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비무장지대에 살아
김경구 지음, 가지 그림, 이용철 감수 / 뜨인돌어린이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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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집 <우리는 비무장지대에 살아>는 비무장지대에 살고 있는 다양한 동•식물에 대한 동시와 그림이 담겨있는 아름다운 동시집이기도 하고 그림책이기도 하다. 이토록 다양하고 많은 동•식물이 우리 곁에 살아가고 있다니! 마땅히 그래야 할 일이기에 놀라지 않아야 하지만, 이내 놀라고 만다. 거기엔 ‘아직’이란 것이 붙고 말기 때문이다.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생을 잘 살아나간다 여기기에는 이 책 속 동•식물은 대부분 천연기념물, 멸종위기 야생생물, 국가보호종 특산식물, 해양보호생물 등으로 우리가 앞으로 얼마나 만날 수 있을지 모를 위험에 처하거나 취약한 상황 속에서 오늘도 헤쳐나가고 있다. 읽으면서 아름답다 생각되면서 또 어떤 동시를 읽으며 인간동물로서 마음이 따끔따끔했다. 사라지지 않고 지속가능할 수 있는 삶에 우리가 해야할 것들에 대해 나눠야할 시간이다. 너무 늦었지만, 늦었다고 그대로 두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 곁으로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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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블 소설Y
조은오 지음 / 창비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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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를 믿고 사랑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 그래서 다들 외곽으로 온 거야.”

평생 알았던 공동체의 규칙이나 목적 자체가 사실은 거짓이었다면, 내가 알던 도시의 이야기가 전혀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면, 당신은 어떤 반응일까. ‘중앙’이라 여겨졌던 공간이 사실은 ‘외곽’을 위해 일하는 곳이고, ‘외곽’이 다른 의미에선 진짜 중앙이었다면, 다시 그 ‘중앙’으로 돌아가는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온영은 그러한 선택을 한다. 자신을 속여온 중앙으로 되돌아간다. 진실을 안 이상, 그는 아무렇지 않게 외곽에서 살아갈 수도 없는 사람인 것이다. 그저 그는 통제받지 않고서 곁에 동료와 친구들을 두고, 사랑을 주고받으며 살아가고 싶었을 뿐이다. 비록 자신이 살아온 중앙의 노동으로 외곽이 편히 살아왔다지만, 그리고 자신에게 외곽에서 살 기회가 생겼지만, 그는 누군가의 착취로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것을 선택할 수 없었다. 다시 그 착취의 공간에 돌아가면 다 똑같지 않냐고? 통제받으며 그전과 똑같이 홀로 고립되어 살아가는 거 아니냐고?

온영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렇지 않다고. 똑같지 않다고. 왜냐하면 온영은 그리고 같이 중앙으로 돌아온 이들은 서로를 믿는 친구가 되어주었고, 친구가 존재하게된 그들은 더 이상 그전과 똑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온영은 버블을 깨는 방법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제 그는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똑같아 보일지라도 몰랐던 때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간다. 그 삶을 선택하였다. 비록 중앙은 변하지 않았지만, 온영이 그대로이지 않기에, 함께 돌아온 이들이 그대로이지 않기에, 중앙은 그것으로 이미 균열이 일어나며, 달라지게 된다.

이제 온영은 중앙에서 외롭지 않다. 혼자가 아니기에.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과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젠 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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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의 책상
하루 지음 / 아침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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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일을 기록하는 건 그 세계를 더 깊고 넓게 만드는 일”이라는 독서가, 기록생활자 하루 작가의 <하루의 책상>. 본격적으로 책으로 들어가기 전인 표지를 요리조리 읽는 것부터 내 마음을 두근거리게 했다. 매일 읽는 독서생활자로 스스로를 정체화하고 있으니 얼마나 반가운 책이겠는가.

이 책은 ‘책장’이 아니라 ‘책상’이란 제목을 지니고 있다. 그러니까 나를 발견하는 ‘독서기록법‘을 다루고 있는 것. 그래서 책 뒤 부록에는 독서기록을 위한 친절한 안내서가 있다. 예컨대 노트의 종류와 특징까지 있어서 나는 어떤 타입이 맞을지 생각해볼 수 있다. 나 역시 지금은 아니지만, 예전에는 책을 읽고 노트에 기록을 했다. 내 이름 옆에 저널이라 이름 붙인 독서노트를 썼고, 수 권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일을 하게 되고 그것이 매우 바빠지고 많아지면서 그 체계는 컴퓨터와 휴대전화로 넘어오게 되어 더 이상 손글씨로 노트를 쓰지 않지만 예전 생각이 나기도 하고, 공감도 되고, 또 그때의 나보다 훨씬 더 다채롭고 멋진 독서노트를 여전히 만들어가고 있는 작가님에게 놀라기도 했다(멋짐!).

중학교 때부터 학교 도서관에 빠졌다는 저자와는 달리 (거의) 책 (읽기) 없는 어린이- 청소년 시절을 지나 청년 시기부터 책을 읽어왔기에 갈증이 훨씬 거대했고 많은 책을 읽고, 매일 읽는 사람이 된 나에게 <하루의 책상>은 ‘책’, ‘읽기’라는 좋아하는 행위를 좋아하는 다른 누군가의 다정한 편지같은 읽기의 시간이었다. 때론 “그치 그치”하며 끄덕이기도 하고 공감하면서(고전을 다시 읽을 때의 이질적 감각과 불편에 대해서도 완전 공감했고요!). 나 역시 책으로 도망가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기에 저자가 책을 읽으며 어떤 유예의 시간을 갖는 마음에 대한 글을 읽으며 공감하기도 하고 나의 그때를 떠올리기도 했다(웃프지만, 책으로 도망가니 책을 엄청 읽게 되기도).

‘좋아하는 마음 다음에 무엇이 와야 할지는 크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앞으로 우리의 관계가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지치지 않고 오래 좋아하고 싶다‘는 하루 작가의 마음에 너무나 공감하고 지지한다. 덕분에 내가 너무 애정하는 독서 생활에 대해서도 더욱 보듬어주고, 힘을 낼 수 있었다. 때론 임금노동과도 상관없고, 바쁜 와중에도 일은 벌여서 책 읽느라 많은 시간을 보내며 찡찡대고, 중요한 일로 여겨지지 않기도 한 독서 행위에 아주 가끔은 고민스러울 때가 있었는데, 그런 나를 더 좋아해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애매한 것이 아니라 다채로운 것‘인 나의 취미이자 특기이자 사랑의 행위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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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 아포칼립스 - 사랑과 혐오의 정치학
시우 지음 / 현실문화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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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여름에 나온 시우, <퀴어 아포칼립스>를 출간 후 얼마 되지 않아 읽고 약 6년 만에 모임 책으로 다시 읽었다. , 다시 읽어도 너무 좋았다. 당시의 퀴어 논쟁과 투쟁, 흐름에 대해 다정하게 써내려갔다 생각했던 것은 여전했고, 그때보다 밑줄이 더욱 많아진 것은 그 당시 읽었을 때보다 훨씬 쉽게 이해하며 읽는 수 년 후의 나라는 상황이 적용된 것이겠고, 무엇보다 퀴어 문장들이 너무 좋은 게 많아서! 6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제정되지 못했고, 정치권에서는 혐오의 대표마냥 떠들어대며 혐오차별을 동조하며 정치의 몫을 해내지 못하고 있고, 퀴어 집단의 인권과 시민권을 부정하는 체제 역시 그대로이지만 여전히 퀴어 운동은 적대와 혐오에 진지하고 단호하게 대처하는 일과 밝고 명랑하게 대처하는 일을 병행하며 멈춤 없이 퀴어 한국을 살아가고/살아 내고 있다. 총선 시기이다. 또다시 표를 이야기하며 민심을 찾고, 평등을 이야기하는 소리가 전국에 울리겠지. 적대와 혐오를 조직화하는 반퀴어 집단을 묵인하고, 모두를 위한 평등을 방관하는 정치가 아닌 다채로운 퀴어 삶을 위한 그 이후/너머의 이야기 하고, 약속하고, 지켜내는 정치의 모습을 보고 싶다. 퀴어 운동은 오늘도 춤을 추며, 두려움 속에서도 나아갈 테니. 정치여, 해야 할 몫을 해주시라.

 

, 다시 읽는 <퀴어 아포칼립스> 너무 좋았다. 시우님, 다른 책 안 내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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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 훅스, 당신과 나의 공동체
벨 훅스 지음, 김동진 옮김 / 학이시습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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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 훅스는 <벨 훅스, 당신과 나의 공동체> 책에서 공동체를 건설하고 유지하기 위해 우리가 하는 모든 일, 그리고 공동체의 연결감을 방해하는 많은 것들을여러 갈래로 톺아보며 이야기 한다. 생각보다 책이 잘 읽히지는 않았다. 나에게 벨 훅스는 페미니즘 인식론에 많은 영향을 준 사람인데, 그것은 대부분 한국에 번역된 그의 책들을 통해서였다. 벨 훅스는 자신과는 달리 배우지 못한 사람들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글을 쓴다고 했었다. 그리고 그의 글은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이란 책제목처럼 쉽게 쓰였고, 성별 이분법으로 나뉘는 것이 아닌 성평등한 사회를 위해 성차별적 문제를 어떻게 바꾸어 나갈 것인지를 고민하게 해주었다. 그런데 이 책은 조금 달랐다. 그건 대학에서 학생들을 만나면서 만나온 교육의 장에 대한 이야기여서 그럴 수도 있고, 미국 사회의 문제들과 상황들이 한국의 나에게 이질감 없이 이입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은 조금은 그동안의 긴 시간을 돌아보는 회고의 시간 같기도 했다. 벨 훅스, 그가 가르쳤고 또 만나면서 배워왔던 것들을 톺아보는 시간으로 말이다. 너무 다른 것들 사이에서 다름뿐 아니라 차별과 혐오가 양산되어 왔던 오랜 역사가 존재해 온 우리 사회가 어떻게 더 나은 사회로 변화할 수 있을지에 대해 벨 훅스는 많은 사건 사고와 인종차별주의 등 차별혐오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고 끝까지 부여잡는다. 그리고 말한다. 우리 함께 희망을 끌어안고 나아가자고.

 

그가 말한 반인종차별주의자가 되기로 한 백인, 성차별주의와 가부장제에 도전하기로 한 남성, 성적 자유를 진정으로 옹호하기로 한 이성애중심자와 같은 이들은 개인적인 것을 정치적인 것으로 만듦으로써 생각의 변혁이 삶의 변화로 이어지는 경험을 했다.”는 나의 페미니즘 운동과 페미니즘 일상에도 연결감 있게 이어진다. 나에게 여성주의란 어떤 존재만으로 선을 긋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모든 존재들의 안전과 평등이기 때문에 서로 다른 위치성을 가지고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과 동료가 될 수 있고, 연대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문제에 대해 발견하기만 하다고 다가 아니다. 벨 훅스는 문제를 명명하고, 문제의식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해결해 나가는 실천 행위에 대해서 중요하게 이야기한다. 그것이 우리가 희망을 버리지 않는 길이라고. “자신과 주변 세계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사람들을 목격할 때, 그 투쟁의 장소에서 희망이 생겨난다고 말한 벨 훅스의 말처럼 말이다. 일평생 여성주의 가치를 안고 실천을 놓지 않았던 그는 함께 학습하고, 공부하고, 서로를 포기하지 않고 손을 맞잡으며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해왔다. 자신만이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세계 그리고 그 세계의 세계가 확장되며 넓어져 갈 수 있도록.

 

계속해서 깨어 있으며, 행동을 바꾸어 가고, 사랑이 있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우리는 그 길을 찾아 나서고, 함께 나서기를 멈추지 않아야 한다. 언제나 사랑과 환대를 놓지 않고 그 길을 찾아 나설 우리의 가능성을 나는 오늘도 믿는다. 그 길에 당신과 함께 할 수 있기를. 그리고 언제나 사랑이 끊이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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