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엄마는 '엄마'라는 이름의 '여성'이었다. 왜 나는, 우리는, 엄마를 '여성'으로 보지 않고, 자식을 위해 희생해주는 위치에 서 있는 존재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일까. 이런 생각에서 시작 된 의문은 '모성애'와 '부성애'에서 멈춰섰다. 우리 사회는 부성애보다는 모성애를 더 강조하는 사회이다. 어떻게 보면 어머니의 사랑은 소중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각종 언론 매체를 통해 등장하는 '모성애'의 모습은 항상 희생하는 모습으로 비추어지는데, 이것이 지속적으로 언론에 노출된다면 사람들의 사고는 자연스럽게 '모성애 = 희생'으로 보여질 수 있다. 또한 엄마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 될 수 있다. "'엄마'면서 왜 자식을 위해서 희생하지 않아?"
언론 매체에는그런 말이 있다고 한다. 소위 말하는 "그림이 되는 컷을 뽑기 위해서는 '아기, 소녀, 여성'을 선택하면 실패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그림이 되는 피사체를 선택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왜 사회는 여성을 시각적으로 대상화해서 바라보는 것일까.
최근 등장한 음성인식 인공지능 서비스의 목소리는 '여성'의 목소리이다. 선택할 수 있는 기능이 있기는 하나, 기본적인 셋팅이 여성으로 되어있다. 여성의 목소리여야 더 안정감을 느끼고, 명령을 하기에 편하다는 이유라고 한다. 시각을 넘어서 청각까지. 여성은 타자화되어지고 대상화된다.
이 사회는 언제쯤 여성을 여성 그 자체로 봐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