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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정과 망원 사이 - 1인 생활자의 기쁨과 잡음
유이영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6월
평점 :

코로나19로 생활반경이 확 줄어든 요즘 일상에세이가 대세로 떠오르고 있다. 얼마 전에 읽은 ‘어쩌다 해방촌’에 이은 ‘합정과 망원사이’도 시시하고 단조로운 하루를 어떻게든 버티려는 로컬에세이다.
‘동네에서 일하고 쉬고 생활하며 달리 보이는 풍경들에 대해 썼다. 언젠가 스쳤을지 모르는 이웃들과 연결되면서 하나씩 깨친 동네살이의 기쁨을 글로 나누고자 했다. 집필 중 맞은 팬데믹 시국은 동네에 숨어 있는 더 많은 얘깃거리를 찾아내 담을 기회를 줬다. 공교롭게도 합정과 망원 사이에 있는 풀판사와 책을 냈다. 역시 합정과 망원 사이에 사는 편집자와 동네 서사를 엮어가는 작업은 여러 순간 즐거웠다.’ 프롤로그.
합정과 망원사이 제목도 기가 막히게 뽑았다. 옛날 같았으면 합정동라이프~ 뭐 이딴 식으로 지었을 텐데 1인 생활자의 기쁨과 잡음을 상당히 담백하게 담았고 사진도 정감있다.
빨래방을 대나무 숲 삼고, 그림과 첼로를 배우며, 동네친구들과 달리기를 하는 마음. 거기 고요한 일상에는 무심한 신념이 가득하다.
“나는 합정동이 좋아. 아기자기한 골목길도, 개성 있는 카페 구경하는 재미도, 끼니마다 뭘 먹을지 고민하게 만드는 맛집들도, 랜드마크‘메세나폴리스’도 산책마다 만나는 길고양이도, 합정동의 모든 풍경들이 좋아.” 작가는 반년전의 심정을 이렇게 표현해놓고 비록 옆 동네로 집을 사서 이사를 가버렸지만 살고 있는 동안 최선을 다해 탐미했다.
작가의 말대로 권태로운 월세살이를 해결할 방법은 자가를 얻는 것 외에는 딱히 방법은 없다. 대출을 끼고 내 집을 마련하는 과정은 어떻게든 행복해지기 위한 여정이니까. 중요한 것은 권태가 찾아오기 전 최고치로 사랑할 때의 마음이 아닐까.
‘브래지어 없이, 화장 없이 활보하는 반경이 넓어질수록 내 자유의 영역도 확장된다. 어디까지가 동네인지 경계가 모호하다면,‘브래지어 안 입고 다닐 수 있는 곳’이라고 말하겠다.’p100
‘브래지어 제일 처음 만든 새끼 누구냐, 몇 대만 맞자. 내가 부라자 차고 다닌 날만큼.’p98
속 시원한 이런 글귀 너무 좋다. 나도 탈브라로 돌아다니는 동네산책자!
책의 말미에는 작가의 연애담이 살풋 들어있다. ‘사랑받을 때의 의기양양함을 기억하고 있는’그녀는 하필 따뜻한 기류가 흐르는 마지막 날 나 같은 건 도저히 해내지 못할 ‘이별’을 해낸다. 애인과 걸었던 골목길, 밥집과 카페를 다시 드나들면서 새로운 감정을 덧입히는 작업을 했다. 참으로 용감하다.
“악연은 악인과의 관계가 아니라, 벗어나야 함을 알고 있음에도 계속 얽히는 누군가와의 그것이라는 사실도, 그런 관계를 청산했으니 대견하다”는 그녀의 또 다른 하루를 응원한다.
마지막으로 작가가 거론한 초인종 이웃 고 안치범님의 희생을 애도하며, 살면서 누군가에게 의인은 못될망정 염치없는 주민은 되지 말자 그리 다짐한다.
“동네를 거니는 나의 여정이, 멀리 떠날 수 없는 시기에 독자들에게 작은 위안이 되었으면 한다. 지금 밖으로 나가 동네를 걸어보라고, 숨은 이야기들을 들여다보라고 동네 보물찾기를 제안하고 싶다. 익숙한 장소를 낯설게 보는 일이야말로 여행의 감각에 가장 가까워지는 경험일 테니 말이다.” p235
*은행나무 출판사의 지원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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