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실험실 기술자인 줄리 게이츠가 내게 현미경을 보여줬던 순간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유충의 날개에 아름다운 점무늬가 아로새겨진, 너무나놀라운 모습이었다. 날개 하나마다 두 쌍씩 떠오른 그 점들은 정확히 일주일 뒤에 눈꼴무늬로 자라날 지점들이었다. 프레드 네이하우트가 눈꼴무늬의 중심으로 추정했던 위치를 우리는 시각적으로 확인하게 된 것이다(화보8c]. 환상적이었다.
그 점들은 우리가 연구 대상으로 삼은 십여 개의 유전자들 중 하나가 만든 것이었다. 앞서 한참 얘기한 적 있는 유전자, 바로 디스탈리스였다. 어마어마하게 흥미로운 일이었다. 초파리 및 절지동물 부속지 형성에 관여한 유전자가 나비 날개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작업을 하는 것으로 드러난 셈이기 때문이다. 물론 디스탈리스는 종래의임무도 여전히 수행하고 있었다. 즉 여타 곤충류나 절지동물에서처럼 나비 사지에서도 말초부를 발생하는 데 모종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디스탈리스가 나비 날개에서 발현하여 점무늬를 만드는 것은, 그러니까 새로운 재주인 셈이다. 사지 형성이라는 오래된 임무를 맡고 나서 한참 뒤에 새로 ‘배운‘ 재주이다(그림8-6]. 툴킷 단백질 활동은 전적으로 맥락에 달려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디스탈리스는 특정 위치 및 시기에는 변함없이 사지 형성 역할을 수행한다. 다만 날개 무늬에서의 작업은 그와는 또 다른 위치 및 시기의 일로서, 전혀 다른 형태로 통제되고 있는 것이다.
디스탈리스는 날개에서 11 - P268

남아메리카 및 중앙아메리카에 서식하는 헬리코니우스속 나비는 경고색을 띤다. 주로 붉은색과 노란색인데, 포식자들에게 먹지말 것을 알리는 색깔이다. 여러 지역에 헬리코니우스속 나비들을 모방한 의태형들이 있다. 같은 지역에 사는 나비들은 종이 달라도 날개 무늬가 비슷한 반면, 같은 종이라도 다른 지역에 서식하면 무늬가 상당히 다르다. 브라질, 에콰도르, 페루 등의 서식지에서 같이 사는 H. 멜포메네 종과 H. 에라토 종은 서로 비슷하게 생겼지만, 같은종이라도 다른 지역에 사는 것들의 무늬는 꽤 차이 난다[화보8k]. 일반적으로 나비의 포식자인 새들의 종류가 지역마다 다르기 때문에, 나비들이 서로 다른 선택압에 적응하기 위해 자기 지역 포식자를 대응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형태를 취했으리라 설명할 수 있다. 헬리코니우스속 나비 날개의 크기, 모양, 띠무늬와 빗살무늬 색깔 등의 편차를 만드는 유전적 차이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다.
개체군 사이에 드러나는 차이들은 대개 몇 종류 안 되는 유전자로 통제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 P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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