는 나비들은 종이 달라도 날개 무늬가 비슷한 반면, 같은 종이라도 다른 지역에 서식하면 무늬가 상당히 다르다. 브라질, 에콰도르, 페루 등의 서식지에서 같이 사는 H. 멜포메네 종과 H. 에라토 종은 서로 비슷하게 생겼지만, 같은종이라도 다른 지역에 사는 것들의 무늬는 꽤 차이 난다[화보8k]. 일반적으로 나비의 포식자인 새들의 종류가 지역마다 다르기 때문에, 나비들이 서로 다른 선택압에 적응하기 위해 자기 지역 포식자를 대응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형태를 취했으리라 설명할 수 있다. 헬리코니우스속 나비 날개의 크기, 모양, 띠무늬와 빗살무늬 색깔 등의 편차를 만드는 유전적 차이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다.
개체군 사이에 드러나는 차이들은 대개 몇 종류 안 되는 유전자로 통제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 P28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저기 저, 부엌처럼 생긴 무시무시한 것이 마을 하나를 끌고오고 있어요」 그 여자가 겨우 설명을 했다.
바로 그 순간 마도는 무시무시하게 울려퍼지는 기적 소리와가쁜 숨을 몰아쉬는 것 같은 엄청난 소리로 뒤흔들렸다. 지난 몇주 동안 침목을 놓고 철로를 깔고 있는 인부들이 보였지만, 사람들은 그들이 백여 개에 이르는 방정맞은 호루라기와 탬버린인가하는 것을 불고 두들겨대며 예루살렘의 물약 제조 천재들이 조제한, 뭔지도 모르는, 그 엉터리 혼합약의 효능에 대해 떠벌이면서돌아온 집시들의 새로운 수작이라 생각하고서 그 누구도 신경을쓰지 않았었다. 그러나, 기적소리와 거친 숨소리로 인한 혼란으로부터 안정을 되찾은 주민들은 모두 길로 쏟아져 나와 기관차위에서 손을 흔드는 아우렐리아노 뜨리스떼를 보았고, 예정보다 여덟 달이나 뒤늦게 마을에 처음으로 도착한 꽃으로 장식된 기차를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많은 불안과 확신을, 많은 즐거움과고난을, 많은 변화를, 재난을, 향수를 마꼰도에 실어날라야 했던그 아무것도 모르는 노란 기차를. - P3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겉으로만 점잖은 척 단장하고 속마음은 시기와 거짓으로 꽉차있는 사람은 좋아하려고 해도 한 푼의 가치가 없고 미워하려고해도 몽둥이로 때릴 만한 가치조차 없다. 단지 그가 거짓으로꾸미느라 수고로움을 다하는 꼴이 가련할 뿐이다. 만약 그가 잘못을 뉘우친다면 한 번쯤 가르쳐 볼 수는 있을 것이다.

매심재每心齋는 정약전의 당호다. 그의 동생 정약용은 매심재기每心齋記를 지었는데, 형 정약전이 이렇게 부탁해서였다. "매심(每心)이란 ‘뉘우칠 회悔‘다. 나는 뉘우침이 많은 사람이다. 항상 마음에 뉘우침을 새기고 있는 사람이기때문에 재실의 이름을 이렇게 지었다. 네가 기를 써 달라"
정약용은 말한다. 성인과 광인(狂人)의 차이는 뉘우침에 따라 달라질 뿐이다"라고. - P17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쯤이면 진화의 일관된 주제 한 가지가 머릿속에 정리되기 시작한다. 자연은 완전히 무로부터 무언가를 발명해내는 수고를 자주 하지 않는다. 대신 이미 존재하는 툴킷 유전자들을 활용하여 기존의 구조들을 새롭게 깎아낸다. 수생 절지동물의 수많은 부속지들은 먹고, 헤엄치고, 호흡하고, 걷는 기능을 한 번에 수행하는 다기능 구조였다.
그랬던 것이 각기 전문화됨으로써 여러 종들이 완전히 새로운 생태계에 끼어들고, 완전히 새로운 신체 설계를 구축하게 되었던 것이다. - P235

자각autopodium은 어떻게 진화했을까? 다시 이보디보에, 그리고 현생 동물군의 유전자 및 배아 분석에 의존하여 어떻게 사지 지리의 변이가 일어났는지 확인하는 수밖에 없다. 세심하게 비교할 것은 어류 지느러미의 발생과 사지동물 팔다리의 발생이다. 사지동물의 경우 팔다리는 세 가지 요소들로 구성되게 마련인데, 몸 가까운 쪽부터 보면위팔이나 허벅지가 먼저이고 손발가락이 제일 나중에 온다. 어류의 경우는 두 가지 요소까지는 사지동물과 비슷하게 발생하지만, 결정적으로, 세번째 단계가 없다.
사지동물의 경우 세 단계의 발생 전반에 두 무리의 특별한 혹스유전자들이 관여한다. 네 개의 혹스 유전자 복합체 중 두 가지가 사용되는 것이다. 절지동물과는 다르게 몸 가까운 쪽에서 먼 쪽으로 사지를 발생시키는 데 혹스 유전자를 활용한다(절지동물은 부속지종류들을 서로 차별화하는 데 혹스 유전자를 동원한다). 혹스 유전자는 각 단계마다 다른 공간적 형태로 발현함으로써 사지 구성요소들을 전문화한다. 혹스 유전자 돌연변이를 일으킨 사람이나 쥐를 보면 혹스 발현 형태가 정상적인 사지 구축 및 무늬 만들기에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세번째 단계에 활약하는 혹스 유전자들에 돌연변이가 생기면 손발가락의 개수나 크기가 영향을 받는다.
세번째 단계, 즉 자각 형성에 혹스 발현이 관여하도록 진화한 것이야말로 사지동물 고유의 발명이었다. 세번째 단계를 통제하는 스위치들은 첫 두 단계를 통제하는 스위치들과 다르다.  - P243

사지동물의 앞다리는 비행을 위한 날개로 세 차례 재편되었다. 익룡, 조류, 박쥐류가 각각의 경우이다. 앞다리가 날개가 되기 위해서는 위아래, 앞뒤로 움직일 수 있어야 하고, 사용하지 않을 때는 몸에 착 붙게 접을 수 있어야 한다. 흥미로운 점은 세 척추동물들의 날개 구조가 가만히 보면 매우 다르다는 사실이다. 패트 십먼은 날개를 얻다에서 익룡의 날개는 ‘손가락 날개, 새의 날개는 ‘팔 날개, 박쥐의 날개는 ‘손 날개‘라고 했다(그림7-10]. 세 가지 설계를 진화 순서대로 익룡부터 차례로 살펴보자.
익룡이 하늘을 날기 시작한 것은 약 2억 2천5백만 년 전이었다. 조류가 진화하기 약 7천만 년 전인 셈이다(조류는 익룡이 아니라 깃털 달린 공룡에서 진화했다). 익룡 날개의 두드러진 특징은 굉장히 긴네번째 손가락이 날개 바깥을 완전히 휘감는다는 점이다. 앞다리의 모든 요소와 1번에서 3번 손가락이 존재하지만 손바닥뼈들은 융합된 상태다. 1번에서 3번 손가락들은 날개막에 붙어 있지 않다. 날개막은 앞다리 전체를 따라 늘어져 있지만 날개 길이의 대부분은 길쭉해진 네번째 손가락이다.
새의 경우 날개는 막이 아니라 깃털로 만들어진다. 깃털은 피부가 자란 것으로서, 앞다리 전체에 걸쳐 돋아난다. 날개는 팔로 따지면 ‘아래팔‘에 해당하는 부분이 제일 길고, 위팔과 손과 손가락에 해당하는 부분은 짧다. 새의 네 손가락은 몹시 짧은 편이다.
박쥐의 날개는 막으로 되어 있으며 팔 전체에 걸쳐 있다. 두번째에서 다섯번째 손가락들이 굉장히 길게 늘어나 있어 박쥐의 날개를 ‘손 날개‘로 만든다. 날개 뒤쪽 끝은 뒷다리 발목에 붙어 있다. 이는비행 시에 안정감을 더하는 요인이 된다.
이처럼 날개의 구조가 제각기 다른 것은 똑같이 선조사지동물의 앞다리 설계에서 비롯했더라도 발생상의 변형에 차이가 있었다는걸 의미한다. 조류와 파충류의 앞다리 형성에 공통점이 수두룩하다 - P244

북아메리카 북부 호수 지역에 서식하는 큰가시고기에는 두 종류가 있다. 둘 다 하나의공통 선조 형태로부터 극히 최근에 갈라져 나왔다. 약 만 5천 년 전, 지난 빙하기의 얼음들이 사라지기 시작할 때, 큰가시고기들은 빙하호에 남은 채 고립되었다. 그리고 지질학적으로 상당히 짧은 기간만에 서로 다른 생태지위를 차지하는 서로 다른 형태로 갈라졌다. 하나는 얕은 물 바닥에 사는 가시가 짧은 종류이고, 다른 하나는 큰물에 사는 가시가 긴 종류이다(그림7-11].
둘의 차이는 주로 단단한 외피 부분에 있다. 큰가시고기의 몸 양면에는 단단한 딱지가 둘러져 있으며, 위와 아래에 가시들이 나 있다. 그런데 포식자의 압력에 따라 그 가시의 수와 길이가 다르다. 큰물에서는 가시가 길어야 포식자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있다. 하지만 물 바닥에서는 배지느러미가 길면 도리어 불리하다. 놀랍게도 물 바닥에서 제일 탐욕스러운 포식자는 잠자리 유충들이다. 이들은 큰가시고기의 가시 부분을 낚아챈다. 따라서 세대가 거듭됨에 따라 가시가 없는 형태의 고기로 진화한 것이다.
배의 가시는 뒷다리 종류라고 볼 수 있으므로, 그것이 없어졌다는 것은 사지 골격 발생에 변화가 일어났다는 뜻이다. 발생생물학자들은 큰가시고기의 앞뒤 다리를 형성하고 특화하는 데 어떤 유전자들이 관여하는지 밝혀냈다. 그중 하나인 Pitxl 유전자는 사지동물의뒷다리 및 어류의 배지느러미 형성에 관여한다.  - P248

 진화적 혁신의 첫번째 비밀은, 두말할 것도 없이이미 존재하는 것을 동원해 작업한다는 점이다. 동물들에게서 일어나지 않았던 일을 상상해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이다. 거미의 방적돌기는 처음부터 완전히 새롭게 생겨난 것이 아니고, 척추동물의 날개는 사지동물의 등이나 옆구리에서 새롭게 자라난 것이 아니었다. 대신 모두 기존에 있던 구조의 변형판이었다. 20여 년 전에 프랑수아 자콥은 「진화와 땜질」이라는 에세이에서 진화의 이런 성격을 간파한 바 있다. 자콥은 자연을 땜질하는 수선공에 비유했다. 손에 닿는 재료들을 모아 뚝딱뚝딱 만들어낸 뒤 영겁의 시간을 거치며 끝없이 개량하고 고치는 수선공이라 했다. 사전에 그려둔 계획도와 전문적 도구로만 작업하는 기술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말은 유전자차원에까지 적용된다. 우리는 ‘오래된‘ 유전자들이 거듭 다른 방식으로 재사용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진화적 혁신으로 가는 가장 쉬운 길은 일단 A로 갔다가 다음에 B로 가는 것이지, 아무것도 없는데서 곧바로 B로 가는 길이 아니다.
두번째와 세번째 비밀은 다기능성과 중복성이다. 이 점을 제일먼저 지적한 사람은 다윈이었다. 이 두 속성이 존재할 때 얼마나 많은 기회의 문이 열리는지, 나도 앞에서 누차 강조했다. 여러 기능을 담당하는 구조가 있는데 그것이 여러 개 중복되어 존재한다면, 그때 노동 분업을 이루어 서로 다른 구조로 전문화될 여지가 생긴다.
혁신의 네번째 비밀은 모듈성이다. 1장의 내용을 떠올려보자. 나는 절지동물과 척추동물의 모듈 구조가 그들의 성공을 뒷받침한 요인이라 믿는다. 절지동물의 모듈성이 만들어낸 결과를 보라. 한동물에만도 서로 다르게 적응한 상이한 구조들이 무수히 존재한다. 수많은 혁신이 가능한 덕에 절지동물은 지구에서 가장 다채로운 동물군이 되었다. 척추동물도 그렇다. 익룡이 네번째 손가락을 길게 진화시킬 수 있었던 것, 박쥐의 손가락들이 길어져 날개막을 지지할수 있었던 것, 뱀이 수백 개의 척추뼈를 진화시켜 몸통을 늘인 것, 큰가시고기가 배지느러미/뒷다리 구조만 선택적으로 제거할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이 모두 모듈 식 설계를 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듈성 덕분에 각 신체부속들은 다른 부속들에게 전혀 영향을 미치지않고 독립적으로 변형되거나 전문화될 수 있었다. 가끔은 엄청나게극단적인 결과도 나타나곤 했다.
동물 성체의 해부학적 구조가 모듈성을 띠는 것은 배아 지리가모듈성을 띠고, 스위치라는 유전논리가 모듈성을 띠기 때문이다. 스위치는 특정 구조에서만 선택적으로 진화적 변화를 가능케 하는 도구이다. 스위치야말로 모듈성의 비밀이 간직된 곳이며, 모듈성이야말로 절지동물과 척추동물의 성공의 비밀이다. - P251

헨리 월터 베이츠는 자신의 관찰과 수집이 다윈의 이론을 지지할 수 있음을 깨닫고 흥분하였다. "자연이 새로운 종을 제조해내는 실험실을 내가 직접 엿본 것이라 생각합니다." 베이츠는 다윈에게 보낸 초기의 편지들 중 하나에서 이렇게 말했다.
베이츠가 과학에 기여한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베이츠의 표현으로는 ‘상사적 유사성‘, 즉 의태擬態 현상을 발견한 일이다. 베이츠는 곤충, 특히 나비를 주로 연구했는데, 한 종이 다른 종의 색과 무늬를 흉내 냄으로써 자신을 보호하는 현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베이츠는 새들이 먹잇감으로 반기는 나비가 있는가 하면 꺼리는 나비가 있다는 것을 보았다. 새들은 몇 차례의 체험을 통해 두 종류를 구분하였다. 베이츠는 새의 입맛에 맞는 나비 중 몇몇이 새가 꺼리는 나비의 색상 및 무늬를 따라함으로써 포식자를 피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다윈은 나비에 자연선택 압력이 작용하는 사례를 듣고 몹시 기뻐했다. 의태에 관한 베이츠의 논문이 "평생 읽은 논문들 증가장 주목할 만하고 감탄할 만한 논문"이라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 이현상은 요즘도 베이츠 의태라고 불린다. - P256

나비의 다채로운 색깔에 필적할 곤충은 거의 없다. 각 인편은 한가지 색깔만 띤다. 크게 확대해서 보면 인편 각각이 이웃한 인편들과는 전혀 다른 색조를 띠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화보89]. 우리 눈에는 색이 섞였거나 중간 색조가 존재하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실은 개별 인편들의 색이 절묘하게 배열됨으로써 이뤄진 착시 현상이다.
날개색은 색소로 인한 색이면서 구조색이기도 하다. 변화무쌍한 푸른색과 초록색, 파삭하게 보이는 흰색은 인편이 빛을 흡수, 반사, 산란함으로써 만들어내는 구조색이다. 다채로운 구조색은 인편의 미세 구조가 저마다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가능하다. 물론 구조색이 색소들과 결합하여 효과를 내기도 한다.
기하학적 무늬는 발생 중에 무늬를 조직해내는 신호전달 경로가 발명된 결과이다. 그중 가장 속속들이 정체가 알려진 것은 눈꼴무늬이다. 점박 형태의 눈꼴무늬는 색이 다른 인편들이 여러 겹의 동심원을 이뤄 만들어진다. 눈꼴무늬가 포식자 습격을 피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사실은 여러 연구에서 확인된 바 있다. 대체로 눈꼴무늬의 역할은 습격해오는 포식자(주로 새나 도마뱀이다)의 시선을 날개 가장자리로 향하게 함으로써 연약한 몸통을 보호하는 것이라고한다. 나비는 날개의 상당 부분이 찢겨나가도 날 수 있지만,
몸체에 타격을 입으면 치명적이다. 눈꼴무늬가 포식자의 시선을 끄는 것은 왜일까? 확연한 형태가 대조적인 배경을 바탕으로 두드러져 보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고, 눈 모양으로 생긴 무늬가 포식자들의 공격 본능을 자극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 P26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