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적 거리두기와 자택대피의 핵심은, 여기에 참여하는 주된 목적이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서로를 위한 것이라는 점이다. 그 점을 사람들이 온전히 이해하는 데에는 시간이 좀 걸렸다. 범유행 초기에는 평소처럼 일상을 영위하고 바이러스 따위 겁내지 않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야말로 용감하고 이타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듯했다. 일부 정치인도 그런 자세를 취했다. - P309
집 안에 틀어박혀 있는 행동이 곧 선행이라고 설득하는 건 좀 묘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도 사람들은 신체적 거리두기의 주목적이 타인 돕기라는 걸 알게 되면 더 기꺼이 따르는 경향을 보였다.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초월할 줄 아는 도덕적 행위자니까. 한 예로, 어떻게 하면 공중보건 메시지의 효과를 높일 수 있는지 살펴본 연구가 있다. ‘이렇게 하면 코로나바이러스에 옮는 걸 피할 수 있다‘와 ‘이렇게 하면 코로나바이러스를 퍼뜨리는 걸 피할 수 있다‘, 둘 중 어떤 메시지가 더 효과적일까? 공공의 이익을 강조한 메시지가 개인적 위협을 강조한 메시지 못지않게 효과적이고, 때로는 더 효과적인것으로 나타났다. 이 결과는 사익 추구뿐 아니라 공익 침해 우려가 예방접종의 동기가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또 다른 연구 결과와도 부합한다. - P311
하지만 극도의 혼란과 이기심의 횡행은 일반적이라기보단 예외적 현상이다. 재난 생존자들은 공동체를 형성해 서로 돕고, 연대의식이 더 강해지는 것이 보통이다. 이 현상을 스탠퍼드대학교 심리학 교수자밀 자키 lamil Zaki는 ‘재난 동정심catastrophe compassion‘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에게 이런 단결심과 선행 욕구가 있기에 재난 구역 바깥에서까지 기부와 자원봉사의 손길이 쇄도하기도 한다. 재난 속에서 사람들은 정체감을 더 많이 공유하게 되는 경우가 매우 흔하고, 이는 협력 행동과 선의를 낳는 강력한 원천이 된다. 그렇게 되는 한 가지 이유는, 모든 사람이 같은 위험에 놓이면 기존의 구분이 사라지면서 많은 사람이 ‘우리‘의 범주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모두가 같은 문제를 맞닥뜨린 집단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공동의 역경 속에서, 어쩌면 무엇보다 중요한 구분이 생겨난다. 나와 같은 위협을 직면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구분이다. 그러면 같은 집단의 일원을 우호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본능적 성향이 발동되고, 자연히 그들에게 잘 대해주려는 마음이 일게 된다. 범유행 시기에 흔히 나타나는 또 한 가지 경향도 동질감을 강화하는 데 기여한다. 이는 서로 비슷하게 느끼는 두려움, 부정적 감정, 취약감 등을 터놓고 이야기하려는 경향이다. - P313
그러나 코로나19의 경우는 노동 연령 인구의 피해가 거의 없었고 페스트나 천연두처럼 치명적인 질병이 아니기에 과거 전염병처럽 자본과 노동의 세력 균형점이 이동할 가능성은 매우 작다. 그렇긴 하나 정치적 요인이 임금 인상의 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은 매우 크다. 코로나19는 미국 경제가 저임금 필수 노동자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지 여실히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따라서 노동 연령 성인의 사망이 많지 않다고 하더라도, 포스트 범유행기에는 노동자 보호를 강화하기 위한 법규가 제정될 가능성이 크다. 앞서 살펴봤듯이유급 병가와 육아휴직, 유연근무제, 더 나아가 보육료 지원 등의 분야에서 개선이 이루어질 만하다. 범유행 초기에 주목받았던 마트 점원, 배송 기사, 요양보호사의 처지에 대한 공감이 반짝 관심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 정치 운동으로 이어진다면 더 그렇게 되기 쉽다. 물론 그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겠지만, 코로나19가 닥친 시점은 우연히도 미국의 소득 불평등이 한 세기 동안 심화하면서 많은 국민 사이에 이대로는 안 된다는 의식이 높아지고 있던 때였다. 또한 필수적이지만 주목받지 못하는 직업 종사자들 덕분에 일상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국민이 절감하면서, 임금 인상 요구에 더 공감하는 여론이 형성될 수도 있다. - P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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