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의 아이들 꿈꾸는돌 39
정수윤 지음 / 돌베개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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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자유‘가 있다. 적어도 혹은 동시에 많은 경우 이동의 제한을 크게 받진 않는다. 물론 이건 장애, 경제적 상황 등 여러 상황과 조건과 맞물리고 그것은 중요한 지점이기에 모두가 반드시 그렇다고 말할 순 없다. 그럼에도 한국에 살아가는 ‘우리’는 ‘자유’가 있다. 또 한편으론 그것이 한국이 열려있고, 환대의 공간, 평화로운 나라라는 것은 물론 아니다. 우리 사회에는 다채로운 정체성과 위치와 조건들을 간과하는 차별과 혐오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북한에서 태어나 북한을 떠나고자 한, 떠나온 이들의 이야기가 세 청소년들의 이야기로 교챠하며 나온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계속 ‘안전’하게 살아가는 나에게는 없는 이주, 그것도 불안전하고 폭력적인 이주, 절박한 생존의 이주의 모습들이다. 오늘도 몇명일지 모르는 존재를 우리는 오늘도 모르고 살아갈 것이다. 얼마전 한 영화에서 실패할 경험, 실패할 자유를 욕망하며 북한 너머를 그리는 이야기를 보았다. 이 책의 설이, 광민, 여름 역시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사실 그들에게 주어지는 혐실은 녹록치 않기에 마음은 다소 혼란하기도 하다. 그럼에도 누구나의 안전, 누구나의 욕망, 누구나의 생존에 대해 생각한다. 나만이 아니라.

<파도의 아이들>, 정수윤 장편소설,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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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어질수록 행복해진다 - 관계 지옥에서 해방되는 개인주의 연습
쓰루미 와타루 지음, 배조운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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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살면서 나를 가장 힘들게 만든 고민은 무엇이었나?’라는 질문에 저자는 자신의 삶에서 가장 큰 고민은 ‘인간관계’였다고 썼고, 나는 그 ‘인간관계’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어쩌면 저자와 나는 프롤로그부터 삐걱거린 사이일지도 모른다, 고 생각했다.

고등학생 때부터 사회불안장애를 경험한 저자의 경우 많은 사람들과의 공간•관계가 긍정적이지만은 않았다. 그 사회불안 속에서 자신을 지켜내기 위한 분투가 지금의 저자가 말하는 것인데, 그렇다고 그가 무턱대고 회피를 이야기하진 않는다. 다만 우리 각자의 안전을 위한 선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더 적극적으로 ‘나를 존중해주는 관계’를 찾아야 한다는 것과 같이.

‘멀어질수록 행복해진다’는 것은 모든 인간관계를 단절하고 혼자 살아가라는 것이 아니라 ‘나의 자리’일 수 있는 유대를 만들며 살아가자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이건 내가 나로서 있을 수 있게 하잔 거였다. 가족이나 직장 등에서 구속 받고 억압받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흐르다보니 삐걱거리는 것 같던 나와 저자는 제자리를 찾아 둘러앉는 것 같았다. 나에게는 그러한 관계가 중요했고, 그런 관계들과 살아가고 있는 ‘지금’이기에. 밉거나 싫은 마음, 속박되고 억울하거나 고통스러운 상황에 나를 가두지 말고 안전하게 존재할 수 있고 안도할 수 있는 삶. 그 지향이 우리를 각자 자신으로 살게 하면서 타인에게도 다정할 수 있는 삶일 것이다.

<멀어질수록 행복해진다>, 쓰루미 와타루,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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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에 띄운 편지 반올림 61
발레리 제나티 지음, 이선주 옮김 / 바람의아이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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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마음을 담아 만들어진 이 책이 처음 나오고 수십 년기 지났지만, 달라지지 않은 상황. 아니, 더 심각해진 상황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나임이 썼던 메일 중 괄호 안에 붙였던 문장이 마음에 남았다. ”여기에도 거리, 대로, 구역, 사람들에게 이름이 있다는 걸 네가 알았으면 해서. 여긴 단지 '가자 지구'만은 아니거든.“ 이란 말. 나 역시 그저 ‘가자 지구’로만 있던 모호한 생각 속 이미지였단 걸 여실히 깨닫는다. 오늘도 세계 ‘속’이지만 그저 스쳐지나가고 누군가 원치 않는 사라짐과 고통이 던져질 것이란 생각 역시… 살아가고자 하는 이 사람들의 잘못이 무엇인가. 총을 겨누는 폭력의 정치를 방치하는 이들은 누구인가. 자유로울 수 없는 질문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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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는 말들 - 우리의 고통이 언어가 될 때
조소연 지음 / 북하우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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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는 말들>의 첫 문장은 ”2018년 5월 7일, 어머니가 자살했다.”이다. 어머니의 자살, 자살생존자인 저자가 다시금 써내려가는 고통의 언어와 애도의 글. 그러나 그 ‘다시’의 과정은 손쉽게 오지 않는다, 결코. 그럼에도 허은실 시인이 썼듯 ”쓰일 수밖에 없는 글이“ 있는 것이겠지. 울면서, 날뛰면서도 쓰는 글. 가슴을 움켜쥐고도 쓰는 글이. 온전히 그 이유만은 아니지만,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그의 어머니에 대한 사실과 추정이 뒤섞인 내밀하고 사적인 이야기들과 그의 원가족의 그러한 이야기가 어떤 과정을 가지고 쓰여졌을지 전혀 알지 못한 채로 책을 읽기도 하였고, 그 이야기 자체의 무게와 깊이로 이 책을 읽는 것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그리고 생각한다. 애초 편할 수 없음을. 왜 편해야 하는가에 대해. 그랬다면 이 말들은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고통이 언어가 될 때, 게다가 나와 타인의 고통의 공존을 설명하는 불가능의 시도가 어찌 아무렇지 않고 편할 수 있겠는가.

이 글은 저자의 글이고, 저자의 몫에서 토해낸 결과이다. 나라는 사람이 온전하게 나에서만이 아니라 수많은 방식으로 엮어지는 타인들과의 관계 속에서 그들의 이야기인 ‘나’로 존재하기에 이 경계를 지어 나누기 어려울 법하다. 그렇기에 엄마를 엄마로서만이 아닌 한 여성으로서 바라볼 수 있는 작업이 되고, 그것이 나라는 여성과도 얽히며 사유되는 것이다. 가부장제 남성중심적 이성애규범 사회에서 엄마란 여성이 받아온 성별화된 설움과 폭력은 대를 지나서도 끊기지도 사라지지도 않고 이 세상에 존재했다. 그리고 그 성적 폭력과 차별들은 딸인 여성들에게로 이어졌다. 저자 역시 자살 사고와 불안 공황 장애를 경험했다. 어머니의 죽음 이전, 연인이었던 이의 자살을 겪었고, 미끄러지는 연애들로 자기파괴적 시간을 보내었다. 이어받고 싶지 않은 유산 아닌 유산이 되어버린 ‘더러운 것’들은 이 여성들이 만든 것이 아님에도 왜 이 여성들에게 내려졌는가. 이것에 대한 답은 이 여성들이 아닌 이들이 답해야 할 일이리라. 여성들이 ’미쳐버리고‘, 뛰어내리지 않도록. 술에 취하지 않고, ‘미쳐버리지 않고’, 죽어버리지 않고도 이 서러운 여성의 목소리를 들어주었다면, 아니 애초 그렇다면 이 설움이지 않았을지도. 원치 않는 일을 경험하지 않았어도 이 세상의 여성들은 그토록 ‘미쳐버렸을까’. 이 ‘미친’ 여자, ‘아픈 몸’의 여자의 목소리들이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해본다.

지궁내막종 수술과 엄마가 사랑없이 폭력으로 시작된 친부와의 결혼을 끝내고, 그가 아닌 다른 남성을 만나고 새로이 가정을 꾸렸을 때 가졌던 일종의 안도에 대해 다시금 생각했다. 물론 처음엔 분노였고, 지금에 와서도 안도일까 싶은 현실이지만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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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게 될 것
최진영 지음 / 안온북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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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부터 2023년 발표된 최진영 작가의 단편소설 모음집 <쓰게 될 것>. 문학지를 (잘) 읽지 않기에 짧게는 몇 개월부터 수 년이 지나 만나는 작자의 ‘최근’ 단편들이겠다. 물론 그 사이 작가의 장편을 만난 시간이 있지만.

내지 속 ’우리는 서로를 버릴 수 없었다‘는 문장과 뒷표지의 해설의 일부를 읽고 책을 읽기 전부터 왈칵하는 마음이었다. 전쟁 중, 이라고 해도 맞을지 모르겠지만 폭탄이 언제 떨어질 지 몰라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창에 테이프를 붙이는 것인 이들을 만나며 작가의 글 중 한 문장을 계속해서 떠올려본다. ‘우리는 지루할 정도로 안전하다’는 지어진 이야기 속에서 그들의, 그러니까 상상 속의 그들에 대한 문장을. 결코 안전하지 않은 이가 하는 상상의 ‘지루한 안전’에 대해. 그리고 다시 엄마를 보며 쓴 문장에 대해 여러 번 읽으며 생각했다. ‘결심했으므로 망설이지 않는 사람’이란 문장. 나는 왜 이리 이 문장이 따끔거리는지, 실은 알고 있다. 나는 결심을 망설이며 겁을 내고 불안해하는 사람이란 걸 말이다. 겁 많고 두려움 많은 내가 망설이는 것들, 겁 많고 두려움 많은 내가 망설임 속에서도 하는 것들, 망설이며 하지 못하는 수많은 것들에 대해서 모르는 게 아니라서. 매번 부끄러움을 안고서 살아가면서 또 매번 나와 친구들의 안전과 사랑을 그리면서 살아가는 그 모든 것이 실은 망설임에 기대어 있는 것 같아서.

최근 읽은 소설도, 그렇다고 최근이라고 할 이전에 읽은 최진영 작가 소설도 ‘퀴어’ 소설이 아니었음에도 문득 소설을 읽다 퀴어 소설이 아니구나, 인식할 때 첫 사랑이 여성인 여성인 주인공의 회상이 나왔다. 너무 좋아서. 그런 소설을 만나니 이성애 디폴트가 아닌, 다른 ‘보통의’ 세계를 만나고 싶었던 것 아닐까 싶었다. 여튼, 이 이야기가 나온 [ㅊㅅㄹ]은 40대 여성 서진과 10대 청소년 은율의 채팅(이상한 거 아님)을 읽으며 후훗 미소도 나고,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인 사랑을 더 잘해보겠다는 은율의 마음에 나도 가 닿고 싶다고 생각했다.

최근 챗GPT 이야기가 많이 회자되는 와중, 나는 잘 도태되어 가고 싶다는 바람을 갖곤 한다. 이 세상은 너무 불필요하게 과개발되고 과잉 생상되고 있고, 그에 착 붙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건 과하게 버려지고, 과하게 격차가 일어나는 것이다. 내가 말하는 도태는 그런 것이다. 멈출 줄 모르는 세계에서 잘 멈춰서고, 친구들과 안전하게 관계를 엮어가며 돌봄으로 돌보는 세계. [인간의 쓸모]는 AI에 인간의 쓸모가 밀리는데도 인간은 더 높고 나은 인간을 만들고 싶어서 AI를 이용해 배아를 디자인한다. 자신의 내면의 주머니를 모부가 그려놓은 미래와 다르게 그려나가기 위해 코뮌의 노아를 만나러 가기를, 결심한 뒤 망설이지 않는 안나의 내일에 안나가 심은 신념의 나무가 잘 자라나길 마음 깊이 응원하고 싶었다. 나는 안나 역시 잘 도태되길 바랐다. 내가 친구들과 그렇게 살고 싶듯이.

이 책에서는 곳곳에서 불안이 발산된다. 그러나 사실 또 따지고보면 우리 인생에 불안이 그렇다. 나 역시 불안이 나의 근원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불안해서 지금 삶에 집중하지 못하고 떠돌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그러니까 사랑으로 쓴 최진영 작가의 글을 만나 기쁘다. 나도 사랑을 두고 갈 수 있을 정도로 사랑을 만들고 사랑을 할 것이기에.

전쟁이 멈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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