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고독할 기회가 적기 때문에 외롭다 - 김규항 아포리즘
김규항 지음, 변정수 엮음 / 알마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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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끔따끔했지만, 그보다는 더 큰 위안이 되어 돌아왔다. ‘혁명도 해방도 구원도 결국 사랑의 행위다.’라는 문장으로 이 책은 끝난다. 비관적인 혹은 따갑게 관통하는 글. 결국, 사랑으로- 여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사랑은 그렇게 당신과 나를 이 고단한 삶 속에서도 버티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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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 혼자도 결혼도 아닌, 조립식 가족의 탄생
김하나.황선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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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혼자도 결혼도 아닌, 조립식 가족의 탄생’ 원자가 모여 분자가족이 된 두 사람의 이야기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를 읽으며 더 다양하고, 더 많은 모양의 분자가족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 각기 다른 조립이 그 자체로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음에 대해서 생각한다. 우리에게는 지금보다 훨씬 더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존재할 수 있다.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에 대한 끊임없이 존재하는 자기 안의 불안과 그보다 깊게 존재하는 외부로부터의 전함들. 명자(엄마)가 입원했을 때 같은 병실의 여성 노인은 나에게 결혼을 해야 함에 설득할 노력도 갖지 않고 당위로 말했다. 얼마 전에는 나와 동갑인 여성의 부모가 결혼 전에 독립을 ‘시켜’ 주지 않으며, 독립의 일환으로 결혼을 생각한다는 말을 들었다.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이 진실이 아닌 거짓이 되게 하는 요인은 무엇일까. 혼자여도 괜찮은, 이성애-정상가족 규범에 부합되지 않은 다른 형태의 가족을 구성해도 안정적이고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그때에도 사람들은 결혼을 강요하거나 당연하다고 생각할까?

1인 가구의 비중이 늘고 있다. 이성애 규범에 부합되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삶은 이미 많이 존재하고 있으며, 그와 상관없이 사람들은 이미 너무나 다양한 방식과 모양으로 저마다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 저마다의 삶이 어떻다는 기준으로 나뉘고, 언급조차 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그 저마다의 개인들에게 찾아야할 내용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시스템의 문제이다.

서로 너무 비슷한 취향을 그러나 서로 너무 다른 생활양식을 지닌 두 사람은 서재를 합치고, 생활에 필요한 제품들을 합치고 정돈하여 정말 한 집에서 함께 살아가게 되었다. 나 혼자 사는 것도 힘들 일이지만, 나 아닌 누군가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시간의 흐름으로 절로 해결되는 일이 아니라 서로 다른 결을 나누고, 내보이고, 맞춰가고, 인정해 가는 것이다.

부모의 집이 아닌 공간에서의 생활을 시작한 이후 2년은 주거공동체에서 생활했다. 각자의 방을 가지고 그 외의 공간을 공동으로 사용하며, 겨울철엔 고추를 다듬어 김장을 하고, 누군가의 생일을 같이 보내고, 각자의 손님을 허가가 아닌 신고(알림)으로 맞이하는 공간. 단기 거주자를 여럿 만났던 공간. 나의 취향의 일들을 공동체에서 하며 서로가 만나고, 이어지기도 했던 시간. 혼자의 공간을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주거 공동체를 나왔지만 그때의 경험은 지금의 나를 만들어오는데 많은 영향을 주었고, 지금의 내게도 적지 않은 영양분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 당시 같이 살았던 이들은 지금 또 다른 공동체를 꾸려 내게 놀라움과 함께 여러 생각거리를 주었다. 비-혈연관계의 사람들과 결혼과 비혼 상태의 사람들이 두루 섞여 주거공간의 비용을 같이 분담하고, 같이 살아가는 것을 넘어 경제 공동체를 실험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내게 새로운 가능성과 고민을 전해주는 것이었다. 지금 나는 그들과 같이 살지 않고, 그들처럼 살고 있지 않지만 마음 깊이 응원하는 따뜻한 무언가가 존재했다.

혼자 살아보자고 주거 공동체를 나왔으나 이후 혼자 산 것은 1년 남짓이고 누군가와 다시 같이 생활을 이어가는 공간에서 거주한지 5년차가 되고 있다. 친구와 둘이기도 했고, 그 친구와 혈연관계의 가족과 셋이기도 했다. 지금은 이 책의 제목인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처럼 혈연관계의 자매와 여자 둘이 살고 있다. 그러나 같이 살아온 시간이나 같이 살지 않았던 시간이나 비슷하게 따로 떨어져 살고, 같이 살았던 시간에도 서로의 교감이 많지 않았던 우리를 생각하면 으레 당연한 가족과의 거주보다는 각기 다른 원자가 모여 이룬 분자가족이란 생각이 든다. 삼십 대가 되어 우리는 서로의 다른 점에 대해 시시때때로 싸우고 짜증내지 않아도 함께 어우러지고 살아갈 수 있는 여유와 마음이 차곡차곡 쌓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마음 한 구석에는 동그라니 존재하는 공동체의 바람이 있다. 다양한 정체성과 맥락들을 지닌 나의 친구들과 어떻게 따로 또 같이(그것이 꼭 한 공간의 거주가 아니더라도)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그런 것이 말이다.

책을 읽으며 음성으로 웃음이 풋- 나오며 웃기도 하고, 나는 김과 황 두 사람 중 어떤 쪽의 성향을 더 지녔나 생각하기도 했다(그러나 나는 두 사람의 각기 다른 성향이나 취향 중 이건 김, 저건 황, 과 같은 식으로 존재하는 인간이었다). 마음속에 언제나 존재하는 모닥불 같은 나의 로망, 큰 테이블을 둘 수 있는 거실을 보며 엉엉- 마음으로 울며 부러워했던 기억이 이 책에 대한 기억으로 오래 남겠지만, 그보다는 정말 다양한 삶의 모양에 대해 생각하고 다짐하게 되는 시간으로 더 크게 남을 것 같다. 지금 사회의 결혼제도만이 아닌 동성혼, 생활동반자법 등으로 이야기되는 다채로운 조립으로 만들어지는 결합에 대해 말이다.

아, 그리고 무엇보다 불끈! 한 것은 정리에 대함이다! 비교적 잘 정돈되어 있는 거주공간이긴 하지만, 지금 살고 있는 공간과 그 공간을 차지하는 물건에 대해 새로운 정리가 다시금 필요하단 생각을 망원동 집요정 도비님을 보며 다짐한다(이 책을 읽으며 주방의 작은 수납공간을 정리했었다. 크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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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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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와 ‘패배’만이 남는 전쟁의 역사에서 하찮다는 이유들로 기억될 리 없던, 기록되지 못했던 이야기. 우리가 만나온 역사와 어떤 사건들의 기록은 모두가 파편적일 것이다. 하나의 목소리가 아닌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그 자체로 기억될 수 있어야 한다. 고통을 되풀이하지 않기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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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는 곳으로 오늘의 젊은 작가 16
최진영 지음 / 민음사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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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랑 이야기는 이제 진부한가? 글쎄, 그럴 수 있으려나. 최진영 작가의 <해가 지는 곳으로>를 사두고도 한참을 책꽂이에 두고 있다가 하루 정도의 시간을 가지고 읽어 내려갔다. 일전에 한 번 시도한 적 있었는데, 그땐 마음이 이끌리지 않아 멈췄던 자국이 책엔 그래도 남아 있었다. 직전에 좀 모호한 책을 읽었는데, 이 책은 너무 꾹꾹 자국을 남기는 눈 위의 발자국 같았다. 곧 녹아 없어지거나, 다른 것들과 쉬이 섞여버릴 자국이라고 하더라도. 꾹꾹.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전 세계라고 해야 할까, 여하튼 한국은 치명적인 바이러스로 수많은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죽는다. 그 뒤 살아남은 사람들, 그리고 한국을 떠나 러시아의 허허벌판 어딘가를 달리는 사람들의 이야기. 어린이의 간을 탐내고, 사람 수보다 많은 총을 들고 있고, 생존의 문제가 달린 그 척박한 땅 위에서도 성적 욕망을 분출하기 위해 ‘강간’을 하는 사람들과 그 ‘강간’의 시간에 붙잡힌 사람들이 나오는 이야기.

그러나 이 소설의 핵심은 사랑. 세상의 종말 속에서 눈을 떠도 잘 보이지 않는 먼지 자욱한 오늘을 버티고 일어나는, 사랑을 놓지 않고 그곳이 어디든 멈추지 않고 가고 말 사람들의 이야기. 그들의 사랑 이야기. 저마다의 절망이 만들어진 결은 다를 수 있지만, 우리는 지금을 함께 살아가도 서로 다른 순간을 지니고 있겠지만 그럼에도 이 길 위해서 만나 시작하는 사랑이 만들어낸 또 다른 사랑의 방식, 사랑의 모양, 결국 원과 같을 사랑의 이야기.

‘재앙을 기회로 여기는 사람들. 재앙에도 굶지 않고 뛰지 않는 사람들(p18)’. 저승보다 먼 곳에 세계가 있을 사람들의 이기 속에서 동생 미소를 잃지 않기 위해 멈추지 않는 도리와 재앙 속에서도 농담과 웃음을 만들어 가는, 하등 쓸모없는 그러나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품고 있는 지나. ‘꿈을 꾸고 우주인이 되었기 때문에(p176)’ 소리를 잃은 미소. 단 하나의 사랑, 단 하나의 길을 놓지 않고 살아갈, 살아남을 건지. 그리고 ‘너무 무난하고 뻔해서 위태로(p170)’웠던, 그래서 충분히 생각하지도 못하고 헌신하지도 못했던 ‘사랑’에 대해 저리게 깨닫게 되는 류와 그리고 단.

소설은 기적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평생에 단 한 사람은 있을 것이다. 내 인생의 A, B, C가 아니라 완벽한 고유명사로 기억될 사람이. 어떤 이는 지름길로 나타나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다. 가장 먼 길을 지난하게 지나고 모든 것에 무감해진 때에야 비로소 거기 있는 풍경처럼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사람도 있다. 기적을 만나려면 그곳까지 가야 한다. 멀어지며 그것을 갈구할 수는 없다.’ 그래서 죽고 사는 것보다 중요해지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그 사랑이란 것에, 그리하여 그 기적이란 바람에.

서로를 향해 걷지 않았지만, 그 두렵고 낯선 곳에서 도리와 지나는 만난다. 사실 이 만남 자체가 기적이 되었다. 정상성에 부합되지 않는 비-이성애 관계의 두 여성인 도리와 지나. 그들의 입맞춤에 누군가는 더럽다는 듯이 침을 뱉었지만, 그들이 만들어낸 공기는 달랐다. 류는 그들과 함께 하며 ‘온갖 나쁜 것 속에서도 다르게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잊지 않을 수 있었다(P165)’. ‘단 하루를 살더라도 평생처럼 살고(P64)’싶은 도리였으니까. 지나와 함께. 이 절망 속에서 버려두었던 감정과 외면해두었던 것들이 되살아났으니까. 더는 ‘미루는 삶은 끝났다. 사랑한다고 말해야 한다(P100)’는 것을 이제 아니까. 모를 수 없으니까. 희망은 애초에 믿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세계는 점점 어둠에 다가갈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랑이 있다. 세상을 끝까지 돌진할 수 있고, 멈추지 않을 수 있는 심장의 빨간 보석, 사랑이 있다.

<해가 지는 곳으로>, 최진영, 민음사

아, ‘함께 보낸 무수한 어제가 직조해낸 우리만의 문양(166)’이란 문구가 있었다. 이 짧은 문장을 보고 울고 말았다. 그것은 사랑이라서, 사랑이어야 가능한 것이라서, 사랑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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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미숙 창비만화도서관 2
정원 지음 / 창비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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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숙은 단단해져갈테니까.
불룩한 가난의 모습 속에서도 다른 선택과 마음을 가질 수 있다.
그것은 너의 몫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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