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 제1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3판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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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다른 사람들이 쓴 리뷰를 한참이나 훑어봤다. 책이 -또는 여타 예술 작품이 하고자 하는 말을 명확하게 알지 못했을 때 하는 행동이다. 평이 여러 갈래로 엇갈린다.

김영하를 잘 알지 못한다. 이 책은 영화로 본 살인자의 기억법을 제외하면, 내가 읽은 그의 첫 작품이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발상이 독특하여 인상 깊었다. 치매에 걸린 살인자가 만난 젊은 살인자. 그래서인지 이 책도 뭔가 특별한 것이 있을거라는 무의식이 발동했을까. 제목 또한 강렬했다.

소설 속 ‘나‘와 같은 사람을 만났다면 오늘의 나는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러나 스스로 자신이란 존재를 세상에서 제거해버릴 권리가 있다 해도, 타인이 그 ‘권리‘를 촉진시킬 ‘권리‘는 없다. 타인이 개입되어 있는 그 행위를 온전한 자기파괴권의 행사라고 인정할 수 없다. -자신의 도움을 받아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사람이 느끼는 모종의 쾌감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미술과 연결지어 내용을 전개하는 방식은 흥미롭다. 자살조력자라는 직업을 -직업이라 부를 수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상상해낸 것이 20여년 전임을 가만하지 않더라도 그 역시 유별하다. 썩 유쾌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문장이 간결하고 매끄러워 쑥쑥 잘 읽히는 것도 장점이다. 드러내는 것이 위험하다고 간주되는 욕구에 대한 본능적인 호기심 또한 흡인력의 한 요소로 작용한다.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불쾌함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어째서 비상식적인 -섹스를 하면서까지 막대사탕을 입에서 떼지 않는, 권태를 깨뜨리기 위해 누군가가 지켜보는 것을 오히려 즐기며 자위를 하는, 커피를 요구한 뒤 느닷없이 옷을 벗어버리는, 물을 마시고 발작적으로 토하는 행동으로 기이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게 하는 쪽은 여성인가. 작품 속 세 남성 역시 평범하지는 않다. 그렇지만 그들의 행동에는 내러티브가 있다. 단순히 남성 작가가 만들어낸 세계이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불편함이 있다.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김기덕 감독이 떠올랐다.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여성 역시 대체로 무기력하고 묘한 행동을 한다. 때로는 파괴적이다. 상상 속 여성의 모습이 그러한데 그들이 현실에서는 여성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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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적 사고가 지배적인 세상에서 여성을 사는 것이 때로는 깊은 좌절감을 겪게 하는 일임을 사무치게 느끼며 살아놨다. 그래서 여권 신장이 필요하며 아직은 갈 길이 멀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페미니즘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지 알지는 못한다.

역사는 다수, 그리고 이긴 자의 논리대로 흘러왔다. 성별로 본다면 주류는 남성이다. 페미니즘은 이 주류의 관점에 대한 도전이 아닐까. 소수의 입장으로, 약자의 눈으로 세상을 다시 봐보자는 외침이다. 여성뿐만 아니라 이 사회에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의 시선으로 바라보자는 요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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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62
책들과 독자들의 방문을 자주 받다 보면 결국 장소들이 자신들애게 부여된 이미지에 스스로를 맞춰 책들을 닮아 버리기도 하는데 그렇다면 낯선 장소들을 발견하는 일을 책으로 시작하여 책으로 끝내는 것이 그만큼 더 정당화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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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길
로드 브라운 그림, 줄리어스 레스터 글, 김중철 옮김 / 낮은산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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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들이 얼마나 절망하고, 분노하고, 고통스러웠는지 감히 상상할 수 없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일 테니까. 인간은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을까. 어쩌면 인간은 노력하지 않으면 악할 수밖에 없는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자유를 되찾기 위해 목숨을 걸었고 마침내 어렵게 다시 자유를 맞은 그들은 행복했을까. 그들에게는 누가 사죄를 해야 하는가.

역사책에는 링컨 대통령이 노예를 해방시켰다고 쓰여 있지. 링컨이 노예제도를 없애는 노예 해방령 문거에 서명한 건 사실이야. 하지만 모든 공을 링컨에게만 돌리는 건 옳지 않아.
노예와 흑인이 스스로를 위해 한 일을 잊지 말아야 해. 그것은 국가를 위한 일이기도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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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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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로서의 삶을 날것 그대로 보여주는 소설, 82년생 김지영.

며칠 전 이 책이 영화화 된다는 기사를 얼핀 본 기억이 난다. 82년에 태어난 여자의 이름 중 가장 많은 이름이어서 이 책의 제목이자 주인공이 된 그 김지영을 누가 연기하게 될 것인지, 암만 생각을 해봐도 딱히 떠오르는 얼굴이 없다.

 

어릴 적, 교실 속 남학생과 여학생의 숫자가 다른 것으로 어렴풋하게 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어떻게 다른지 알게 된 그 즈음, 나는 엄마가 밥을 풀 때마다 늘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엄마가 밥을 담아내는 순서가 불만스러웠다. 김지영 씨의 집처럼 우리집 역시 손위인 누나보다 남동생의 순서가 먼저였기 때문이다. 아빠, 남동생, 나, 엄마의 순이었는데 이래저래 생각해봐도 참 이상한 순서였다. 게다가 엄마의 밥은 갓 지은 밥이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찬밥일 때가 많았다. 더러는 내 밥도 찬밥인 경우가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몹시 화가 났다. 그땐 이유를 알지 못했지만 이제와 생각해 보면 마르고 식어버린 밥이 싫어서가 아니라 찬밥을 먹고 있는 내가 어딜 가서도 찬밥 취급을 받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서글펐던 것 같다. 엄마도 같은 여자면서 왜 그럴까. 나는 남자가 되고 싶었다. 허리까지 찰랑거리던 머리카락을 뎅강 자르고 당시 인기있는 남자 아이돌처럼 옷을 입었다. 그렇다고 해도 내가 남자가 되는 건 아니었다.

 

여권(女權)이 신장됐다고, 여자들 마음대로 남자를 움직인다고, 밤낮없이 일해서 집에다 돈만 갖다 바치는 남자들이 불쌍하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크게 달라진 건 없다. 김지영 씨의 대학 등산동아리 남학생들처럼 원하지도 않는 자잘한 일에는 갖은 배려를 다하는 것처럼 굴다가도 정작 중요한 부분에서는 자기들끼리만 결정한다. 모르게 하는 게 무슨 배려라도 된다는 양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며 몇 년째 아이들을 키우느라 경단녀가 되어버린 내 친구들이 떠올랐다. 그 지영이들의 삶이 고단한 건 이해하지만 처지가 다른 내가 공감하기는 쉽지 않았다. 잠깐 틈을 내서 만나거나 통화하는 것조차 쉽지 않아서 한동안 연락을 하지 않고 지낸 친구들을 생각하며 책장을 넘기다 맘충이라는 화살에 맞은 김지영 씨가 남편에게 하소연하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울컥하고야 말았다. 나를 포기하고 엄마로서의 삶을 선택한, 혹은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댓가가 생면부지인 사람의 비난이라면. 눈물이 흘렀다.

 

시종일관 무미건조한 말투인 이유는 마지막이 되어서야 밝혀진다. 이 모든 이야기를 전달하는 사람이 김지영 씨를 진료한 정신과 의사기 때문이다. 그는, 여자로 태어나 너무나 평범하게 여자로서의 삶을 살았을 뿐인 김지영 씨가 끝내 미쳐버리고 만 모습을 목도한 사람이자 김지영 씨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사는 아내에 대한 안타까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에 나는 그가 다른 사람들과 조금은 다르지 않을까 했지만 머리와 가슴 사이는 생각보다 먼 모양이다. 이 책을 읽었다는 내 주위의 남자들 역시 크게 공감하지 못한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타인의 아픔에 무감한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했다. 그래도 '82년생 김지영 씨'의 이야기가 도무지 꾸며낸 게 아니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시대는 반드시 온다고 쓴 어느 평론가의 말이 내게 작은 위안으로 남는다.

˝막내라서가 아니라 아들이라서겠지!˝


하지만 김지영 씨는 그날 아버지에게 무척 많이 혼났다. 왜 그렇게 멀리 학원을 다니느냐, 왜 아무하고나 말을 섞고 다니느냐, 왜 치마는 그렇게 짧냐…… 그렇게 배우고 컸다. 조심하라고, 옷을 잘 챙겨 입고, 몸가짐을 단정히 하라고. 위험한 길, 위험한 시간, 위험한 사람은 알아서 피하라고. 못 알아보고 못 피한 사람이 잘못이라고.

남학생들은 여학생들에게 꽃이니 홍일점이나 하면서 떠받드는 듯 말하곤 했다. 아무리 괜찮다고 해고 여학생에게는 짐도 글지 못하게 했고, 점심 메뉴도, 뒷풀이 장소도 여학생들이 편한 곳으로 정하라고 했고, 엠티를 가면 단 한 명 뿐이라도 여학생에게 더 크고 좋은 방을 배덩했다. 그래 놓고는 역시 무건하고, 힘 자루쓰고, 같이 쳔하게 뒹굴 수 있는 남자들 덕분에 동아리가 잘 굴러간다고 자기들끼리 으쌰으쌰했다. 회장도, 부회장도, 총무도 다 남자들이 했고, 여대와 도인트 행사를 열기도 했고, 알고 보니 남자들만의 졸업생 모임도 따로 있었다.

˝부담스러워서가 아니라 김지영 씨의 일이 아니라서 그래요. 그동안 센입 사원을 받을 때마다 느낀 건데, 여자 막내들는 누가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귀찮고 자잘한 일들을 다 하더라고. 남자들은 안 그래요. 아무리 막내고 신입 사원이라도 시키지 않는 한 항 생각도 안 해. 근데 왜 여자들은 알아서 하는 사람이 되었을까.˝


홧김에 김지영는 늦게 출근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똑같이 출근하고 똑같이 일할 거라고. 1분도 날로 먹을 생각 없다고. 그리고 미어터지는 지옥철을 견디기 힘들어 한 시간씩 일찍 출근하며 내내 섣불리 뱉어 버린 말을 후회했다. 어쩌면 자신이 여자 후배들의 권리를 빼앗고 있는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주어진 권리와 혜택을 잘 챙기면 날로 먹는 사람이 되고, 날로 먹지 않으려 악착같이 일하면 비슷한 처지에 놓인 동료들을 힘들게 만드는 딜레마.

어떤 분야든 기술은 발전하고 필요로 하는 물리적 노동력은 줄어들게 마련인데 듀독 가사 노동에 대해서는 그걸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전업주부가 된 후, 김지영씨는 ‘살림‘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라 이중적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때로는 ‘집에서 논다‘고 난이도를 후려 깎고, 때로는‘사람을 살리는 일‘이라고 떠받들면서 좀처럼 비용으로 환산하려 하지 않는다. 값이 매겨지는 순간, 누군가는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겠지.

가해자들이 작은 것 하나라도 잃을까 전전긍긍하는 동안 피해자들은 모든 것을 잃을 각오를 해야 했다.

˝그 커피 1500원이었어. 그 사람들도 같은 커피 마셨으니까 얼만지 알았을 거야. 오빠, 나 1500원짜리 커피 한잔 마실 자격도 없어? 아니, 1500원 아니라 1500만 원이라도 그래. 내 남편이 번 돈으로 내가 뭘 사든 그건 우리 가족 일이잖아. 내가 오빠 돈을 훔친 것도 아니잖아. 죽을 만큼 아프면서 아이를 낳았고, 내 생활도, 일도, 꿈도, 내 인생, 나 자신을 전부 포기하고 아이를 키웠어. 그랬더니 벌레가 됐어. 난 이제 어떻게 해야 돼?˝

아내는 여전히 초등 수학 문제집을 풀고 있고, 나는 아내가 그보다 더 재밌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 잘하는 일, 좋아하는 일, 그거밖에 할 게 없어서가 아니라 그게 꼭 하고 싶어서 하는 일. 김지영 씨도 그랬으면 좋겠다.


아무리 괜찮은 사람이라도 육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여직원은 여러 가지로 곤란한 법이다. 후임은 미혼으로 알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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