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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법학자, 그 사람 백충현 - 독도와 외규장각 의궤를 지켜낸 법학자의 삶
이충렬 지음 / 김영사 / 2017년 4월
평점 :
책의 마지막을 읽어내려가며, 나도 모르는 새 눈시울이 붉어졌다. 일평생을 자신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며 숨 가쁘게 달려 온 자의 삶은 이렇게 아름다운 것인가 보다. 정말 오랜만에 숨도 쉬지 않고 앉은 자리 그 자리에서 읽어내려간 책이다. 전기를 좋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국가 간 분쟁은 외교의 힘으로 해결된다고 믿기 쉽다.
그러나 외교의 힘은 항상 법적 이론이 뒷받침할 때 비로소 정당한 방법으로 행사될 수 있다."
이 책의 주인공, 백충현 교수의 지론이다. 이 지론 하나로, 작디 작은 서교동 마루에서 서울국제법연구원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숨은 공로자가 있었다. 바로 백충현 교수의 아내, 이명숙이다. 그녀의 남편의 일을 도우려는 마음과 자신의 능력에서 비롯된 경제적 능력이 없었다면, 서교동 마루에서의 토론도, 서울국제법연구원도 있을 수 없었다.
백충현 교수는 평범한 법학자이면서, 평범하지 않은 법학자이기도 하다.
UN 대변인으로 아프가니스탄에 가야 했을 때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고, 프랑스와의 외규장각 의궤 문제가 절정에 치달았을 때는 벌컥 화를 내기도 하며 범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일을 추진할 때 보여주는 강한 결단력과 남들이 가지 않으려는 길을 자신을 믿고 오롯이 걸어가는 점, 그리고 나라의 진흥을 위해 사비를 털어 가며 노력한 점에서는 범인이 아닌, 위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으로 일본의 사과를 받아내고, 중공 여객기 문제를 해결했으며, 재일 동포의 자유와 위안부 문제에 대해 국제법 논리로 목소리를 높이고, 내란 중인 아프가니스탄에 가서 집단 학살 현장을 찾아내 그 현실을 국제사회에 알렸으며, 우리나라의 컴퓨터를 스위스 유엔 인권위에 지원하는 등, 수많은 일을 했다.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독도"가 우리 나라의 영토임을 확실히 하기 위한 그의 노력이다.
백충현 교수의 국제법학자로서의 삶을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가 있다면, 그것은 '독도'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은 아주 오래 전부터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부르며 자신들의 영토이을 끊임없이 주장해왔다. 그에 따라 독도는 국제적으로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그는 이러한 논란을 종식시키기 위하여 끊임없이 한국과 일본의 고서점을 뒤지고, 도서관에서 원전자료를 공부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던 중, 일본의 한 박물관에서 <관판실측일본지도>를 보게 되었다. 이 지도에는 일본 본토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오가사와라 제도를 표기되어 있다. 그러나 오가사와라 제도의 4분의 1 거리에 있는 독도는 표기되어 있지 않았다. 이는 곧 독도를 일본 영토로 파악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일본이 '독도를 자신의 영토로 인식하지 않고 있었다는 결정적 증거'로 사용 할 수 있다. 그가 오키섬과 그 서북쪽 부분의 사진을 찍으려 하자 박물관의 지도 담당은 이 지도는 촬영하지 못하니 눈으로만 보라고 했다. 그는 박물관을 나오면서 <관판실측일본지도>를 반드시 입수해야겠다 다짐하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드디어 나타난 <관찬실측일본지도>'
이 소제목을 보자, 나는 큰 한숨을 토해내며 잠시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것이 전쟁의 급박한 상황의 아프가니스탄 이야기가 끝났다는 것에서 온 안도감 때문인지, <관찬실측일본지도>가 드디어 나타났다는 쾌감 때문인지 뭔지 모를 감정들이 뒤섞인 채 내뱉은 한숨이었다.
먼저, <관찬실측일본지도>를 일본 정부에게 넘기지 않은 일본인 데츠오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 지도의 가치를 정확히 알고, 그 지도가 꼭 필요한 곳에 쓰일 수 있도록 백충현 교수를 선택한 그 마음가짐은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1억원이라는 큰 돈을 망설이지 않고 사비로 지불한 백충현 교수 또한 대단하다. 그리고 그의 아내 이명숙도 마찬가지이다.
데츠오, 백충현, 이명숙 이 세 사람의 힘이 모이지 않았다면, <관찬실측일본지도>는 절대 한국으로 넘어 올 수 없었음이 자명하다. 백충현 교수만을 기억할 것이 아니라, 이 두 사람도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끊임없이 찾아내고, 고민하고, 연구하는 삶의 길을 걸어 온 법학자 백충현. 한 길을 우직하게 걸었던 그는 한국의 국제법 수준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렸고, 많은 후학을 양성했다. 역사학과도 연계하여 나라의 진흥에 힘썼다.
그가 떠나고 3년 반 후,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게 되었다. 아내 이명숙이 대신하여 받았다. 독도 영유권 수호 유공자로는 처음 수여되는 훈장이었다. 정부 주관의 공식 행사였지만, 일본과의 관계를 고려해 훈장증에 '독도'라는 단어를 넣지 않았고, 행사도 비공개로 조촐하게 진행되었다.
대한민국이 하루빨리 국제적 영향력이 커져서, 당당하게 훈장증에 '독도를 써 넣을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행사도 국가적으로 크게 진행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이 다음에 '독도'훈장증을 받는 사람은 꼭 그렇게 훈장을 받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