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공적 담론에서 뉘앙스 이해력이 사라져버렸다는 문제가 있다. 모든 문제와 정책을 흑 아니면 백으로 제시하고, 또 그렇게 판단한다. 미묘한 차이와 복잡성을 좀처럼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러니 과학자들이 이 범유행이 앞으로 정확히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선택할 수 있는 몇 가지 방안이 있고, 각각 성공 확률은 어떠하니 그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전하기가 쉽지 않다. 맹목적으로 신뢰할 이유도 없지만, 무턱대고 겁먹을 이유도 없다. 짤막한 문구와 영상으로 모든 소통이 이루어지는 시대에, 과학자들도 이제 조금씩 파악해가고 있는 복잡한 바이러스에 사회가 대처하기는 쉽지 않았다. 게다가 전염병은 늘 그러듯 기하급수적으로 확산되며 정책결정자들을 당황하게 했으니, 결과적으로 대중의 대응은 늘 한발 늦곤 했다.
물론 복잡하고 불확실하고 위험한 시기에는 단순하고 확실한 것에 대한 갈망이 커지기 마련이니, 정치인과 장사꾼들의 거짓말과 거짓 약속이 횡행할 여지가 커진다. 대통령과 백악관 참모들을 비롯해전국 각지의 정치인들이 애초부터 과학적으로 명백히 거짓인 정보를 퍼뜨렸다. 그들의 말과 달리, 무증상 전파는 가능했고 비약물적개입 조치가 수많은 생명을 살렸다. 코로나19는 독감보다 훨씬 더 심각했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의 예기치 않은 효과 중 하나로, 바이러스의 위협과 씨름하는 사회에서 앞으로는 과학자뿐 아니라 과학적 정보를 점점 진지하게 대하는 변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른 나라에서도 그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 P409

코로나19 범유행 중에 유전학자들은 혹시 일부 유전자가 SARS-2바이러스에 잘 감염되거나 저항력을 갖는 효과가 있는지 탐색에 나섰다. 그런 유전자를 찾아내면 어떤 환자가 특히 위험한지도 알 수있고, 유전적 차이를 참고해 효과적인 약리학적 전략을 발견하고 치료약 후보를 물색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리라는 기대에서였다. 초기연구 결과 코로나19 증상이 극히 심한 환자들에게서 몇몇 특정 유전자가 이례적으로 빈번히 발견됐다. 또 환자의 혈액형이 A형이면 산소 흡입 조치와 인공호흡기 착용이 필요해질 확률이 다른 혈액형보다 50% 높았고, 혈액형이 O형인 사람은 감염이 더 잘 안 됐다(묘하게도 콜레라 생존율은 혈액형 관련성이 그 반대로 나타난다). 3번염색체에서 코로나19 증상 악화와 연관된 유전자 6개도 발견됐다. 그중 한 유전자는 ACE2 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한 유전자는 기도 감염에 대한 면역반응에 관여하므로, 생리학적으로 타당한 결과다. 또한 이 6개의 유전자는 네안데르탈인에게서 현생 인류에 전해졌으며, 특히 동남아 지역 사람들이 흔히 보유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 P439

고대 그리스 작가 아이스킬로스Aeschylos의 비극 작품 「결박당한 프로메테우스」에서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불(즉, 기술)을 선물한 죄로 바위에 사슬로 묶이는 벌을 받는다. 그런데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준 선물은 하나가 더 있었다. 인간이 자기 죽음을 내다보지 못하게 한 것이다. 하지만 남들의 사례를 보고 자신도 고통받고 죽으리라는 것은 알고 있으니, 그런 무지와 불확실성은 인간을 괴롭힌다. 기술의 힘을 빌려 미래를 예측할 수 있지만, 예측이 정확하면서 암울하다면 그것도 문제다. 연극의 코러스는 프로메테우스에게 "그들의 괴로움을 낫게 할 치료법이 무엇이오?"라고 묻는다. 프로메테우스는 "가슴에 맹목적 희망을 단단히 심어주었소"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맹목적 희망은 우리 역경의 동반자로 삼기에는 미덥지못하다.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그럼에도 희망은 요긴한 구실을 한다. 고개를 들어 미래를 바라보게 함으로써 앞날을 준비하게 한다.
미생물은 인류 탄생 이래 인간의 진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유행병은 수만 년 동안 우리의 진화에 기여했다. 신화 속 아폴론의 화살처럼, 인류 역사와 늘 함께해왔다. 우리는 이전에도 우리 손에 쥔 생물학적·사회적 수단으로 번번이 유행병을 이겨냈다. 우리는 일상을 되찾을 것이다. 역병은 끝나기 마련이다. 그리고 역병처럼, 희망도 인간이 존재하는 한 늘 인간과 함께한다. - P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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