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 (무선본) -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조현욱 옮김, 이태수 감수 / 김영사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07. 사피엔스 :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






'호모 사피엔스 - 형제 살해범'




  소제목을 본 순간 섬뜩한 감각이 손끝을 스쳤다. '살해'라는 단어 자체가 갖는 의미와 전달하는 느낌도 그렇거니와 '타인'이 아닌, '형제'가 살해의 대상으로 등장한 것에 있어서 적잖이 당황한 것 같다.


  <사피엔스>에서는 '교배이론'과 '교체이론'을 예로 들면서 어떻게 '호모 사피엔스'만이 살아남았을까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교배이론에 따르면,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의 땅에 퍼져나가면서 서로 교배했고, 결국 두 집단이 하나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교체이론에 따르면 그들은 서로 화합하지 못한 채 반감을 가지고, 인종학살을 자행했다고 할 수 있다. 호모 사피엔스의 탓이든 아니든, 사피엔스가 새로운 지역에 도착하자마자 토착 인류가 멸종했다는 것은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호모 사피엔스가 살아남게 된 이유에 대해 읽다보니, 문득 현대의 호모 사피엔스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호모 사피엔스 - 형제 살해범'이라는 소제목에서 섬뜩한 느낌을 받은 나 자신에게 조소를 띄웠다. 우리, 즉 호모 사피엔스는 불과 몇 십년 전까지도 서로가 서로를 살해해왔다. 가장 가까운 예로, 우리나라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한국전쟁을 들 수 있다. 1950년에 발발한 한국전쟁, 불과 70여 년 전에 일어난 일이다. 그 참극이 정치적 사상과 이념이 서로 다르다는 이유로 일어난 일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아주 먼 옛날의 사피엔스와 또 다른 인류간의 다툼과 살해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그들은 해부학적으로도 다르고, 짝짓기 습관이나 체취마저도 달랐을 수 도 있다니 말이다.


  과거의 사피엔스와 현대의 사피엔스를 비교해보니 입안에 모래 알갱이가 있는 것처럼 껄끄럽고 버석버석한 느낌이 들었다. 씁쓸한 기분이었다. 모든 생물은 진화를 거친다고 하는데, 진화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고, 과거의 실수라고 할 만한 것들을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다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오히려 상황은 더 악화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과거에는 서로 다른 종족이기에 그 낯섦과 다름에서 죽음이 촉발되었다고 할 수 있겠지만, 현대에는 모두 같은 종족이며, 사람은 동등한 하나의 개체임을 인식한 상태에서 단지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전쟁 벌였기 때문이다.


  지금도 시리아에서는 내전이 한창이다. 독재를 막기 위한 민주화 운동에서 시작된 시리아 내전은 여러 나라의 개입과 함께, 독재 타도만으로 끝나지 않게 되었다. 기득권층의 이익을 위해서, 각 나라의 이익을 위해서 지금도 끊임없이 계속되는 내전은 언제쯤 막이 내릴지 의문이다. 민간인 사상자가 9만명이라고 한다.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사회구성원들의 보호와 권리를 위해 만들어 낸 특별한 하나의 공동체를 국가라고 할 수 있는데, 시리아는 국가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무정부주의자들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국가'를 위한 희생, '국가'로 대변되는 생각, 의견과 같은 것은 모두 필요 없는 것들이다. '국가'라는 틀에서 벗어나면 시리아의 내전은 애초에 일어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한 국가를 이루는 구성원들이 단일민족이 아닌,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되는 지금 현 시점에서 '국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는 순간이다.



  과거의 모습을 또다시 재현하고 있는 현대의 사피엔스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여러 생각이 스친다. 과거의 사피엔스들이 후대의 사피엔스들이 자신들의 모습을 그대로 답습할 것임을 알았다면, 그때에도 똑같이 서로를 해쳤을까? 과거의 사피엔스들도 삶을 살아가면서 전보다 더 나은 후를 살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고, 그것은 현대의 사피엔스들도 마찬가지이다. 과거의 사피엔스들은 자신들이 새로운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 서로를 죽이는 행위를 했을 것이다. 그 당시에는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현대의 사피엔스들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서로를 죽이는 행위'를 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현대의 사피엔스들에게는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역사를 '유구한'이라는 형용사를 붙이는 이유가 무엇인가? 아주 먼 오래 전에 일어났던 일, 한 나라의 흥망성쇠 이 모든 것들을 기록한 것이 바로 역사이다. 우리는 이러한 역사를 배우고 학습하여 미래를 바라본다. 이미 과거에 일어났던 일이 어떤 결과를 불러오는 지 역사가 현대의 사피엔스들에게 말해주고 있다. 말하자면 역사는 '나침판'인 것이다. 옳지 않은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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