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이 두려운 나에게 - 나를 성장하게 하는 결정
안셀름 그륀 지음, 최용호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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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수도승들이 사용했던 영의 식별 방법은 우리가 결정을 내릴 때에도 도움을 줍니다. 수도승들은 우리의 영혼에 있는 평화와 자유, 활력, 사랑이라는 네 가지 속성을 이용하여 각각의 속성이 느껴지는 방안을 선택했습니다. 그 방안이 바로 하느님의 뜻이라 할 수 있고 그 안에 하느님의 축복이 있지요.
우리의 영혼이 지닌 이 네 가지 속성은 성경에서 예수님이 지니셨던 영의 특징으로 묘사하는 것과 일치합니다. 예수님은 몸소 당신에 관해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한14,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영이 있는 곳에는활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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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이 두려운 나에게 - 나를 성장하게 하는 결정
안셀름 그륀 지음, 최용호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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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의 심리학자인 칼 구스타프 융은 스스로 자기 인생을 책임지고 그를 통해 남들의 비판도 받아들이는 용기를 갖는 것에 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생이라는 실험을 끝까지수행하는 것은 커다란 모험을 감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를마다하는 사람은 중대한 일을 이룰 수 없다."
결정을 내리는 사람은 위험을 무릅쓰고 어려운 일을 꾀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결정을 통해 자신을 사람들에게 드러내기 때문이지요. 그는 자신의 껍질을 깨고 나올 용기가 있는사람이며, 다른 사람들 앞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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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이 두려운 나에게 - 나를 성장하게 하는 결정
안셀름 그륀 지음, 최용호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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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다른 사람들의 칭찬을 듣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에게 칭찬이란 매우 쉽게 변하는 것임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이 사실을 자주 체험하고 있습니다. 대중 매체와 인터넷에서 크게 호평을 받던 사람이 하루아침에신랄한 비난을 듣는 일은 그다지 드문 일이 아니니까요.
부, 풍요, 인정, 칭찬을 우리 삶의 기반으로 삼는 것은 위험한 일이며, 그중에서 어느 것도 믿을 만한 것은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견고한 기반을 선택해야 합니다. 즉, 끊임없이새로운 생명을 선택해야 하는 것이지요. 생명을 선택하는 사람은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슬기로운 사람과 같아서 그가 지녔던 환상이 깨진다 해도 그의 집이 무너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의 집은 근본적으로 하느님이라는 견고한 기반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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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이 두려운 나에게 - 나를 성장하게 하는 결정
안셀름 그륀 지음, 최용호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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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은 불평하는 것을 선택합니다. 그들은 자기 연민에 빠져, 생각이 늘 자기 주변을 맴돌게 되지요. 또 그들은자신의 불만족스러운 상황을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립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바라보시고, 그들이 새로운 길, 기쁨의 길을선택하기를 바라십니다. 자신에게 상처를 주고 울리는 말에더 이상 사로잡히지 않고, 우리의 마음으로 되돌아올 때 그곳에서 기쁨의 샘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기분이 다른 사람의 손에 좌지우지되지 않도록 하십시오. 자신이 어떤 감정의 영향을 받는다면, 자기 자신에게그 책임이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자신은 늘 좋은 기분을 유지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부담을 주거나, 부정적인 감정들이 생기지 않도록 억눌러서는 안 됩니다. 자신의 슬픔과 눈물의 원인을 면밀히 살펴보고, 혹시 철없는 어린아이처럼 자신의 삶에 대해 가졌던 환상에 그 원인이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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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하느님과 이성
미하엘 제발트 지음, 신정훈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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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적 윤리‘인가, ‘윤리 신학‘인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개신교 신학 내에서 이미 이전에 사용되었던 ‘신학적 윤리‘라는 표현이 가톨릭 신학 안으로도수용되었다. ‘윤리 신학‘ 개념이 오직 "전체 신학 안에서 특정 분야 내지 신학의 특정한 특성을 표현하며, ‘모랄‘이 신학이라는 총칭의 세분화에 사용되는 것에 비해 ‘신학적 윤리‘라는 표현은
"우선적으로 중요한 것이 윤리 Ethik, 즉 사회 내 윤리적 숙고의일반적인 관심사이면서도, 바로 여기서 그리스도교 신앙을 토대로 하는 신학적 전망으로부터 이 사회에 기여가 이루어진다"는것을 명료하게 한다는 점에서 ‘윤리 신학‘ 개념을 비판하는 이들이 ‘신학적 윤리‘라는 표현을 선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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