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석의 유럽통신
고종석 지음 / 문학동네 / 199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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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김수영, 최인훈, 김승옥, 김현, 김우창, 정운영 이후에는 어떤 문장이 있을 것인가. 이들의 글은 여전히 저릿하거나 아름답지만 우리 시대의 느낌은 아니었고, 진중권과 박민규는 가벼웠으며, 우석훈은 거칠었고 김연수도 시원치 않았다. 누군가가 나의 처지를 대변해주기를 바라는, 그것도 그 대변의 껍데기인 문장에 의존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세대의 허위의식인 듯도 하다.  

고종석에 대한 기대는 내가 읽은 거의 유일한, 그리고 그의 가장 최신작인 소설 『독고준』에 힘입은 바 크다. 나 역시 최인훈과 그 의식의 분신임에 틀림없는 독고준에 대한 허황된 동류의식을 갖고 있는 터여서, 그들에 대한 오마주를 작품화한 고종석의 감수성에 대한 신뢰를 형성하게 되었다. "망설임은 저의 운명입니다."(52)라거나, "감상주의는 제 삶의 일용할 양식이고, 제 존재의 버팀목입니다."(66)라는 다소 뻔뻔한 고백 겸 선언 겸 과시에 대해서도 오히려 공감을 표했던 것은 그런 이유때문이었다.  

이 책은 장편소설 『기자들』을 제외하면 아마도 가장 이른 시기에 그가 펴낸 책이 될 것이다. 그가 1959년 생이라고 하니 이 책 속에 들어 있는 서간문을 썼던 1994/95년은 그가 삼십대 중후반이었을 무렵일 것이다. 불혹에 다가서는 나이이지만 여전히 자신의 의식과 견지 위에서 열정을 갖고 있을 시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글 속에 드러나는 고종석의 목소리는 이미 노회하여 노년에 접어들어가는 사람의 그것이었다. 성찰적 주체의 체험 형식이 무능과 미숙이라는 사회학적 연구도 있지만(김홍중, 「근대적 성찰성의 풍경과 성찰적 주체의 알레고리」, 『마음의 사회학』, 문학동네, 2009.), 그에게서 보이는 노회함의 흔적이 성찰의 어쩔 수 없는 그림자라기에는 조금 들떠있는 느낌이었다.  

지인에게 보내는 편지가 인문·사회과학의 교양으로 가득차 있는 것(물론 그는 이처럼 서신의 형식에 수신자의 이름을 빌어서 매문을 하는 것에 대한 미욱함을 수차례 밝히고 있다), 각종 고유명사로 채워진 지면의 시각적 불친절함, 빠리와 유럽 곳곳의 정취에 대한 애정을 은폐하듯 드러내는 것 등은 그의 망설임과 감상주의가 자연스런 성찰의 일부라기보다는 혹시 의도적으로 연출된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들게 하였다. 이 책은 아마도 가십성 교양을 보충하려는 욕망의 대상으로 소비될 것이라는 점을 그는 몰랐을까(혹은 개의치 않았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 허영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삼십대 중반의 고종석이 쓴 이 책이 밉지만은 않았다. 그의 옛 동료 누군가는 그가 "삶에 능하지 못하고 글읽기와 글쓰기에 능하다고 비아냥"거렸다는데(182), 이처럼 쓸모없는 인간이 되어간다는 몰락을 자조의 가면으로 가리고서 자랑하는 그 자아도취가 한편으로는 순수해 보였기 때문이다. 감상주의와 허영은 이 순수함을 보존하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에 대한 애초의 기대가 많이 깎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후에 그의 글쓰기가 어떤 식으로 변해왔는지 추적하면서 읽어보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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