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증, 마음의 메신저
이은영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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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나이든다는 것을 제대로 실감하고 있다. 만성적으로 달고 사는 목과 허리 통증은 그렇다 치더라도 최근엔 어깨와 손가락에도 없던 통증이 생겼다. 여기에 간헐적으로 있는 소화불량과 변비 그리고 우울감까지 정말 온몸이 성한 데가 없다. 그렇다고 견디기 힘든 심한 통증은 아니다 보니 쉽게 병원으로 발걸음이 떨어지지는 않고 답답하고 막막하기만 하다.


<통증, 마음의 메신저>. 제목만으로도 반가웠다. 통증에 관한 다양한 지식과 정보를 알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도움을 얻을 수 있고, 삶의 질을 약간이라도 개선할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책의 구성도 만족스럽다. 먼저, 통증 초기의 신호를 무시하면 안 되는 이유에 대하여 자세하게 들려주고, 대표적인 통증 질환인 허리질환과 대상포진에 대해 알아야 할 지식들을 살펴본다. 그리고 바르지 못한 자세나 잘못된 생활습관으로 생기는 통증들을 알려주고, 각각 필요한 대처법들을 제시한다. 마취통증과 전문의의 진료 사례와 느낀 점들이 책 곳곳에 실려 있어 실질적인 조언과 노하우를 얻을 수 있는 책이다.



통증의 원인을 찾아내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따라서 원인을 바로 찾을 수 있는 급성 통증은 즉시 치료하는 것이 좋다.

만성 통증의 경우는 근골격계에서 오는 통증인지,

아니면 장기의 기능이 떨어지거나 염증이 생겨서 오는 통증인지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1장. 통증은 우리 몸이 보내는 신호이다 p035



책의 내용 중 가장 눈여겨 본 부분들을 소개해 본다. 알다시피 여성은 폐경기 이후 몸에 큰 변화가 찾아온다.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은 항염작용과 면역억제 작용이 있고 관절과 연골의 노화도 관여하는데 폐경으로 인한 여성호르몬의 감소로 몸 여기저기에 급성 통증이 올 수 있다. 부신피질 호르몬도 통증과 깊은 관련이 있다. 통증이 지속되면 부신피질에서 스트레스에 대항할 호르몬들이 나오는데 체내에 독소가 많거나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하면 부신호르몬이 감소할 수 있다. 이에 직접적인 치료법은 부신 기능을 올리는 호르몬 주사제와 영양치료가 있고, 일상생활에서는 충분한 휴식과 7시간 이상의 수면, 비타민과 마그네슘 그리고 콜티솔을 끌어올릴 수 있는 감초성분과 DHEA성분의 영양제가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나이 들어가면서 가려움증이 생기는 경우가 있는데 수분과 지방질의 불균형이 원인일 수 있다. 이때는 충분한 수분과 오메가3를 섭취해 주면 되고, 갱년기 호르몬의 변화, 갑상선 기능, 자세가 안 좋아서 순환이 잘 안되어서 가려울 수도 있는데 이 경우 비타민 B12의 보충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신경은 운동과 훈련을 통해서 강해지고 되살릴 수 있다.

또한 생활습관과 식습관 및 자세를 바꾸고 운동을 병행한다면

신경이 퇴화되는 것을 막고 더 젊은 신경 나이로 살 수 있다.

3장. 신경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 통증 건강법이다. P165



책은 저자가 직접 치료한 사례들을 바탕으로 따뜻한 시선을 담아 현명하게 조언한다. 그래서인지 누구나 알지만 간과하기 쉬운 통증들에 관한 대처법들이 신선하게 다가와 통증을 그냥 방치하지 않고 세심하게 관찰하고 개선해야겠다는 의지를 다지게 한다. 스마트폰을 볼 때 자세나 헤어스타일, 앉아있는 시간, 잠자는 자세 등 작은 변화만으로도 통증은 개선될 수 있고, 반대로 작은 습관으로도 몸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전신의 통증으로 발전할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 시간이었다. 통증이 하루아침에 찾아온 것이 아니듯, 개선도 단시간에 되지 않기에 이 책과 함께 꾸준히 바른 자세와 식습관을 생활해나간다면 조금은 삶의 질이 올라가지 않을까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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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데이먼 갤것 지음, 이소영 옮김 / 문학사상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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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먼 갤것의 장편소설 <약속>은 한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자, 백인우월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이야기이다. 농장을 운영하는 백인 가족의 4번의 장례식과 30여년에 걸친 몰락의 과정을 통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극단적인 분리주의 역사를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 책은 정의와 현실, 죄의식과 친절함에 대하여 심각하게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옳은 윤리적 가치관이 무엇인지 사유해보게 하고, 상투적이지 않고 담담하게 작가가 바라는 이상적인 방향성을 보여준다.



어머니의 마지막 소원, 그리고 아버지의 약속이라는 그 문제가

아모르와 함께 전 세계를 따라다녔다.

그러면서 그 문제는 특정한 순간에는 마치 이방인처럼 그녀를 괴롭혔는데

거리에서 성가시게 졸라 대기도 하고 그녀의 소매를 잡아당기기도 하고

내 말을 잘 들어!하고 소리치기도 했다.

언젠가 대답해야 한다는 것을 그녀는 잘 알고 있다.

<약속> p190



암으로 고통받으며 죽어가는 엄마 레이철은 자신을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흑인 가정부 살로메에게 현재 살고 있는 허름하고 낡은 집을 넘겨주겠다는 약속을 한다. 아버지도 그 약속을 지키겠다고 하고, 막내딸 아모르는 이 모든 대화내용을 엿듣는다. 그러나 엄마의 죽음 이후 약속은 지켜지지 않는다. 아모르는 아빠에게 살로메에게 집을 줘야 한다고, 엄마가 원하는대로 해줘야 한다고 주장해보지만 아빠는 그 약속을 무시해버린다. 시간이 흘러 아빠의 죽음 이후에도, 언니의 죽음 이후에도 약속은 지켜지지 않는다. 살로메는 이런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없어 자기몫의 유산도 그대로 둔 채 농장을 떠나버린다. 어느 날 유일하게 남은 가족인 오빠의 자살소식을 듣고 지켜져야만 했던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고향으로 향한다.



호의를 호의로 갚는 것, 바로 그게 인생이 돌아가는 방식이다.

<약속> p278



아모르의 가족은 사실 별다를 것이 전혀 없다. 그들은 그저 남아공의 평범한 백인 무리일 뿐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흑인들보다 우위에 있다는 신념 아래흑인들을 물리적으로 배척해야 자신들을 지킬 수 있고, 흑인들과 분리되어야만 자신들의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믿으며 이를 위해 흑인들에 대한 반인륜적인 차별을 정당화한다. 그러니 흑인 가정부에게 한 약속은 지킬 필요가 없고 지켜서도 안되는 것이다. 반면, 막내딸 아모르는 그들 사이에 숨어있는 죄의식과 친절함을 대변한다. 백인들의 당연한 듯 누리는 혜택이 사실은 탈취와 착취로 얻어진 것이기에 작가는 아모르의 말과 행동을 통해 정의가 무엇인지 보여주고 작지만 소중한 그 약속을 꼭 지켜야 한다고 그래야 남아공에도 희망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아직도 네가 모르고 있는 게 있는데, 네 것을 주는 게 아니야.

이 집은 이미 우리의 것이니까.

이 집뿐만 아니라 네가 사는 그 집도 그렇고,

그 집이 서 있는 땅도 그래. 우리 거야!

정리해서 호의로 나눠 줄 수 있는 네 소유물이 아니라고,

백인 아가씨, 네가 가진 모든 것은 이미 내 것이야. 내가 요청할 필요도 없이.

<약속> p475



책의 내용을 따라가다보면 자연스레 나를 둘러싼 현실들을 비춰보게 된다. 소설 속 배경과 비할 바는 못되지만 내가 사는 세상도 정의가 사라진 것 같을 때가 많다. 하지만 저자가 희망을 버리지 않는 것처럼 나 역시 그렇다. "사랑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고 오로지 친절만 남았지만 어쩌면 이것이 더 강할지도 모른다"는 책 속 구절처럼, 나와 다른 입장을 고집하는 이들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볼 수는 없어도, 경멸하는 태도는 버려야 한다. 그리고 답답한 현실에 대하여 지금보다 조금은 친절해져야 한다. 결국 이념, 정치, 현실은 시간이 흐르면 과거가 된다. 침묵하고 외면하지 않으면 어쩌면 바라는 변화는 생각보다 훨씬 빨리 찾아올 지도 모른다.

<약속>은 부커상 수상작이라는 이름값을 톡톡히 해내는 책이다. 현실을 바라보는 시선을 새롭게 하고 싶다면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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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니체를 읽는가 (올컬러 에디션) - 세상을 다르게 보는 니체의 인생수업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송동윤 엮음, 강동호 그림 / 스타북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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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인생을 살다 보면 도무지 출구가 보이지 않아 주저앉고 싶을 때가 있다. 이럴 때에는 하루 종일 밀려오는 부정적인 감정들로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괴로워하고, 어서 빨리 두려움을 떨쳐내고 싶어 다른 일에 시선을 돌려보거나 별 거 아니라고, 다 지나간다고 스스로를 토닥여 보지만 거센 감정의 출렁임은 쉽게 잦아들지 않는다. 이렇게 일상이 버거울 때, 삶을 견뎌내야 할 때 책은 한 줄기 빛이 되어주곤 한다. 책 속 한 문장과 운명적으로 만나면 지금의 두려움이 진짜 두려움인지 다르게 생각해 보게 되고, 팽팽하게 긴장된 신경을 느슨해게 해주며 지금 여기 내가 있어야 할 곳으로 되돌아오게 된다.


<나는 왜 니체를 읽는가>는 니체의 저서들 중에서 인생에서 비틀거릴 때 자신만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도움이 되어줄 335개의 문장들을 모아 엮어낸 잠언집이다. 불확실한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니체의 '자기극복'철학은 따뜻한 위로와 위안을 주고, 때로는 따끔한 충고와 조언이 되어 새로운 인생의 전환점을 맞을 수 있도록 힘이 되어준다. 책에는 많은 지혜의 문장들과 함께 예쁜 표지 디자인과 니체의 문장들과 잘 어울리는 강동호 작가의 일러스트가 책 곳곳에 실려 있어 읽는 즐거움을 더욱 만끽하게 한다.



비로소 나는 병에서 나의 더 높은 건강을 얻었다.

이 건강이란 병이 말살시켜 버리지 못한 모든 것들에 의하여 오히려 더 강해지는 건강을 말한다.

나는 병에서 하나의 철학도 얻었다.

고통이야말로 정신 최후의 해방자다.....

그런 고통이 우리를 개선시키는지에 대해 의심스러울 때도 있으나

나는 고통이 우리를 심오하게 한다는 것을 안다.

1. 삶의 철학 p025 (니체 대 바그너)



책 속 날카로운 니체의 잠언들은 그가 기존의 가치를 부수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한 용기있는 철학자임을 증명한다. 두려움이나 소심함, 우유부단함같이 마음에 엉켜붙은 고정관념들과 편견들을 그의 비수같은 잠언들로 흔들어 깨운다. 자신을 극복하라는 니체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참신함이고, 불필요한 것은 익숙함이라고 말한다.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하고, 분노 대신 풍요로움을 선택하라고, 작은 일에도 최대한 기뻐하며 살아가라고, 끊임없이 나아가라고 이야기한다. 항상 밝고 가벼운 기분으로 살고, 타인을 흉내내지 않으며 지금 하는 일에 온 힘을 던지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니체의 말들은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 한번 읽어서는 그 뜻을 헤아리기 어렵다. 깊이 사색하며 읽어야 그 의미를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 뻔한 대로 살지 않기 위해, 좀 더 풍성하게 살기 위해 곁에 두고 읽어볼 생각이다.



섬세한 감각과 섬세한 취미를 가질 것.

강력하고 대담하며, 자유분방한 마음을 유지할 것.

침착한 눈동자와 확고한 발걸음으로 인생을 짓밟을 것.

터무니없는 일을 당해도 마치 축제에 참가한 것처럼 즐길 것.

미지의 세계와 해양, 인간과 신들을 기대하며 인생을 지켜볼 것.

마치 그 미지의 세계를 지키는 병사와 선원들이 잠시 동안 휴식과 즐거움으로 피로를 잊는 듯,

혹은 이 찰나의 쾌락 속에 인간의 눈물과 진홍색 우수를 잊는 듯이 밝은 음악에 귀를 기울일 것.

14. 나를 찾아서 p300 (즐거운 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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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2 사일로 연대기
휴 하위 지음, 이수현 옮김 / 시공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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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애플티비에서 현재 방영되고 있는 SF 시리즈물 <울>의 원작 소설이다. 출간하자마자 순식간에 입소문이 퍼지고, 출판계에도 파란을 일으켰으며 베스트셀러는 물론, 이 책의 프리퀄에 해당하는 <시프트>와 후속작<더스트>까지 나왔다고 하니 드라마로 만나기 전에 서둘러 읽어보기로 했다.

<울>은 SF 소설이라면 당연하듯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담고 있다. 큰 틀에서는 희망이 안 보이는 암울한 미래, 현실을 저항하고 행동하는 주인공 등의 일차원적인 공식들을 따르고 있지만 멸망 위에 세워진 복종과 차별의 세상, 그리고 반항할 만한 현실감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꿋꿋하게 나아가 영웅으로 거듭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섬세하고 치밀하게 그려내고 있어 엄청난 몰입감과 긴장감을 제공한다. 개연성이 살짝 부족하다 느낀 부분이 있긴 했으나 이를 상쇄시킬 정도로 재미있다. 또한 미래 세상을 이야기하고 있으면서도 지금 사는 세상을 마주 보게 할 만큼 현재를 함의하고 있는 부분도 많아서 여운도 짙게 남는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건,

일단 주어진 운명 속에서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요.

<울>2 P143




유독 물질로 인해 황폐화된 세상에서 인류는 거대한 지하 공동체, 사일로에 모여 살아간다. 그곳은 바깥세상에 대해 희망을 품는 것을 금지한다. '절대로 사일로 밖에 대해 궁금해하지 말 것, 사일로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하지 말 것'을 지켜야 하고, 어길 시 사일로 밖 먼지 낀 렌즈를 청소하는 벌을 받게 되는데 이는 곧 죽음을 의미한다. 사일로의 보안관 홀스턴이 스스로 규칙을 깨고, 몇몇 사람들의 의문스러운 죽음이 벌어지자 기계공 줄리엣은 의혹을 품고 사일로의 숨겨진 비밀과 진실을 파헤친다. 이를 눈치챈 사일로의 사람들은 그녀를 없애기 위해 '청소'형에 처한다. 그런데 그녀가 마주한 바깥 공간의 모습은 사일로 안에서 보던 모습과 달랐다. 그동안 보았던 별과 녹색의 풍경은 거짓이었고, 회색의 죽어버린 진짜 세상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도대체 누가 이 모든 일의 책임자인지, 그자들도 자기들의 행동을

어쩔 수 없이 떠맡은 일이라고 합리화할 수 있을지 생각했다.

그들도 자기들에게는 잘못이 없고 그저 물려받은 일을 계속할 뿐이라고,

쥐똥 같은 규칙과 거의 모든 사람을 모지한 채로 가둬두는

이 비뚤어진 게임은 자기들 작품이 아니라고 할까.

<울>2 P320




소설이 말하는 미래의 이야기는 지금 내가 사는 세상과는 엄연히 다르다. 하지만 어떤 세상에서든 인간은 스스로를 지키고, 자신들이 생각하는 삶의 방식을 지킬 권리가 있다. 이미 일어난 일들은 어쩔 수 없지만, 어떤 행동을 할지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권력을 쥔 자들은 통제하기를 원한다. 진실에 대하여 생각하거나 협력하는 것을 금하고, 그저 주어진 현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살아가기를 바란다.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웬만해선 의문을 품으려 하지 않는다. 변화보다는 지속성을 원하니까. 안심하고 싶으니까. 나 역시 부당하다고 여기는 부분이 있어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 여겨도 외면하고 그냥 넘어가려고 한다. 진실을 들여다본다고 해서 좋은 결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기 때문에. 그렇게 권력을 쥔 자들이 바라는 바대로 침묵하며 살아간다. 용기내어 행동하는 이들에게 큰 빚을 지면서 말이다.

책은 지금 이 시대에도 유효한 질문을 던지며 메시지를 보낸다. "여기 있다고 비참한 건 아니에요.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고 그냥 둔다면 그건 비참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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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1 사일로 연대기
휴 하위 지음, 이수현 옮김 / 시공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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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애플티비에서 현재 방영되고 있는 SF 시리즈물 <울>의 원작 소설이다. 출간하자마자 순식간에 입소문이 퍼지고, 출판계에도 파란을 일으켰으며 베스트셀러는 물론, 이 책의 프리퀄에 해당하는 <시프트>와 후속작<더스트>까지 나왔다고 하니 드라마로 만나기 전에 서둘러 읽어보기로 했다.

<울>은 SF 소설이라면 당연하듯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담고 있다. 큰 틀에서는 희망이 안 보이는 암울한 미래, 현실을 저항하고 행동하는 주인공 등의 일차원적인 공식들을 따르고 있지만 멸망 위에 세워진 복종과 차별의 세상, 그리고 반항할 만한 현실감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꿋꿋하게 나아가 영웅으로 거듭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섬세하고 치밀하게 그려내고 있어 엄청난 몰입감과 긴장감을 제공한다. 개연성이 살짝 부족하다 느낀 부분이 있긴 했으나 이를 상쇄시킬 정도로 재미있다. 또한 미래 세상을 이야기하고 있으면서도 지금 사는 세상을 마주 보게 할 만큼 현재를 함의하고 있는 부분도 많아서 여운도 짙게 남는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건,

일단 주어진 운명 속에서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요.

<울>2 P143





유독 물질로 인해 황폐화된 세상에서 인류는 거대한 지하 공동체, 사일로에 모여 살아간다. 그곳은 바깥세상에 대해 희망을 품는 것을 금지한다. '절대로 사일로 밖에 대해 궁금해하지 말 것, 사일로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하지 말 것'을 지켜야 하고, 어길 시 사일로 밖 먼지 낀 렌즈를 청소하는 벌을 받게 되는데 이는 곧 죽음을 의미한다. 사일로의 보안관 홀스턴이 스스로 규칙을 깨고, 몇몇 사람들의 의문스러운 죽음이 벌어지자 기계공 줄리엣은 의혹을 품고 사일로의 숨겨진 비밀과 진실을 파헤친다. 이를 눈치챈 사일로의 사람들은 그녀를 없애기 위해 '청소'형에 처한다. 그런데 그녀가 마주한 바깥 공간의 모습은 사일로 안에서 보던 모습과 달랐다. 그동안 보았던 별과 녹색의 풍경은 거짓이었고, 회색의 죽어버린 진짜 세상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도대체 누가 이 모든 일의 책임자인지, 그자들도 자기들의 행동을

어쩔 수 없이 떠맡은 일이라고 합리화할 수 있을지 생각했다.

그들도 자기들에게는 잘못이 없고 그저 물려받은 일을 계속할 뿐이라고,

쥐똥 같은 규칙과 거의 모든 사람을 모지한 채로 가둬두는

이 비뚤어진 게임은 자기들 작품이 아니라고 할까.

<울>2 P320





소설이 말하는 미래의 이야기는 지금 내가 사는 세상과는 엄연히 다르다. 하지만 어떤 세상에서든 인간은 스스로를 지키고, 자신들이 생각하는 삶의 방식을 지킬 권리가 있다. 이미 일어난 일들은 어쩔 수 없지만, 어떤 행동을 할지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권력을 쥔 자들은 통제하기를 원한다. 진실에 대하여 생각하거나 협력하는 것을 금하고, 그저 주어진 현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살아가기를 바란다.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웬만해선 의문을 품으려 하지 않는다. 변화보다는 지속성을 원하니까. 안심하고 싶으니까. 나 역시 부당하다고 여기는 부분이 있어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 여겨도 외면하고 그냥 넘어가려고 한다. 진실을 들여다본다고 해서 좋은 결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기 때문에. 그렇게 권력을 쥔 자들이 바라는 바대로 침묵하며 살아간다. 용기내어 행동하는 이들에게 큰 빚을 지면서 말이다.

책은 지금 이 시대에도 유효한 질문을 던지며 메시지를 보낸다. "여기 있다고 비참한 건 아니에요.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고 그냥 둔다면 그건 비참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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