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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게 될 것
최진영 지음 / 안온북스 / 2024년 6월
평점 :
2020년부터 2023년 발표된 최진영 작가의 단편소설 모음집 <쓰게 될 것>. 문학지를 (잘) 읽지 않기에 짧게는 몇 개월부터 수 년이 지나 만나는 작자의 ‘최근’ 단편들이겠다. 물론 그 사이 작가의 장편을 만난 시간이 있지만.
내지 속 ’우리는 서로를 버릴 수 없었다‘는 문장과 뒷표지의 해설의 일부를 읽고 책을 읽기 전부터 왈칵하는 마음이었다. 전쟁 중, 이라고 해도 맞을지 모르겠지만 폭탄이 언제 떨어질 지 몰라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창에 테이프를 붙이는 것인 이들을 만나며 작가의 글 중 한 문장을 계속해서 떠올려본다. ‘우리는 지루할 정도로 안전하다’는 지어진 이야기 속에서 그들의, 그러니까 상상 속의 그들에 대한 문장을. 결코 안전하지 않은 이가 하는 상상의 ‘지루한 안전’에 대해. 그리고 다시 엄마를 보며 쓴 문장에 대해 여러 번 읽으며 생각했다. ‘결심했으므로 망설이지 않는 사람’이란 문장. 나는 왜 이리 이 문장이 따끔거리는지, 실은 알고 있다. 나는 결심을 망설이며 겁을 내고 불안해하는 사람이란 걸 말이다. 겁 많고 두려움 많은 내가 망설이는 것들, 겁 많고 두려움 많은 내가 망설임 속에서도 하는 것들, 망설이며 하지 못하는 수많은 것들에 대해서 모르는 게 아니라서. 매번 부끄러움을 안고서 살아가면서 또 매번 나와 친구들의 안전과 사랑을 그리면서 살아가는 그 모든 것이 실은 망설임에 기대어 있는 것 같아서.
최근 읽은 소설도, 그렇다고 최근이라고 할 이전에 읽은 최진영 작가 소설도 ‘퀴어’ 소설이 아니었음에도 문득 소설을 읽다 퀴어 소설이 아니구나, 인식할 때 첫 사랑이 여성인 여성인 주인공의 회상이 나왔다. 너무 좋아서. 그런 소설을 만나니 이성애 디폴트가 아닌, 다른 ‘보통의’ 세계를 만나고 싶었던 것 아닐까 싶었다. 여튼, 이 이야기가 나온 [ㅊㅅㄹ]은 40대 여성 서진과 10대 청소년 은율의 채팅(이상한 거 아님)을 읽으며 후훗 미소도 나고,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인 사랑을 더 잘해보겠다는 은율의 마음에 나도 가 닿고 싶다고 생각했다.
최근 챗GPT 이야기가 많이 회자되는 와중, 나는 잘 도태되어 가고 싶다는 바람을 갖곤 한다. 이 세상은 너무 불필요하게 과개발되고 과잉 생상되고 있고, 그에 착 붙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건 과하게 버려지고, 과하게 격차가 일어나는 것이다. 내가 말하는 도태는 그런 것이다. 멈출 줄 모르는 세계에서 잘 멈춰서고, 친구들과 안전하게 관계를 엮어가며 돌봄으로 돌보는 세계. [인간의 쓸모]는 AI에 인간의 쓸모가 밀리는데도 인간은 더 높고 나은 인간을 만들고 싶어서 AI를 이용해 배아를 디자인한다. 자신의 내면의 주머니를 모부가 그려놓은 미래와 다르게 그려나가기 위해 코뮌의 노아를 만나러 가기를, 결심한 뒤 망설이지 않는 안나의 내일에 안나가 심은 신념의 나무가 잘 자라나길 마음 깊이 응원하고 싶었다. 나는 안나 역시 잘 도태되길 바랐다. 내가 친구들과 그렇게 살고 싶듯이.
이 책에서는 곳곳에서 불안이 발산된다. 그러나 사실 또 따지고보면 우리 인생에 불안이 그렇다. 나 역시 불안이 나의 근원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불안해서 지금 삶에 집중하지 못하고 떠돌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그러니까 사랑으로 쓴 최진영 작가의 글을 만나 기쁘다. 나도 사랑을 두고 갈 수 있을 정도로 사랑을 만들고 사랑을 할 것이기에.
전쟁이 멈추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