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 평전 - 시대의 양심
김삼웅 지음 / 채륜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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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양심, 시대의 참된 선비 신영복

 

나무가 나무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더불어 숲이 되어 지키자.

그릇은 비어 있음으로 쓰임이 생긴다

손은 갖고 있는 것을 내려 놓을 때 비로소 빈손이 된다.

 

신영복 선생님의 글과 글씨, 그림을 좋아한다. 글씨는 신영복체 내지 어깨동무체, 연대체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글씨가 참 좋다. 한참을 보고 있어도 어색하거나 전혀 싫증나지 않는다. 어느 평론가의 말처럼 선생님의 글씨는 독립적이면서도 서로 기대어 어깨동무하고 있다.”는 표현이 참으로 적절한 것 같다. 선생님 글씨체에 대한 평으로 한 획의 실수는 다음 획으로 감싸는 것이라는 것도 아주 적절한 표현이 아닌가 생각된다. 신영복체는 그만큼 여유롭고 넉넉한 체로 보는 이의 눈을 즐겁게 해주고 편안하게 해주는 그런 글씨체라는 생각이 든다. 선생의 붓글씨도 붓글씨지만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나무야나무야>, <더불어숲> 같은 책들도 참으로 대단한 책들이다. 이 책들은 처음 접한 이후 오랜시간 동안 꾸준히 곁에 두며 애독하고 있는 책들이다. 정말 기막힌 사건에 연루되어 20년이란 긴 세월동안 옥살이를 하면서 어떻게 이런 주옥같은 아름다운 글과 글씨들을 썼나 싶다.

 

풀잎은 쓰러져도 하늘을 보고

꽃 피기는 쉬워도 아름답긴 어려워라.

시대의 새벽길 홀로 걷다가

사람과 죽음이 자유를 만나

언 강 바람 속으로 무덤도 없이 세찬 눈보라 속으로 노래도 없이

꽃잎처럼 흘러흘러 그대 잘가라

 

선생의 생애는 대략 20년을 주기로 하여 구성되었는데, 감옥 이전의 20, 감옥의 20, 감옥 이후의 20년이다. 인생의 황금기라 할 수 있는 가운데 토막의 삶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가 감옥에서 산 20년 동안 한국 사회는 크게 변했다. 신영복 선생님의 삶, 특히 20년 감옥살이를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김광석의 이 노래 가사가 오버랩 된다. ‘시대의 새벽길 홀로 걷다가란 가사의 말은 선생님의 삶을 두고 하는 말 같다. 선생님의 억울한 옥살이는 온전히 시대의 아픔 그 자체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흔히 선생님을 두고 시대의 양심’, ‘진짜 참된 어른이란 표현들을 많이 쓰는데, 이 표현은 아주 적절한 것 같다. 20여 년의 억울한 옥살이에도 분노 대신 절제와 공부, 성찰로 달관한 인격을 온몸으로 보여주었다. 생각건대 선생님은 이 시대 진정한 학인이자 참 선비셨다.

최근에 <1987>이라는 영화가 개봉되어 대통령도 관람할 정도로 크게 화제가 되어 나도 영화관에서 보았다. 19871, 경찰 조사를 받던 스물두 살 대학생이 돌연 사망을 한다. 경찰은 멀쩡한 대학생을 잡아다가 고문으로 죽여 놓고는 증거인멸을 위해 시신을 재빨리 화장하려 하지만 담당 검사의 거부로 여의치 않게 되자, 다시 사건을 조작, 은폐하려고 한다. 고문으로 숨진 학생은 서울대생 박종철이었다. 박종철 군이 숨진 직후, 치안감은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라고 기자 회견장에서 말하지만, 그 자리에 있는 누구도 그의 말을 수긍하지 않은 채 국민들은 점점 더 분노하게 되고 마침내 청년의 억울한 죽음은 온 국민의 가슴에 불을 지펴 19876월 민주항쟁의 기폭제가 되어 대한민국 역사의 흐름을 바꾸게 된다는 게 영화의 주된 스토리였다. 이 영화를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으로부터 불과 30년 전인 1987년에도 저러 했을진데, 선생님이 살았던 1960년대는 과연 얼마나 더 참담하고 암담했을까? 모르긴 몰라도 그 시대는 1987년대 보다 더 더했으면 더 했지 결코 덜 하지 않은 더 암울하고 참담한 시대였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 어두운 시대의 한 가운데를 관통해 나오셨던 신영복 선생님. 평전을 읽으면서 선생님의 고단했던 인생 여정을 엿 볼 수 있었다. 출생에서부터 학창시절, 대학원 재학, 대학교수, 선생을 수렁으로 빠뜨린 통일혁명당사건, 20년 옥중생활, 중국역대시가선집 4권 공역, 동양고전, 그리고 76년의 일기로 운명까지, 책을 읽으면서 대한민국의 근현대사의 한 부분을 보는 듯 한 느낌도 지울 수 없었다. 이 책을 읽으니, 새삼 선생의 저서 중에 특히 명저로 꼽히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읽고 싶어졌다. 신영복 선생의 글을 읽은 적이 있고, 글씨를 좋아한다면, 평전을 한번 읽어봄직 할 것이다. 선생의 삶을 고스란히 회고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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