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2 사일로 연대기
휴 하위 지음, 이수현 옮김 / 시공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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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애플티비에서 현재 방영되고 있는 SF 시리즈물 <울>의 원작 소설이다. 출간하자마자 순식간에 입소문이 퍼지고, 출판계에도 파란을 일으켰으며 베스트셀러는 물론, 이 책의 프리퀄에 해당하는 <시프트>와 후속작<더스트>까지 나왔다고 하니 드라마로 만나기 전에 서둘러 읽어보기로 했다.

<울>은 SF 소설이라면 당연하듯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담고 있다. 큰 틀에서는 희망이 안 보이는 암울한 미래, 현실을 저항하고 행동하는 주인공 등의 일차원적인 공식들을 따르고 있지만 멸망 위에 세워진 복종과 차별의 세상, 그리고 반항할 만한 현실감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꿋꿋하게 나아가 영웅으로 거듭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섬세하고 치밀하게 그려내고 있어 엄청난 몰입감과 긴장감을 제공한다. 개연성이 살짝 부족하다 느낀 부분이 있긴 했으나 이를 상쇄시킬 정도로 재미있다. 또한 미래 세상을 이야기하고 있으면서도 지금 사는 세상을 마주 보게 할 만큼 현재를 함의하고 있는 부분도 많아서 여운도 짙게 남는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건,

일단 주어진 운명 속에서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요.

<울>2 P143




유독 물질로 인해 황폐화된 세상에서 인류는 거대한 지하 공동체, 사일로에 모여 살아간다. 그곳은 바깥세상에 대해 희망을 품는 것을 금지한다. '절대로 사일로 밖에 대해 궁금해하지 말 것, 사일로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하지 말 것'을 지켜야 하고, 어길 시 사일로 밖 먼지 낀 렌즈를 청소하는 벌을 받게 되는데 이는 곧 죽음을 의미한다. 사일로의 보안관 홀스턴이 스스로 규칙을 깨고, 몇몇 사람들의 의문스러운 죽음이 벌어지자 기계공 줄리엣은 의혹을 품고 사일로의 숨겨진 비밀과 진실을 파헤친다. 이를 눈치챈 사일로의 사람들은 그녀를 없애기 위해 '청소'형에 처한다. 그런데 그녀가 마주한 바깥 공간의 모습은 사일로 안에서 보던 모습과 달랐다. 그동안 보았던 별과 녹색의 풍경은 거짓이었고, 회색의 죽어버린 진짜 세상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도대체 누가 이 모든 일의 책임자인지, 그자들도 자기들의 행동을

어쩔 수 없이 떠맡은 일이라고 합리화할 수 있을지 생각했다.

그들도 자기들에게는 잘못이 없고 그저 물려받은 일을 계속할 뿐이라고,

쥐똥 같은 규칙과 거의 모든 사람을 모지한 채로 가둬두는

이 비뚤어진 게임은 자기들 작품이 아니라고 할까.

<울>2 P320




소설이 말하는 미래의 이야기는 지금 내가 사는 세상과는 엄연히 다르다. 하지만 어떤 세상에서든 인간은 스스로를 지키고, 자신들이 생각하는 삶의 방식을 지킬 권리가 있다. 이미 일어난 일들은 어쩔 수 없지만, 어떤 행동을 할지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권력을 쥔 자들은 통제하기를 원한다. 진실에 대하여 생각하거나 협력하는 것을 금하고, 그저 주어진 현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살아가기를 바란다.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웬만해선 의문을 품으려 하지 않는다. 변화보다는 지속성을 원하니까. 안심하고 싶으니까. 나 역시 부당하다고 여기는 부분이 있어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 여겨도 외면하고 그냥 넘어가려고 한다. 진실을 들여다본다고 해서 좋은 결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기 때문에. 그렇게 권력을 쥔 자들이 바라는 바대로 침묵하며 살아간다. 용기내어 행동하는 이들에게 큰 빚을 지면서 말이다.

책은 지금 이 시대에도 유효한 질문을 던지며 메시지를 보낸다. "여기 있다고 비참한 건 아니에요.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고 그냥 둔다면 그건 비참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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