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은 허기를 폭넓게 정의했고, 여자의 섹슈얼리티, 야망, 경제적 삶, 법적 자유 모두에 초점을 맞추었다. 반면페미니즘이 지나간 자리에 등장해 풍경 전체를 휩쓸며 시대의 풍조로 떠오른 소비주의는 허기를 가장 좁은 의미로, 요컨대 당장 써먹을 수 있는 해결책, 외적인 해법, 사물에 대한 욕망으로 정의했다. - P246
우리가 선택되는 대신 선택할 수 있었다면 어떤 느낌이었을까? 음식이나 옷에 대한 욕구를 이야기할 때처럼 우리의 성적욕구들에 대해서도 솔직히 말할 수 있도록 양육되었다면, 신체 부위나 가슴의 모양이나 허벅지 사이즈 같은 부수적인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성적인 몸 자체를, 그 몸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만져질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검토하고 이해하도록 격려받았다면 우리의 느낌은 어땠을까? 이런 종류의 사고 틀은 당시 우리 의식 안에 존재하지 않았고, 우리 중 다수에게 30대나 40대 한 여자의 인생에서 행위 주체성이라는 개념이 오랜 세월의 분투 끝에 마침내 뼛속에 자리 잡게 되는 시기에 접어들기 전까지는 계속 존재하지 않을 터였다. 어쨌든 그 시절에는 우리 자신의 몸에 관해 직접적으로 말한다는 것이 생각도 할 수 없는 일로 여겨졌고, 섹슈얼리티는 유혹적인 만큼 두렵기도 한 자유였으며, 그리하여 그것은 그 안에 살면서도 다 같이 모르는 척하는 지뢰밭같은 것이 되었다. 우리는 그 지뢰들의 이름이 지뢰는 공포, 그 지뢰는 힘, 저 지뢰는 순전한 호르몬의 에너지라는 식으로- 구별할 줄 몰랐고 무엇보다 확실한 건 우리에게 그 지뢰의 뇌관을 제거할 도구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절에 관해 가장 분명하게 기억나는 것은 무서울 정도로 부조화를 이루는 느낌인데, 이 느낌은 제기되지도 대답되지도 않은 그 모든 질문 때문에 더욱 고조되었다. 그것은 마치 여자의 섹슈얼리티, 나의 섹슈얼리티는 어째선지 뒷전에 내팽개쳐진 채 논의되거나 탐사되지 않는 것 같은 느낌, 궁극적으로 남자들의 섹슈얼리티보다 덜 중요한 것으로 이해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 P257
이 점은 특히 ‘남자 만족시키기‘ 전선에서 더욱 그렇다. <글래머>는 "그 남자가 오늘밤 해보고 싶어 안달하는, ‘계속해줘‘라고 외칠 마흔세 가지 기술"이라는 글을 실었다. <코스모폴리탄>은 "그의 인생 최고의 섹스 파트너가 되어라-그를 무자비하게 자극하고 서서히 유혹하고 그가 꿈에 그리던 방식으로 그의 세계를 뒤흔들어라!"라고 제안한다. 이상하게 섹스뿐아니라 숫자에도 집착하는 <레드북>은 "당신의 섹스 라이프를 더 뜨겁게 달궈줄 여섯 가지 동작" "모든 여자가 알아야 할 다섯 가지의 끝내주는 섹스 기교" "더 좋은 섹스를 위해 곧바로 써먹을 수 있는 열 가지 방법" "당신 남자의 몸에서 만져줘야할 섹시한 부위 서른다섯 군데를 알려준다. 이런 것이 언제나 등장하는 표준적인 이야기-그 남자, 당신의 남자, 그가 하고 싶어 안달하는 것에 관한 이야기들인데, 나는 이 이야기들이 나의 성장기에 여성의 성적 욕구를 에워싸고 있던 침묵과 불확실성의 강과 똑같은 강에서 건져 올린 이야기들이 아닐까생각한다. 분명한 건 이 이야기들이 다 똑같은 해결책을 제안한다는 것이다. ‘당신 자신의 알 수 없고, 논의되지 않으며,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딱히 허용되지도 않는 욕구를 잘모르겠다면 그의 욕구에 집중하라. 바른 방향을 보고 (더 중요하게는) 바른 방식으로 행동하라.‘ 그때나 지금이나 이런 해결책에는 성에 관한 지식이란 쌍방이 아는 것이어야 한다는 개념, 여성의 쾌락은 남성의 쾌락을 자극하는 능력에만 달려 있는 게 아니라는 개념이 빠져 있다. - P264
나는 이것이 매우 강력한 조합이자 또한 매우 강력한 상실이었다고 생각한다. 외현화하는 소비주의 사고방식-구매하라. 쇼핑하라, 지출하라의 폭발적 확산과 페미니즘의 가시성과 추동력 감소가 어쩌다 발을 맞추어 진행된 것이다. 그로인해 거짓 약속이 공기를 한층 더 무겁게 했고, 욕망의 정의들이 가장 바로잡기 어려운 방식들로 왜곡되었다. 또한 시각까지 왜곡되었다. 페미니즘에 낀 짙은 망각의 안개에 가려 권리와 전인성을 확보하기 위한 투쟁이 결코 끝난 게 아니라는 씁쓸한 사실이 눈에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그 시기를 회상하면 굶기가 만들어주던 구조와 통제감을 포기하려는 시도가 얼마나 안정감을 뿌리 깊이 뒤흔들었는지 떠오른다. 내 몸이 너무나 낯설게 느껴지기 시작했고, 세상 속으로 다시 들어가려는일이 너무나 버겁게 느껴졌다. 그 세상은 굽이를 돌 때마다 욕망과 필요에 대한 의문이 솟아오르는 곳이었다. 협상해야 할고용주들이 있었고, 친밀해져야 할 남자들 혹은 그러지 말아야 할 남자들이 있었으며, 이제는 풀어놓아야 할, 평생을 짊어지고 살았던 욕구에 관한 부담감이 있었다. 어떻게 해야 상사앞에서 젊거나 초조하거나 귀여워 보이지 않고 전문적이고 진지하게 보일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인정에 대한 욕망에서 성적 욕망을 섬세하게 분리해낼 수 있을까? 여성의 권위, 사이즈, 행위 주체성, 야망에 관한 문제들은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 아니 애초에 그런 문제들은 어떤 틀로 구성해야 하는 것일까? 세상이 여자들에게 문을 열어준 것은 너무나 최근의 일인것 같은데, 그러다 갑자기 그 의미에 관해, 그것이 어떤 느낌이었는지에 관해, 그것이 제기한 도전들에 관해 말하기를 별안간 뚝 그만둬버린 것이다. 그러고는 길잡이를 찾겠다고 신문이나 여성 잡지의 라이프 스타일 섹션을 뒤적이면 더없이 얄팍한 조언들을 찔끔찔끔 발견할 뿐이었는데, 대부분은 1980년대에 걸핏하면 입에 올리던, 요점에서 어긋날 뿐 아니라 한심할정도로 부적절한 ‘성공에 어울리게 차려입어라‘라는 말로 요약되는 것이었다. 까다로운 감정의 풍경은 잊어요. 머리와 가슴의 관계도 잊어요. 힘이니 보상이니 껄끄러운 문제들이 도사리고있는 직업의 세계도 잊어요. 초대형 어깨 패드가 들어간 이 파워 수트를 입어보세요. 배와 엉덩이를 잡아주는 고탄력 팬티스타킹을 입어보세요. 문제를 외현화하고 쇼핑을 하세요. - P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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