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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위 있는 삶을 위한 철학
토드 메이 지음, 이종인 옮김 / 김영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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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 이론도 철학 이론도 아니지만 그것보다 더 어려운 품위에 관한 책.

어릴 때는 착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마냥 착한 사람은 호구가 된다는 사실을 차츰 알게되면서, 적당히 품위 있는 사람이지만 호구는 아닌, 그래서 요즘 사회에서 살아가기 적절한 인물이 되고 싶었다. 착하지 않다고 해서 나쁜 사람이 되고 싶은 건 아니기 때문에.
이 책은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쓰여졌다고는 하지만 품위에 대해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오히려 책을 읽고 나니 품위 있는 삶에 대한 고민이 더 깊어졌다고 해야하나. 분명한 건 남을 먼저 생각한다든가, 나를 먼저 생각한다든가, 이런 것 말고 나와 남을 동시에 떠올릴 수 있는 삶이 품위 있는 삶인 것 같다. 이 책의 저자도 내가 사는 삶 밖에도 사람이 존재한다는 걸 인식하는 것이 품위 있는 삶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공장식 축산, 채식주의에 관해 언급하는 부분에서는 나는 아직 품위 없는 사람으로 남아있었다. 아직까지 머릿속으로 공장식 축산이 잘못된 것이고, 지구환경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긴 하지만, 고기 덩어리를 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은 사라지고 맛있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니 말이다. 그러고선 나 한 명쯤은 괜찮을 거라고 자기합리화를 하며 고기를 구워 먹는다.

이렇게 생각하니 시간적으로 떨어져 있는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공장식 축산으로 환경이 오염될 수 있다고 하고 미래 세대를 생각해서 더이상의 환경 오염은 막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 책에서 우리가 책임지지 않은 만큼을 미래의 아이들이 책임지게 된다고 말하지만 사람들은 별로 그것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다. 대부분 그건 그들의 몫이고 나는 죽어 없어지면 끝이라고 생각한다면? 나는 피터 싱어처럼 이타주의자가 아니다. 물론 박애주의자도 아니다. 내 아이에게 물려줄 지구가 환경 오염때문에 황폐화 된다면 조금 죄책감이 들 것도 같다. 사람들이 풀만 먹고 사는 삶을 상상할 수가 없다는 말은 재고의 여지가 있다. 왜냐하면 상상할 수 없다는 말은 삶이 지나치게 육식 위주로 돌아가고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렇게 다시 생각하고 최소한 육식과 채식의 균형을 맞춘 삶을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완전한 채식을 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지금처럼 지나치게 육식에 치중된 식사를 하지도 않는다.

이것은 5장에 나온 정치적 품위에 언급된 과학자처럼 생각하기와 연관된다. 내 생각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새롭게 들어온 의견은 나를 완전히 설득하지는 않았지만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인정한다. 이런 식으로 인정이 쌓이다 보면 정말 무지하지 않고 품위 있는 사람이 되어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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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시대 생각의 시대 1
김용규 지음 / 김영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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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 생각의 시대다!
- p.16

네트워크 안에서 원하는 모든 정보를 찾을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고, 지식은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지식의 시대를 거치면서 사람들은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잃어버렸고 말았다. 다시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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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목적은 ‘두 번째 생각의 시대’를 겪고 있는 우리 인간이 ‘첫 번째 생각의 시대’를 살아온 고대 그리스인들의 지혜를 통해 생각하는 법을 다시 배우는 데 있다. 저자는 철학을 전혀 배워본 적 없는 나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비유와 그림을 이용해 고대 그리스인의 철학을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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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인의 생각 도구는 ‘은유, 원리, 문장, 수, 수사’, 5개의 커다란 범주로 나누어져 있다. 4장의 ‘수’를 제외하고서 거의 모든 생각의 도구가 ‘언어’와 관련이 있다. 가히 토론의 민족이라고 칭할 수 있는 고대 그리스인들이라서 그런지 그들은 말과 문자의 중요성을 높이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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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이나 수사에 관한 중요성은 평소 생활을 하면서 체감할 수 있는데, 은유가 삶을 살아가는 데 중요한 것인지 책을 읽기 전까지는 쉽사리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책을 읽어보고 알았다. 우리의 삶은 생각보다 많은 은유로 뒤덮여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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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를 이해한다는 것은 우리의 일상적 사고와 언어 그리고 사회/문화적 행위들을 이루는 정신적 코드를 이해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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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한 건 은유든 문장이든 훈련을 통해서 발전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 말을 거꾸로 뒤집어보면, 훈련하지 않으면 이들은 절대로 발전할 수 없다는 말이 된다. 생각하는 능력은 훈련하지 않으면 키울 수 없다. 이것이 어렵고 복잡한 철학 이론을 다 제쳐놓고 내가 이 책을 읽으며 깨달은 가장 커다란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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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어딘가 블랙홀 - 감춰져 있던 존재의 ‘빛남’에 대하여
이지유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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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어딘가 블랙홀 - 이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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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과학책’이 아니라 ‘과학 에세이’다. 어떻게 에세이에 과학이 버무려져 들어가느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이 책을 읽으면 “아, 그게 가능한 거였구나!”하고 깨달음을 얻는다. 이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작가님이 전 세계 방방곡곡을 과학적 시선으로 보며 여행하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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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첫 문장을 읽었을 뿐인데, 나는 벌써 경탄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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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3
2019년 7월 2일 오후 3시에 칠레의 해변 라세레나에서 개기일식이 일어난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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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기일식이 일어난다는 소식을 듣고 칠레로 떠날 수 있는 삶이라니! 흥미진진한 모험과 좌충우돌 재미난 사건들로 가득한 삶이 상상되면서, 바로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코로나19 사태로 실내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진 나는 그렇지 않아도 세계테마기행과 여행 채널을 전전하며 겨우 갑갑한 마음을 풀어내고 있었는데 이렇게 또 떠나고 싶게 만들다니. 하루빨리 코로나가 진정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때가 되면 바로 어디론가 떠나버릴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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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렝게티의 왕은 사자가 아니더라’라는 차례는 단연 기억에 남았다. 세렝게티 하면 떠오르는 건 치열한 약육강식의 세계, 사자의 맹렬한 사냥이다. 그러나, 세렝게티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그런 것이 아니라 ‘끝없이 펼쳐진 대지 위에서 초식동물들이 코를 박은 채 열심히 풀을 뜯는 모습’이라고 한다. 풀만 많으면 어디서든 살아갈 수 있는 검은꼬리누와 달리, 그들 누 떼가 없으면 결국 굶어 죽는 사자의 처절한 삶을 누가 상상이라도 했을까? 작가님 말대로 진정한 세렝게티의 왕은 포식자들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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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렝게티 외에도, 하와이, 몽골, 페루 등등 작가님이 세계 곳곳을 여행하면서 보고 느낀 것을 과학 지식 소스를 40% 정도 쳐서 읽을 수 있는 재미난 책이었다. 이지유 작가님은 항상 읽기 편하고 유쾌한 책을 쓰시는 것 같다. 다음에 작가님 책이 나오면 꼭 읽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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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위상학 한병철 라이브러리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김영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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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성과사회, 긍정성 과잉, 자기착취, 우울증, 번아웃, 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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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참 특이하다. 폭력의 위상학. 말 그대로 폭력이 벌어지는 공간이 변화했다는 말이다.
책에서는 예시로 강제수용소를 드는데, 이것(즉, 폭력)은 더 이상 도시의 중심부가 아니라 변두리(비-장소, Ab-Ort)에 자리하며 부끄러운 듯 몸을 숨긴다.

그러나, 침묵하는 폭력은 보이지 않을 뿐 모든 것을 파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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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0
성과사회는 자기 착취의 사회다.
성과주체는 스스로 불타버릴 때까지(번아웃) 스스로를 착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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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37
폭력과 자유는 하나로 합쳐진다. 폭력은 자기관계적인 성격을 얻는다. 착취자는 피착취자다. 가해자는 동시에 피해자다. 소진은 이런 역설적 자유의 병리적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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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사회는 ‘할 수 있다’는 자기 암시를 통해 스스로를 착취하도록 만든다. 현대 사회에 만연한 긍정성 과잉은 번아웃 증후군, 우울증을 당연한 질병으로 만들어 버린다. 어쩌면 오늘날 자유의 진정한 의미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이 아니라, ‘뭐든지 해야 하는’일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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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러한 긍정성 과잉은 파열적(implosiv) 폭력으로 작용하게 된다고 말하는데, 이는 고전적 폭력이 가졌던 폭발적(explosiv)인 성격과는 구분된다. 접두사인 'im-'과 ‘ex-'에서 눈치챌 수 있듯, 파열적 폭력은 그 압력이 외부가 아닌 내부를 향한다. 내부를 누르는 압력이 커지면 과열된 압박과 긴장은 경색으로 이어지며, 결국은 자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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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44
소진 상태에 이른 성과주체는 임박한 시스템의 파열을 알리는 병적 전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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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74
우울증에 걸린 성과주체는 말하자면 성격이 없는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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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도 없는 자기착취로 번아웃이 온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책을 읽는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내가 왜 번아웃이 왔는지 이유라도 알면 마음을 조금이라도 내려놓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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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고 있는 악역이 험상궂은 악역보다 무서운 것처럼, 긍정성 과잉이 가져온 폭력은 가시적인 부정성 폭력보다 무섭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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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는 스스로가 보상주체가 될 수는 없다고 했지만, 나는 오늘도 고생한 나를 위해 자본주의적 선물 하나를 사주며 보상을 얻는다. 그리고 어제처럼 소진되며 더많은 성과를 얻기 위해 자기착취를 하며 살아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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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의 집 청소
김완 지음 / 김영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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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문장 - 양손에 납작하고 투박한 검은 상자 두 개를 들고 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씁쓸했던 적이 없다.

죽은 자의 집을 청소하는 일. 청소부는 죽은 자의 생을 상상할 수밖에 없었다.

 

p.101

하지만 이 집에 머무는 며칠 동안 그에 대한 의문을 거듭할수록 깨달은 것이 있다면, 이곳에서 무엇을 보았든 그것은 그저 내 생각의 반영이라는 것이다.

이 집을 치우며 지독한 고독을 보았다면 그것은 결국, 내 관념 속의 해묵은 고독을 다시금 바라본 것이다.

 

죽음의 냄새 근처에서 일하는 청소부는 죽은 자의 집을 끔찍하다고 묘사하지 않는다. 그의 말은 주로 안타까움과 씁쓸함을 담고 있어서 더 먹먹하다. 청소부의 문장을 읽고 있으면 아이러니하게도 이미 떠난 사람의 삶을 떠올리게 하는데, 존재와 부재 사이의 좁은 간극은 너무 커다랗게 느껴진다.

칫솔 두 쌍과 두 종류의 라면을 통해 죽은 이와 함께 살았던 사람의 존재를, 그리고 동시에 부재를 알게 된 것처럼, 이 책은 부재를 서술하면서 죽은 삶의 숨결을 그대로 들이마시는 기분을 느끼게 만든다.

 

p.47

주로 가난한 이가 혼자 죽는 것 같다. 그리고 가난해지면 더 외로워지는 듯하다. 가난과 외로움은 사이좋은 오랜 벗처럼 어깨를 맞대고 함께 이 세계를 순례하는 것 같다. 현자가 있어, 이 생각이 그저 가난에 눈이 먼 자의 틀에 박힌 시선에 불과하다고 깨우쳐주면 좋으련만.

 

죽음과 가까이 있어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삶이자 죽음이고 존재이자 부재인 나는 오늘따라 밤이 참 어둡고 아파트의 불빛이 너무 밝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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