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라닌 모세포가 신경릉에서 나와 척추에 수직 방향으로 뻗어간다는 것을 보면, 발생 과정에는 언제든 줄무늬가 생겨날 가능성이 내재해 있다. 일반적으로 단색을 띠는 쥐나 말 등에서도 얼마든지 줄무늬 돌연변이가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말과 당나귀 등의 번식 역사를 보면 부분적으로 줄무늬를 가진 동물의 탄생 사례가 아주 많다. 얼룩무늬 같은 것 말이다. 다윈도 『종의 기원』에서 줄무늬 말과 당나귀에 대해 큰 관심을 기울였는데, 특히 잡종에 집중했다. 수컷 얼룩말과 암말을 교배시키면 잡종을 만들 수 있다. 이 잡종후손은 보통 줄무늬를 가진다. 하지만 암컷이 배가 하얀 말일 경우, 잡종 후손의 줄무늬는 털색이 어두운 부분에 국한하여 생긴다. 흰색소 유전자가 멜라닌 모세포의 이동에 영향을 미쳐 멜라닌 모세포가 이동할 수 있는 부분에만 줄무늬가 생긴다는 가설과 맞아 떨어지는 현상이다. 그런데 이보다 흥미로운 현상이 있다. 말-얼룩말 잡종은 부모보다 줄무늬 개수가 많아진다는 사실이다. - P304
바드의 모델에서 결정적인 요소는 줄무늬 형성 과정이 배아가 아주 작을 때 시작된다는 점이다. 실제로 털에 색소 착색이 시작되는시점으로부터 6개월 전의 일이다. 이것은 나중에 덩치가 커질 동물의 무늬 형성에서 중요한 대목이다. 무늬 발생은 어느 정도의 거리에 걸쳐서 진행되는데, 그 거리는 세포들이 서로 떨어져 있으면서도상호작용 가능한 최대 거리가 얼마냐에 달려 있다. 그런데 갓 태어난 새끼나 그보다 큰 얼룩말의 몸에서는 줄무늬 사이 간격이 너무넓기 때문에 세포들이 다른 줄무늬 세포들과 소통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동물 무늬는 아주 일찍 아웃라인이 정해지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이미 확실히 자리 잡았던 설계가 나중에 커지는것뿐이다. 종간 줄무늬 개수 차이가 실제로 줄무늬 형성 과정의 시작 시기차이 때문이라면, 그것은 멜라닌 모세포 이동에 관여하는 유전자들이 활성화되는 시기가 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시기의 변이란 근본적으로 조절 과정의 변화이다. 따라서 줄무늬 개수 차이는 멜라닌모세포의 이동 시기나 공간적 형태를 통제하는 유전자 스위치들에 진화적 변화가 일어난 탓일 것이다. - P306
이 장을 닫기 전에 얼룩말 논쟁으로 돌아가자. 방금 얼룩 바위주머니쥐에 적용했던 논리를 얼룩말에 적용해보자. 줄무늬의 가치를생각할 때, 왜 우리가 보는 얼룩말들은 하나같이 줄무늬를 지니는지 생각해보면 단서가 되지 않겠는가? 줄무늬가 별 의미 없는 것이라면, 어째서 줄무늬 없는 얼룩말은 존재하지 않는가? 사실인즉, 존재하기는 한다. 포유류의 경우 털색 돌연변이는 굉장히 흔한 현상이므로, 드물긴 해도 야생에서 극적인 돌연변이가 탄생하는 사례들이 있다(흰호랑이라거나 점박무늬 얼룩말). 품종 개량자들은 자연적으로일어나는 드문 변이들을 골라 오랜 세월 교배시킴으로써 새로운 종을 탄생시킨다. 얼룩말의 사촌인 말의 경우 여러 빛깔 털을 지닌 개체도 가끔 등장한다. 나는 아프리카 평원이라는 진화의 실험실이 줄무늬가 정말 중요한 속성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워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줄무늬에 부여된 목적이 무엇인지 우리가 모를 뿐이다. 여러 이론들 중 마음에 드는 대로 골라 생각해도 무방하겠다. 잊지 말아야 할 점은 민무늬에 비해 줄무늬가 가지는 상대적 이점이 아주 사소하다 해도 줄무늬가 득세하기에는 충분하리라는 사실이다. 자연선택의 힘이(성선택도 포함된다) 어떤 형질을 획득하거나 유지하는데 강한 영향을 발휘한다는 근본적 원칙은 모든 종의 진화에 공통적으로 적용된다. - P312
사람을 특징짓는 주요한 물리적 형질들 중에는 단독 변화가 아닌게 많다. 즉 골격과 근육 구조가 동시에 진화한 변화들이었다. 가령이족보행을 생각해보자. 이족보행을 위해서는 척추, 골반, 발, 사지의 균형이 함께 진화해야 했다. 덕분에 자유로워진 손은 새 재주들을 익히는 방향으로 진화해갔다. 침팬지도 필요하면 두 발로 걸을수 있다. 하지만 걷는 모양새가 사람과는 전혀 달라서, 무릎 관절을완전히 펴 다리를 쭉 뻗지 못한다. 초기 사람들이 이족보행을 했으리란 가설은 골격 형태를 살펴보고 내린 결론이다. 그런데 압도적인 증거는 따로 있다. 탄자니아의 라에톨리라는 고고학 발굴지에서 1976년에 발견된 증거이다. 당시고인류학자 앤드류 힐은 참으로 영장류다운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동료에게 코끼리 똥을 던지며 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우연히사람의 발자국 화석을 발견하게 되었다. 화산재 지층 위로 무려 24미터나 이어진 발자국이었다. 이 놀라운 발자국을 남긴 사람은 최소한 두 명인 것 같았는데, 한 명은 크고 한 명은 작았다. 그들은 360만 년 전에 당시 막 땅을 뒤덮은 재 위를 걸었던 것이다. 그 후 발자국은 힐이 발견하기까지 숨겨져 있었다. - P325
사람의 DNA 서열에는 약 30억 개의 염기쌍이 있다. 그중 98.8퍼센트가 침팬지의 DNA 서열과 동일하다. 차이는 1.2퍼센트에 불과하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동물들 중에 인간과 DNA 서열 차이가 가장 적게 나는 동물이 침팬지다. 하지만 고작 1.2퍼센트라 해도 염기쌍으로 말하면 3천6백만 개다. 인간과 침팬지는 약 6백만 년 전에공통 선조로부터 갈라져 나왔으므로 차이 중 절반은 침팬지 특유의 것(침팬지의 계통에서 일어난 것)이고 나머지 절반은 인간 특유의 것(인간 계통에서 일어난 것)이라 가정해도 좋겠다. 그러면 공통 선조에서 인간이 갈라져 나온 이래 변화를 일으킨 염기쌍이 약 천8백만개라는 계산이 나온다(논의의 편의를 위해 숫자를 단순화시켜 말하고있다. 염기의 삭제나 삽입. DNA 조각들의 드나듦에 대해서는 고려하지않았다). 변화한 부분 전부가 의미 있을까? 아니면 일부는 잡음에 불과할까? 천8백만 개의 차이 중 어느 부분이 진화에 기여했는지, 어떻게알 수 있을까? 물론 유전자 돌연변이가 모두 의미 있는 것은 아니다. 유전암호에는 중복이 많기 때문에 특정 염기가 바뀌어도 단백질에 영향이 없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조용한‘ 치환은 시간이 갈수록 누적된다. 이들을 없앨 조금의 선택압조차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 DNA 중 암호나 조절 기능에 할당된 것은 5퍼센트에 불과하기 때문에, 나머지 방대한 양의 DNA 서열에서 일어난 돌연변이들은 거의 아무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또한 연관관계가 없는 두 사람이 드러내는 차이는 평균적으로 약 3백만 개 염기쌍으로 빚어지는 것이라는사실도 고려해야 한다. 절대 수치로 보면 엄청난 양처럼 느껴지지만 전체 DNA 염기쌍의 0.1퍼센트일 뿐이다. - P338
턱 근육 구조가 축소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는 것은 단지 음식씹는 방식이 바뀌었다는 의미만 갖지 않는다. 근육 구조는 뼈의 성장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며, 실험에 따르면 턱 근육 성장은 두개안면 골격의 크기와 모양에 상당한 영향을 준다. 턱 근육이 축소되어 하악에 가해지는 힘이 줄어들면 두개골 뼈들이 받는 압력도 줄어들 것이다. 그러면 두개는 더욱 얇아지고 커질 수 있다. 따라서 턱근육 변화 및 이에 따른 두개골 속성 변화는 초기 호모속에서 뇌가커진 현상을 설명하는 한 요인일 수 있다. 게다가 턱 근육 축소 덕분에 하악을 보다 정교하게 통제할 수 있게 되었을 텐데, 이는 말을 하는 데 있어 중요한 조건이다. 참으로 흥미롭기 그지없는 상호연관 관계이다. 하지만 이 해부학적 변화들을 단 한 가지 돌연변이로 설명하려는 실수를 저질러서는안 되겠다. 이전까지 나름의 기능을 해왔던 MYH16 유전자를 비활성화시킨 일은 분명 주목할 만한 변화였다. 하지만 비활성화 돌연변이라는 유전적 변화가 측두근 축소 현상에 앞서 이뤄진 것인지, 순차적이거나 병렬적인 여러 변화들 중 하나로 나란히 이뤄진 것인지, 그도 아니면 측두근에서 MYH16 단백질의 역할이 더 이상 필요하지않게 된 연후에 일어난 마지막 변화인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내 생각을 말하자면 나는 이것이 유일하고도 결정적인 진화적 계기였다고 단언하기는 힘들다고 생각한다. 이유는 뒤에 설명하겠다. 사실인간 진화에 관련된 어떤 유전자에 대해서도 그런 식으로 단언하기는 힘들다. - P344
이전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종들이 발견되었고, 하나의 먼 조상으로부터 현생인류로 곧장 내려오는 단 하나의 직선이 있기보다는 도중에 끊어진 무수한 가지들이 존재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사실 인간과 침팬지 계통이 갈라지는 부분에 가까운 화석들이 점점 더 많이 발견됨에 따라, ‘바로 그 조상을 찾았다는 주장은 어느 것이든 일단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한편 비교신경생물학은 이제 인간의 재능을 설명하고자 할 때 한결 섬세한 부분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인간의 뇌에 두드러진 해부적 특징들이 첫인상보다 훨씬 오래된 역사를 갖고 있으며 전적으로 인간에만 관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게 밝혀졌기때문이다. 또한 인간을 정의하는 특징들, 가령 이족보행, 골격 형태, 두개안면 형태, 뇌 크기, 언어 등의 진화가 손에 꼽을 만한 몇 가지주요 유전자들이 선택된 결과가 아니라는 것도 거의 확실하다. FOXP와 MYH16은 수수께끼를 풀 조각들 중 최초로 확인된 녀석들일 따름이며, 그들이 가장 중요한 조각이라거나 가장 큰 조각이라고 믿을 까닭도 없다. 결론적으로, 사람의 진화는 어떤 그림일까? 무수한 세대에 걸친 기나긴 시간 동안, 무수한 유전자들이 제각기 변이를 일으키고, 그들이 선택되고, 따라서 형태의 크기나 모양이나 조직 구성 등에 자그만 차이들이 무수히 일어남으로써 전체가 구성된 모자이크일 것이다. - P350
이처럼 진화가 반복되어 일어난 사례들을 보면, 어째서 사람들이진화 과정에서 무작위적 돌연변이가 수행하는 역할을 이해하는 데어려움을 겪었는지 알 만도 하다. 어떻게 ‘무작위적 과정으로부터 참신성과 복잡성이 등장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핵심은 두 가지 단계를 확실히 구분하는 것이다. 돌연변이로 인해 유전적 변이가 일어나는 것은 실제 전적으로 무작위적인 과정이다. 반면 변이들 중 어느 것을 존속시키고 어느 것을 버릴지 결정하는일은 무작위적이지 않은, 강력한 선택적 과정이다. 동물 게놈에는 염기쌍이 수천만 개 또는 수십억 개 있고, 무작위적 복제 오류나 물리적 손상으로 돌연변이를 일으킬 가능성은 모든 염기쌍에 동일하다. 하지만 그 모든 가능한 돌연변이들 중 극히 일부만이 포유류의 털을 생존 가능한 수준에서 바꿀 수 있으며, 큰가시고시의 가시를 끔찍한 부수적 피해 없이 축소할 수 있는 것이다. 동물의 개체군 규모가 크다면, 그리고 장구한 시간이 있다면, 아무리 드문 돌연변이라도 확률상 한 번은 일어나게 된다. 일단 그런 돌연변이가 일어나면 돌연변이가 일으키는 형질의 긍정적 변화가 선택될 것이고, 돌연변이는 갈수록 널리 개체군에 번지게 된다. 자크 모노의 역작 우연과 필연의 제목은(그리스 철학자 데모크리투스의 금언, ‘우주의 삼라만상은 우연과 필연의 열매이다‘에서 딴것이다) 진화에서 무작위성과 선택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아름답게 표현한 말이다. 진화는 정말 우연의 산물일지 모른다. 하지만무작위로 이루어지는 돌연변이라는 복권 중에서도 어떤 숫자나 조합은 생태학적 필요라는 조건을 남보다 잘 충족시킨다. 그들이 거듭생겨나 거듭 선택되는 것이다. - P363
「종의 기원」 초판 이후 재판이 발간되기까지 그 짧은 기간 동안, 다윈은 앞서 본 유명한 맺음 문구에 단어 몇 개를 삽입하였다. ‘신에의해‘라는 문구를 집어넣어 ‘최초에 신에 의해 단 한 가지, 혹은 소수의 몇 가지 형태로 숨결이 불어넣어졌다‘로 고친 것이다. 다윈은 후에 식물학자 J. D. 후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한 것을 후회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저는 대중의 의견을 좇아 모세5경 식의 창조에 관한 표현을 쓴 것을 뉘우칩니다. 사실 제 말의 의도는 정체가 전혀 알려지지 않은 어떤 과정으로 생명이 ‘등장했다‘는 뜻이었습니다." 단어를 삽입한 것은 비평가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였으며, 진화개념을 보다 받아들이기 쉬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한편으론 다윈의 진정한 종교적 입장이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역할도 했다. 화해의 상징이라 할 만한 이 문장. 그리고 다윈이 신앙에 대해 말하기 꺼려했다는 점을(개인적으로 주고받은 편지나 미발표 노트 등에 어느 정도 종교에 대한 견해가 드러나 있긴 하다) 바탕으로 진화와 종교를 화해시키려 한 사람들도 있다. - P371
호트는 진화를 뒷받침하는 과학 증거가 압도적인 수준이라고 판단하며, 성경 문헌은 "과학이 등장하기 전 시대에 작성된 것이므로, 그 직접적인 의미를 21세기 과학의 형식 속에 그대로 펼치려 해서는"(창조론자들의 요구처럼 말이다) 안 된다고 지적한다. 호트는 이렇게 썼다.
아직도 우리가 다윈 이전 세계가 아니라 다윈 이후 세계에 산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신학자들이 많다. 현재의 진화하는 우주는 대부분의 종교 사상들이 태어나고 자란 과거 세계의 모습과는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는다. 오늘날의 지적 토양에서 우리 신학이 살아남으려면, 신학은 진화적 용어들을 새롭게 표현할 방법을 알아야 한다. 다윈 이후 시대에 살며 신을 생각하는 우리가 아우구스티누스, 토마스 아퀴나스, 또는 우리 조부모나 부모와 똑같은 생각을 할 수는 없다. 오늘날 우리는 신학의 모든 면을 진화적 용어로 다시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 P377
지금 우리 손에 놓인 것은 영국의 영광이나 미국의 영광이 아니다. 자연의 영광이다. 생물학을 깊이 이해해갈수록 그것을 즐기거나 그것으로부터 배우는 일은 적어진다니, 참으로 비극적인 아이러니아니겠는가? 우리 시대의 유산은 무엇이 될까? 자연을 귀히 여기고 보호하는 것? 아니면 나비나 얼룩말이나 그 밖의 동물들이 타일러사인이나 모아나 도도처럼 전설 속으로 사라지게 하는 것? - P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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