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세계
아드리엔 폰 슈파이어 지음, 황미하 옮김, 신정훈 감수 / 가톨릭출판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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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레위 19,18)반면, 신약 성경을 보면 이렇게 나와 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요한 13,34)이 두 문장의 중간 지대에서 예수님의 묵상이 전개된다. 그분께서는 자신의 이웃 안에서 하느님을 보는 법을 배울 필요가 없으시다. 그분께서는 우리 인간이 행해야 하는 것과 반대된 것을 행하셔야 한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이웃인 것처럼 그분을 사랑하는 법을배워야 한다. 또는 이웃을 자신 안에 받아들여서, 그 이웃이 예수님을 자기 자신처럼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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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세계
아드리엔 폰 슈파이어 지음, 황미하 옮김, 신정훈 감수 / 가톨릭출판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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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무에서 생겨난 순수한 피조물이다. 성자께서는 자신의영원한 근원으로부터 사람이 되셨다. 우리가 창조된 것과 성자께서사람이 되신 것의 차이는, 그분께서 인성을 취하시면서 우리를 이상태에서 나오게 하여 믿게 해 주신 것이다. 하느님 앞에 있는 사람은 환시(바라봄)의 은총을 받을 수도 있고, 해마다 특정한 축일의 신비를 보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언젠가 하느님께서는 그에게 그러한 바라봄을 허락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는 바라봄 없이 살아가는 법을 배우거나 예전에 바라보았던 것을 지금 바라볼수 없는 것과 연관 짓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그런 가운데 축제를 가톨릭적인(보편적인) 것으로 여기고 예전처럼 기쁨도 함께 누릴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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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세계
아드리엔 폰 슈파이어 지음, 황미하 옮김, 신정훈 감수 / 가톨릭출판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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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하신 아드님은 다양한 형태로 아버지께 기도하신다. 성령께서는 이 기도를 고취시키신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께서는 기도의영이시다. 성부께서 성자와 성령을 바라보시는 것은 처음부터 당신의 기도 방식이다. 그것은 고갈되지 않는다. 성부께서 당신을 드러내시고 기도로 이끄시며 기도의 소재를 주시기 때문이다. 또한 성부 하느님께서는 자기 계시 안에서 당신 자신의 기도를 보여 주신다. 그리고 세상의 창조주가 되시면서 당신의 본질을 바꾸지 않으시고, 당신의 창조 활동도 바꾸지 않으신다. 하느님께서는 창조 활동 안에서 당신을 밖으로 드러내 보이신다. 이 창조 활동은 기도 내에서 하는 활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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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리엔 폰 슈파이어 지음, 황미하 옮김, 신정훈 감수 / 가톨릭출판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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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 파견은 인간의 일상으로 옮겨지고 구체화된다. 성자께서는 세상을 위해 기도하면서 자신이 성부의 뜻을 실행하고 세상을구원하도록 그분께서 은총을 주시기를 바란다. 그리고 성부에게서받은 파견 전체를 청원기도 안으로 옮겨 놓고, 늘 청원 기도를 바치면서 그 파견을 적극적으로 수행하신다. 따라서 그분께서 받으신파견 전체는 청원 기도에서 인지할 수 있다. 성자께서는 세상과 사람들에게 결여된 모든 것을 가리켜 보이시고, 그것들을 실행하면서사람들을 청원 기도로 이끄신다. 또 사람들에게 부족한 것을 보여주시고, 하느님께서 은총을 베푸시어 그들을 구원하실 수 있고 또구원하고자 하신다는 것을 알려 주신다. 그러기 위해 하느님께서어떤 길을 택하실 것인지도 그들에게 알려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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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리엔 폰 슈파이어 지음, 황미하 옮김, 신정훈 감수 / 가톨릭출판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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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것은 모두 헌신적인 것, 사랑하는 것을 의미한다. 선한 것은 하느님께 투명하다. 그것은 안을 들여다보아야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 수 있는 뿌연 유리컵 같은 것이 아니다. 선한 것은 실제로투명하다. 그것은 안을 들여다보라고, 하느님과 교류하라고 관찰자를 압박한다. 믿음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것, 그분과 교류하는것, 기도의 마음가짐을 지니는 것은, 예수님을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께 나아가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우리는 믿으면서 하느님께 추상적인 태도를 취할 수 없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그분을 통하여살아 계신 하느님과 만나야 한다.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보여 주시자마자, 우리는 그분을 흠숭하고 감사드리며 헌신할 마음이 든다. 예수님을 (그리고 그분을 통하여 우리를) 하느님 아버지 앞에 그렇게 직접 서게 하는 것은 그분의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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