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서문
버크.베카리아.니체 외 27인 지음, 장정일 엮음 / 열림원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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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의 위대한 서문

 

지금까지 읽은 책 가운데 오래 마음에 남거나 특별하다고 생각한 서문을 모아 위대한 서문을 펴낸다. 이 서른 권의 책에서 뽑은 서른 편의 서문은 내가 쓴 것이 아니다.서문은 저자가 자신의 책 첫 부분에 붙이는 간략한 글이다. 제목이 압축 파일이라면 서문은 그것을 푸는 암호다.서문을 되새김질해서 얻는 즐거움 가은데 하나는, 서문과 본문 사이에 생긴 모순 혹은 미해결을 감지하는 것이다. 서문은 책의 작은 우주다.(5~13)

책을 좋아하다 보니, 거의 매주 시내 교보문고나 영풍문고를 방문하게 되는 것 같다. 서점에 가면 우선은 관심 분야의 신간 서적을 살펴보며 구입할 책을 고르게 되는데, 독자들마다 책을 고르고 선택하는 기준이 모두 다를 것이다. 나 또한 책을 구입할 때 나름의 기준이 있다. 우선은 책 제목을 살펴본다. 그러고 나서 저자의 약력과 이력에 대해 꼼꼼하게 살펴보며, 출판사가 어디인지를 확인 한 후, 책의 서문과 목차를 훑어본다. 좋은 책은 이미 서문에서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서문이 좋은 책은 내용도 좋고, 반대로 내용이 좋은 책은 서문 역시도 좋다. 가끔은 책의 서문이나 저자의 특이한 이력 때문에 책의 내용을 들춰보기도 한다. 역사학자 이희진이 쓴 <식민사학과 한국고대사>란 제목이 책이 있는데, 일제 식민지사학이 한국 고대사에 미친 영향과 한국고대사에 청산되지 못한 일제식민사의 잔재를 찾아보고 그것을 통해 대한민국사회의 병리현상을 살펴보는 게 주된 내용이다. 식민사학은 어떻게 아직까지도 강단을 장악하고 있는가. 그들은 무엇 때문에 식민사학에 그토록 집착하는가. 식민사학은 역사를 어떻게 조작했는가?”하는 게 책의 핵심 내용인데, 이 책에 대한 관심은 저자의 약력에 소개되어 있는 특이한 내용 때문이었다. 자연과학을 전공하려 들어갔던 대학에서 인문학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제 발로 역사학으로 전공을 바꾼 저자는 고대한일관계사 분야를 중점적으로 연구하다가 대한민국의 고대사연구자들이 얼마나 일본의 연구에 의지하고 있는지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고 뭘 모르던 시절, 함부로 입을 놀려서는 안 되는 미천한 신분을 깨닫지 못하고 알고 있는 내용을 여기저기 발설한 죄로 지금까지 왕따를 당하고 있다라고 하는 게 주된 내용이었는데, 내가 모르는 세계에 대한 여담 이야기가 나름 흥미로웠다.

허우범 작가의 <삼국지기행>도 비슷한 경우인데, 이 책에 대한 관심도 순전히 책의 서머리에서 비롯되었다. 작가는 요즘 아이들 표현을 빌리자면, 소위 삼국지에 푹 빠진 삼국지 덕후라 할 수 있을 터인데, 그는 삼국지 매니아답게 젊은 시절부터 <삼국지>를 수차례 읽었을 뿐만 아니라 <삼국지>가 인정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진수의 정사<삼국지>는 물론, 소설에 해당하는 <삼국지연의>와 원나라 때 출판된 <삼국지평화>까지 수없이 탐독하였고, <삼국지>에 관해 치밀한 주를 단 <배송지주>와 양신의 <삼국회요>등 책 제목도 생소한 이런 책들까지도 아주 세밀하게 살펴보았다고 한다. 그렇게 삼국지에 빠져 지내다 보니, 삼국지의 현장을 직접 찾아가고픈 마음이 들어 마침내 결심을 하고는 실제로 7년에 걸쳐 중국 곳곳의 삼국지 현장을 누비며 우리나라 최초의 삼국지 현장답사기를 펴내게 되는데, 서머리의 내용만으로도 저자의 삼국지에 대한 열정이 어느정도 되는지 충분히 짐작하고 가늠할 수있었다. 사실 이런 뜨거운 열정을 가진 작가의 책이라면, 그 내용은 다시 말해 무엇 하겠는가? 근래 영화 개봉과 함께 덩달아 인기가 높아진 웹툰 만화가 있는데, <신과 함께>이다. 사실 이 책도 영화 개봉 영향으로 관심을 가지게 되긴 했지만, 읽어볼 마음을 먹은 건, 우연히 도서관에서 발견한 이 책의 독특한 저자 이력 때문이다. 주호민, 81년생, 2005년 애니메이션과에 다니다가 휴학하고 군대에 갔다 오니 학과가 없어져버렸다. 홧김에 학교를 때려치우고 군대 경험을 만화로 그려 <>이라 이름 붙이고 인터넷에 올렸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만화가가 되어 있더란다. 책 표지 저자의 이력 부분을 읽는데, 그 이력이 무척이나 재밌고 사실적이어서 결국 이 책을 다 읽게 되었다.

장정일의 위대한 서문을 읽다보니, 나 또한 책과 관련된 이런 에피소드가 생각이 나서 횡성수설 해 보았다. 명저의 서문은 역시 명저의 서문다웠다. 서문의 말처럼 서문은 여러차례 되새김질해서 읽을 가치가 있는 글임에 분명하다. 서문을 읽으면서 서문만을 모아 서문모음집을 펴낸 그의 발상이 놀라웠다. 위대한 서문을 읽는 순간, 이미 30편의 책을 읽은 것과 같은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명저의 서문이 궁금하다면, 이 책은 충분히 일독의 가치가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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