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을 위한 선언
알랭 바디우 지음, 서용순 옮김 / 길(도서출판)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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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바디우의 『철학을 위한 선언』을 읽었다. 바디우의 철학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플라톤과 하이데거의 사상, 횔덜린과 첼란의 시, 68혁명과 마오이즘, 칸토어와 코언의 집합론, 그리고 라캉의 정신분석학을 알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뒤로 제쳐두고, 불가능과 종언과 TINA(There is no alternative) 따위만이 운위되는 시대에 새로운 시작과 가능성을 말하고 있어서 흡족했다.  

위기와 몰락이 장신구로 전락하거나 상품처럼 팔려나가는 저간의 모습이 내게는 꼴사나워 보였다. 20대 세대 담론은 위기에 처한 20대의 현실을 끊임없이 말하면서 팔지 않고서는 유지될 수 없었고, "전부인 하나를 지키기 위해 그 하나를 제외한 전부를 포기한" 몰락의 표정을 사랑했다는 신형철의 평론은 중산층 여대생들의 화려한 문화적 교양의 액세서리로 읽혔다. 위기를 소비하는 사람은 뭔가 돌파구를 마련해야 할 정도로 절박하지 않았고, 몰락에 매료된 자들은 그 자신이 그런 몰락을 감당하려고는 하지 않았다. 나는 이들이 비겁하다 생각했지만, 이들보다 떳떳하다고 할 수도 없었다.  

『선언』에서 바디우는 현대의 방향상실성에 따른 철학의 종언에 대해 "탈대상화, 탈정향은 오늘날 더 이상 시적 은유 안에서 진술돼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 탈정향은 개념화될 수 있다"며 철학의 가능성을 역설한다.(109) 또한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만 한다"는 비트겐슈타인의 무기력에 대해 "반대로 우리는 그것을 명명해야 하며, 그것을 식별 불가능한 것으로 식별해야 한다."는 사고의 전환을 선보인다.(138) 부정성의 소멸이나 비판성의 약화 따위가 최근 한국인들의 의식구조에서 보이는 현상이라고 생각하면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고서 나는 진정한 부정과 비판의 정신은 다시금 그 부정성을 지양하고 긍정과 가능성으로 나아간다는 변증법의 진리를 다시금 신뢰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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