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 싶다 쓰고 싶지 않다
전고운 외 지음 / 유선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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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싶다 쓰고 싶지 않다>는 영화감독, 뮤지션, 기자, 배우, 작가 등의 사람들이 ‘쓰는 것’에 대하여 쓴 글이다. ‘쓰는 것’에는 잘 쓰고 싶은 것이나 쓰고 싶어하는 글도 포함되고, 전혀 쓰고 싶지 않거나 쓰지 못하는 마음도 포함된다. 그리고 글을 쓰기까지의 루틴도 역시나 포함된다. 그러니 ‘쓰는 것’에는 참 다양한 이야기들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같은’ ‘쓰는’ 이야기가 담겨 있으니 제각각 다른 그러나 연결되는 마음에 대해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어쩌면 가장 고통스러운, 그러나 가장 행복하고 자신일 수 있을 ‘쓰기’의 행위. 쓰고 싶다. 쓰고 싶지 않다. 생애 계속될, 끝나지 않는 경계선.

<쓰고 싶다 쓰고 싶지 않다>, 전고운•이석원•이다혜•이랑•박정민•김종관•백세희•한은형•임대형, 유선사

p47 그냥 이렇게 생각하기로 한다. 죽기 전에 딱 두 편만 더 찍자. 단 내가 좋아하는 걸로만. 난 작으니까 조금만 찍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소박한 계획일 수 있지만, 그 누구보다 큰 야망이라 벌써부터 두근댄다.

p82 내가 같은 질문을 반복할 때 선배들이 답답하다는 표정을 짓는 일도 잦았는데, 이제는 그 얼굴을 이해한다. 본인들도 잘 모른다.
글 쓰는 사람들은 정답이 없는 상태에서 읽고 쓰고 안간힘을 쓰면서 원하는 무언가에 가까워지고자 한다.

p92 내가 읽고 싶어서 쓰고 싶은 이야기가 내게도 있다. 쓰지 않은 글을 쓴 글보다 사랑하기는 쉽다. 쓰지 않은 글은 아직 아무것도 망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쓰지 않은 글의 매력이란 숫자에 0을 곱하는 일과 같다. 아무리 큰 숫자를 가져다대도 셈의 결과는 0 말고는 없다. 뭐든 써야 뭐든 된다.

p101-102 무언가를 쓴다는 행위 자체는 그리 어렵거나,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은 아니다. 쓸 것이 정해져 있으면 안무를 다 외운 무용수처럼 들려오는 음악에 맞춰 무대 위에서 몸을 움직이면 된다. 머릿속에서 이미 한차례 쓰인 말과 글들을 받아 적는 느낌이랄까. 안무를 다 외운 무용수는 작은 무대에서도 큰 무대에서도 준비한 '춤'이 가장 잘 보일 수 있도록 움직일 것이고, 머릿속 글을 받아쓰는 나 또한 이 종이 위에 그 글이 가장 잘 보일 수 있도록 집중해서 쓴다.

p114 가족, 친구, 연인. 팬들 모두 나를 영원히 지켜봐 줄 수 없 는 사람들이지만 나는 내 삶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볼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니 내가 나를 응 원할 수밖에 없었다.

p195 ‘쓰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20년 정도를 보냈다. 20년은 내게 뼈아픈 시간이었다. ’쓰고 싶다'라고 생각했지만 쓰지 않았던 시간들만큼 고통스러운 것은 없다.

p221 나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떠오르는 첨예한 쟁점들에 대하여 매번 입장을 갖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다. 하지만 때매로 입장을 갖지 못할 때도 있고, 그것이 부끄럽지 않다. 내가 회색분자라서가 아니라 세상에는 내가 입장을 가지고 떠들어댈 수 없는 쟁점들도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런 것을 주제 파악의 기술이라고 하겠지. 주제 파악만 잘해도 조금은 선량해질 수 있다.

p241 나는 청결하고 질서정연한 세계 속에서 평화와 안정을 느끼지만, 동시에 저항하고 싶고 그 세계를 파괴해 버리고 싶다. 나는 정치적 올바름의 가치를 중요시하지만, 내 곁에 항상 올바른 사람들만 두고 싶진 않다. 나는 엘리트주의를 혐오하는 동시에 몰개성적인 다수를 혐오한다. 금욕적인 청교도 정신을 거부하면서 가톨릭 사제를 매력적으로 여긴다. 나는 무신론자이자 기독교인이고, 남성이자 페미니스트다. 나는 발언하고 싶지만 입을 닫고 싶다. 쓰고 싶지만 쓰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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