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화는 민화다 - 이야기로 보는 우리 민화세계
정병모 지음 / 다할미디어 / 2017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 복이 담겨 있는 우리의 그림, 민화

 

언제부턴가 우리 옛 그림에 관심을 가지고 되었고, 옛 그림 감상하는 걸 좋아하게 되었다. 옛 그림을 보고 있으면 참으로 정겹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그리고 그림마다 사연과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 그림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추상화나 서양화와는 달리 어렵지 않게 그림의 내용이 읽힌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미술관이 있는데, 가끔 미술관에서 우리 옛 그림 전시회라도 열릴라 치면 아무리 바빠도 전시회 기간 중에 시간을 내어 아이들과 함께 가서 꼭 보고 온다. 전시된 그림을 한 작품씩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아이들과 그림 속 사연과 내용, 느낌, 감상 등을 주고받는 재미가 솔솔하다. 사실 그림 보는 법은 몇 년 전에 박신양과 문근영이 출연하여 단원과 혜원의 일대기를 다루었던 <바람의 화원>이라는 드라마를 보면서 조끔 배웠다. 이 드라마는 재방송까지 챙겨 볼 정도로 아주 감명 깊게 본 드라마인데, 그 드라마 속에서 정조는 두 화원이 그린 시정의 풍속 그림을 통해 관리의 부정부패를 발견하여 죄를 지은 관리를 엄하게 문책하던 내용과 화원들이 그린 그림을 임금과 신하들이 품평하는 장면들이 많이 있었다.

민화(民畵)는 민화(民話). 같은 말 같지만, 한자가 다르다. 앞의 민화(民畵)는 백성들이 그린 그림, 백성의 그림을 뜻하는 민화이고, 뒤에 민화(民話)는 백성들의 이야기란 뜻의 민화이다. 책을 보고 솔깃했다. 사실 민화 중에서도 좋은 그림들이 많고, 예전에 보면서 이 그림을 도대체 왜 이런 모습을 하고 있는지? 도대체 나타내고자 하는 의도가 뭔지, 선뜻 와 닿지 않은 그림들이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 조선시대 삶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한편, 조선시대 민화를 읽고 완상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을 것으로 잔뜩 기대가 되었다.

 

책가도, 조선시대 서가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그림이다.

이것은 책이 아니고 그림일 뿐이다. 1791년 정조가 어좌 뒤에 책가도병풍을 설치하고 신하들에게 작심하고 한 말이다. 이 한마디는 책 그림의 유행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책을 보면서 민화의 범위가 의외로 크고 넓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그림에는 풍속화, 인물화, 산수화, 수묵화, 문인화 등 다양한 장르가 있지만, 민화는 이 모든 개념을 포괄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민화는 우리의 사상, 정서, 감각 등을 담고 있는 그림이기에 한국화로 불리는 것이 맞다.” 2017년 솔거미술관에서 열린 경주민화포럼 행사에서 성파스님이 하신 말씀이다. 민화의 본질은 그림을 보면 알겠지만 가장 한국적인 그림이다. 민화 속에는 우리의 정서, 취향 말고도 우리의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궁중회화가 고급스런 한정식이라면, 민화는 김치나 된장처럼 구수한 그림이라 할 수 있다. 민화(民畵)는 문자 그대로, 서민의 그림, 일반 백성들의 그림이 모두 민화의 범주에 들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문화센터나 대학의 평생교육원에 가보면, 민화 퀼트, 민화 그림 반이 개설되어 있을 정도로 민화에 대한 관심도 높고 뜨거운 것 같다.

 

삼국지연의도 중 조자룡이 창을 잡고 말 위에 올라 유비의 어린 아들을 구하는 자룡단기구주는 실로 멋진 그림이다. 과거 영화나 텔레비전이 없었을 때 순수 글씨로 된 삼국지의 내용을 그림이 보여주는 힘은 정말 신세계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후에 기회가 된다면 조선민화박물관에 가서 큰 실물 그림을 꼭 한번 보고 싶다.

 

 

지난 추석에 차례를 지낸 다음날 연휴도 길고 해서 가족들과 경주 나들이를 갔다. 보문단지와 유명 관광지에서 사람들이 넘쳐날 정도로 많아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보문호 주변의 둘레 길을 걷다가 마침 경주 엑스포가 추석 연휴 기간에 무료개방이라고 해서 놀러가게 되었다. 행사장 곳곳을 둘러보다가 솔거미술관을 발견하게 되었고 자연 발걸음을 그곳을 향하게 되었다. 솔거미술관은 20172월 경주민화포럼이 열렸던 바로 그곳이었다. 경주민화포럼이 개최되었던 미술관답게 이곳 미술관에서 우리의 시골과 산, 들을 그린 멋진 우리 풍경화와 그림들을 다소 만날 수 있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그 그림들을 생각해 보니, 그 그림들이 바로 민화였다. 민화 그림 속 특유의 구불구불하고 거친 선들은 기교라고는 전혀 느낄 수 없는 순수한 표현 그 자체였던 것이다. 이 책을 보고 나서 민화의 그림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 민화를 모르고 볼 때는 저게 무슨 범이고, 호랑이인가? 외람되지만 민화 속 호랑이를 그림을 보고 피식 웃음이 나온 적도 있었다. 이제 막 그림을 배우는 초등학생이 그려도 저거 보다는 잘 그리겠다는 생각을 하며,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매우 어리석은 생각임을 알았다. 민화는 그림을 막 배우기 시작한 아이들의 그림처럼 기교가 없고, 순수하며 천진하고 솔직한 그림이라는 사실을, 승화된 동심이 들어가 있는 수수한 그림이야말로 바로 우리 민화가 표현해 내고 담고자 했던 그림임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이 책은 민화 그림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볼거리가 풍성한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