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에 띄운 편지 반올림 61
발레리 제나티 지음, 이선주 옮김 / 바람의아이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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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마음을 담아 만들어진 이 책이 처음 나오고 수십 년기 지났지만, 달라지지 않은 상황. 아니, 더 심각해진 상황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나임이 썼던 메일 중 괄호 안에 붙였던 문장이 마음에 남았다. ”여기에도 거리, 대로, 구역, 사람들에게 이름이 있다는 걸 네가 알았으면 해서. 여긴 단지 '가자 지구'만은 아니거든.“ 이란 말. 나 역시 그저 ‘가자 지구’로만 있던 모호한 생각 속 이미지였단 걸 여실히 깨닫는다. 오늘도 세계 ‘속’이지만 그저 스쳐지나가고 누군가 원치 않는 사라짐과 고통이 던져질 것이란 생각 역시… 살아가고자 하는 이 사람들의 잘못이 무엇인가. 총을 겨누는 폭력의 정치를 방치하는 이들은 누구인가. 자유로울 수 없는 질문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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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는 말들 - 우리의 고통이 언어가 될 때
조소연 지음 / 북하우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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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는 말들>의 첫 문장은 ”2018년 5월 7일, 어머니가 자살했다.”이다. 어머니의 자살, 자살생존자인 저자가 다시금 써내려가는 고통의 언어와 애도의 글. 그러나 그 ‘다시’의 과정은 손쉽게 오지 않는다, 결코. 그럼에도 허은실 시인이 썼듯 ”쓰일 수밖에 없는 글이“ 있는 것이겠지. 울면서, 날뛰면서도 쓰는 글. 가슴을 움켜쥐고도 쓰는 글이. 온전히 그 이유만은 아니지만,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그의 어머니에 대한 사실과 추정이 뒤섞인 내밀하고 사적인 이야기들과 그의 원가족의 그러한 이야기가 어떤 과정을 가지고 쓰여졌을지 전혀 알지 못한 채로 책을 읽기도 하였고, 그 이야기 자체의 무게와 깊이로 이 책을 읽는 것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그리고 생각한다. 애초 편할 수 없음을. 왜 편해야 하는가에 대해. 그랬다면 이 말들은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고통이 언어가 될 때, 게다가 나와 타인의 고통의 공존을 설명하는 불가능의 시도가 어찌 아무렇지 않고 편할 수 있겠는가.

이 글은 저자의 글이고, 저자의 몫에서 토해낸 결과이다. 나라는 사람이 온전하게 나에서만이 아니라 수많은 방식으로 엮어지는 타인들과의 관계 속에서 그들의 이야기인 ‘나’로 존재하기에 이 경계를 지어 나누기 어려울 법하다. 그렇기에 엄마를 엄마로서만이 아닌 한 여성으로서 바라볼 수 있는 작업이 되고, 그것이 나라는 여성과도 얽히며 사유되는 것이다. 가부장제 남성중심적 이성애규범 사회에서 엄마란 여성이 받아온 성별화된 설움과 폭력은 대를 지나서도 끊기지도 사라지지도 않고 이 세상에 존재했다. 그리고 그 성적 폭력과 차별들은 딸인 여성들에게로 이어졌다. 저자 역시 자살 사고와 불안 공황 장애를 경험했다. 어머니의 죽음 이전, 연인이었던 이의 자살을 겪었고, 미끄러지는 연애들로 자기파괴적 시간을 보내었다. 이어받고 싶지 않은 유산 아닌 유산이 되어버린 ‘더러운 것’들은 이 여성들이 만든 것이 아님에도 왜 이 여성들에게 내려졌는가. 이것에 대한 답은 이 여성들이 아닌 이들이 답해야 할 일이리라. 여성들이 ’미쳐버리고‘, 뛰어내리지 않도록. 술에 취하지 않고, ‘미쳐버리지 않고’, 죽어버리지 않고도 이 서러운 여성의 목소리를 들어주었다면, 아니 애초 그렇다면 이 설움이지 않았을지도. 원치 않는 일을 경험하지 않았어도 이 세상의 여성들은 그토록 ‘미쳐버렸을까’. 이 ‘미친’ 여자, ‘아픈 몸’의 여자의 목소리들이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해본다.

지궁내막종 수술과 엄마가 사랑없이 폭력으로 시작된 친부와의 결혼을 끝내고, 그가 아닌 다른 남성을 만나고 새로이 가정을 꾸렸을 때 가졌던 일종의 안도에 대해 다시금 생각했다. 물론 처음엔 분노였고, 지금에 와서도 안도일까 싶은 현실이지만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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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게 될 것
최진영 지음 / 안온북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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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부터 2023년 발표된 최진영 작가의 단편소설 모음집 <쓰게 될 것>. 문학지를 (잘) 읽지 않기에 짧게는 몇 개월부터 수 년이 지나 만나는 작자의 ‘최근’ 단편들이겠다. 물론 그 사이 작가의 장편을 만난 시간이 있지만.

내지 속 ’우리는 서로를 버릴 수 없었다‘는 문장과 뒷표지의 해설의 일부를 읽고 책을 읽기 전부터 왈칵하는 마음이었다. 전쟁 중, 이라고 해도 맞을지 모르겠지만 폭탄이 언제 떨어질 지 몰라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창에 테이프를 붙이는 것인 이들을 만나며 작가의 글 중 한 문장을 계속해서 떠올려본다. ‘우리는 지루할 정도로 안전하다’는 지어진 이야기 속에서 그들의, 그러니까 상상 속의 그들에 대한 문장을. 결코 안전하지 않은 이가 하는 상상의 ‘지루한 안전’에 대해. 그리고 다시 엄마를 보며 쓴 문장에 대해 여러 번 읽으며 생각했다. ‘결심했으므로 망설이지 않는 사람’이란 문장. 나는 왜 이리 이 문장이 따끔거리는지, 실은 알고 있다. 나는 결심을 망설이며 겁을 내고 불안해하는 사람이란 걸 말이다. 겁 많고 두려움 많은 내가 망설이는 것들, 겁 많고 두려움 많은 내가 망설임 속에서도 하는 것들, 망설이며 하지 못하는 수많은 것들에 대해서 모르는 게 아니라서. 매번 부끄러움을 안고서 살아가면서 또 매번 나와 친구들의 안전과 사랑을 그리면서 살아가는 그 모든 것이 실은 망설임에 기대어 있는 것 같아서.

최근 읽은 소설도, 그렇다고 최근이라고 할 이전에 읽은 최진영 작가 소설도 ‘퀴어’ 소설이 아니었음에도 문득 소설을 읽다 퀴어 소설이 아니구나, 인식할 때 첫 사랑이 여성인 여성인 주인공의 회상이 나왔다. 너무 좋아서. 그런 소설을 만나니 이성애 디폴트가 아닌, 다른 ‘보통의’ 세계를 만나고 싶었던 것 아닐까 싶었다. 여튼, 이 이야기가 나온 [ㅊㅅㄹ]은 40대 여성 서진과 10대 청소년 은율의 채팅(이상한 거 아님)을 읽으며 후훗 미소도 나고,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인 사랑을 더 잘해보겠다는 은율의 마음에 나도 가 닿고 싶다고 생각했다.

최근 챗GPT 이야기가 많이 회자되는 와중, 나는 잘 도태되어 가고 싶다는 바람을 갖곤 한다. 이 세상은 너무 불필요하게 과개발되고 과잉 생상되고 있고, 그에 착 붙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건 과하게 버려지고, 과하게 격차가 일어나는 것이다. 내가 말하는 도태는 그런 것이다. 멈출 줄 모르는 세계에서 잘 멈춰서고, 친구들과 안전하게 관계를 엮어가며 돌봄으로 돌보는 세계. [인간의 쓸모]는 AI에 인간의 쓸모가 밀리는데도 인간은 더 높고 나은 인간을 만들고 싶어서 AI를 이용해 배아를 디자인한다. 자신의 내면의 주머니를 모부가 그려놓은 미래와 다르게 그려나가기 위해 코뮌의 노아를 만나러 가기를, 결심한 뒤 망설이지 않는 안나의 내일에 안나가 심은 신념의 나무가 잘 자라나길 마음 깊이 응원하고 싶었다. 나는 안나 역시 잘 도태되길 바랐다. 내가 친구들과 그렇게 살고 싶듯이.

이 책에서는 곳곳에서 불안이 발산된다. 그러나 사실 또 따지고보면 우리 인생에 불안이 그렇다. 나 역시 불안이 나의 근원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불안해서 지금 삶에 집중하지 못하고 떠돌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그러니까 사랑으로 쓴 최진영 작가의 글을 만나 기쁘다. 나도 사랑을 두고 갈 수 있을 정도로 사랑을 만들고 사랑을 할 것이기에.

전쟁이 멈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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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뉴어리의 푸른 문
앨릭스 E. 해로우 지음, 노진선 옮김 / 밝은세상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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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재뉴어리가 발견하게 된 “일만 개의 문”. 책 속 이야기는 창문 넘어 도망친 노인의 이야기도, 해리포터의 이야기도 아니었지만 그런 신기하고 놀라운 세계가 담긴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것은 실제의 일이었다. 재뉴어리의 아빠, 율이 기록해둔 애들레이드와 율 그리고 재뉴어리의 이야기.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 ‘문‘과 그 문으로의 모험을 하는 이야기가 담겨 있는 책을 통해 재뉴어리는 자신의 과거뿐 아니라 엄마•아빠의 역사를 알게 된다. 그들의 사랑과 그것이 이어져 자신이 존재하게 된 것도.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은 다 떠나고 버린 줄 알았는데 그것 역시 아니었단 것도. 그러니까 혼자가 아니란 것을 말이다. 그에게는 애들레이드와 율의 사랑이 담긴 책도, 제인도, 배드도 그리고 그의 말을 의심하지 않고 믿는 친구 새뮤얼이 있다.

애들레이드가 자신이 떠날 수 있음을 자각한 뒤 망설이지 않고 떠나고 모험한 것처럼 제인 역시 그러했다. 딸이자 여자인 그녀들은 갇히기를, 안전이란 이름으로 닫히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재뉴어리. 백인들만이 우월하다 여겨진 곳에서 ‘유색인종’이자 ‘말괄량이’인 ’여성‘, 재뉴어리! 그리고 결국 문을 열고 모험을 하며 찾아내었다. 더 넓고 다른 세상을 만나며, 애들레이드와 율과 만났다. 그리고 새로이 자유를 선택하여 사랑의 마음을 안고 떠난다. 이제 그럴 수 있다, 재뉴어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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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로의 일기 : 영원한 여름편 - 일상을 관찰하며 단단한 삶을 꾸려가는 법 소로의 일기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지음, 윤규상 옮김 / 갈라파고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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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로의 일기>에는 매일 매일의 날씨와 동•식물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단순히 어떤 동물이나 식물을 보았다, 가 아니라 매일의 일상에 존재하는 이들에 대한 관찰과 염려, 생각들 담겨 있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 인근의 도시에 사는 친구들이 꽃이며 새에 대해 그저 꽃이고 새이다, 가 아니라 어떤 꽃이고 어떤 새인지 이름을 말할 때 새삼 놀라웠다. 이름을 명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늘 생각했으면서도 나는 그저 꽃이고 새였던 무심함에 대해 인식하는 시간이었고, 그들의 관찰과 관심에 인식하는 시간이었다.

그 뒤 만난 <소로의 일기: 영원한 여름편>은 적어도 그런 면에서 이미 인상적일 수밖에 없었다. 페이지를 넘기며 계절의 변화를 착실하게 만나기 때문이다. 나는 소로의 글과 같은 것을 쓸 수 없다. 그와 같이 매일 산책 하고 걷고 관찰하지 못하기에. 소로가 겨울에서 봄이 오는 그 시작의 순간을 알아채는 글귀를 읽으며 나는 걷다가 ‘어느새 이리 더워졌잖아!’ 매번 뒤늦게 깨닫는 삶에 대해 생각했다. 나라는 인간은 늘상 자연에 뒤늦고, 대체로 많은 인간동물들은 자연에 지각을 넘어 결석해버리고 만다. 우리의 기후위기란 우리가 만들어낸 우리의 것이다. 비록 아무도 갖고 싶지 않았겠지만. 어떤 면에서 ‘영원한 여름’이란 순환이 더 오지 못할 수 있고, 어떤 면에서 ‘영원한 여름’으로 살아가버릴 수도 있는 지금-여기에서 땅 딛고 선 자로서 많은 생각을 하게 했던, 소로의 일상.

<소로의 일기: 영원한 여름편>, 헨리 데이비드 소로, 갈라파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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