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위에 새긴 생각
정민 엮음 / 열림원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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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위에 새긴 생각.

 

恨古人不見我

옛 사람이 날 보지 못함이 한스럽구나.

책을 열고 나는 옛사람과 만난다. 그때 그의 마음을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 나는 그를 벗으로 여기는데 그는 나를 벗할 수가 없구나.(68)

 

오랜만에 마음을 흠뻑 사로잡은 책을 만난 것 같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이 책을 통해 한자라는 문자의 매력을 다시 발견하게 된 것 같다. 한자의 서체가 이렇게 변화무쌍하고 또 아름다운 문자였던가? 돌 위에 붉은 인장으로 새겨진 글자들은 그야말로 진기한 한자의 또 다른 예술 세계를 보는 것 같았다. 담겨 있는 의미와 글자의 조형미가 결합된 화려한 전각예술의 세계. 이 책을 보면서 <학산당인보>라는 책에도 관심이 갔다. 이 책은 명나라 말엽 장호(張灝)가 옛 경전에서 좋은 글귀를 간추려 당대의 대표적 전각가들에게 새기게 해 엮은 책으로 읽는 이들에게 삶의 지침으로 삼을 만한 인생의 지혜를 전해주었다고 하는데, 구해 볼 수 있다면, 이 책 또한 구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과거 모든 것이 불편하고 도구도 변변치 않았던 시대에 단단한 돌에다가 어떻게 저토록 정교하게 글씨를 파고 새길 수 있었을까? 그것도 일반 글씨도 아니고 획과 선이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한자를 말이다. 그리고 옛 선현들은 도대체 그 내용이 얼마나 좋았으면 단단한 돌에 글을 새겨 도장을 만들 생각을 하였을까? 페이지를 넘기면서 선현들의 지혜와 고상한 취미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생각건대 전각을 취미로 하였던 문인이나 학자들의 경우, 많은 다양한 인장들을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인장은 돌로 만든 책 도장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은데, 멋진 글씨체로 새긴 인장은 그야말로 책의 품위와 품격을 더해 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의 경우, 책 도장이 별도로 있는 건 아니지만, 책에 그냥 내 이름이 새겨진 도장을 찍었었다. 과거에 말이다. 단순히 그냥 내 책임을 표시하기 위해서였는데, 이 책을 보니, 이름 도장이 아닌, 의미 있는 도장을 책에 찍어두면 대단히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이 없는데도 근심겹고

경치와 마주해서도 즐겁지가 않다면 이게 바로 산지옥이다.(87)

 

무엇하러 이리 살 것인가? 하루하루 즐겁게 살아도 짧은 세월이다. 골치 아프게 근심한다고 해결되지 않을 것 같으면, 차라리 긍정적인 마음으로 기분 좋게 살면 그만이다. 아등바등 욕심내지 않으면, 남의 것을 빼앗으려 하지 않으면, 죄 짓지 않으면 세상에 하등 근심할 일이 없다.

 

좋은 책을 만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좋은 책이라 하면, 일단 내용이 좋고, 가독성도 좋아 신나게 읽히는 책을 말함이다. 더하여 유용한 지식과 교훈, 배울 점까지 두루 갖추고 있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근래에 만난 <돌 위에 새긴 생각>과 같은 책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책 소개 글을 보고 그 내용이 굉장히 흥미롭겠다 싶었는데, 아니다 다를까 기대이상이었다. 평소 한자나 한자의 서체, 캘리그라피 등 예술 글씨체에 대해 관심이 있고, 한자 공부를 해 본 이들이라면, 정말 재밌게 읽을 수 있고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그런 책으로 생각된다.

예전에 서울 인사동에 갔다가 우연히 돌 도장을 새겨 주는 가게를 본 기억이 난다.

책을 읽다가 멋진 구절을 만나게 되면, 꼭 메모해 두었다가 돌 도장으로 새겨 보고 싶다.

인장을 새겨 애지중지 아끼는 책에 찍는 기분은 어떤 기분일까?

<돌 위에 새긴 생각>은 간만에 만난 대단히 매력적이고 매혹적인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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