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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루민
오카베 에쓰 지음, 최현영 옮김 / 리드비 / 2025년 12월
평점 :
지뢰 글리코에 이어 리드비 출판사를 통해 서평단에 선정되어 어제 받은 따끈한 신간이다. 어제 오후에 받아서 저녁 식사 후 택배 봉투를 뜯고 등장인물 부분 잠시 훑어보다가 그 자리에서 완독하게 된 미친 흡인력의 소설이다. 거실 소파로 이동해 읽고 있었는데 남편이 내가 있는 줄 모르고 불을 꺼버려서 진심으로 뱃속 저 안쪽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분노의 괴성을 질러버렸다. "이 흐름을 끊어버리면 어떻게 하냐고!"
내가 아는 "OO"는 누구에게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을 다 읽고 나면 누구든 그렇게 말할 것 같다. "맞아, 나도 이런 사람 알아!" 그것도 초등학교 시절부터,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사회생활까지 꼭 만난 적이 있는 사람이다. 당해본 사람은 얼마나 고약한지 알기 때문에 그 사람의 미래가 궁금하다. 하지만 그 미래까지 항상 그래왔듯이 그렇게 너무 잘 살고 있어서 화가 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지금은 믿는다. 그런 건 다 언젠가 밝혀질 거라고)
작가의 머릿속이 궁금해졌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를 다 다루기에는 책 지면이 부족했을 텐데 이런 구성으로 그걸 다 녹여내다니, 천재인가! 게다가 얼핏 보면 너무 다양해서 연결되기 어려운 여러 사람들의 증언으로 완성을 해버리니 말이다.
사람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고 믿는다. 아무리 고쳐 쓰려 해도 그 고약한 성질은 변하지 않는다. 개과천선이란 말은 아무에게나 쓰는 것이 아니다. 루민의 질투와 시기하는 성질은 좋은 방향으로 나아갔다면 본인을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상을 파멸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2등이 1등을 보며 쟤만 없으면 내가 1등이니 죽여버려야겠다는 마음과 같다. 직접적인 살인을 저지르지 않더라도, 사람을 죽여버렸다.
마지막을 향해가며 루민의 실체를 사람들이 알고 멋진 복수가 행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루민은 죽을 때까지 자리를 바꾸어가며 그렇게 진심이며 성실한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소재를 훔치고 착한 마음을 이용해 사람을 죽일 것이다.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어쩌면 나도 루민처럼 쓰고 있는 글들을 다 미화시키는 것은 아닐까라는 걱정도 해본다. 나 역시도 그 누군가에겐 좋지 않은 사람일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돌아보면 오히려 나는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나는 정직했고, 성실했고, 내가 하는 일을 사랑했으니까.
내 인생을 갈아 넣었다 싶을 정도로 에너지를 쓴 프로젝트를 런칭했음에도 불구하고 퇴사를 결심하게 된 가장 결정적인 원인은 한 사람 때문이었다.
이 프로젝트를 엎지 않고 런칭까지 진행하는 것이 목표였기에 사소한 분쟁은 내가 양보하고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사소한 일들이 반복되었고 또 참고 참았다. 런칭 후 개선을 요청했다.
회사에서는 당연히 눈앞에서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에게 힘을 실어준다. 기존에 이루어낸 어려운 계약을 따낸 것보다는 현재 진행사항이 중요한 상황이라면 그 사람에게 힘을 실어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사람은 본인에게 힘이 실렸다고 생각한 순간부터 수많은 거짓말을 했고, 개인적인 자리에서는 여러 사람을 비판했다. 그리고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착한 사람, 피해자 행세를 했다.
그는 본인이 주인공이어야 하는 사람이었다. 이 소설에서는 그런 타입의 사람들의 성향을 "자기애성 성격장애"라고 부른다. 사이코패스와 동일한 분류에 속한다. 우리 말에 비슷한 단어가 있는 것 같다. "관종"이라고.
결국 나도 사람이 싫어 다 놓고 나왔다. 루민에게 당한 많은 사람들과 같이. 그렇다고 나의 인생이 드라마틱 하게 변하거나 위로받는다거나 그가 처벌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는 오히려 더 본인을 주인공화하기 위해 고군분투할 것이고 그가 원하는 성공을 가져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에게 중요했던 것은 나 자신의 본질이었다. 빠르게 끊고 더 주지 않는 것이 승리라고 생각했다. 모방해서 가져가는 것은 한계가 있다. 내려놓고 나옴으로 인한 상처가 크긴 했지만 그런 사람에겐 더 내어주지 않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난 한 번 성공해 본 사람이고, 그래서 또 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기 때문이다. 그가 있는 곳에서는 보여주고 싶지 않다. 또 빼앗으려 달려들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