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구를 떠나지 않는다 - 죽어가는 행성에서 에코페미니스트로 살기
에코페미니즘 연구센터 달과나무 지음 / 창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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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가는 행성에서 에코페미니스트로 살기’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는 달과나무의 <우리는 지구를 떠나지 않는다>는 15인의 에코페미니스트들의 고민과 사유가 담겨 있다. 에코페미니즘에 대해 그리 깊이 아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의 불편이 있던 나에게 에코페미니즘을 다룬 한국의 에코페미니스트들의 글을 만나는 일, 특히나 퀴어와 트랜스 등 다양하게 확장되어가는 에코페미니즘 사유를 만나는 일은 즐겁고 반가운 일이었다.

“우리는 지구를 떠나지 않는다”는 것은 지구를 떠날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손을 뿌리치지 않겠다는 연대이며, 어떻게 다시 살 만한 장소로 지구를 만들어갈 것인지 고민하겠다는 다짐이라고 생각한다. 설사 우리의 지구 삶이 파국으로 향하고 있다면 그 파국을 어떻게 더 나은 방식으로 만들어갈 것인가를 놓지 않겠다는 선언이기도 할 에코페미니스트들의 글을 읽으며 작고 작은 나도 그 전환적 사유를 함께하고, 보탤 수 있을지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기후위기 시대, 우리 중 어느 누구도 그 문제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함께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실천해야할 보편적 문제로서 사유하기 위해 저자들은 에코페미니즘을 다정하게 건넨다.

이 지구를 구성하는 주요한 행위자로서 인간만이 아닌 비인간종, 동식물, 공기, 물 등을 인식하게 되면 인간은 얼마나 겸손해져야 하는 존재인지 저자 김현미는 기후위기 시대 필요한 ‘애도’라는 태도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생태적 슬픔이라는 정동은 수치와 희망을 동시에 포함하는 개념이다.’(22) 잘 되고 있다는 희망으로서가 아니라 의미 있는 좋은 것을 위해 애쓰는 의미로서 우리는 희망을 지니고, 희망을 실천해야 한다. 그렇기에 ‘젠더•인종•생물종 간 정의를 바탕으 로 인간•비인간 생명체의 요구, 이해, 욕망, 취약성, 희망에 반응하는 방식으로 서로 응답하고 관계 맺고자 고민하는 정치’인 ‘재거주 정치’에 대해 제안하는 것이다.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곳, 그리고 바로 지금!

그런 의미에서 저자 정은아의 ‘정의로운 전환’에 대한 사유는 나로 하여금 에코페미니즘 사유에 조금 더 발 내딛을 수 있게 해주었다. 동등함과 포함됨이 가능성으로서 사유되는 ‘정의로운 전환’은 일부분의 문제를 넘어 교차성과 상호연결성의 혁명적인 상상력을 꿈꿀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기존의 노동운동뿐 아니라 환경운동과 생태운동도 적지 않은 부분 가부장적 남성중심성의 문제를 지니고 있었기에 젠더 정의를 포함하여 포괄적으로 재사유되는 ‘정의로운 전환’은 말만이 아니라 정말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모두를 위한 전환으로서 가능할 수 있을 수 있겠다 싶어서 저자의 글이 반가웠다. 더 많은 부분, 더 넓은 부분 그리고 더 깊게 에코페미니즘과 교집합을 만들고 고민을 확장해나갈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먹고, 자고, 숨쉬는 순환 과정 속에서 다층적인 존재들과 연결되어 있기에, 이들과 어떻게 함께 잘 살 수 있는지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213)는 에코페미니스트들과 지난날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 더 다가서고, 함께 고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 그것은 미안함도 존재했지만, 더 크게 기쁨으로 존재했다. ‘우리가 더 많은 일자리와 임금과 노동시간 대신, 서로를 돌보는 삶을 선택하면 좋겠다. 성장과 채굴, 착취 대신 호혜와 돌봄, 사랑을 선택하면 좋겠다. 좀더 오래 서로의 곁에 머물 수 있도록’(69)이란 책 속 문장을 마음에 담아두고, 어제보다 조금 더 함께 고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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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사의한 V양 사건 초단편 그림소설 1
버지니아 울프 지음, 고정순 그림, 홍한별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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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는 ”이 이야기는 런던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이다.”라고 썼으나, 글쎄 오늘날에도 어쩌면 이질적이지 않은 일이지 않을까. 결혼하지 않은 여성의 죽음을 실험적으로 기술한 작품인 <불가사의한 V양 사건>은 비혼 여성, 고립 여성 청년들이 늘어나는 지금 사회에서도 어쩌면 낯설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무관심 속에서 희미해지고 지워진 존재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다룬 소설에 고정순 작가의 그림이 너무 어우러지고 좋다. 이 그림과 소설은 어우러지면서 동시에 각각의 작품들로 존재한다. 이 다른 표현의 예술을 같은 자리에서 만나 반갑다. 지워지기 쉬운 존재들을 호명하는 시간이었다.

<불가사의한 V양 사건>, 버지니아 울프x고정순, 아름드리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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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을 끊고 끼어들기 - 사회 구조가 만드는 외로움의 고리를 끊어내는 개인의 연대
턱괴는여자들 외 지음 / TohPress(턱괴는여자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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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의 땅을 파헤치는 여정을 시작’하기 위한 이 책은 외로움을 개인에게 전가해왔음을 밝히며 사회 구조가 만든 “외로움을 끊고 끼어들기” 위해, 연결의 자양분을 만들기 위해 ‘나’를 드러내고, ‘너’를 만나, ‘우리’를 그리는 작업을 만들었다. 우리는 마주보기 시작하며 소외를 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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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싶다 쓰고 싶지 않다
전고운 외 지음 / 유선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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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싶다 쓰고 싶지 않다>는 영화감독, 뮤지션, 기자, 배우, 작가 등의 사람들이 ‘쓰는 것’에 대하여 쓴 글이다. ‘쓰는 것’에는 잘 쓰고 싶은 것이나 쓰고 싶어하는 글도 포함되고, 전혀 쓰고 싶지 않거나 쓰지 못하는 마음도 포함된다. 그리고 글을 쓰기까지의 루틴도 역시나 포함된다. 그러니 ‘쓰는 것’에는 참 다양한 이야기들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같은’ ‘쓰는’ 이야기가 담겨 있으니 제각각 다른 그러나 연결되는 마음에 대해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어쩌면 가장 고통스러운, 그러나 가장 행복하고 자신일 수 있을 ‘쓰기’의 행위. 쓰고 싶다. 쓰고 싶지 않다. 생애 계속될, 끝나지 않는 경계선.

<쓰고 싶다 쓰고 싶지 않다>, 전고운•이석원•이다혜•이랑•박정민•김종관•백세희•한은형•임대형, 유선사

p47 그냥 이렇게 생각하기로 한다. 죽기 전에 딱 두 편만 더 찍자. 단 내가 좋아하는 걸로만. 난 작으니까 조금만 찍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소박한 계획일 수 있지만, 그 누구보다 큰 야망이라 벌써부터 두근댄다.

p82 내가 같은 질문을 반복할 때 선배들이 답답하다는 표정을 짓는 일도 잦았는데, 이제는 그 얼굴을 이해한다. 본인들도 잘 모른다.
글 쓰는 사람들은 정답이 없는 상태에서 읽고 쓰고 안간힘을 쓰면서 원하는 무언가에 가까워지고자 한다.

p92 내가 읽고 싶어서 쓰고 싶은 이야기가 내게도 있다. 쓰지 않은 글을 쓴 글보다 사랑하기는 쉽다. 쓰지 않은 글은 아직 아무것도 망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쓰지 않은 글의 매력이란 숫자에 0을 곱하는 일과 같다. 아무리 큰 숫자를 가져다대도 셈의 결과는 0 말고는 없다. 뭐든 써야 뭐든 된다.

p101-102 무언가를 쓴다는 행위 자체는 그리 어렵거나,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은 아니다. 쓸 것이 정해져 있으면 안무를 다 외운 무용수처럼 들려오는 음악에 맞춰 무대 위에서 몸을 움직이면 된다. 머릿속에서 이미 한차례 쓰인 말과 글들을 받아 적는 느낌이랄까. 안무를 다 외운 무용수는 작은 무대에서도 큰 무대에서도 준비한 '춤'이 가장 잘 보일 수 있도록 움직일 것이고, 머릿속 글을 받아쓰는 나 또한 이 종이 위에 그 글이 가장 잘 보일 수 있도록 집중해서 쓴다.

p114 가족, 친구, 연인. 팬들 모두 나를 영원히 지켜봐 줄 수 없 는 사람들이지만 나는 내 삶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볼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니 내가 나를 응 원할 수밖에 없었다.

p195 ‘쓰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20년 정도를 보냈다. 20년은 내게 뼈아픈 시간이었다. ’쓰고 싶다'라고 생각했지만 쓰지 않았던 시간들만큼 고통스러운 것은 없다.

p221 나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떠오르는 첨예한 쟁점들에 대하여 매번 입장을 갖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다. 하지만 때매로 입장을 갖지 못할 때도 있고, 그것이 부끄럽지 않다. 내가 회색분자라서가 아니라 세상에는 내가 입장을 가지고 떠들어댈 수 없는 쟁점들도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런 것을 주제 파악의 기술이라고 하겠지. 주제 파악만 잘해도 조금은 선량해질 수 있다.

p241 나는 청결하고 질서정연한 세계 속에서 평화와 안정을 느끼지만, 동시에 저항하고 싶고 그 세계를 파괴해 버리고 싶다. 나는 정치적 올바름의 가치를 중요시하지만, 내 곁에 항상 올바른 사람들만 두고 싶진 않다. 나는 엘리트주의를 혐오하는 동시에 몰개성적인 다수를 혐오한다. 금욕적인 청교도 정신을 거부하면서 가톨릭 사제를 매력적으로 여긴다. 나는 무신론자이자 기독교인이고, 남성이자 페미니스트다. 나는 발언하고 싶지만 입을 닫고 싶다. 쓰고 싶지만 쓰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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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의 아이들 꿈꾸는돌 39
정수윤 지음 / 돌베개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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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자유‘가 있다. 적어도 혹은 동시에 많은 경우 이동의 제한을 크게 받진 않는다. 물론 이건 장애, 경제적 상황 등 여러 상황과 조건과 맞물리고 그것은 중요한 지점이기에 모두가 반드시 그렇다고 말할 순 없다. 그럼에도 한국에 살아가는 ‘우리’는 ‘자유’가 있다. 또 한편으론 그것이 한국이 열려있고, 환대의 공간, 평화로운 나라라는 것은 물론 아니다. 우리 사회에는 다채로운 정체성과 위치와 조건들을 간과하는 차별과 혐오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북한에서 태어나 북한을 떠나고자 한, 떠나온 이들의 이야기가 세 청소년들의 이야기로 교챠하며 나온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계속 ‘안전’하게 살아가는 나에게는 없는 이주, 그것도 불안전하고 폭력적인 이주, 절박한 생존의 이주의 모습들이다. 오늘도 몇명일지 모르는 존재를 우리는 오늘도 모르고 살아갈 것이다. 얼마전 한 영화에서 실패할 경험, 실패할 자유를 욕망하며 북한 너머를 그리는 이야기를 보았다. 이 책의 설이, 광민, 여름 역시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사실 그들에게 주어지는 혐실은 녹록치 않기에 마음은 다소 혼란하기도 하다. 그럼에도 누구나의 안전, 누구나의 욕망, 누구나의 생존에 대해 생각한다. 나만이 아니라.

<파도의 아이들>, 정수윤 장편소설,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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