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대체 왜 이러는 거니? 너만 암중모색의 세상을 사는 게 아니고, 너만 좌충우돌의 나날을 보내는 게 아니고, 너만 성장기의 상처가 있는 게 아니야."-88-89쪽
그동안 타인에 대해 함부로 평가하고 비판했던 모든 일들이 우스워졌다. 결국 내 얘기를 했을 뿐이었구나……. 모성 부족, 자기중심성, 질투심, 그 모든 것이 고스란히 내 안에 있는 것들이었다. 앞으로는 누구에 대해서도 비판하거나 평가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167쪽
누구든 건강한 퇴행에까지 이르는 사랑을 할 수 있으면 그 사랑은 무엇보다 자신에게 유익한 일이다. 퇴행을 통해 오이디푸스 시절을 다시 겪어내고, 누구의 내면에나 있을 법한 그 시기의 상처들을 치유하고, 그 시절에 결핍된 애정을 충족시키고, 그리하여 다시금 건강한 성장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173쪽
"타인에게 소중하고 가치 있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중략) 예전에 후배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언니, 밥 사줄게 나와 하면 거절하는데, 언니 밥 사줘 하면 만사를 제쳐놓고 달려나온다고. 그러니까 저 사람을 불러내려면 무엇인가를 해달라고 해야 한다고. (중략) 그게 자기 존중감이 약한 아이의 생존법이었겠구나 싶었다.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소중하고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는 확신을 갖지 못한 아이가 사랑받기 위해 채택한 생존법이었구나……. (중략) 그 의식이 발전해서 이웃에게 도움 되는 인간이 되고자 하고, 사회에 유익한 존재가 되고자 하는 데까지 가겠죠. 그 모든 행동의 본질은 결국, 내 존재 가치를 인정받고 싶어서였던 거예요." 말하고 나니 무언가 쓸쓸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 가치관의 옳고 그름에 대해 말하는 게 아니다. 그런 가치관이 생긴 의식의 저 밑바닥, 그곳의 춥고 어둡고 헐벗은 구석에 대해서 그런 느낌이 들었다.-175쪽
'어린 시절의 생존법을 성인이 될 때까지 질질 끌고 왔고, 그때는 유익했던 그것이 이제는 삶에 장애가 되고 있다'-176쪽
'페르소나는 배우가 자신의 역할을 청중에게 나타내기 위해 쓰던 가면을 일컫는 말이다. 같은 의미로 페르소나는 인간이 자기가 아닌 다른 어떤 것으로 나타내 보이기 위해 사용하는 가면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많은 역할을 하고, 그 역할과 타인들의 요구에 맞추어 어떤 행동이나 태도를 취한다. 실제로 현대 생활의 복잡한 사건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페르소나가 유용하며 필수적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페르소나는 매우 해로울 수도 있다. 만약 어떤 사람이 그 페르소나가 진정한 자기의 본성을 반영하고 있다고 믿는다면 그는 역할자 자체가 되어 버린다. 그러면 그 사람의 자아는 오직 페르소나와만 동일시되어 성격의 다른 국변들은 충분히 발달하지 못하게 된다. 그 사람은 결국 진정한 자기로부터 소외되어 팽창한 페르소나와 축소된 다른 성격의 국면들 사이에서 긴장을 초래하게 된다. 이 현상은 심리적 건강을 방해한다.' (중략) 나는 내 성격을 오로지 페르소나에만 일치시키려 노력하며 성격의 나머지 측면들을 억눌러왔다.-252쪽
융은 건강한 사람은 자기가 연기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데 건강하지 못한 사람은 자기가 연기하는 것이 곧 자기라고 믿는다고 기술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대개 중년기 무렵에 진정한 자신을 표현하지 않음으로써 거짓된 삶을 살았음을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건강한 성격이 목표로 하는 것은 페르소나를 축소시키고 나머지 성격을 개발시키는 것이라고 한다. '물론 모든 역할이 다 속임수이다. 건강한 사람과 건강하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건강한 사람은 타인을 속이는 데 반해 건강하지 못한 사람은 자기 자신마저 속인다는 점이다.'-252-253쪽
"자기애란 바로 무의식에 억압해둔 부정적인 영역까지 꺼내서 사랑하고 보살필 줄 아는 것, 그것이 아닌가 싶어요." (중략)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타인을 사랑하지 못한다는 명제도 이해했어요. 자기의 부정적인 면을 인정하고 용인하게 되니까 타인의 그런 점에 대해서 관대해질 수밖에 없어요."-277쪽
요즈음 진심으로 편안함을 느낀다. 일정 정도의 분노에 차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면에서는 진정한 평화가 고이는 것을 느낀다. 그것을 향해 나를 맞추려 했던 거짓 이미지도 깨어지고, 그런 환상을 추구했던 생존법도 벗었고, 좋은 인격을 가진 사람이 되고자 하는 허영심도 버렸다. 나는 이제 내 안의 추악함을 보았고, 그 추악함이 내 것임을 인정했고, 그런 추악함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세상이 끝나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다.-283쪽
나는 지금의 나 자신이 좋다. 추악한 나를 수용하게 된 만큼 타인에 대해서도 더 많이 관대해진 것이 느껴진다. 눈앞을 가로막고 있던 장막이 걷힌 듯하다.내가 보이니까 타인이 보이고, 타인이 보이니까 세상이 보이는 모양이었다. 이제부터 어디로 내디뎌야 할지 앞날이 보이는 것도 같다. 지금의 나 자신이 좋다.-283-2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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