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행복하지 않으면서 내일은 행복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바보 같은 생각이다.Hic et Nunc(여기 그리고 지금).내가 살아 있는 이 시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 지금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이 참행복이다.
자신의 목표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서 자신의 몸과 마음이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면 욕망은 창조적인 힘이 된다.탐욕에 빠져 고통스러워하는 것도 문제지만 욕망을 죄악시하면서 움직이지 않는 것도 문제다. 강렬하게 원하는 진짜 욕망을 추구할 때 아름다운 생명력이 깨어난다.
믿음은 작은 쪽배를 타고 파도를 헤치고 나가는 우리들에게 삶의 의지를 가지게 해 준다. 그래서 믿음은 망상이 아니라 현실이라고 하는 것이다.
용기란, 우리가 좌절했을 때 우리 내부로 깊이 들어가그 속에 있는 특별한 능력을 찾아내고 힘의 원천을 알아내는 것, 고통과 역경에도 불구하고 인생을 긍정적으로볼 줄 아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고향은 바로 우리 내면에 있다. 그곳이야말로우리가 아무런 가식 없이 살 수 있는 곳이다. 아주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이 진리를 자신을 위해, 자신에게 맞는 방법으로 새롭게 발견하지 않으면 위로라고는 전혀 없는 바깥세상에서 위로를 찾기 위해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헛고생을 하는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다."
상처들 속에서 발견하는 나 자신은 모든 외적황폐와 파괴를 넘어 굳건히 존재한다. 나는 하느님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융C. G. Jung에 의하면 자신을 받아들이기란 자신의 그림자까지도 받아들임을 의미한다. 인간은 항상 양극, 즉 두려움과 믿음, 이성과 감성, 사랑과 공격성, 규칙과 불규칙사이에서 살아간다. 언제나 자기 확신에 찬 자세로 행동하는 사람은 양면 중 한 면만을 보여 주는 것이다. 확신에찬 사람은 자신의 입장은 논리 정연하게 말하지만 자기느낌은 잘 표현하지 못한다. 화제가 감정 부분으로 옮겨지면 그는 당황하거나 입을 다문다. 그가 자신의 가치에대해 지정으로 느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가치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 안에서 성립된다. 때문에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한 느낌이나 자아에 대한 존중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의해 좌우되도록 놔두어서는 안 된다. 물론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많은 영향을 받는 것은 사실이다."(C. G. Jung, Briefe I, Olten 1972,198f)자신이 된다는 것‘은 참된 자기 자신으로 돌아옴을 의미하고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서 독립함을 의미한다. 융은자신의 가치를 느끼기 위해서는 자기 삶의 역사와 화해부터 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난날의 삶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면서 자신의 가치를 느끼지 못한 원인만 찾으려고 애쓰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그는 주장한다.
자신의 가치를 느끼는 것은 곧 자신의 고유한 가치와 품위, 한인격체로서의 유일성을 안다는 뜻이다. 즉, 바로 나 자신, 나의 참모습, 하느님께서 만들어 주신 본래의 나를 깨닫는 것이다.자신을 믿는다는 것은 남에게 무엇을 믿고 맡기는 것, 자신의느낌을 믿는 것, 그리고 자신을 받아들이고 보호하고 계신 하느님께 믿음을 두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하느님께로 나아가는길은 우리의 심리적 실상을 지나쳐 갈 수 없다. 심리적 실상을 모른척한다면 미국인들이 ‘spiritual bypassing‘ 이라고 말하듯이현실에 대한 종교적 비약이 될 것이다. 우리 삶에 존재하는 심리적 실상을 간과하고 나아갈 수 있는 영적 길은 없다. 그리스도는우리 각자에게 실제의 모습으로 내려갈 수 있는 용기를 주시려고인간이 되어 오셨다. 오직 아래로 내려가야만 하느님께 올라갈 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