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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루민
오카베 에쓰 지음, 최현영 옮김 / 리드비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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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뢰 글리코에 이어 리드비 출판사를 통해 서평단에 선정되어 어제 받은 따끈한 신간이다. 어제 오후에 받아서 저녁 식사 후 택배 봉투를 뜯고 등장인물 부분 잠시 훑어보다가 그 자리에서 완독하게 된 미친 흡인력의 소설이다. 거실 소파로 이동해 읽고 있었는데 남편이 내가 있는 줄 모르고 불을 꺼버려서 진심으로 뱃속 저 안쪽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분노의 괴성을 질러버렸다. "이 흐름을 끊어버리면 어떻게 하냐고!"

내가 아는 "OO"는 누구에게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을 다 읽고 나면 누구든 그렇게 말할 것 같다. "맞아, 나도 이런 사람 알아!" 그것도 초등학교 시절부터,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사회생활까지 꼭 만난 적이 있는 사람이다. 당해본 사람은 얼마나 고약한지 알기 때문에 그 사람의 미래가 궁금하다. 하지만 그 미래까지 항상 그래왔듯이 그렇게 너무 잘 살고 있어서 화가 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지금은 믿는다. 그런 건 다 언젠가 밝혀질 거라고)

작가의 머릿속이 궁금해졌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를 다 다루기에는 책 지면이 부족했을 텐데 이런 구성으로 그걸 다 녹여내다니, 천재인가! 게다가 얼핏 보면 너무 다양해서 연결되기 어려운 여러 사람들의 증언으로 완성을 해버리니 말이다.

사람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고 믿는다. 아무리 고쳐 쓰려 해도 그 고약한 성질은 변하지 않는다. 개과천선이란 말은 아무에게나 쓰는 것이 아니다. 루민의 질투와 시기하는 성질은 좋은 방향으로 나아갔다면 본인을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상을 파멸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2등이 1등을 보며 쟤만 없으면 내가 1등이니 죽여버려야겠다는 마음과 같다. 직접적인 살인을 저지르지 않더라도, 사람을 죽여버렸다.

마지막을 향해가며 루민의 실체를 사람들이 알고 멋진 복수가 행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루민은 죽을 때까지 자리를 바꾸어가며 그렇게 진심이며 성실한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소재를 훔치고 착한 마음을 이용해 사람을 죽일 것이다.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어쩌면 나도 루민처럼 쓰고 있는 글들을 다 미화시키는 것은 아닐까라는 걱정도 해본다. 나 역시도 그 누군가에겐 좋지 않은 사람일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돌아보면 오히려 나는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나는 정직했고, 성실했고, 내가 하는 일을 사랑했으니까.

​내 인생을 갈아 넣었다 싶을 정도로 에너지를 쓴 프로젝트를 런칭했음에도 불구하고 퇴사를 결심하게 된 가장 결정적인 원인은 한 사람 때문이었다.

이 프로젝트를 엎지 않고 런칭까지 진행하는 것이 목표였기에 사소한 분쟁은 내가 양보하고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사소한 일들이 반복되었고 또 참고 참았다. 런칭 후 개선을 요청했다.

회사에서는 당연히 눈앞에서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에게 힘을 실어준다. 기존에 이루어낸 어려운 계약을 따낸 것보다는 현재 진행사항이 중요한 상황이라면 그 사람에게 힘을 실어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사람은 본인에게 힘이 실렸다고 생각한 순간부터 수많은 거짓말을 했고, 개인적인 자리에서는 여러 사람을 비판했다. 그리고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착한 사람, 피해자 행세를 했다.

그는 본인이 주인공이어야 하는 사람이었다. 이 소설에서는 그런 타입의 사람들의 성향을 "자기애성 성격장애"라고 부른다. 사이코패스와 동일한 분류에 속한다. 우리 말에 비슷한 단어가 있는 것 같다. "관종"이라고.

결국 나도 사람이 싫어 다 놓고 나왔다. 루민에게 당한 많은 사람들과 같이. 그렇다고 나의 인생이 드라마틱 하게 변하거나 위로받는다거나 그가 처벌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는 오히려 더 본인을 주인공화하기 위해 고군분투할 것이고 그가 원하는 성공을 가져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에게 중요했던 것은 나 자신의 본질이었다. 빠르게 끊고 더 주지 않는 것이 승리라고 생각했다. 모방해서 가져가는 것은 한계가 있다. 내려놓고 나옴으로 인한 상처가 크긴 했지만 그런 사람에겐 더 내어주지 않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난 한 번 성공해 본 사람이고, 그래서 또 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기 때문이다. 그가 있는 곳에서는 보여주고 싶지 않다. 또 빼앗으려 달려들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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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투라 CULTURA 2025.12 - Vol.138, 2025 ICON
작가 편집부 지음 / 작가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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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트라 #culturamagazine #서평단 #도서제공 


잡지를 읽어보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매거진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콘텐츠들이 SNS를 장악해버렸으니 이제는 출판되어 나오는 잡지를 본다는 것이 얼마나 '수고스러운' 일이 되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드를 넘겨 소비하기보다는 소유하고 싶은 기분이 든 이유는 주제였던 '2025 ICON' 때문이었다. 나는 문화 예술 전반을 다 즐기는 넓은 사람은 아니기에 모든 카테고리의 이슈는 다 알 수는 없지만, 책 좋아한다는 사람들에게 성해나, 박정민만큼은 정말 2025년의 아이콘으로 선정되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하지 않을까. 


표지가 곧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전부인 SNS 매거진들 때문에 출판 잡지들이 주는 느낌이 어땠는지 잊고 살았던 것 같다. 그동안 수많은 피드 중, 간택 당하기 위해 짧고 굵게 남기는 이미지와 텍스트가 너무도 당연해졌다. 하지만 출판물들의 표지와 주제는 중심이 되는 테마일 뿐 커다란 주제 하에 다양하고 넓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이미 내 손안에 들어온 이상, 책자는 다 읽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한 번 훑어보고, 다시 내려놓았다가 또다시 펼쳤다가를 반복하며 너무도 짧은 시간에 끝까지 읽어버렸다. 이게 맞나 싶어 다시 진지하게 앉아서 읽어보았더니 다 읽은 게 맞았다. 이게 잡지의 매력 아니었던가, 그걸 얼마 만에 느껴보는지 그 반가움이 정말 가득했다.


올해만 국립중앙박물관을 아이와 함께 세 번 갔다. 이제는 내 위주의 관람이 아닌 아이 위주의 "구경"이 되다 보니 재미보다는 의무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워낙 인기가 좋다 보니 예전처럼 조용한/한가한 관람도 어려워졌다. 그래서 다시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점점 시들해지는 중이었는데, 이슬람실이 신설되었다는 소식을 읽었다. 


사진으로 찍어둔 페이지 외에도 다른 페이지에 담긴 작품들도 12월호 전체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슬람 작품들은 뭐라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할지 그 단어를 찾지 못하겠지만 가장 가까운 단어를 찾자면 "예쁘다". "섬세하다"도 맞지만 그 단어로는 뭔가 부족하다. 그런 예쁨이다. 1월 중 전쟁기념관 전시를 보러 가기로 했는데 들러야겠다. 그 예쁨을 보러.


결혼기념일에 다 같이 보고 온 주토피아2. 디즈니의 고집 때문에 아쉬운 느낌이 가득했지만 눈을 즐겁게 하는 볼거리들이 많았다. 이제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더 이상 아이들의 것이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이런 인터뷰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출산율의 감소로 인해 영향을 받는 것은 산업뿐만 아니라 문화, 예술 전반도 마찬가지다. 주요 타깃은 아직 소비할 여력이 그래도 남아 있는 많은 인구수를 자랑하는 40대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미 TV를 보는 연령대는 더 높아졌고, 아이돌 보다 트롯이다. 이 흐름은 국내에 국한되지 않고 전세계적이다. 


진행하던 업무 중 주토피아2와 관계가 있던 일이 있어 특히 개봉 전부터 관심 있게 지켜봤다. 이 영화의 타깃이 어린이들이었다면 지금의 흥행은 어려웠을 것이라 생각한다. 내년에 개봉할 토이스토리5도 같은 맥락에서 타깃은 토이스토리1을 10대에 보고 자란 지금은 40대가 된 사람들일 것이라 생각한다. 이 타깃 설정과 관련해 업무 관련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40대의 사람들이 아직도 디즈니 콘텐츠는 10대의 감성이라 생각하며 접근하는 경향이 있어서 그 부분에서 많은 논쟁을 벌였던 기억이 있다.


시리즈물은 첫 경험한 시기의 사람들이 나이를 먹으며 다시 찾는 경향이 있기에 이제 디즈니에서도 기존 작품의 시리즈로 어린이를 공략하는 것보다는 겨울왕국과 같은 완전히 새로운 IP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자라나며 시리즈를 찾아보게끔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우리가 어릴 적 모르던 새로운 IP가 더 익숙하다. 요즘 살짝 시들해졌다 하지만, 티니핑이 그 예가 될 수도 있다. 


2024년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던 성해나의 '혼모노'. 사실 이 작품 또는 김기태의 '보편교양'이 왜 대상이 아닌지 의아했다. 두 작품 모두 "고급진 유머를 사용했다"라며 사람들에게 추천했다. 작년, 김기태의 해당 작품이 실린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이 출간되자 얼마 되지 않아 읽었다. 사진이 현실보다 더 해상도가 높게 나오는 필터를 쓴 것 같은 느낌의 글이었다. 현실보다 더 정교한 현실, 그래서 더 왜곡되어 보이고 진짜인지 의심하게 만든다. 그런데 현실이 맞다. 거기서 오는 고급진 유머.


성해나의 단편집도 곧 나오리라 생각했는데 그전에 2025년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통해 '길티클럽: 호랑이 만지기'를 접했다. 읽다가 좋으면 작가가 누구더라 하면서 다시 찾아보는 편이라 이 작품이 성해나의 작품일 줄은 생각도 못했다. '혼모노'의 강렬한 붉은색을 연상케하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글로 느끼는 시각적 자극보다는 불편하고 가까이하기 싫은 감정이 가득했다. 도대체 이 작가는 누군지 찾아보고는 깜짝 놀랐다. 이렇게 전혀 다른 소설을 써내다니. 두 소설의 다름으로 인한 불편함과 두려움이 공존하기에 아직 '혼모노'는 읽지 않았다. 


올여름, 세 회사의 협업 장소에서 한 담당자가 다른 담당자에게 읽어보라며 '혼모노'를 건넸다. "이 책 좋아요?"라고 묻는 다른 담당자에게 책을 건넨 담당자는 "나는 썩 좋지 않았어"라고 대답했다. 그 느낌이 뭔지 잘 알 것 같다. 사람들은 익숙함을 좋아하니까.


놀라운 사실이 하나 더 있다. '혼모노'를 읽은 후 머릿속에 그려지는 새빨간 색채에 매료되어 그녀의 프로필을 찾아보고 SNS를 팔로우 했는데, 이런 재능에 이런 미모를 지녔다니! 저 예쁜 외모 때문에 힘든 일이 많았을 것 같다. 그 힘든 일들이 자양분이 되어 더 좋은 작품을 써 내려가겠지. (*나는 왜 이 외모에 재능은 한 줌도 없는 걸까.)


2025년 영화 아이콘: 박정민 이라고 하지만 책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도 아이콘이 아닐까. '첫 여름, 완주'를 베스트셀러로 만든 출판사 대표도 박정민이고, 성해나를 샤라웃 한 사람도 박정민이고, 도서전에서 가장 긴 줄을 만든 사람도 박정민이니까. 박정민을 보러 도서전에 간 건 아니었지만 사람들이 북적이는 그 작은 부스 앞을 지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곳의 복도만 성수동 팝업 거리 같은 느낌이었다. 경호 인원들이 외쳐대던 "서 있지 마세요, 움직이세요"가 아직도 기억난다. 


'첫 여름 완주'를 읽지도 않았고, '혼모노'를 읽지도 않았지만 올해 박정민을 읽은 느낌이다. 이 배우는 왜 이렇게 여러 매체에 등장하는 걸까. 사람에게는 정말 "때"라는 것이 있다는 걸 느낀다. 그는 하루아침에 유명해지지도 않았고, 계속해서 작품을 했다. 그리고 글을 썼다. 


그렇게 쌓인 세월이 그의 2025년을 만들었다. 이룬 게 별로 없는 것 같은 나의 2025년을 돌아보며 그가 외롭게 쌓아 올린 세월을 부러워한다. 나는 무얼 위해 세월을 쌓고 있을까, 나의 때는 올 것인가. 그리고 그가 맞이한 2025년을 바라보며 희망을 갖는다. 나에게도 그에게 2025년일 그런 해가 올 것이라고.


단편집도 흐르듯 읽다가 작품이 마음에 들면 제목과 작가 이름을 찾아보듯 음악도 흐르듯 듣다가 곡이 마음에 들면 그제야 제목과 아티스트의 이름을 찾아본다. 올해 그런 곡이 "멸종위기사랑"이었다. 도대체 이 아티스트의 머릿속엔 무슨 음악이 들어있는 걸까. 1990년대부터 최근까지 내가 들은 모든 전세계 음악이 다 들어있는 기분이었다. 절대로 새롭지 않고 다 들어본 익숙함이었다. 1996년생인데 뱃속부터 들었던 걸까. 


K-POP 관련 업무로 1년을 보냈기 때문에 2025년은 내내 100위권 내 차트인 곡을 들었다. K-POP 잘 안 들었는데, 이렇게 많이 자주 들은 건 처음인 것 같다. (물론 차트인 한 곡들 중 K-POP만 있지는 않다.) 그 와중에 유독 귀를 끌어당기는 곡이 "멸종위기사랑"이었다. 듣고 또 듣고, 돌려서 또 듣고. 그리고 퇴사를 결심하던 날 아침에도 이 곡을 들으며 힘을 냈다. 힘이 나는 곡은 확실하다. 


장난스럽기도, 진지하기도, 멋있기도, 익살스럽기도, 잘생겼기도, 못났기도 하다. 한 곡에 그렇게 많은 표정과 감정들을 드러낼 수가 있을까. 그 역시도 얼마나 많은 세월을 쌓아 올려 지금에 도달했는가. 한 방송에서 그의 어머니가 인터뷰했던 내용이 기억난다. 자꾸 우리 딸한테만 관심이 많은데 우리 아들도 잘났다고 관심 가져달라 비슷하게 했던 말. 그의 때도 왔다.  


참 TV 안 보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 둘은 한 편씩은 찍먹해봤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소설을 읽은 지 5년이 넘은 것 같다. 이후 드라마나 영화 계약을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쉽지 않은 엔터테인먼트 산업이다 보니 언젠가 10년이 넘기 전에는 나오겠지 생각했다. 이게 10년을 넘어버리면 또 그땐 사회 분위기가 달라질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의외로 빠르게 영상화가 되었는데, 여러 인물들이 조연이 되어 버렸다. 사실 김 부장은 모든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아니었다. 김 부장이 떠오르는 나의 10년 전 몇 상사들이 떠오르며 나도 김 부장을 관찰하는 3인칭 관찰자가 되어 아주 빠르게 읽어 내렸다. 그는 희화화의 대상이기도 했고, 조롱의 대상이기도 했다. 내가 아는 그 몇 상사들과 겹치며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다짐했다. 끝까지 깨달은 느낌도 들지 않았다. 꼰대 그 자체라고 생각했고, 마지막까지도 정이 하나도 가지 않았다.


저렇게 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남편에게도 추천했다. 책 읽기 싫어하는 남편이 세 권을 빠르게 흡수했다. 그만큼 김 부장이란 인물은 모두가 금방 감정이입이 될 만큼 이 사회 여기저기 있다. 김 부장에 대한 새로운 시선들이 생긴 것은 연출가의 의도일 수도 있고, 시청률을 올리기 위한 장치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보지 않았다. 


흥미로운 것은 여기 같은 지면에 "태풍상사"를 함께 실었다는 점이었다. 김 부장 이야기만 있었다면 대충 훑고 넘어갔을 것이다. 김 부장과 동갑내기의 외환위기 시절이라니. 그래서 또 감정이입을 했다. 우리 집도 외환위기 시절 망했다. 하지만 망해서, 더 떨어질 절벽이 없었기에 난 그 어린 나이에 기어올라가는 법을 배웠다. 나와 다른 나이로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이지만 같은 삶을 살았다. 포기하고 또 포기하고 양보하고 최종적으로 얻는 걸 배웠다. 아버지가 남긴 사업을 살리기 위해 꽃을 사랑하던 청년을 잃었다고 한다. 나 역시도 나의 꽃을 잃었다. 하지만 지금을 얻었다. 잃어야 얻는다. 김 부장은 잃지 않으려 몸부림쳤기에 다 잃었다. 그래서 꽃을 잃은 청년이 아쉽지만 그에게서 더 나와 같음을 읽는다. 뻔한 결말이라 다 보진 않았지만.


2025 ICON으로 시작해, 나의 2025년뿐만 아니라 인생을 되돌아봤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한 해다. 이 1년을 하나의 목표를 위해 잃고 참고 견디며 해냈다. 그리고 미련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할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세상에 할 일은 너무 많다. 


이렇게 읽고 글을 쓰고 싶어서 돌아왔을지도 모른다. 하나의 목표에 충실하기 위해 모든 걸 제쳐두고 열심히 달려왔기에 후회는 없다. 비록 2025 ICON처럼 알려지지도 않았고 인기를 얻지도 않았고 나는 그냥 1년 전 이 일을 하기 전 나와 달라진 것이 없다. 하지만 믿는다. 쌓은 세월은 사람을 배신하지 않는 것을. 그게 2025년이 아니었을 뿐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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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 인 캐빈 10
루스 웨어 지음, 유혜인 옮김 / 필름(Feelm)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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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은 후,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두 번 책을 펼쳤고, 그 두 번 만에 다 읽었다. 


일본 추리 소설에 익숙한 편이고, 또 일본은 많이 가봤기 때문에 어떤 설정이든 현실성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가끔씩 읽는 영미 소설들은 현실적으로 내가 겪지 못하는 환경들이 많아서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기보다는 영화나 드라마 같은 이야기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생각보다 손이 안 가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읽기 시작하면 너무도 재미있게 빨리 끝나버려서 항상 당황스럽다. 피터 스완슨의 "죽여 마땅한 사람들"이 그랬고, 알렉스 안도릴의 "아이가 없는 집", 그리고 프리다 맥파든의 "네버라이"가 그랬다. 루스 웨어의 "우먼 인 캐빈 10"도 그랬다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하는 설정이기 때문에 더 반전을 상상하지 못하는 걸까. 마지막은 내가 상상한 것보다 더 꼬인 반전이 나타났다. 그만큼 재미있었다.


한 밤중 집에 강도가 들었다. 도대체 누가, 왜 그랬는지 모르기 때문에 이게 사건의 시작일까 생각했다. 그런데 사건은 원래 계획되어 있던 여행에서 벌어졌다. 도입부의 강도 사건은 실제 사건과 관계가 없지만 일단 그만큼 흥분감을 고조시키고 공포를 조성하기에 충분했다. 실제 사건이 전개되는 선상에서의 이야기는 훨씬 더 시간적으로 길었고, 페이지 수도 상당했으나 강도 사건의 첫인상이 더 컸던 것이 사실이다. 그 긴장감은 스토리 내내 계속해서 이어진다.


북유럽을 가보지 않아서 상상만으로 모든 걸 읽어버렸다. 만약 내가 북유럽 크루즈를 경험했다면 더 공포스러웠을 수도 있다. 어두운 바다와 새카만 밤, 깎아지른 듯한 절벽은 겪어본 사람들이 더 잘 알 것이다.


한순간도 긴장감을 놓을 수 없는 촘촘한 전개와 와이파이도 터지지 않는 선상이라는 완벽한 밀실 안에서의 이야기로 한 번 잡은 책은 놓을 수 없었고, 늦은 밤 몰려오는 잠도 모두 물리쳐버린 채 463페이지에 달하는 페이지를 그냥 말 그대로 순삭 해버렸다. 연휴 중이어서 다행이었지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


이야기는 결국 "믿음"이라는 한 단어로 정리된다. 믿지 않으면 내 편이 아니고, 믿으면 내 편이다. 사람을 믿는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주변에 정말 믿을만한 사람들을 두고도 믿지 못하고, 믿지 못할 사람을 믿어버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래서 결국은 믿을 건 가족뿐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마저도 배신당하는 현실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믿을지 말지는 나의 몫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이 겪고, 느껴보며 안목을 키울 수밖에. 하루에도 여러 번 내가 믿는 것이 옳은 것인지 아닌지 여러 번 혼란스럽다. 그래도 믿어야지. 내가 가는 길이라면. 나를 믿고, 내 주변을 믿고 힘내보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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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테뉴, 사유의 힘 - 더 나은 삶보다 나다운 삶을 위한 인생문답
임재성 지음 / 필름(Feelm)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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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만난 필름출판사의 도서, 이번엔 몽테뉴다. 나에겐 이런 사유와 관련된 독서가 가장 취약하다고 할 수 있는데 고등학교 시절 수우미양가에서 "가" 3종 세트였던 교과목이 수학, 가정, 윤리였기 때문이다. 열여덟 나이에 철학이 쉽다 하면 그것이야말로 말도 안 되는 소리이긴 하지만 아무튼 머리로 이해하지 못하면 문제도 풀 수 없는 나에겐 생각과 철학과 사유에 관한 주제들은 어렵다 못해 버거웠다.

요새 들어 이런 책들이 해설과 함께 많이 나오고 있다. 베스트셀러가 된 책들도 있는 걸 보면 사람들은 지금 지나치게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에 무언가 붙들 것이 필요한 듯하다. 나처럼.

야근이 이어지던 어느 날, 스트레스와 온갖 불편한 생각들로 머리가 가득 차 잠을 이루지 못하던 시간, 침대 머리맡에 놓아둔 이 책이 보여 읽기 시작했다. 심신이 피곤했지만 1장을 단숨에 다 읽어버렸다. 힘든 마음을 달래주는 처방전이었을까.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 결정하거나 가르치지 않았다. 판단하지 않아도 되고, 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냥 멈춰 서도 되고,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사실, 그게 가장 듣고 싶은 말이었다.

지난주는 정말 최고 등급의 스트레스를 겪었다. 이만큼 진행된 이상 발을 뺄 수 없지만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 못하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 추구 또한 따를 예정이었기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고통은 더해갔다. 그때 내 결정은 그냥 흐르게 두는 것이었다. 잘 되게 하려는 마음이 더 망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무조건 옳다고 생각해선 안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격한 풍랑 속에 나를 내려놓은 순간,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답은 풀려나가기 시작했다.

먼저 화내면, 혹은 먼저 울면, 즉 먼저 감정을 드러내면 지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참아봤다. 여러 상황에서 나는 참지 못한 순간 회사를 떠났다. 다른 보완장치를 마련했거나 아니거나 상관없이 나는 감정을 참지 못했다. 그래서 여러 번 다 해놓은 밥그릇을 남에게 넘길 수밖에 없었다. 참고 견뎠더라면 나의 성과였고, 내가 받을 칭찬이었을 수도 있는 그 모든 것들을 남 좋은 일로 넘겨주고 말았다. 그 참지 못하는 분노라는 감정 때문에.

책을 읽다 보면 책이 상하는 것이 아까워 메모하거나 표시하지 못하는 편이다. 하지만 이 책만큼은 정말 많이 표시해가며(접어가며) 읽었다. 내가 나를 이기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될 때마다 다시 읽어보기 위하여.

p.86
누구나 감정에 흔들릴 수 있다. 하지만 그 감정에 머무는 태도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화가 날 수 있지만 그 화가 나를 무너지게 둘 것인지, 아니면 나를 더 강하게 만들 계기로 심을지는 내가 결정할 수 있다.

p.96
버텨야만 하는 시간이 있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 말도 위로가 되지 않는 순간. 그럴 땐 움직이기보다 멈추고, 말하기보다 조용히 견디는 일이 더 강한 선택이 된다. 견딘다는 것은 무기력함이 아니라 흔들리는 삶 앞에서도 나를 지키려는 가장 깊은 힘이다.

p.101
오늘 하루, 말없이 견디는 당신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 침묵의 시간이 당신을 더 깊고 단단하게 만들고 있다고. 지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지만 그 고요 속에서 당신은 분명히 자라고 있다고. 몽테뉴처럼 조용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p.112
그의 글은 완결을 추구하지 않았다. 흩어지고 충돌하는 사유의 흐름을 있는 그대로 기록했다.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산만하게 보일지라도 개의치 않았다. 중요한 것은 완벽한 문장이 아니라 정직한 고백이었다. 그렇게 글을 통해 그는 삶의 흔들림 속에서도 다시 자신으로 돌아오는 길을 찾아갔다.

p.144
지금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알고, 너무 빠르게 판단하며, 너무 쉽게 잊는다. 이런 우리에게 고전은 정답을 주지 않는다. 다만 묵직한 질문 하나를 남긴다. 그리고 그 질문은 우리를 다시 자신에게로 이끈다. 삶은 예기치 않게 흔들리고 우리는 그 흔들림 속에서 길을 잃기도 한다. 그럴 때 한 줄의 문장이 나침반이 되어 다시 방향을 잡게 해줄 수 있다.

p.151
"말은 절반은 말하는 사람의 것이고, 절반은 듣는 사람의 것이다. 듣는 이는 말을 온전히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p.166
더는 외우는 삶에 머물러선 안 된다. 책을 많이 읽는 것보다 그 책 한 권을 깊이 살아내는 일이 중요하다. 넘치는 정보 속에서도 내 생각을 지키고, 유행하는 의견 앞에서도 내 판단을 세우는 힘. 그것이 오늘을 지탱하는 사유의 근력이다.

p.172
눈앞의 일도 충분히 소화하지 못하면서 마치 할 일이 부족한 것처럼 미래를 예측하는 데 시간을 낭비하는 모습은 인간의 본성이 얼마나 호기심으로 가득한지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p.180
인간관계, 직장에서의 스트레스, 삶의 예기치 않은 일들 앞에서 흔들릴 때 진짜 문제는 대개 사건 그 자체가 아니다.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불안을 키운다. 그 시선이 두려움에 잠식되어 있거나, 자존감의 결핍에서 비롯되었거나 과거의 상처를 덧씌운 결과일 수 있다.

할 일도 많고 생각도 많은데 집에 있으면 그 생각에 파묻혀 아무것도 못할 것 같아서 일단 짐을 싸서 나왔고, 책을 읽었고, 서평을 쓴다. 찜질방에서. 아이들은 신나게 놀고, 남편은 뜨끈하게 몸을 지졌다. 적어도 나는 해야 할 일 중 세 가지는 했다.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스스로에게 갇혀있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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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살인
카라 헌터 지음, 장선하 옮김 / 청미래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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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으로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내 인생에 이렇게 바빴던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일주일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메일로 슬쩍 들어온 서평 제안. 진짜 바빠서 몇 개는 회신을 못했는데 간단하게 내용을 읽어보니 안 읽으면 후회할 것 같은 느낌이라 이 소설은 꼭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수락했다.

나의 하루는 자고 일어나서 아침을 꼭 먹고 출근을 한다. 일하는 중에는 일 외의 것을 신경 쓰지 못해 아이들 교육도 친정엄마가 도맡아서 해주시고 있다. (이런 내 성격을 너무 잘 아신다.) 항상 야근을 해도 일은 쌓여있다. 늦은 시간 집에 들어와 씻고 누워 자기 전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게 바로 책 읽기다. 그래서 나는 텔레비전도, 유튜브도 잘 보지 못하는데, 가입하고 봐야 하는 OTT는 더 장벽이 크다.

리얼리티 쇼도 그다지 즐겨보지 않는 편이라 소설책을 받아들고 읽기 시작했을 때, OTT 리얼리티 쇼의 대본 같은 형식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등장인물도 상당히 많고, 익숙하지 않은 영어 이름들이다. 쇼 형식에 맞춰 전개되다 보니 기사도 있고, 댓글도 있고, 이메일도 있고, 문자 메시지도 있다. 첫 화 내용은 이 형식에 익숙해져야 해서 꽤 느린 속도로 읽었다. 그리고 제2화에 들어가서부터...

너무 재미있어서 속도가 미친 듯이 빨라졌다. 거의 600페이지가 되는 분량인데 첫 화 읽은 시간보다 2화부터 마지막까지 읽은 시간이 더 짧다. 출퇴근길 지하철에서는 내릴 시간이 되는 것이 야속할 정도로 몰입해서 읽었다. 아무리 시청률이 중요하다 해도 이렇게 매 화 반전이 있는 것도 신기하다. 그런 반전에 반전에 또 반전을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쉽지 않게 결말을 맞이한 것은 정말 단단하게 마련해둔 스토리 덕분이다. 여러 반전을 엮어두는 이야기들은 어딘가에 꼭 하나 구멍이 있기 마련인데, 구멍 하나 없이 모두 마무리했다.

추리소설의 결말에서 가장 맥 빠지는 경우는 "귀신이었어요", "정신이 나간 사람이었어요", "거짓말이었어요" 같은 대충 마무리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그래야만 끝나는 경우들이 종종 있다. 그걸 어떤 식으로 처리했는지가 맥이 빠지냐 안 빠지냐를 결정한다. 이 소설의 경우 법의학자, 정신과 전문의들의 전문지식들로 설명했기에 하나도 맥이 안 빠졌다. 아, 그런데 이게 결정타는 아니다. 이 때문에 맥이 빠질 수 있었지만 그렇지 않았다는 강조이다.

왜 제목이 "가족 살인"인지, 왜 이런 형식을 통해 전개해야만 했는지 책을 덮은 후 너무 분명해졌다. 매번 추리소설을 읽고 마지막에 같은 생각이 든다.

"세상은 넓고 또라이는 많다."

+ 똑똑한 또라이도 참 많다. 게다가 다른 나라 또라이들의 양상은 가늠하기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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