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백책백강 선정 이후 시즌 1 강의를 진행하며 올린 sbi의 글입니다.

 

 

. 백책백강 기획과 목록 선정 과정


1) 출판 전문교육에서 인문 독서교육으로, 책을 둘러싼 담론의 현장으로 나아간다

2005년 5월에 개원한 서울북인스티튜트(이하 SBI)는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464-53번지에 있다. ‘출판인 꿈의 공장’이라 불리는 이 건물은 18개 출판사가 출연한 설립 기금과 독서진흥특별회계 지원금, 67개 출판사의 기부금으로 세워졌다.
개원한 지 만 7년의 성과는 교수 170명, 교육 과정 169과정, 교육 횟수 396회, 수료 인원 7,447명이라는 숫자로도 확인할 수 있다. 출판편집자 입문과정에서부터 회계와 경영관리, 웹마케팅, 인디자인 등에 이르기까지, 편집자, 마케터, 디자이너, 경영자를 위한 입문·향상 과정에 깊이와 다양성을 고루 갖춘 출판 전문교육을 충실히 해왔다.
이제 직업적 전문교육의 기반을 다진 SBI는 출판인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독서교육, 책 읽기와 담론의 즐거움을 향유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시작하려 한다.
책을 만들고 파는 출판인의 생활과 책은 서로 뗄 수 없는 관계다. 그러나 출판인은 순수한 독자로서의 면모는 잘 갖추기 어렵다. 어떤 차원에서든 책을 자료이자 정보 매체로 이용하는 직업적 습관 때문일 것이다. 또한 독서 행위는 저자와 독대하며 홀로 수행해야 한다는 오래된 편견도 쉽게 책을 들지 못하게 만드는 원인이다. 과중한 업무량과 복잡한 인간관계 속에 놓인 출판인이 독서를 위한 자신만의 시간과 공간을 확보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것이 이번 ‘백책백강’ 프로젝트의 한 단초다.
좋은 책은 함께 읽을수록 그 뜻이 더욱 새롭고 깊어진다는 신념에서 ‘백책백강’은 시작되었다.


2) 출판인에게 추천받고, 자문위원에게 검증받다

2011년 겨울, 한국출판인회의 소속 출판인들에게 설문조사를 통해 ‘출판인으로서 함께 읽고 싶은 책’, ‘저자 또는 관련자의 강의를 직접 듣고 싶은 책’을 추천받았다. 갈라파고스 임병삼 대표부터 불광출판사 천은희 편집자에 이르기까지 경력과 연령이 다양한 출판인 121명이 230권의 책을 추천하였다.
SBI는 추천도서 230권의 목록을 100권의 목록으로 만들기 위한 6인의 운영위원을 구성하였다. 현 SBI 원장 정은숙(마음산책 대표), 교육위원장 조재은(양철북 대표), 유재건(그린비 대표), 주연선(은행나무 대표), 김기옥(한스미디어 대표), 이홍(웅진씽크빅 단행본사업본부장) 운영위원은 2012년 봄부터 여름까지 8차례의 회의를 거쳐 119권의 목록을 만들어냈다. 운영위원회에서 논의된 사항은 강의를 개설할 경우 강사 섭외와 주제의 유효성, 출판인의 전문성과 관심의 적합성에 집중되었다.
이후 책 전문가로 활동하는 자문위원 4인을 구성, 119권의 목록에 대한 검증을 받았다. 한기호(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이권우(한양대학교 교수), 고명섭(한겨레신문사 문화부장), 이현우(러시아문학 전문가, 『로쟈의 인문학서재』 저자)는 119권에 대해 판본의 완역 여부와 번역의 질, 출판시장에서의 절판 여부 등 꼼꼼한 자문을 해주었다.
이로써 최종적으로 100권의 목록을 완성하였다.


2. 백책백강 목록의 특징


1) 출판인이 직접 선정하고, 강의를 열고, 함께 읽는다

그간 권장 도서라 하면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남녀노소나 교육 수준과 상관없이 임의의 독자를 대상으로 추천해온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 목적이 전문성과 깊이를 창출하기보다 호기심을 이끌어내는 데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분야와 관심사를 넘어 책을 두루, 거기다 웬만큼 깊이 익혀야 하는 출판인들로서는 마땅한 지침으로 삼기에 부족함이 따른 게 사실이다. 출판인들이 ‘의도치 않게’ 관심을 공유하지 못하고 각 분야에서 좋게 말하면 전문화, 나쁘게 말하면 파편화된 데에는 이런 이유도 없지 않다.
이번에 선정한 100권의 책은 출판인들이 지식과 관심을 공유하는 데서 나아가 지성을 끌어올리기 위한 자구적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출판인들 스스로 머리를 맞대고, 필요하면 전문가에게 자문하여 ‘출판인으로서 함께 읽고 싶은 책’, 그리고 ‘저자 또는 관련자의 강의를 직접 듣고 싶은 책’을 뽑았다.
당연히 출판이라는 지식산업 분야의 색깔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데, 목록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2) 국내서 29권, 번역서 71권, 동양 40권, 서양 60권
—플라톤에서 나오미 클라인까지, 일연에서 천정환까지


먼저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고 인류 지성의 총체라 할 29권의 국내서와 71권의 번역서를 뽑았다. 동양에서는 손자의 『손자병법』, 장자의 『장자』, 사마천의 『사기열전』, 일연의 『삼국유사』까지, 서양에서는 플라톤의 『국가』,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지역으로 나누면 동양 40권, 서양 60권 정도로 고대, 중세, 근대, 현대까지 역사와 지성의 흐름을 편견 없이 공정한 시선으로 헤아릴 수 있도록 고르게 배분했다.
분야별로는 비록 엄밀히 가를 수 없지만 문학 약 20권, 과학 및 수학 약 10권, 그 외 역사·예술·정신분석학·법학 등 인문 및 사회과학 도서로 나머지를 구성했다. 이른바 지성의 비영역화·비경계화를 도모하는 시도다. 학제간 연구의 필요성은 이제 새삼 강조하기가 무색할 만큼 익숙한 말이 되었다. 학문 곁에서 학문의 촉매제 역할을 하는 출판계 역시 이 흐름에서 자유로울 리 없다. 어쩌면 ‘이제야’라는 수식어가 옳을 만큼 그간 출판인들이 타성에 젖어 자기 보금자리를 공고히 해오지 않았나 싶다.
한 울타리에 갇힐수록 책이라는 결과물은 구닥다리가 되고 도태하게 마련이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손자, 장자 등 읽을수록 새로운 고전에서부터 나오미 클라인처럼 이 시대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주목받는 저자의 저서까지 아우른 백책백강 목록은 그런 면에서 출판계 통섭의 첫걸음이고자 한다.
책의 시공간적 배경과 갈래를 넘어 목록에서 눈에 띄는 또 다른 특징은, 풀어 쓴 해설서보다 원전 읽기를 강조한다는 점이다. 손자, 장자는 말할 것도 없고 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니체, 지그문트 프로이트, 나아가 현대 철학계에서 독보적이라고 할 슬라보예 지젝 등 쉽지 않은, 그러나 쉽게 다가설 수 없기에 매력적인 텍스트들이 일독을 기다린다. 풀어 쓴 해설서가 지류라면 이 책들은 이미 숱한 지류를 낳은, 앞으로도 숱한 지류를 낳을 이른바 ‘원류’다. 이런 책들을 읽는 건 원전을 직접 맞닥뜨림으로써 텍스트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자신의 독법과 해석, 안목을 바탕으로 메타텍스트에 대한 눈을 넓히기 위한 시도다.


3) 명강의로 이끌어내는 지식의 봇물

책을 읽는 데서 끝난다면 백책 선정의 의미가 줄어든다. 다시 말하지만 이 시도의 궁극적 목적은 출판인들이 자기 구획에서 나와 서로 지성을 공유하고 끌어올리는 데 있다. 그러려면 각자의 지식과 해석을 나누고 비판할 소통의 장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 목록을 토대로 저자 또는 해당 연구자의 강연을 계획하고 있다. 당연히 국내 저자들의 강연이 먼저일 텐데, 신영복, 김우창, 천정환, 강신주, 고병권, 정민, 고미숙, 고종석, 강준만, 진중권, 법륜, 최재천, 김동춘, 신재식, 장대익, 김윤성, 강명관, 이진경, 조정래, 정희진, 김두식(이상 백책 목록 순) 등 이 시대를 대표하는 학자와 작가들의 강의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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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흥미로운 `기본소득`에 대한 찬찬한 안내의 말씀 듣고 싶습니다. 소문난 명강이신 홍세화님과 하승우님의 강의 모두 기대됩니다. 1, 2강 1명 신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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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강 2강 모두 1명 신청합니다. 현대 중국이 어떻든간에-_-ㅋ 역사에 흐르는 위대한 사상가들 자체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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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위 - 꿈에서 달아나다
온다 리쿠 지음, 양윤옥 옮김 / 노블마인 / 201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기승전허무 ㅜㅜ 문제의식과 이야기의 풀어나감은 좋았으나 갑자기 끝내버리셨...-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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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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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호도 정대도 정미도 진우도 은숙도 선주도,

어리디 어린 그들이 왜 그토록 참혹하게 스러져야 했는지

어쩌면 그토록 존엄하게 바로 서 있을 수 있었는지... 

 

6장 꽃 핀 쪽으로를 읽을 땐 한 줄 문장마다 아니 단어, 낱글자마다에 눈물을 펑펑 쏟으며

이 눈물이 무언지 어떤 의미의 눈물인지 스스로에게 물으며 부끄러웠다.
숨이 콱 막히는 답답함  치밀어 오르는 분노  무거운 보따리를 이듯 빚진 느낌  온 몸이 스물거리는 이물감 ...과 전율 끝에

시원하게 울 수 있어서 고마웠지만 그렇게 쉽게 울어버리면 안될 것 같아서 죄스러웠던.

이 책을 무어라 추천해야 할지 난감하다.
재밌어 라고 한다면 가볍고 꼭 읽어봐 라고 권한다면 부담스러울 테니.
단, 각오했던 것보다 무겁지 않았고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재미있다(이 단어가 여전히 어울리지 않지만 소설적 재미, 서사의 재미가 있다).

 

 

달아났을 거다, 라고 이를 악물며 너는 생각한다. 그때 쓰러진 게 정대가 아니라 이 여자였다 해도 너는 달아났을 거다.

형들이었다 해도, 아버지였다 해도, 엄마였다 해도 달아났을 거다.

용서하지 않을 거다.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을 거다. 나 자신까지도.

 

자정 무렵이었던 것 같아, 가냘프고 부드러운 무엇이 가만히 나에게 닿아온 것은.

얼굴도 몸도 말도 없는 그 그림자가 누구의 것인지 몰라 난 잠자코 기다렸어.

혼에게 말을 거는 법을 생각해내고 싶었지만, 어디서도 그 방법을 배운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어.

서로에게 말을 거는 법을 알지 못하면서, 다만 온 힘을 기울여 우리가 서로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만은 느낄 수 있었어.

 

당신들을 잃은 뒤, 우리들의 시간은 저녁이 되었습니다.

우리들의 집과 거리가 저녁이 되었습니다.

더이상 어두워지지도, 다시 밝아지지도 않는 저녁 속에서

우리들은 밥을 먹고, 걸음을 걷고 잠을 잡니다.

 

이제 그녀는 스물 네살이고 사람들은 그녀가 사랑스럽기를 기대했다.

사과처럼 볼이 붉기를, 반짝이는 삶의 기쁨이 예쁘장한 볼우물에 고이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그녀 자신은 빨리 늙기를 원했다. 빌어먹을 생명이 너무 길게 이어지지 않기를 원했다.

 

너를 데리고 가려 하자 너는 계단으로 날쌔게 달아났다. 겁에 질린 얼굴로, 마치 달아나는 것만이 살길인 것처럼.

같이 가자, 동호야. 지금 같이 나가야 돼.

위태하게 이층 난간을 붙들고 서서 너는 떨었다. 마지막으로 눈이 마주쳤을 때, 살고 싶어서, 무서워서 네 눈꺼풀은 떨렸다.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당신이 죽은 뒤 장례를 치르지 못해,

당신을 보았던 내 눈이 사원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목소리를 들었던 내 귀가 사원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숨을 들이마신 허파가 사원이 되었습니다.

봄에 피는 꽃들, 버드나무들, 빗방울과 눈송이들이 사원이 되었습니다.

날마다 찾아오는 아침, 날마다 찾아오는 저녁들이 사원이 되었습니다.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군인들이 쏘아 죽인 사람들의 시신을 리어카에 실어 앞세우고 수십만의 사람들과 함께 총구 앞에 섰던 날, 

느닷없이 발견한 내 안의 깨끗한 무엇에 나는 놀랐습니다. 

더이상 두렵지 않다는 느낌, 지금 죽어도 좋다는 느낌, 수십만 사람들의 피가 모여 거대한 혈관을 이룬 것 같았던

생생한 느낌을 기억합니다.  그 혈관에 흐르며 고동치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의 맥박을 나는 느꼈습니다.

감히 내가 그것의 일부가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순간 깨달았습니다. 그들이 원한 게 무엇이었는지. 

우리를 굶기고 고문하면서 그들이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이었는지. 

너희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애국가를 부른 게 얼마나 웃기는 일이었는지, 우리가 깨닫게 해주겠다.

냄새를 풍기는 더러운 몸, 상처가 문드러지는 몸, 굶주린 짐승 같은 몸뚱어리들이 너희들이라는 걸, 우리가 증명해주겠다.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자신의 얼굴과 목소리를, 전생의 것 같은 존엄을 기억해 내는 순간.

그 순간을 짓부수며 학살이 온다, 고문이 온다, 강제진압이 온다. 밀어붙인다, 짓이긴다, 쓸어버린다.

하지만 지금, 눈을 뜨고 있는 한, 응시하고 있는 한 끝끝내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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