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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 혼자도 결혼도 아닌, 조립식 가족의 탄생
김하나.황선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혼자도 결혼도 아닌, 조립식 가족의 탄생’ 원자가 모여 분자가족이 된 두 사람의 이야기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를 읽으며 더 다양하고, 더 많은 모양의 분자가족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 각기 다른 조립이 그 자체로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음에 대해서 생각한다. 우리에게는 지금보다 훨씬 더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존재할 수 있다.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에 대한 끊임없이 존재하는 자기 안의 불안과 그보다 깊게 존재하는 외부로부터의 전함들. 명자(엄마)가 입원했을 때 같은 병실의 여성 노인은 나에게 결혼을 해야 함에 설득할 노력도 갖지 않고 당위로 말했다. 얼마 전에는 나와 동갑인 여성의 부모가 결혼 전에 독립을 ‘시켜’ 주지 않으며, 독립의 일환으로 결혼을 생각한다는 말을 들었다.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이 진실이 아닌 거짓이 되게 하는 요인은 무엇일까. 혼자여도 괜찮은, 이성애-정상가족 규범에 부합되지 않은 다른 형태의 가족을 구성해도 안정적이고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그때에도 사람들은 결혼을 강요하거나 당연하다고 생각할까?
1인 가구의 비중이 늘고 있다. 이성애 규범에 부합되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삶은 이미 많이 존재하고 있으며, 그와 상관없이 사람들은 이미 너무나 다양한 방식과 모양으로 저마다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 저마다의 삶이 어떻다는 기준으로 나뉘고, 언급조차 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그 저마다의 개인들에게 찾아야할 내용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시스템의 문제이다.
서로 너무 비슷한 취향을 그러나 서로 너무 다른 생활양식을 지닌 두 사람은 서재를 합치고, 생활에 필요한 제품들을 합치고 정돈하여 정말 한 집에서 함께 살아가게 되었다. 나 혼자 사는 것도 힘들 일이지만, 나 아닌 누군가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시간의 흐름으로 절로 해결되는 일이 아니라 서로 다른 결을 나누고, 내보이고, 맞춰가고, 인정해 가는 것이다.
부모의 집이 아닌 공간에서의 생활을 시작한 이후 2년은 주거공동체에서 생활했다. 각자의 방을 가지고 그 외의 공간을 공동으로 사용하며, 겨울철엔 고추를 다듬어 김장을 하고, 누군가의 생일을 같이 보내고, 각자의 손님을 허가가 아닌 신고(알림)으로 맞이하는 공간. 단기 거주자를 여럿 만났던 공간. 나의 취향의 일들을 공동체에서 하며 서로가 만나고, 이어지기도 했던 시간. 혼자의 공간을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주거 공동체를 나왔지만 그때의 경험은 지금의 나를 만들어오는데 많은 영향을 주었고, 지금의 내게도 적지 않은 영양분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 당시 같이 살았던 이들은 지금 또 다른 공동체를 꾸려 내게 놀라움과 함께 여러 생각거리를 주었다. 비-혈연관계의 사람들과 결혼과 비혼 상태의 사람들이 두루 섞여 주거공간의 비용을 같이 분담하고, 같이 살아가는 것을 넘어 경제 공동체를 실험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내게 새로운 가능성과 고민을 전해주는 것이었다. 지금 나는 그들과 같이 살지 않고, 그들처럼 살고 있지 않지만 마음 깊이 응원하는 따뜻한 무언가가 존재했다.
혼자 살아보자고 주거 공동체를 나왔으나 이후 혼자 산 것은 1년 남짓이고 누군가와 다시 같이 생활을 이어가는 공간에서 거주한지 5년차가 되고 있다. 친구와 둘이기도 했고, 그 친구와 혈연관계의 가족과 셋이기도 했다. 지금은 이 책의 제목인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처럼 혈연관계의 자매와 여자 둘이 살고 있다. 그러나 같이 살아온 시간이나 같이 살지 않았던 시간이나 비슷하게 따로 떨어져 살고, 같이 살았던 시간에도 서로의 교감이 많지 않았던 우리를 생각하면 으레 당연한 가족과의 거주보다는 각기 다른 원자가 모여 이룬 분자가족이란 생각이 든다. 삼십 대가 되어 우리는 서로의 다른 점에 대해 시시때때로 싸우고 짜증내지 않아도 함께 어우러지고 살아갈 수 있는 여유와 마음이 차곡차곡 쌓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마음 한 구석에는 동그라니 존재하는 공동체의 바람이 있다. 다양한 정체성과 맥락들을 지닌 나의 친구들과 어떻게 따로 또 같이(그것이 꼭 한 공간의 거주가 아니더라도)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그런 것이 말이다.
책을 읽으며 음성으로 웃음이 풋- 나오며 웃기도 하고, 나는 김과 황 두 사람 중 어떤 쪽의 성향을 더 지녔나 생각하기도 했다(그러나 나는 두 사람의 각기 다른 성향이나 취향 중 이건 김, 저건 황, 과 같은 식으로 존재하는 인간이었다). 마음속에 언제나 존재하는 모닥불 같은 나의 로망, 큰 테이블을 둘 수 있는 거실을 보며 엉엉- 마음으로 울며 부러워했던 기억이 이 책에 대한 기억으로 오래 남겠지만, 그보다는 정말 다양한 삶의 모양에 대해 생각하고 다짐하게 되는 시간으로 더 크게 남을 것 같다. 지금 사회의 결혼제도만이 아닌 동성혼, 생활동반자법 등으로 이야기되는 다채로운 조립으로 만들어지는 결합에 대해 말이다.
아, 그리고 무엇보다 불끈! 한 것은 정리에 대함이다! 비교적 잘 정돈되어 있는 거주공간이긴 하지만, 지금 살고 있는 공간과 그 공간을 차지하는 물건에 대해 새로운 정리가 다시금 필요하단 생각을 망원동 집요정 도비님을 보며 다짐한다(이 책을 읽으며 주방의 작은 수납공간을 정리했었다. 크크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